엠브리오 기담 이즈미 로안 시리즈
야마시로 아사코 지음, 김선영 옮김 / 엘릭시르 / 2014년 3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지금도 그렇고 옛날도 그렇고, 무서운 이야기는 존재해 왔다. 특히나 옛날에는 현실과 동떨어진 기괴하고 묘한 얘기가 많았다. 인터넷 같은 통신수단이 없던 그 시절에는 주로 다른 지방 사람이 여행을 하면서 듣고 널리 알렸을 것으로 생각되는데, 작중의 주요 인물인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가 바로 그런 인물로 보였다.

 기담하면 단순한 무서운 이야기라고 생각했는데, 엠브리오 기담을 읽어보면서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공포하면 무조건 자극적이고 징그러운 것밖에 떠올리는 요즘과는 다르게 과거에는 귀신이나 사후세계와 관련된 감동적인 이야기도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엠브리오 기담

 여행서 작가 이즈미 로안의 짐꾼으로 처음 일을 시작한 미미히코는 로안의 길 잃는 여행에 힘들어 하던 중, 어느 마을에서 낙태 후 버려진 태아를 발견한다. 아직 살아 있는 생명체라는 생각에 미미히코는 태아를 주워와 함께 생활하게 되는데...
 생명의 경이와 그걸 이용하려는 인간의 몰지각한 행동, 그리고 기묘한 인연이 보이는 내용이었다. 작중에서 낙태 후 버려진 태아가 살아있다는 것말고는 크게 기묘한 것이 없지만, 결혼을 하지 않은 남자에게서 나온 부성애라던가, 탯줄로 이어진 관계가 아님에도 어렴풋이 남는 기억 같이 애처로운 분위기가 강하게 느껴졌다. 아마 아이를 가진 부모와 그 부모의 손에서 자란 아이의 느낌이라는 것이 이런 것일지도 모른다.

 라피스 라줄리 환상

 어릴 적, 부모님을 모두 잃고 도매 서점 주인의 집에 살던 린은 여행서 작가 이즈미 로안의 여행길에 동행하게 된다. 길을 잃고 해매다가 도착한 어느 외진 마을에서 린은 촌장 노파에게 라피스 라줄리를 받은 뒤, 환상적인 삶을 살게 되는데...
 미미히코가 아닌 인물이 주요 인물인 내용이다. 전체적으로 일종의 인생이 반복되는 윤회 같지만, 자신의 삶이 반복된다는 점에서 루프 같은 느낌이라 해야겠다. 한 사람이 같은 인생을 반복해서 살면서 겪는 갈등과 자신에게 만 존재하는 이전 인생의 추억 때문에 생기는 죄책감, 거기에 아무리 반복되는 인생 속에서도 결국 자신이 원하던 인연이 이루어지지 않아 생기는 아련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인상적이었던 것은 이 윤회를 한 사람을 위해 포기한다는 것이었다. 생각해 보라. 한 사람을 살리기 위해 수많은 인생 속에서의 자신의 존재자체와 기억을 애초에 없었던 일로 할 수 있는 가.

 수증기 사변

 의뢰처에서 알려준 온천마을을 찾아가던 이즈미 로안과 미미히코는 온천이 있는 산 속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전부 음침한 인상의 주민들과 폐가나 다름없는 집으로 인해 기묘함이 더해가던 중, 여관 주인이 이즈미 로안 일행에게 밤에는 온천에 가면 안 된다고 당부를 하는데...
 엠브리오 기담 이후로 또 다시 미미히코가 기묘한 일에 휘말리는 내용이다. 주로 미미히코의 과거 회상이 주를 이루어서 엠브리오 기담에서 살짝 지나갔던 어린 시절의 그리움이 나타나있다.
 현실에서 도망치기 위해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은 많다. 그 동안 나온 미미히코의 행적이나 이번 화에서 나타난 절망감을 보면 당장 죽으려해도 이상할 것도 없었다. 하지만 그런 미미히코를 돌려보낸 건 아늑한 기억 속에 있었던 죽은 친구였다. 이걸 보면서 고의로 죽든, 사고로 죽든, 이미 죽은 사람에게도 저승은 그리 좋은 곳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끝맺음

 어느 여관마을 주막에서 만난 닭과 함께 여행 중이던 이즈미 로안 일행은 비내리는 산길을 오르던 중, 외딴 어촌에 도착하게 된다. 무슨 일이 일어나든 동요하지 않은 로안에 비해 미미히코는 어촌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
 그 동안 훈훈하고 안타까운 인물로 나온 미미히코가 정말 나쁜사람으로 몰려도 할말 없어 보였다. 어촌에 있는 내내 미미히코는 심각할 정도로 주변의 모든 것이 공포스럽게 느끼는데, 정작 이즈미 로안과 마을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아서 읽는 내내 미미히코가 비정상이라는 느낌을 지우기 어려웠다. 원래 이런 상황이면 눈치채지 못하던 일행이 나중에 가서 충격적인 것을 발견하고 동조하는 게 다반사다. 그러나 결말에 이르기까지 이즈미 로안에게 아무런 일이 일어나지 않고, 결국에는 미미히코만 이상한 놈이 되어버리고 만다.

 있을 수 없는 다리

 어느 낭떠리지와 맞다은 마을에 도착한 이즈미 로안 일행은 마을 입구에서 보았던 구름다리가 이미 무너지고 없는 다리이며, 가끔씩 유령처럼 안개 속에서 나타난다는 얘기를 듣게 된다. 그날 밤, 잠결에 밖으로 나온 미미히코에게 한 노파가 오래 전, 그 다리에서 죽은 아들에게 사죄하고 싶어서 구름다리에 같이 가달라고 청하는데...
 본격적으로 작가가 독자의 뒤통수를 제대로 치는 내용이다. 이전에 나온 엠브리오 기담이나, 라피스 라줄리 환상, 수증기 사변처럼 훈훈한 내용으로 보였으나 결국에는 충격과 공포로 이어진다. 작중에서도 말하지만, 해피엔딩은 우리가 바라는 엔딩일 뿐, 실제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른다고 작가가 말하는 것 같기도 했다.
 사람이 아닌 물체가 유령으로 나타났다는 점부터 신비롭게 보였다. 한편으로는 그게 물체 그 자체의 영혼이 아니라 다른 무언가가 다리를 유령의 모습으로 나타나게 한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얼굴 없는 산마루

 산 속을 헤매던 이즈미 로안 일행은 어느 남자를 만나 마을에 도착하게 된다. 그런데 처음에 만난 남자를 비롯해 마을 사람들이 미미히코를 보고 '얼굴 없는 산마루'에서 굴러 떨어져 죽은 모키치가 돌아왔다며 기겁을 한다. 미미히코는 계속해서 부정하지만 가면 갈수록 모키치가 자신과 닮은 것을 넘어 거의 일치하기 시작하면서 혼란을 겪는데...
 마치 도플갱어가 연상되는 내용이었다. 하지만 모키치와 미미히코는 그런 초자연적 현상과는 다르게 그저 다른 곳에 살고 있었던 똑같은 인생을 살고, 똑같이 생겼으며, 똑같은 성격을 가진 인물이었을 뿐이다. 일종의 평행이론 같은 것일 수도 있다. 이 역시 엠브리오 기담처럼 초반에만 기묘하고, 대체로 미미히코와 빼닮은 남자의 가족의 사연이 주를 이룬다. 
 손해보지 않는 정체성 혼란이라는 걸 두고 고민해보는 걸 여기서 처음 느껴봤다. 원래의 나 자신의 불행한 삶을 버리고 이름만 다르고 나와 닮은 인물이 남긴 것들에게 동화되는 것이 행복할지, 아니면 나 자신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지금의 삶이 앞으로 행복할지.

 지옥

 온천마을을 찾아가던 이즈미 로안 일행은 다리를 다친 어떤 여자로부터 길을 안내받으나 산적에게 습격을 받게 된다. 기절한 미미히코가 깨어난 곳은 산적의 집 근처에 있는 커다란 구덩이 안이었고, 그곳에서 지옥을 맛보게 되는데...
 지금까지 나온 내용 중에서 가장 섬뜩하고, 아무런 사연이 없고, 사후세계 같은 것도 없이 오직 현실 공포 그 자체에 충실했다. 지금도 사람의 모습을 하고 해서는 안 되는 짓이 벌어지는데, 옛날에는 상상할 수도 없을 정도로 끔찍한 일을 벌이는 이들이 있었을 지도 모른다. 더 설명할 필요없이 간단히 얘기하자면 주인공 빼고는 전부 베드엔딩, 즉 지옥이라고 보면 된다.

 빗을 주어서는 아니 된다.

 산적에게 습격당한 이후, 이즈미 로안은 요양 중인 미미히코 대신에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하는 청년을 짐꾼으로 고용해 여행길에 나선다. 청년과 함께 무서운 이야기를 주고 받으며 목적지로 가던 중, 이즈미 로안은 청년에게 일어나는 기묘한 일을 목격하게 되는데...
 그 동안 여행다니면서 이상한 일이 생겨도 항상 미미히코를 바보취급하던 이즈미 로안이 처음으로 식겁한 내용이다. 백가지 기묘한 이야기(햐쿠모노가타리)를 비롯한 일본 괴담이 주로 다루어져서 그 동안 나온 기묘한 여행길 분위기 보다는 여행길에서 일어난 괴담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전체적으로 볼 때는 약간 전형적인 일본 스타일의 무서운 이야기처럼 보였다.
 지금도 곳곳에서 무서운 이야기가 돌고 즐기는 사람이 있다. 하지만 아무리 무서운 이야기를 좋아한다 할지라도 자신이 무서운 이야기 속의 주인공이 되서 입소문을 타고 싶어하는 사람이 있을까?

 "자, 가요" 소년이 말했다.

 한 소작농의 여자가 지주의 집으로 시집을 가게 되지만, 모진 대우를 받으면서 힘든 나날을 보내게 된다. 그러던 어느 날, 아무도 찾지 않는 커다란 곳간에 있던 중 구석에서 책을 읽는 한 소년을 만나게 된다. 그 소년이 말하기를, 자신은 길을 해매다가 이곳에 왔다고 하는데...
 소작농 여자의 사연은 보면 볼수록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가부장적인면과 시집살이가 생각났다. 그래서였는지 드라마에서 흔히 나오는 약간 뻔한 설정 느낌이 들었다. 이 점만 빼면 대체로 소년이 길을 잃게 되는 경위와 의도치 않게 길을 잃는 기묘함이 주를 이룬다.
 일본의 텐구와 함께 다루어져서 이 길을 잃는 소년이 평범한 인물이 아니라는 인상을 받았다. 마치 공간을 뛰어넘어 다니는 느낌이라 할 수 있다. 현실에서 길을 잃는 소년과 인생에서 길을 잃은 여자의 만남은 서로에게 길을 알려주었고, 막다른 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이걸 보며 길을 잃어도 누군가와 같이 잃는다면 적어도 각자에게 원하는 길을 찾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