누런개 매그레 시리즈 5
조르주 심농 지음, 임호경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6월
평점 :
품절


이유 모를 위협은 공포 그 자체다. 뚜렷한 인과관계나 동기를 알 수 없으니 누구나 피해자가 될 수 있다는 자연스러운 두려움을 조성하기 때문이다. 이게 언제 끝날지 몰라서 사람들은 필사적으로 어떻게든 이유를 찾게 된다. 아니, 정확히는 사실과 관계를 파악하지 않고 그럴싸한 이유를 만들기 급하다. 불길한 상징이나 존재라 불리며 멸시 받는 것들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이다. 여기서 생각해 봐야 할 점이 있다. 진짜 아무런 이유 없이 발생하는 일이 있을까? 어떤 일이든 원인과 결과가 있다. 단순하게 공포만 부각되며 객관성이 결여되다 보니 그 만큼 밝혀지지 않은 사연의 깊이가 상당할 수밖에 없다.

폭풍우가 몰아치는 늦은 밤 항구도시 콩카르노에서 카페를 나선 포도주 도매상 모스타구엔이 총에 맞는 사건이 발생한다. 단서는 사건 현장 근처에 있던 빈집에 누군가 있었던 흔적이 전부. 범행 동기 역시 알 수 없는 가운데, 갑자기 나타나 주변을 배회하는 누런 개만 눈에 띌 뿐이다. 이후로 모스타구엔과 친분이 있던 지역 유명인사 한 명, 한 명이 피습을 당하고, 그 현장에 언제나 누런 개가 나타나는 바람에 사람들은 불길한 존재로 취급하게 되는데...

지역 사회라는 환경 속에서 굉장히 소란스럽게 진행되는 사건이라 혼자 관점을 다르게 보는 매그레 반장이 유독 눈에 띄게 나타난다고 할 수 있다. 분위기만 보면 극악무도한 대사건이 벌어진 걸로 보일 만하다. 누런 개라는 부분에서도 어딘지 모르게 비현실적이고 수상쩍은 요소가 있어 보이고. 하지만 언제나 그렇듯이 이런 거창한 것들은 매그레 반장과 전혀 어울리지 않다. 제 아무리 침착하지 못하고 성급한 상황이더라도 본질은 하나다. 사람 사는 이야기.

매그레 반장 시리즈 역시 엄연히 추리소설임에도 작중에서 추리를 경계하라는 듯이 말하는 부분이 나와서 여러모로 묘하게 보였다. 그냥 보면 생각을 포기하는 것처럼 보이겠지만, 실질적으로는 지나친 억측을 조심하라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실제로 작중의 대부분은 억측으로 가득하다. 다양한 소문이 진짜인 것처럼 떠돌고, 몰려든 신문 기자들의 취재 경쟁까지 합쳐져 더욱 과열되어간다. 이건 지금의 현실도 마찬가지다. 객관성은 전부 무시하고 성급한 결론을 내며 자극성만 부추기는 추리가 남발하고 있으니 말이다.

타지역에 파견 나와 있는 상황이다 보니 오래 같이 일한 베테랑이 아닌 신참 형사와 같이 다녀서 나타나는 방식의 차이도 꽤 재미있는 부분이다. 매그레 반장은 하던 특유의 방식 그대로. 반면 신참 형사 르루아는 당연하면서도 정석적인 수사방식을 고수하면서 반장의 눈에 들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다. 딱히 옛날 사람과 요즘 사람의 대립 같이 불편한 구도는 아니다. 서로의 방식에 대해 존중하는 자세라 보통 경찰과 매그레 반장의 방식이 어떤 식으로 차이가 있는지 보여주는 연출이라 보면 되겠다.

뚜렷한 실체 없이 퍼져나가던 공포 속에서 밝혀진 진실은 추잡한 범죄에 휘말려 삶을 잃어버린 안타까운 드라마다. 열심히 살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불행이 닥치고, 열심히 살지 않아도 그만인 불한당들은 아무렇지 않게 큰소리 치며 살아가는 현실. 이런 와중에 한때의 유흥으로 끝난 걸로 알고 있던 과거의 사건 당사자가 다시 돌아온다면 가장 두려워할 사람은 누구인가. 사실상 비겁한 겁쟁이들로 인해 벌어진 하나의 촌극이었던 거나 마찬가지다.

참으로 비열한 사건이라 그런지 권선징악 하나 만큼은 제대로다. 다소 공정하지 않은 구석이 있다고 생각될 수도 있지만 어쩌겠는가. 매그레 반장은 해피 엔딩을 보고 싶어 했고, 이건 독자 역시 마찬가지 아닌가. 무엇보다 작중의 드라마는 결말을 향해 꺼져 가고 있는 게 아니라, 충분히 다시 타오를 수 있는 기회가 남아 있다. 그러니 매그레 반장은 보고 싶었을 것이다. 불행하게 중단 됐다가 다시 시작되는 드라마의 첫 장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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