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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야 가의 전설 - 기담 수집가의 환상 노트 ㅣ 블랙 앤 화이트 시리즈 15
츠하라 야스미 지음, 권영주 옮김 / 비채 / 2009년 5월
평점 :
절판
분위기로 봐서는 보통 일본 기담처럼 보여도 '기담 수집가의 환상노트'라는 부제에 걸맞게 내용에 걸맞거나 아니면 주인공들 끼리 만담용 장광설이 많이 나와서 내용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편이다. 하지만 교고쿠도 시리즈처럼 내용을 유도한다기 보다는 상황에 따라 약간 지적인 대화를 주절주절하는 느낌이라 약간 지루하게 보이기도 한다.
대체로 도시괴담 같은 느낌에 옛스럽고 요괴나 마을단위의 민간신앙이라던가 지방 풍습이 주로 나타나는 일본 기담적인 내용이 있긴 하나, 곳곳에 서양적인 느낌이 도사리고 있어 보였다. 그래서 서양분위기나는 일본 기담 같다고 해야겠다.
한 가지 알려두자면, 주인공 이름이 사루와타리라 그런지 모르겠지만(사루=원숭이) 작중에서 대부분 일을 안 좋게 만들어버려서 원숭이 되는 일이 상당히 많다.
반곡터널
드라큘라 백작 같은 포스를 가진 괴기작가와 함께 이번에 마련한 중고차로 길을 나선 사루와타리는 어느 터널에 대한 괴소문을 접하는데...
본격 프롤로그 겸해서 나오는 짤막한 괴담 같은 내용이다. 처음에는 모르지만 사루와타리가 가면 갈수록 원숭이가 된다는 암시가 깔린 것처럼 보인다.
아시야 가의 몰락
백작과 함께 각 지방의 두부음식을 먹으러다니던 사루와타리는 아메노 세이메이에 관련된 얘기를 하다가 대학지절 사귀던 유리코를 떠올린다. 그러다 백작도 유리코에 대해 관심을 보이면서 같이 유리코의 고향을 방문하기로 한다. 유리코의 고향에 도착한 사루와타리와 백작은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는데...
에드거 앨런 포의 어셔 가의 몰락 오마주라고 하는데, 가문이 나온다는 점 외에는 완전히 새롭게 느껴져서 오마주로서의 본보기로 좋다고 생각한다. 일본의 유명한 음양사 아메노 세이메이에 관련된 전설과 연관 있는 음양사 가문은 음울한 느낌의 어셔 가와는 달리 뭔가 비밀사교 집단 같은 느낌이었다. 그래서 크게 언급되거나 묘사된 점은 없었어도 스케일이 크다는 느낌을 받았다.
결말을 보고서는 어셔 가의 몰락 보다는 러브크래프트의 벽속의 쥐와 비슷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양이등 여자
사루와타리는 공연을 보러갔다가 어떤 여자에게 자리를 내준 답례로 영화를 보기로 한다. 그런데 그 여자는 기괴한 고양이등이었고, 꺼림직한 기분에 사루와타리는 다음 약속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무시한다. 그 후, 고향에 갔다온 사루와타리는 하숙집 현관에 불이 난 걸 시작으로 섬뜩한 일을 겪는데...
여자가 주인공을 위협하는 내용은 약간 흔할 수도 있지만, 이 여자는 생김새부터 이상한 여자다. 하지만 사이코페스러던가 정신이상자가 아닌 정말 평범한 사람이다. 그래서 정신이상자에 의한 스릴러라기 보다는 약간 스토킹 당하는 사람이 느낄 법한 공포다. 문제는 이 여자의 정체가 의심스러워지면서 현실에 실제로 존재하는 요괴나 다름없는 취급을 하게 된다.
공포의 주체가 되는 존재가 실존하는 인물임에도 불구하고 평범한 사람이라 할 수 없는 외모에 출처불명의 정체, 그리고 동기를 알 수 없는 잔혹한 스토킹으로 인해 요물이 등장하는 기담 같은 분위기로 느껴졌다.
카르키노스
백작과 통화를 하던 사루와타리는 백작의 부탁으로 영화 시사회에 갔다올 겸해서 같이 시즈오카로 게를 먹으러 간다. 그곳에서 시사회 주최자이자 붉은 게 요리를 소개 시켜 줄 혼고를 만난 백작 일행은 식사초대를 받아 저택에 도착하게 되고, 식탁에서 기괴한 게를 보게 되는데...
기괴한 바다생물이 나오고 그에 관한 금기, 그리고 바다생물에 대한 혐오(약간 특정 생물에 한정 되기는 하지만)가 존재한다는 점에서 약간 크툴루 신화 느낌이 들었다. 제목의 카르키노스는 게자리 별자리 신화에 등장하는 거대한 게로 헤라클레스가 히드라와 싸울때 나타났다가 별다른 영향력 없이 짓밟힌 기구한 존재다. 신화에서의 모습은 이렇지만 본작에서는 상상을 초월하는 존재로서 상당한 영향력을 끼친다.
초서기
대학을 갓 졸업했을 당시, 사루와타리는 한 출판사 사무실에서 언처 살던 중, 주인인 니나가와의 부탁으로 방역업체에 쥐 방역을 요청하게 된다. 방역업체 사람들이 다녀간 후, 사방에 널린 끈끈이 때문에 곤욕을 치르던 사루와타리는 비상계단 쪽에서 이상한 소녀를 발견하게 되는데...
이걸 읽으면서 스티븐 킹의 단편 소설 '철야 근무'(스티븐 킹 걸작선의 스티븐 킹 단편집 '옥수수 밭의 아이들' 수록)가 생각났다. 똑같이 쥐가 주재고 내용이고 쥐를 잡는 것이 나오긴 했지만, 여기서는 도시 빌딩 천장에 사는 쥐의 영악함을 조심하라는 느낌이다.
사실 여기서 쥐도 중요하지만 이 쥐를 잡는 방역업체도 상당히 이상한 구석이 있다. 마치 한밤 중에 사람들이 빠져나가고 빈 도심에서 쥐들과 진짜 죽자살자 전쟁을 벌이는 것 같은 인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그런 일은 없겠지만 만약 도시에 사는 쥐들이 진짜 영악하다면 한밤 중 건물에서 만나는 낯선 사람을 일단 의심해봐야 할 것 같다.
케르베로스
백작과 사루와타리는 어떤 여배우의 부탁으로 군마현의 외진 마을로 향한다. 그곳은 지벌로 인해 폐허나 다름없는 상태로 여배우의 쌍둥이 동생이 원인으로 지목되어 곤욕을 치르고 있다고 한다. 방법을 모색하던 백작은 마을 신사에 있는 고마이누 상을 눈여겨 보게 되는데...
일본의 신토와 서양 저승관이 혼합되어 나와서 상당히 묘한 느낌을 받았다. 일본 신사의 수호신인 고마이누와 케르베로스를 연관시키고 거기에 서양인의 흔적을 혼합시켜서 진정한 서양풍의 일본 기담 같았다. 그 외에는 전형적인 일본의 외지 마을에서 벌어지는 기담 같은 내용이지만 마지막 반전이 상당히 소름끼친다.
참고로 여기서 사루와타리는 다른 에피소드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원숭이가 된다.
송장벌레
학창시절 때 알고 지내던 이요다와 만난 사루와타리는 할아버지가 수집하던 카메라를 회상하다가 사진을 찍고 싶어져서 구식 카메라를 빌리기로 한다. 이요다의 집에는 같이 마다가스카르로 여행을 갔다가 이상한 벌레를 먹고 죽어가는 친구가 있었는데, 이요다는 카메라를 빌려주는 대신 원하는 사진 여러 장을 찍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돌아다니며 사진을 찍던 사루와타리는 카메라 렌즈 안에 있는 요상한 벌레를 발견하게 되는데...
앞서 어셔 가의 몰락 오마주에 이어 이번에는 황금 벌레를 오마주한 작품이라고 한다. 하지만 추리소설인 황금 벌레와는 다르게 이건 진짜 벌레가 잔뜩 나오는 내용이다. 곤충의 종에 대한 고찰과 함께 벌레에 대한 공포와 미지의 공포가 공존하는 구석이 있어서 현실적인 섬뜩함이 느껴지는 것 같았다. 물론 사루와타라가 의도를 모르고 한 원숭이 짓이 한목 더해서 그렇다.
결론은 아무리 벌레가 단백질 덩어리라도 모르는 벌레는 절대 먹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물소 떼
2년 동안 디자인 회사에 취직해서 일하다가 영문을 모른채 해고를 당한 사루와타리는 폐인처럼 살고 있었다. 그런 사루와타리를 딱하게 여긴 백작은 취재장소로 같이 데려가기로 한다. 백작과 함께 기묘한 일이 일어난다는 호텔에 도착한 사루와타리는 한눈을 파는 사이 백작을 놓치는 바람에 한 식당에서 기다리기로 한다. 그런데 식당 주방장이 안색이 좋지 않다면서 특제 물소 요리를 해주겠다고 하는데...
그 동안 온갖 고초를 겪은 사루와타리가 갱생하게 되는 내용겸 에필로그 분위기이다. 대부분의 내용에서 사루와타리는 주변 정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다가 결국 결말에 가서 원숭이 짓을 하고, 사건을 파고드는 건 백작이다. 그러나 이번 내용에서 백작은 사건에 개입은 커녕 아예 무슨 일이 있었는지도 모르고, 사루와타리가 모든 걸 다 떠맡는다.
문제의 물소라는 존재가 주는 영향력이 상당한데, 마치 괴물 영화에 나오는 크리처 수준이다. 하지만 단순히 위협을 가하는 존재가 아니라 공포를 통해 삶의 기력을 되찾아주는 기이한 역할을 하기 때문에 상당히 기묘한 느낌을 받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