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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러디 머더 - 추리 소설에서 범죄 소설로의 역사
줄리안 시먼스 지음, 김명남 옮김 / 을유문화사 / 2012년 7월
평점 :
절판
과거에서부터 현재까지 나온 추리소설은 방대하고, 그 안에서도 여러분야로 나뉘어져 있다. 그 만큼 수많은 작가들이 있었고, 그 중에는 한 시대를 넘어 오래 기억되기도 하고, 한 시대로 끝나기도 하며, 또 작품성과는 다르게 인기가 없거나 인기는 있지만 저평가 받기도 하고, 추리소설에 대해 이런저런 정의나 생각을 주장했을 것이다. 이렇다 보니 아무리 추리소설을 많이 읽고, 또 써봤다고 하더라도 추리소설에 대해서 잘 설명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것이다. 블러디 머더는 추리소설에 대해 잘 설명되어 있다고 할 수 있을 정도로 내용이 꽉 차 있어서, 지금까지 알지 못했던 영미쪽의 새로운 추리작가의 이름을 찾아볼 기회도 있으며, 추리소설의 전망에 대해 생각해 볼 여지가 있다.
추리소설의 기원부터 현대까지의 역사를 시대적 분위기와 그 당시 출판된 작품의 성격, 그리고 작가 개개인의 스타일로 분석했다. 국내에 출판되어 아는 이름이 있기도 하지만, 대체로 모르는 이름이 더 많을 것이다. 우리나라보다 역사가 더 오래됐고, 많은 작품이 나왔으니 그럴 것이다. 대부분 저자의 취향이 반영되어 있어서, 우리가 아는 것과 다른 시선으로 추리소설을 볼 수도 있을 것이다.
읽으면서 특히 주목했던 점은 각종 추리소설에 대한 줄리언 시먼스의 평가였다. 인기작이라고 세간에 널리 알려져 있는 작품이라도, 저자는 '아, 그렇구나.'하고 수긍하지 않고 이건 별로다, 이건 과대평가다, 이건 이름만 추리소설이고 내용의 성격은 영 딴판이다 등등으로 비판을 한다. 실제로 내용 중, 흔히 아는 유명작가가 과대평가 받은 인물이라 하지 않나, 이 작가는 처음에는 좋았으나 갈수록 실망이라 하던가, 이 작가는 추리로 인기를 끈 것이 아니라 선정적인 묘사로 인기를 끌었을 뿐이라던가. 보통은 생각지도 않은 점의 정곡을 찌르다보니, 아서 코난 도일이나 애거서 크리스티 정도가 아닌 웬만한 작가들은 대부분 저자의 손에 난도질 당하고 심하면 걸래짝이 되기도 한다. 내가 봤을 때는 황금기 때의 추리작가 대부분이 그랬다.
인터넷을 보면 추리소설 쓰고 싶은데 어떻게 써야하냐고 묻는 질문에 추리소설 쓰는 규칙을 많이 찾아볼 수 있는데, 그 규칙들도 내용 속에 있었다. 규칙이 나온 배경이나 그 규칙을 세운 인물의 생각을 보고 말하자면, 지금 추리소설을 쓰고 싶어 하는 분들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규칙이 나온 시절에만 잘 먹히던 규칙이고, 소설이라기 보다는 거의 글로 푸는 추리퀴즈를 만든다는 취지로 나온데다, 이 규칙대로면 레이먼드 챈들러 같은 하드보일드라던가, 마쓰모토 세이초 같은 사회파 같이 다양하게 나올 수 있는 추리 분위기를 제한한다는 느낌이 강했기 때문이다. 실제로 내용에서 보면 규칙을 만든 분도 추리란 이렇게 제한되어야 한다는 말을 했었다고 나오니까.
끝으로 추리소설의 번영을 염원하는 저자의 바람과 함께, 저자가 생각하는 추리소설 형식을 파괴하는 작품이 있었다. 줄리언 시먼스가 생각하기에 추리형식을 수단으로 사용해서 쓰는 것은 내부적으로 파괴하는 행위라 한다. 즉, 추리가 주체가 되어야지 보조가 되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그가 말하기를 이런 작품을 조커라고 부르며, 대체로 추리소설 형식을 흉내내나 요점이 없는 것들이라고 한다. 줄리언 시먼스가 폴 오스터의 <뉴욕 3부작>을 가지고 얼마나 격분하는지 읽어본 사람만 알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