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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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분위기로 봐서는 보통 일본 기담처럼 보여도 '기담 수집가의 환상노트'라는 부제에 걸맞게 내용에 걸맞거나 아니면 주인공들 끼리 만담용 장광설이 많이 나와서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편이다. 하지만 교고쿠도 시리즈처럼 내용을 유도한다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약간 지적인 대화를 주절주절하는 느낌이라 약간 지루하게 보이기도 한다.

 대체로 도시괴담 같은 느낌에 옛스럽고 요괴나 마을단위의 민간신앙이라던가 지방 풍습이 주로 나타나는 일본 기담적인 내용이 있긴 하나, 곳곳에 서양적인 느낌이 도사리고 있어 보였다. 그래서 서양분위기나는 일본 기담 같다고 해야겠다.

 한 가지 알려두자면, 주인공 이름이 사루와타리라 그런지 모르겠지만(사루=원숭이) 작중에서 대부분 일을 안 좋게 만들어버려서 원숭이 되는 일이 상당히 많다.

 

반곡터널

 드라큘라 백작 같은 포스를 가진 괴기작가와 함께 이번에 마련한 중고차로 길을 나선 사루와타리는 어느 터널에 대한 괴소문을 접하는데...
 본격 프롤로그 겸해서 나오는 짤막한 괴담 같은 내용이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사루와타리가 가면 갈수록 원숭이가 된다는 암시가 깔린 것처럼 보인다.

아시야 가의 몰락

 백작과 함께 각 지방의 두부음식을 먹으러다니던 사루와타리는 아메노 세이메이에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대학지절 사귀던 유리코를 떠올린다. 그러다 백작도 유리코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 같이 유리코의 고향을 방문하기로 한다. 유리코의 고향에 도착한 사루와타리와 백작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 오마주라고 하는데, 가문이 나온다는 점 외에는 완전히 새롭게 느껴져서 오마주로서의 본보기로 좋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유명한 음양사 아메노 세이메이에 관련된 전설과 연관 있는 음양사 가문은 음울한 느낌의 어셔 가와는 달리 뭔가 비밀사교 집단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크게 언급되거나 묘사된 점은 없었어도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말을 보고서는 어셔 가의 몰락 보다는 러브크래프트의 벽속의 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등 여자

 사루와타리는 공연을 보러갔다가 어떤 여자에게 자리를 내준 답례로 영화를 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 여자는 기괴한 고양이등이었고, 꺼림직한 기분에 사루와타리는 다음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한다. 그 후, 고향에 갔다온 사루와타리는 하숙집 현관에 불이 난 걸 시작으로 섬뜩한 일을 겪는데...
 여자가 주인공을 위협하는 내용은 약간 흔할 수도 있지만, 이 여자는 생김새부터 이상한 여자다. 하지만 사이코페스러던가 정신이상자가 아닌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정신이상자에 의한 스릴러라기 보다는 약간 스토킹 당하는 사람이 느낄 법한 공포다. 문제는 이 여자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지면서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요괴나 다름없는 취급을 하게 된다.
 공포의 주체가 되는 존재가 실존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외모에 출처불명의 정체, 그리고 동기를 알 수 없는 잔혹한 스토킹으로 인해 요물이 등장하는 기담 같은 분위기로 느껴졌다.
 

카르키노스

 백작과 통화를 하던 사루와타리는 백작의 부탁으로 영화 시사회에 갔다올 겸해서 같이 시즈오카로 게를 먹으러 간다. 그곳에서 시사회 주최자이자 붉은 게 요리를 소개 시켜 줄 혼고를 만난 백작 일행은 식사초대를 받아 저택에 도착하게 되고, 식탁에서 기괴한 게를 보게 되는데...
 기괴한 바다생물이 나오고 그에 관한 금기, 그리고 바다생물에 대한 혐오(약간 특정 생물에 한정 되기는 하지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약간 크툴루 신화 느낌이 들었다. 제목의 카르키노스는 게자리 별자리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게로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와 싸울때 나타났다가 별다른 영향력 없이 짓밟힌 기구한 존재다. 신화에서의 모습은 이렇지만 본작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초서기

 대학을 갓 졸업했을 당시, 사루와타리는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언처 살던 중, 주인인 니나가와의 부탁으로 방역업체에 쥐 방역을 요청하게 된다. 방역업체 사람들이 다녀간 후, 사방에 널린 끈끈이 때문에 곤욕을 치르던 사루와타리는 비상계단 쪽에서 이상한 소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걸 읽으면서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 '철야 근무'(스티븐 킹 걸작선의 스티븐 킹 단편집 '옥수수 밭의 아이들' 수록)가 생각났다. 똑같이 쥐가 주재고 내용이고 쥐를 잡는 것이 나오긴 했지만, 여기서는 도시 빌딩 천장에 사는 쥐의 영악함을 조심하라는 느낌이다.
 사실 여기서 쥐도 중요하지만 이 쥐를 잡는 방역업체도 상당히 이상한 구석이 있다. 마치 한밤 중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빈 도심에서 쥐들과 진짜 죽자살자 전쟁을 벌이는 것 같은 인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도시에 사는 쥐들이 진짜 영악하다면 한밤 중 건물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을 일단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케르베로스

 백작과 사루와타리는 어떤 여배우의 부탁으로 군마현의 외진 마을로 향한다. 그곳은 지벌로 인해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로 여배우의 쌍둥이 동생이 원인으로 지목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방법을 모색하던 백작은 마을 신사에 있는 고마이누 상을 눈여겨 보게 되는데...
 일본의 신토와 서양 저승관이 혼합되어 나와서 상당히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일본 신사의 수호신인 고마이누와 케르베로스를 연관시키고 거기에 서양인의 흔적을 혼합시켜서 진정한 서양풍의 일본 기담 같았다. 그 외에는 전형적인 일본의 외지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담 같은 내용이지만 마지막 반전이 상당히 소름끼친다.
 참고로 여기서 사루와타리는 다른 에피소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원숭이가 된다.

송장벌레

 학창시절 때 알고 지내던 이요다와 만난 사루와타리는 할아버지가 수집하던 카메라를 회상하다가 사진을 찍고 싶어져서 구식 카메라를 빌리기로 한다. 이요다의 집에는 같이 마다가스카르로 여행을 갔다가 이상한 벌레를 먹고 죽어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요다는 카메라를 빌려주는 대신 원하는 사진 여러 장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던 사루와타리는 카메라 렌즈 안에 있는 요상한 벌레를 발견하게 되는데...
 앞서 어셔 가의 몰락 오마주에 이어 이번에는 황금 벌레를 오마주한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추리소설인 황금 벌레와는 다르게 이건 진짜 벌레가 잔뜩 나오는 내용이다. 곤충의 종에 대한 고찰과 함께 벌레에 대한 공포와 미지의 공포가 공존하는 구석이 있어서 현실적인 섬뜩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사루와타라가 의도를 모르고 한 원숭이 짓이 한목 더해서 그렇다.
 결론은 아무리 벌레가 단백질 덩어리라도 모르는 벌레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소 떼

2년 동안 디자인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다가 영문을 모른채 해고를 당한 사루와타리는 폐인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 사루와타리를 딱하게 여긴 백작은 취재장소로 같이 데려가기로 한다. 백작과 함께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는 호텔에 도착한 사루와타리는 한눈을 파는 사이 백작을 놓치는 바람에 한 식당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그런데 식당 주방장이 안색이 좋지 않다면서 특제 물소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 동안 온갖 고초를 겪은 사루와타리가 갱생하게 되는 내용겸 에필로그 분위기이다. 대부분의 내용에서 사루와타리는 주변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결국 결말에 가서 원숭이 짓을 하고, 사건을 파고드는 건 백작이다. 그러나 이번 내용에서 백작은 사건에 개입은 커녕 아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사루와타리가 모든 걸 다 떠맡는다. 
 문제의 물소라는 존재가 주는 영향력이 상당한데, 마치 괴물 영화에 나오는 크리처 수준이다. 하지만 단순히 위협을 가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포를 통해 삶의 기력을 되찾아주는 기이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상당히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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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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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금도 그렇고 옛날도 그렇고, 무서운 이야기는 존재해 왔다. 특히나 옛날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괴하고 묘한 얘기가 많았다. 인터넷 같은 통신수단이 없던 그 시절에는 주로 다른 지방 사람이 여행을 하면서 듣고 널리 알렸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작중의 주요 인물인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가 바로 그런 인물로 보였다.

 기담하면 단순한 무서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엠브리오 기담을 읽어보면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포하면 무조건 자극적이고 징그러운 것밖에 떠올리는 요즘과는 다르게 과거에는 귀신이나 사후세계와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엠브리오 기담

 여행서 작가 이즈미 로안의 짐꾼으로 처음 일을 시작한 미미히코는 로안의 길 잃는 여행에 힘들어 하던 중, 어느 마을에서 낙태 후 버려진 태아를 발견한다. 아직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에 미미히코는 태아를 주워와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생명의 경이와 그걸 이용하려는 인간의 몰지각한 행동, 그리고 기묘한 인연이 보이는 내용이었다. 작중에서 낙태 후 버려진 태아가 살아있다는 것말고는 크게 기묘한 것이 없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에게서 나온 부성애라던가, 탯줄로 이어진 관계가 아님에도 어렴풋이 남는 기억 같이 애처로운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아마 아이를 가진 부모와 그 부모의 손에서 자란 아이의 느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라피스 라줄리 환상

 어릴 적, 부모님을 모두 잃고 도매 서점 주인의 집에 살던 린은 여행서 작가 이즈미 로안의 여행길에 동행하게 된다. 길을 잃고 해매다가 도착한 어느 외진 마을에서 린은 촌장 노파에게 라피스 라줄리를 받은 뒤, 환상적인 삶을 살게 되는데...
 미미히코가 아닌 인물이 주요 인물인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일종의 인생이 반복되는 윤회 같지만, 자신의 삶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루프 같은 느낌이라 해야겠다. 한 사람이 같은 인생을 반복해서 살면서 겪는 갈등과 자신에게 만 존재하는 이전 인생의 추억 때문에 생기는 죄책감, 거기에 아무리 반복되는 인생 속에서도 결국 자신이 원하던 인연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아련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윤회를 한 사람을 위해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인생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자체와 기억을 애초에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는 가.

 수증기 사변

 의뢰처에서 알려준 온천마을을 찾아가던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는 온천이 있는 산 속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전부 음침한 인상의 주민들과 폐가나 다름없는 집으로 인해 기묘함이 더해가던 중, 여관 주인이 이즈미 로안 일행에게 밤에는 온천에 가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하는데...
 엠브리오 기담 이후로 또 다시 미미히코가 기묘한 일에 휘말리는 내용이다. 주로 미미히코의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루어서 엠브리오 기담에서 살짝 지나갔던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 나타나있다.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그 동안 나온 미미히코의 행적이나 이번 화에서 나타난 절망감을 보면 당장 죽으려해도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미미히코를 돌려보낸 건 아늑한 기억 속에 있었던 죽은 친구였다. 이걸 보면서 고의로 죽든, 사고로 죽든, 이미 죽은 사람에게도 저승은 그리 좋은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맺음

 어느 여관마을 주막에서 만난 닭과 함께 여행 중이던 이즈미 로안 일행은 비내리는 산길을 오르던 중, 외딴 어촌에 도착하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동요하지 않은 로안에 비해 미미히코는 어촌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
 그 동안 훈훈하고 안타까운 인물로 나온 미미히코가 정말 나쁜사람으로 몰려도 할말 없어 보였다. 어촌에 있는 내내 미미히코는 심각할 정도로 주변의 모든 것이 공포스럽게 느끼는데, 정작 이즈미 로안과 마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서 읽는 내내 미미히코가 비정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원래 이런 상황이면 눈치채지 못하던 일행이 나중에 가서 충격적인 것을 발견하고 동조하는 게 다반사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즈미 로안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결국에는 미미히코만 이상한 놈이 되어버리고 만다.

 있을 수 없는 다리

 어느 낭떠리지와 맞다은 마을에 도착한 이즈미 로안 일행은 마을 입구에서 보았던 구름다리가 이미 무너지고 없는 다리이며, 가끔씩 유령처럼 안개 속에서 나타난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날 밤, 잠결에 밖으로 나온 미미히코에게 한 노파가 오래 전, 그 다리에서 죽은 아들에게 사죄하고 싶어서 구름다리에 같이 가달라고 청하는데...
 본격적으로 작가가 독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는 내용이다. 이전에 나온 엠브리오 기담이나, 라피스 라줄리 환상, 수증기 사변처럼 훈훈한 내용으로 보였으나 결국에는 충격과 공포로 이어진다. 작중에서도 말하지만, 해피엔딩은 우리가 바라는 엔딩일 뿐,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 아닌 물체가 유령으로 나타났다는 점부터 신비롭게 보였다. 한편으로는 그게 물체 그 자체의 영혼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다리를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없는 산마루

 산 속을 헤매던 이즈미 로안 일행은 어느 남자를 만나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처음에 만난 남자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미미히코를 보고 '얼굴 없는 산마루'에서 굴러 떨어져 죽은 모키치가 돌아왔다며 기겁을 한다. 미미히코는 계속해서 부정하지만 가면 갈수록 모키치가 자신과 닮은 것을 넘어 거의 일치하기 시작하면서 혼란을 겪는데...
 마치 도플갱어가 연상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모키치와 미미히코는 그런 초자연적 현상과는 다르게 그저 다른 곳에 살고 있었던 똑같은 인생을 살고, 똑같이 생겼으며, 똑같은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을 뿐이다. 일종의 평행이론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역시 엠브리오 기담처럼 초반에만 기묘하고, 대체로 미미히코와 빼닮은 남자의 가족의 사연이 주를 이룬다. 
 손해보지 않는 정체성 혼란이라는 걸 두고 고민해보는 걸 여기서 처음 느껴봤다. 원래의 나 자신의 불행한 삶을 버리고 이름만 다르고 나와 닮은 인물이 남긴 것들에게 동화되는 것이 행복할지, 아니면 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지금의 삶이 앞으로 행복할지.

 지옥

 온천마을을 찾아가던 이즈미 로안 일행은 다리를 다친 어떤 여자로부터 길을 안내받으나 산적에게 습격을 받게 된다. 기절한 미미히코가 깨어난 곳은 산적의 집 근처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 안이었고, 그곳에서 지옥을 맛보게 되는데...
 지금까지 나온 내용 중에서 가장 섬뜩하고, 아무런 사연이 없고, 사후세계 같은 것도 없이 오직 현실 공포 그 자체에 충실했다. 지금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짓이 벌어지는데, 옛날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벌이는 이들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더 설명할 필요없이 간단히 얘기하자면 주인공 빼고는 전부 베드엔딩, 즉 지옥이라고 보면 된다.

 빗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산적에게 습격당한 이후, 이즈미 로안은 요양 중인 미미히코 대신에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청년을 짐꾼으로 고용해 여행길에 나선다. 청년과 함께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목적지로 가던 중, 이즈미 로안은 청년에게 일어나는 기묘한 일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 동안 여행다니면서 이상한 일이 생겨도 항상 미미히코를 바보취급하던 이즈미 로안이 처음으로 식겁한 내용이다. 백가지 기묘한 이야기(햐쿠모노가타리)를 비롯한 일본 괴담이 주로 다루어져서 그 동안 나온 기묘한 여행길 분위기 보다는 여행길에서 일어난 괴담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볼 때는 약간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의 무서운 이야기처럼 보였다.
 지금도 곳곳에서 무서운 이야기가 돌고 즐기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무서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서 입소문을 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한 소작농의 여자가 지주의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지만, 모진 대우를 받으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찾지 않는 커다란 곳간에 있던 중 구석에서 책을 읽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이 말하기를, 자신은 길을 해매다가 이곳에 왔다고 하는데...
 소작농 여자의 사연은 보면 볼수록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면과 시집살이가 생각났다. 그래서였는지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약간 뻔한 설정 느낌이 들었다. 이 점만 빼면 대체로 소년이 길을 잃게 되는 경위와 의도치 않게 길을 잃는 기묘함이 주를 이룬다.
 일본의 텐구와 함께 다루어져서 이 길을 잃는 소년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어 다니는 느낌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 길을 잃는 소년과 인생에서 길을 잃은 여자의 만남은 서로에게 길을 알려주었고, 막다른 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걸 보며 길을 잃어도 누군가와 같이 잃는다면 적어도 각자에게 원하는 길을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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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머더 - 추리 소설에서 범죄 소설로의 역사
줄리안 시먼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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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나온 추리소설은 방대하고, 그 안에서도 여러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그 만큼 수많은 작가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한 시대를 넘어 오래 기억되기도 하고, 한 시대로 끝나기도 하며, 또 작품성과는 다르게 인기가 없거나 인기는 있지만 저평가 받기도 하고, 추리소설에 대해 이런저런 정의나 생각을 주장했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아무리 추리소설을 많이 읽고, 또 써봤다고 하더라도 추리소설에 대해서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블러디 머더는 추리소설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꽉 차 있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영미쪽의 새로운 추리작가의 이름을 찾아볼 기회도 있으며, 추리소설의 전망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추리소설의 기원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시대적 분위기와 그 당시 출판된 작품의 성격, 그리고 작가 개개인의 스타일로 분석했다. 국내에 출판되어 아는 이름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모르는 이름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역사가 더 오래됐고, 많은 작품이 나왔으니 그럴 것이다. 대부분 저자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어서,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추리소설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읽으면서 특히 주목했던 점은 각종 추리소설에 대한 줄리언 시먼스의 평가였다. 인기작이라고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라도, 저자는 '아, 그렇구나.'하고 수긍하지 않고 이건 별로다, 이건 과대평가다, 이건 이름만 추리소설이고 내용의 성격은 영 딴판이다 등등으로 비판을 한다. 실제로 내용 중, 흔히 아는 유명작가가 과대평가 받은 인물이라 하지 않나, 이 작가는 처음에는 좋았으나 갈수록 실망이라 하던가, 이 작가는 추리로 인기를 끈 것이 아니라 선정적인 묘사로 인기를 끌었을 뿐이라던가. 보통은 생각지도 않은 점의 정곡을 찌르다보니,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 정도가 아닌 웬만한 작가들은 대부분 저자의 손에 난도질 당하고 심하면 걸래짝이 되기도 한다. 내가 봤을 때는 황금기 때의 추리작가 대부분이 그랬다.

 인터넷을 보면 추리소설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하냐고 묻는 질문에 추리소설 쓰는 규칙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규칙들도 내용 속에 있었다. 규칙이 나온 배경이나 그 규칙을 세운 인물의 생각을 보고 말하자면, 지금 추리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규칙이 나온 시절에만 잘 먹히던 규칙이고, 소설이라기 보다는 거의 글로 푸는 추리퀴즈를 만든다는 취지로 나온데다, 이 규칙대로면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하드보일드라던가, 마쓰모토 세이초 같은 사회파 같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추리 분위기를 제한한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용에서 보면 규칙을 만든 분도 추리란 이렇게 제한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고 나오니까.

 끝으로 추리소설의 번영을 염원하는 저자의 바람과 함께, 저자가 생각하는 추리소설 형식을 파괴하는 작품이 있었다. 줄리언 시먼스가 생각하기에 추리형식을 수단으로 사용해서 쓰는 것은 내부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라 한다. 즉, 추리가 주체가 되어야지 보조가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이런 작품을 조커라고 부르며, 대체로 추리소설 형식을 흉내내나 요점이 없는 것들이라고 한다. 줄리언 시먼스가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가지고 얼마나 격분하는지 읽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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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트란토 성 환상문학전집 2
호레이스 월폴 지음, 하태환 옮김 / 황금가지 / 2002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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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중세시대 고성을 배경으로 신비로우면서 한편으로는 공포스러운 분위기인 고딕소설은 대체로 공포소설에서 소재로 많이 쓰인다. 그래서 고딕이라면 성에서 유령이 등장하는 소설이라 알고 있었다. 하지만 고딕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고딕의 시초로 불리는 소설 오트란토 성을 보면 그렇다.

 오트란토 공국의 왕 만프레드는 가문 대대로 내려오는 저주가 실현되는 것을 막기위해 병약한 아들을 이웃나라 공주인 이사벨라와 결혼시켜 대를 이을려 한다. 순조롭게 결혼식이 진행되던 중, 아들이 앞뜰에 나갔다가 상상을 초월하는 크기의 투구에 깔려 즉사하면서 오트란토 성은 파국을 맞는다.

 왕가에 대한 집착으로 인해 발생한 비뚤어진 욕망과 앞뒤 가리지 않고 연결된 인연으로 만들어진 삼각관계로 복잡한 상황이 펼쳐지고, 이 모든 것을 앞도하는 초월적인 공포의 존재가 간간히 등장해서 분위기를 섬뜩하게 만든다.

 사실 내용상 오트란토 성의 왕족 간에 발생하는 사건들을 보면 현대 막장극에 버금간다고도 할 수 있다. 시아버지가 며느리와 결혼하려 한다던가, 의문의 인물이 잃어버렸던 아들이라던가, 여자와 만나면 무조건 사랑으로 연결되서 삼각관계가 된다던가, 적과 싸웠는데 알고보니 사랑하는 여자의 아버지였다던가... 밑도 끝도 없이 뜬금없다고 할 수 있지만, 이 작품이 쓰인 시기를 생각하면 그럴 수도 있다. 고딕소설의 묘미인 공포의 존재는 기대치 만큼 등장하지 않고, 주로 왕족들 간의 막장 드라마라서 무서운 걸 기대하고 보면 실망감이 클 것이다.

 좀 오래된 작품이라 그리 큰 기대를 하지 않고 보는 편이 더 나을 수도 있다. 이 작품이 나온 이후로 자극적인 내용이 많이 나온 더라 여기에 나온 표현들을 보면 싱거운 걸 넘어서 시시하게 보일 수도 있다.

 본인이 재미있게 본 것은 주로 중세 시대 배경이다. 영주와 대공의 관계라든지, 성에 있는 비밀통로, 옛 사람들이 느끼는 공포의 느낌, 약간 유럽 설화 같은 분위기가 그러하다. 물론 다른 분들이 똑같이 느낄지는 알 수 없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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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
김유철 지음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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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목만큼이나 피냄새가 진동하는 내용이긴 했지만, 상당히 실망스러웠다. 추리라고는 했지만 분량에 비해 상당히 지루하기만 한 이걸 추리라고 봐야 하는지 의문이 들 정도였다. 차라리 스릴러라고 하는 편이 더 나을 듯 하다는 생각이 들지만, 스릴러 쪽에서도 달가워 하지 않을 것 같아서 스릴러라고도 하면 안 될 것 같다. 추리가 되고 싶은 추리소설이라고 해야 되겠다.

 잔인한 살인마가 나오는 내용치고는 너무 붕 떠있는 인상이었다. 구체적으로 얘기하자면 살인마와 경찰, 그리고 주변인물들이 한 공간에 있으나, 전부 따로 노는 것이다. 여백의 미를 강조해서 종이 하나에 살인마가 나오는 장면을 아래, 경찰이 수사하는 장면을 오른쪽 위, 그리고 주변인들이 나오는 장면을 중앙에 했다가, 왼쪽 아래구석에 있는 등 난잡하게 널린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라면 아무리 극악무도한 살인마가 나온다 하더라도 스릴이라던가, 진지함 같은 느낌이 살아날 리가 없다는 생각이 든다.

 주인공의 잃어버린 기억에 대한 부분도 애매하게 보였다. 책 소개에서 미리 알게 해놓고 막상 내용에서는 잘 다루지 않다가 갑자기 뜬금없이 툭 던져놓은 느낌이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기억상실을 내용이 아닌 책 설명에서 미리 알고 들어가라고 대충 때워 놓은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특이나 읽을 때 불편했던 것은 숫자나 영어를 한글 그대로 써놓았던 것이다. 연도나 날짜를 해깔리게 하려는 서술트릭이라면 모를까, 일관성 없게 어디서는 숫자로 써놓고, 어디서는 한글로 써놓고 하면서 왔다갔다 하기 때문에 문체 스타일이라 보기도 어렵고 그냥 독자를 신경쓰지 않고 불친절하게 썼다는 인상이다.

 그 밖에도 인물들의 말투가 전부 똑같아서 개개인의 차이를 느낄 수 없었던 것과, 반복되는 문장과 표현이 계속 사용된 점은 안 그래도 지루한 내용을 더욱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였다고 생각한다. 인물도 명칭으로 되어 있어서 누가 누군지 알아 보기 힘들 때가 많아서 몰입이 상당히 힘들었다.

 결말에 가서는 거의 짬뽕이 되어 있다고 밖에 할말이 없다. 복수, 사회문제, 범죄자가 등장하는 이유, 부조리한 사회의 단면, 그리고 거의 어거지로 끼워 넣은 피와 연관된 살인이 나타나 있다. 게다가 분위기도 결말을 내기 위해 에필로그라는 이름만 붙여 놓은 것처럼 보였다.

 그나마 좋게 평가할 수 있는 건, 경찰 조사과정에 대한 세세한 면과 피와 연관된 역사적 인물과 사건에 대한 다양한 정보다. 그러나 지적 미스터리가 아닌 이상, 이 장점들은 내용을 더욱 지루하게 만드는 요소에 지나지 않을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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