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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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사람의 얼굴이란 모든 본질을 비춘다고 봐야 할까. 표정과 속마음이 서로 다르고, 진실보다는 거짓인 경우가 더 많으니 무엇 하나 제대로 파악 되는 게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가면이란 도구와 단어의 쓰임새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처음부터 본질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아예 알 수 없게 가려버리는 역할. 이걸 하나의 개인이 아닌 세계를 덮어버리면 본질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진실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가면 너머에는 어떤 진실이 존재하는 걸까.

시시야 가도미는 괴기 소설가인 휴가 쿄스케의 부탁으로 도쿄 외진 곳에 위치한 기면관에서 열리는 모임에 대신 참석하게 된다. 희귀한 가면 컬렉션으로 가득한 어느 재력가의 별장으로 역시나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가게 된 것이다. 눈이 내리는 4월에 예정된 참가자들이 저택에 모이고 개인실 외에는 정해진 가면을 쓰고 다녀야 한다는 규칙 속에서 정해진 일정이 진행된다. 그런데 다음 날 폭설로 인해 기면관이 고립되고, 안채에 있는 기면의 방에서 주최자인 카케야마 이츠시가 살해된 채로 발견되는데...

암흑관 이후로 오랜 시간이 걸려 나온 관 시리즈 후속작이다. 전작인 암흑관에서 그 동안 나온 관의 흔적이 모두 들어 있어서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기면관의 경우는 거기서 미리 예고한 거나 다름 없다고 작중 스토리에서 언급된다. 사실상 모든 관들의 종착점이 암흑관인 셈이라 그 동안 보아온 관들의 흔적은 물론, 앞으로 나올 관에 대한 예고 역시 존재했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기면관의 특징이라면 비슷한 체형의 사람들과 얼굴을 가린 가면이다. 보통 추리소설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신원을 확인하는 문제가 우선인데, 이 작품은 그걸 대놓고 이용한다고 예고하는 거나 다름 없다. 다만 신원 확인을 숨기는 트릭은 너무나 고전적이고 비교적 추리 과정이 심심한 편이다. 이걸로 메인 추리 전부를 담당하려면 자연스레 대단한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게 된다. 게다가 관 시리즈 특성상 비밀 장치의 역할 역시 주요 관심 대상이고. 그렇기에 이 작품은 비교적 아쉽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긴 하다.

트릭이나 추리 자체가 흥미롭지 않다는 건 아니다. 가면이란 제한적인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로만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은 보기보다 어렵게 나타난다. 끊임 없는 가정이 제시 되고. 이미 증명됐다고 여기던 사실에도 계속 혹시나 하는 여지를 두게 되고. 결론적으로는 뚜렷하게 증명되는 건 얼마 없이 의심만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맹점과 고정 관념을 타파하며 조금씩 논리를 구축해 밝혀지는 반전은 꽤 나쁘진 않다. 진짜 가면으로 가려 놓은 듯한 시커먼 어둠의 비밀 그 자체였다.

비밀 장치에 대해서는 전작인 암흑관에서 뭔가 의존도를 줄여 나가려는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어서 기대를 낮추고 있던 편이다. 그런데 기면관이라는 컨셉과 꽤 어울리는 비밀 장치를 보여주고, 이게 사건의 트릭과 매우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져서 상당히 좋게 봤다. 추리에서 비밀 통로하면 반칙이라는 인상이 너무 강하다 보니 활용도를 더욱 살릴 필요가 있다. 관 시리즈의 경우는 초창기 시절에 이런 지적을 많이 받은 편이고, 갈수록 비밀 장치가 필수요소가 되면서 개선하려 노력한 편이다. 그렇게 무엇을, 어떤 식으로,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를 비밀 통로와 잘 엮은 트릭으로 거듭된 개선을 증명했다고 본다.

문제라면 사건이 발생해서 해결되기까지 시간상의 과정은 자체는 짧은데, 분량은 길다는 점이다. 여기에 긴박하고 스릴 있게 하는 요소가 거의 없이 잔잔한 하게 흘러가서 템포가 축 처지게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추리 과정 대부분이 신원 확인에 대한 부분이 많고 그 만큼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경향까지 있어 더하다 할 수 있다. 굳이 이렇게 장황하게 다룰 필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량이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 단점을 감안하고 계속 읽을 필요가 있느냐 하면 호불호가 있다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이 작품의 기묘한 분위기에 나름 몰입했다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을 테고. 그저 가면의 정체만 중요하게 여겼다면 불필요한 잔가지가 많게 보일 만해서 그렇다.

이제 남은 관은 작가가 집필 중이라고 밝혔던 쌍둥이 관이다. 국내 번역 기준으로는 아동도서 시리즈에 묶여 나와 정발이 되지 않았던 깜짝관까지 해서 두 개라 할 수 있다. 최후의 피날레인 만큼 시시야 가도미와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에게 어떤 마지막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이건 언제 볼 수 있을까. 번역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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붉은 옷의 어둠 모토로이 하야타 시리즈
미쓰다 신조 지음, 민경욱 옮김 / 비채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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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가 제대로 돌아간다고 확인할 기준은 시장의 제 역할이라고 본다. 눈에 직접적으로 보이는 실물경제를 체감함으로서 실생활이 보장되고 있다는 믿음을 주기에 그렇다. 이는 곧 어떤 식으로든 시장이 붕괴되면 대다수의 일상에 지장에 생겨 대혼란이 발생하게 된다는 말이다. 합법이 사라진 자리에는 자연스레 무법지대가 늘어서고 당장의 일상을 보장할 별다른 방도가 없다면 그대로 역할을 대체하게 된다. 좋고 나쁨의 기준을 따질 여력도 없이 말이다. 그렇게 한 번 형성된 어둠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또 다른 어둠을 낳으며 은밀한 공포를 만들어낸다. 실제로 발생한 사건인지, 그냥 떠도는 소문인지 모를 괴이를 말아다.

키타큐슈 탄광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광부를 그만둔 직후에 대학 친구인 쿠마가이 신이치의 연락을 받고 도쿄로 상경한 모토로이 하야타. 신이치는 패전 직후 형성된 암시장을 관리하는 데키야인 아버지로부터 '붉은 미로'라는 암시장에 출몰한 붉은 옷에 대한 소문을 듣고 하야타에게 실체를 밝혀 달라고 부탁한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그저 여자를 뒤쫓아 다닌다는 괴담 그 자체의 존재라 하야타는 다소 난감해 하면서도 문제의 암시장으로 향한다. 거기서 미군 병사가 얽힌 살인사건에 대한 소문이 괴담으로 발전된 사실을 듣게 되고, 붉은 미로에 도착한 바로 다음 날에 밀실 살인이 벌어진 현장을 목격하는데...

1편인 〈검은 얼굴의 여우〉와 2편인 〈하얀 마물의 탑〉 사이의 시점에서 발생한 사건을 다룬 내용이다. 〈하얀 마물의 탑〉에서 도쿄 암시장 사건으로 미리 언급되기도 해서 상당히 궁금했다. 솔직히 암시장이라는 단어는 일상적으로 잘 쓰이지 않는 것이라 평소에 듣기 힘든 편이다. 그 부분에서 호기심이 생겼다고 할 수 있겠다. 암시장이라는 단어가, 그것도 수도인 도쿄에서 아무렇지 않게 쓰일 정도면 대체 패전 직후의 일본 내 사정은 어느 정도였다는 말인가. 단어 그 자체에 어둠이 존재하는 만큼 암시장 안에는 무엇이 숨겨져 있을까.

사건 발생 장소인 붉은 미로는 구조적인 면에서도 그렇고, 그 안에 다양한 생활상이 공존하는 면에서도 그렇고, 혼란한 사회상을 눈에 보이는 구조물로 표현한 것이나 다름 없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는 불량 식품. 길바닥을 떠돌며 살아 남고자 하는 전쟁 고아. 고향에 돌아가지 못하고 일본에 남은 제3국인이라 불리는 이들 사이에서 발생한 이권 다툼. 이 모든 것은 국가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 발생한 일이라 할 수 있다. 그럼에도 국가는 책임을 회피하며 사실상 방치를 하고 있으니 그 자리를 합법을 자처하는 불법이 차지하게 된 셈이다. 이 당시에 만연하던 암시장의 존재란 이렇게 설명된다고 본다.

문제의 괴이인 붉은 옷에 대한 부분은 여러모로 독특하다. 기본적으로는 원래부터 일본에 존재하던 도시괴담과 서양의 유명 도시전설이 섞인 형태라 할 수 있다. 다만 둘 다 사람을 해치는 위협적인 존재로 알려진 것에 비해 붉은 옷은 다소 애매모호한 면이 강하다. 직접적인 해를 끼친다기 보다는 그저 존재 그 자체가 불쾌감을 조성한다고 할까. 명확한 무언가 없이 소문의 소문일 뿐인 상태에서 사건이 발생하니 이 애매함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아쉽다는 게 아니라, 말 그대로 정체불명의 존재로서 끼치는 영향력이 상당하다는 것이다. 이런 와중에 더 자세한 정보를 제공해 주는 의외의 인물이 등장해서 많이 놀랐다. 익숙한 청바지의 청년을 여기서 보게 될 줄이야.

밀실 사건에 당대의 어둠이 반영된 괴이의 존재까지 나와서 무엇을 어떻게 이어갈지 기대하게 만들만하다. 하지만 뭔가 기발한 트릭 같은 걸 기대했다면 좀 싱겁게 보일 수도 있다. 사실 모토로이 하야타가 등장한 시리즈는 작가의 다른 작품들과 마찬가지로 공포 요소가 섞여 있다는 점 외에는 다소 이질적인 면이 많긴 했다. 가령 패전 직후의 역사적 분위기를 짙게 반영하여 당대의 현실적인 문제를 파고드는 식으로 말이다. 그게 이번 작품에서는 유독 크게 강조되어 있는 편이라 반전 요소가 강한 사회파 미스터리에 가깝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현실적이고 논리적인 해석을 통해 당시의 시대적 문제점을 지적하는 부분을 선호한다면 괜찮게 볼 만하고. 트릭이나 괴이한 부분이 강조 되는 본격 미스터리를 원했다면 다소 호불호가 생길 만도 하다.

국가에 버림 받은 이들 사이에서 알게 모르게 형성된 어둠이 끝내 폭발한 것이 이번 사건의 실체에 가깝다. 모두가 형편이 어려운 상황에서 불만을 표출하고 싶어도 어디에 해야 할지 알 수 없다. 높으신 분들에게 따져봐야 늘 기대를 배신 당하기에 각자도생이 우선시 되고 만다. 결국 돌고 돌아서 남는 건 황폐한 세상에서 최대한 살아남기 위한 생존 본능과 해소되지 않고 쌓여가는 불만이다. 이성적으로는 최대한 둘을 서로 분리해서 따로 보려고 하지만, 같이 놔두면 언젠가 폭발할지 모를 인화성 물질이나 다름 없다. 언젠가 터질지 모를 잠재된 불안 요소이기에 도화선만 준비되면 폭발은 시간 문제였던 셈이다.

처음부터 남을 챙길 여유 따위 전혀 없는 매정한 경우였다면 모를까, 붉은 미로 안의 인물 대부분은 인정 넘치는 모습이라 더 안타깝게 보인다. 아무리 각자의 사정이 있다고 하지만, 암시장의 형성 과정처럼 은밀한 어둠을 숨긴 채로 살아가고 있어서 그렇다. 이게 악의적으로 숨겼다기 보다는 일부러 이러지 않고서 살아남을 수 없는 사회 분위기 때문이다. 아무런 구분이 없으면 그저 똑같은 사람일 뿐인데, 무언가 다르다고 인식이 생기면 꺼리는 존재로 인식된다. 그 어떤 해를 끼치지도 않았는데, 검증되지 않은 소문이 돌며 거리감을 조성하는 것이다.

마치 붉은 옷처럼 말이다.

이건 반대쪽 역시 마찬가지다. 특별히 무슨 일이 발생한 적은 없지만 자신들에 대한 꺼림직한 시선을 경험함으로서 붉은 옷이 있다는 인식을 가지게 된다. 즉, 모두가 공통적으로 붉은 옷에 대해 말하는 것처럼 보여도 실제로는 서로 다른 존재를 지칭하던 걸지도 모르는 일이다. 개인적으로는 이 붉은 옷이란 알게 모르게 존재하는 차별이 형상화된 존재라고 본다. 그렇기에 확고한 정체 없이 피해자만 존재하는 한편으로 누구나 가해자가 될 수 있는 식으로 상당히 뒤틀려 있다. 미지의 공포가 어느 한 곳을 향하지 않고 무차별적인 잣대를 제시하며 사회를 뒤흔든다. 이건 작중 암시장 뿐만 아니라 지금 현재에도 벌어지고는 일이다. 그러니 이걸 잊지 말아야 한다. 붉은 옷 같은 불길한 존재를 떠올리기 앞서 스스로가 붉은 옷 같은 짓을 하고 있는 건 아닌지.

탄광, 등대, 암시장. 이제 모토로이 하야타가 향할 곳은 어디일까. 늘 범상치 않은 곳을 배경으로 하기에 기대가 크다. 역자 후기에 나온 정보를 보니 이미 정해진 배경이 있다고 하니 기다려 봐야겠다. 아니, 나오더라도 번역이 될지 부터 걱정해야 할지 모르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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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주 미친 반전
유키 하루오 지음, 김은모 옮김 / 블루홀식스(블루홀6) / 2023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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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악의 상황은 이성과 논리를 마비 시킨다. 제 아무리 침착함을 유지하려 해도 제한 시간이 정해져 있고, 이 마저 얼마 남지 않았다면 초조해질 수밖에 없다. 그런 환경에서 사람은 뭐든지 할 수 있다. 예상 가능한 범주를 넘어서는 기상천외한 경우의 수를 고안해 내며 많은 이들에게 충격을 선사한다. 생존 본능이란 그런 것이라 할 수 있겠다.

대학시절 동창들과 사촌 형까지 더해 별장에 놀러 온 슈이치는 산 속의 어느 지하 건축물을 보러 가게 된다. 도중에 길을 헤맨 탓에 어쩔 수 없이 그 지하 건축물에서 하룻밤을 지내기로 하던 중, 산에서 길을 잃은 어느 일가족까지 합류하며 인원은 더욱 늘어난다. 그런데 다음 날 아침, 갑자기 발생한 지진으로 출입구가 막혀버리는 일이 발생하고 나가려면 1명이 희생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다. 여기에 살인 사건까지 발생하면서 모두의 의견은 이렇게 굳어져 간다. 범인을 찾아서 이곳을 탈출하기 위한 희생양으로 삼아야겠다고...

수상쩍은 건축물이란 배경부터 클로즈드 서클 미스터리의 정석이라 할 수 있으면서 탈출이라는 목표로 범인을 찾는 점이 다소 특이하다 할 수 있다. 보통 범인을 찾아야 되는 이유가 딱히 없고 그냥 당연한 과정이라는 식으로 나오기 때문에 확고한 동기가 주어진다는 건 꽤 기발하게 볼 여지가 많다. 보통 클로즈드 서클 하면 고립된 상황 자체는 나중에 어떻게든 해결된다는 보장이 존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 제한 시간이 걸린 부분도 특이성을 더해준다고 본다. 그 만큼 추리에 대한 긴장과 스릴러가 조성되기에 몰입감이 확보되는 건 덤이다.

보통 추리소설하면 따지는 세가지, 후더닛(Who dune it.), 하우더닛(How dune it.), 와이더닛(Why done it.), 이걸로 이 작품을 들여다보면 여러모로 묘한 부분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누가 죽였냐. 이건 별다른 이견 없이 주어진 등장인물 안에 존재할 수밖에 없다. 클로즈드 서클이니 더더욱.

어떻게 죽였냐. 처음부터 무언가를 준비해 가져온 게 아닌 이상 지하 건축물 내에 존재하는 도구를 사용했을 가능성이 높다. 더욱이 클로즈드 서클이 만들어진 상황이 의도 되지 않는 사고라 더 그럴 수밖에 없다.

왜 죽였냐. 사실상 이게 문제다. 처음에는 비교적 금방 추측이 되는가 싶었는데, 가면 갈수록 상황을 왜 이렇게 몰아가야 하는지 이해할 수 없어진다. 객관적으로 봤을 때 이건 딱히 중요하지 않게 보일 수도 있긴 하다. 그러나 앞에 후더닛과 하우더닛이 나름 명쾌한 반면 여기만 뚜렷하게 보이는 것 없이 애매모호한 건 사실이다. 또한 많은 추리 작품에서 은근 간과하는 부분이 와이더닛이다 보니 관점을 다르게 보면 이게 핵심일 가능성도 상당하다. 무엇보다 요즘에는 당연 듯이 금방 나올 검시나 지문 검출 문제가 원천 봉쇄된 상황이고, 단서 역시 상당히 한정되어 있기에 읽으면 읽을 수록 이 부분이 신경 쓰일 수밖에 없다고 본다.

고립된 상황이 점차 악화되는 와중에 점차 범인을 추려내기 가능한 추리가 성립하고, 결말로 급물살을 타게 되며 밝혀지는 진실은 충격적이다. 이걸 보며 느끼는 건 이거다. 추리에서는 중요하지 않거나 불필요한 부분이란 전혀 존재하지 않는다. 다소 비중이 약하게 다루어지거나 소홀하게 될 수 있어도 굳이 고려하지 않고 배제해도 되는 부분이란 없다고 말이다. 이 소설은 그런 허점을 제대로 찌르기에 두고두고 기억에 남게 된다.

다만 자잘하게 느껴질 법한 소설로서의 단점마저 전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최고냐고 하면 그건 호불호가 있을지도 모르겠다. 그냥 반전이 전부라 전체적인 내용이 빈약하다는 건 어느 정도 사실이다. 작중에서 벌어지는 사건을 제외하고 그 어떤 의문 없이 모든 설정이 명쾌하게 밝혀지느냐면 그것도 아니다. 그저 추리로서의 재미요소인 후더닛, 하우더닛, 와이더닛에 치중된 오락에 지나지 않는다. 휴머니즘이 느껴지는 인간관계 드라마나 사회적 요소 같은 것과는 상당한 거리가 있다. 그렇기에 오로지 미스터리로서의 재미를 추구한다면 마지막 진실이 상당히 마음에 들 테고. 캐릭터 중심의 스토리를 추구하는 입장이라면 별로 추천하고 싶지 않은 경우라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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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이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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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 속의 자살

엄격하기로 소문난 솜 도매상인 오쿠로야에서 고용살이를 하게 된 긴지. 별처에 지내는 선대 주인이 몸이 편찮아지면서 심부름을 다니다가 병문안을 가는 가게 주인의 아들인 도이치로와 같이 다니며 가까워진다. 그러던 어느 날, 도이치로에게 결혼 주선이 들어오고 아무런 문제 없이 진행되고 있었다. 그런데 가게의 하녀 중 한 명이 도이치로와 사귀는 사이라고 갑자기 밝히는데...

가게 주인 측과 고용인 사이에서 벌어진 불미스러운 일을 다루는 내용이다. 단순 치정 싸움을 넘어 괴기의 영역으로 향해서 꽤 섬뜩하다. 여기서 메인 소재를 꿈이라고 간단하게 볼 수도 있지만, 정확히는 생령에 해당된다고 본다. 생령(生霊)은 일본에서만 많이 쓰이는 심령 요소다 보니 많이 생소할 것이다. 한자어 그대로 해석하면 살아 있는 영혼이라는 뜻이다. 즉 살아 있는 채로 흘러나온 영혼이 해를 끼치는 것이다. 죽은 사람의 원념만 해도 상당한데, 아직 살아있는 사람의 영혼이 가진 원한이라니. 이건 이것대로 정말 무섭게 느껴진다. 현존하는 사람이 귀신처럼 해를 끼친다고 하니 말이다.

긴지를 통해서 고용인과 가게 측 사이에서 무슨 일이 생기면 안 된다고 강조하는데, 보면 볼 수록 왜 그런지 이유를 알 거 같았다. 이건 맨 처음에 프롤로그 겸으로 보여준 수건 자살과도 연관성이 있다. 가게를 운영하는 사람이나, 고용인이나 분수를 넘어서는 행동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이다. 이건 신분이나 집안 차이의 문제가 아니라 검소함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현재 각자의 위치에서 무엇을 중요하게 여겨야 하는지 잘 판단하고. 자신의 본분에 최선을 다해야 한다는 걸 잊지 말아야 한다는 뜻이라 본다.

그림자 감옥

납 도매상인 오카다야의 최고 대행수였던 마쓰고로를 찾아온 무사 이소베. 오카다야는 주인 가족이 모두 죽고 고용살이 일꾼들도 여기저기로 흩어진 뒤로 방치된 불길한 곳이 된지 오래다. 그런 곳을 이소베가 방문하고 온 길이라 들은 마쓰고로는 하나하나 털어 놓는다. 오카다야가 어떻게 망했고, 감옥방이란 곳에서 발생한 무서운 일까지...

잘못 자란 자녀로 인한 파탄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함이 없는 모양이다. 오카다야의 경우는 비슷한 사람끼리 만나 더욱 큰 악행까지 번졌으니 오래가지 못할 만했다. 쌓이고 쌓인 악행은 어떻게든 파멸하는 법이니까. 다만 이 작품은 단순한 권선징악을 다루는 게 아니라서 마지막까지 음울함이 깊게 남는다.

최악의 상황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란 역시 최악의 방법 밖에 없을 것이다. 아무래도 시대적 배경으로 인한 제약이 많은 탓에 좋은 방법을 찾으려 해도 극단적인 수 말고는 달리 방도가 없을 테니까. 그렇게 해서 최악의 상황이 끝나게 되느냐고 하면 그것도 아니다. 불미스러운 일에 결정타를 날린 재앙으로서 영원히 남을 상처가 된다. 세상에는 괴이한 일로. 스스로에게는 영원한 감옥에 갇힌 것과 같은 트라우마로. 이 작품이 한 사람의 독백으로만 진행되는 구성인 건 아마 이러한 짙은 그림자 감옥에 갇힌 개인을 나타내고자 했던 걸로 보인다.

이불방

히가시초에 위치한 술집인 가네코야는 주인이 단명하기로 소문이 나 있다. 이곳에서 일하던 하녀인 오사토가 갑자기 코피를 흘리며 급사한 일이 벌어지고 그 하녀의 동생인 오유가 새로운 고용살이로 들어오게 된다. 오유는 가네코야의 고용살이 일꾼이라면 반드시 거쳐가는 이불방이라는 곳의 존재를 알게 되고 이제 곧 있을 자신의 차례를 기다리게 되는데...

수상한 방에 대한 이야기는 꽤 많은 편이다. 무엇이 나온다. 무슨 일이 벌어졌다. 무언가 숨겨져 있다. 가네코야의 이불방이 딱 그런 느낌을 준다. 출입구 하나만 있고 창문 하나 없이 사방이 전부 막힌 방이라는 점만 봐도 음산한 느낌이 강하다. 말이 이불방이지 사실상 누군가를 가두기 위한 방처럼 보이니까.

죽어서도 계속 함께 한 오사토와 오유를 통해 밝혀진 이불방의 진실은 번영과 행복이 언제나 비례하지 않는 다는 증거 그 자체였다. 사실 가네코야의 주인이 단명한다는 점에 비해 장사나 고용인에 대한 문제가 전혀 없다는 점에서 어느 정도 예측이 될 만했다. 뚜렷한 이유 없이 뭔가 잘 된다면 좋지 않은 무언가가 있다고 말이다. 그게 바로 이불방이었고, 가게의 역사 만큼이나 짙은 어둠으로 가득했다. 하지만 빛이 언젠가 찾아오듯이 영원한 어둠은 없다. 한줄기 빛으로 점차 틈이 보이기 시작한 어둠은 결국 끝을 맞이한다. 오랜 세월 묵혀둔 업화를 토해내면서 말이다.

매화 비가 내리다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름 장수 일을 하던 미노키치는 가까운 이웃으로부터 누나 오엔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오엔은 미노키치가 어릴 적부터 엄마를 대신할 정도로 주변에서 훌륭한 딸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그러던 어느 날, 어떤 음식점의 고용살이 일꾼으로 가게 됐다가 외모를 문제 삼아 거절 당하는 일이 발생한다. 이 사건 이후로 오엔에게 기이한 일이 발생해 오랫동안 병상에 누워 지냈는데...

사람의 외모는 무엇으로 판단하느냐의 문제에 가까운 내용이다. 대체로 겉모습인 얼굴로 판단하는 일은 예로부터 많은 편이긴 하다. 그런데 이런 말도 있다. 마음이 곧 얼굴이자 외모다. 아무리 겉으로는 멀쩡해 보여도 마음이 추악하다면 얼굴로 나타난다고 말이다. 대체로 이런 문제가 나오면 나쁜 사람이 천벌을 받는 내용인데, 이 작품은 다소 방향성이 다르게 보인다.

살면서 남을 저주해본 적이 있냐고 물어보면 아마 한 번도 안 해봤다고는 못할 것이다. 누구나 기분 좋지 않은 일을 겪으면 반쯤 장난삼아,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무심코 저주를 입에 담아 내뱉고는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걸 매우 진지하게 염원하고 진짜 이루어지면 어떨까. 아마 평범한 사람이라면 너무나 당혹스러울 것이다. 자신이 가진 나쁜 마음이 누군가를 죽인 것이나 마찬가지니까. 이는 곧 마음이 추악해졌으니 얼굴을 들고 다닐 수 없어졌다 해도 이상하지 않을 법하다. 언제 어떻게 마음처럼 추악한 얼굴이 될지 알 수 없으니 말이다.

대부분의 인물들이 하루하루 살아가기 바쁜 서민에 해당되기에 안타까움이 담긴 음산한 느낌이다. 부족하더라도 올곧게 살려고 노력했다. 그러나 한순간의 화를 참지 못하고 잘못된 마음을 가지고 말았다. 처음부터 마음씨가 나쁜 사람이었다면 모를까, 전혀 그렇지 않았기에 그 죄책감이 엄청난 무게로 다가왔다. 이를 통해 당사자인 오엔은 물론이고 동생인 미노키치도 깨닫는다. 겉으로 보이는 부분만 보고서 함부로 악의를 가져서는 안 된다. 그러면 마음이 병들어 겉으로도 추한 사람이 되고 마니까.

아다치 가의 도깨비

붓과 먹을 파는 가게인 사사야에 시집을 가게 된 어느 하녀. 사사야의 주인인 도미타로는 나이 많으신 어머니를 잘 모실 만한 검소한 여자를 원해서 결혼하게 된 것이라 주변에서 환영 받지 못하는 분위기다. 그럼에도 별다른 문제 없이 결혼 생활이 이어지던 중, 시어머니에게 숨겨진 뭔가가 있다는 걸 느끼게 되는데...

사람이 사람을 멀리하게 되면 결국 가까워지게 되는 건 무엇인가. 결국에는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닌 것일 테다. 보통은 불길한 존재는 가까이 하지 않는 것이 좋다고는 하지만 과연 언제나 그럴까? 사람에 대한 믿음을 잃고, 사람의 도움을 기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과연 기댈 곳은 어디인가. 세상 한 구석으로 몰린 이들끼리 만나 서로가 무해하다는 판단을 한 이상 다른 이들의 의견은 그저 괜한 참견에 지나지 않는다.

이 도깨비라는 존재가 사람을 판별하는 기준점 역할을 해서 꽤 묘했다. 사람에 따라 눈에 보이는 외형이 달라진다는 점에서 해리포터 시리즈에 나온 마법 생물인 보가트를 떠올리게 한다. 다만 보가트는 상대가 무서워 하는 걸로 변신하는 반면, 이 작품의 도깨비는 마치 거울처럼 그 사람의 내면을 형상화 하는 것처럼 보인다. 마음이 추악할 수록 무서운 형상을 하고, 외로움을 타는 사람이라면 초라한 모습으로 말이다. 그래서 작중 주인공의 눈에 도깨비가 어떤지 밝혀질 때는 꽤 의미심장했다. 겉으로는 알 수 없을 내면의 공허를 마치 시적으로 표현한 것처럼 보였으니까.

이런 분위기의 작품이다 보니 단순히 무섭다는 인상이 아닌 순수한 괴이함을 보여줬다고 본다. 이 세상의 존재가 아니라고 반드시 무서운 것은 아니며, 때로는 이렇게 사람과 공존할 수 있다. 그리고 괴이보다 사람이 더 무서운 존재일 수도 있다고 말이다.

여자의 머리

어릴 적부터 손재주가 좋아서 여자애 같다는 말을 자주 들은 다로. 유일한 가족인 어머니를 잃고 공동주택 관리인에게 맡겨져 있다가 손재주 덕분에 주머니 가게인 아오이야에 고용살이를 하러 가게 된다. 태어나서 단 한 마디도 말을 하지 않았던 다로를 아오이야에서는 별문제 삼지 않고 친절하게 대해주며 잘 지내던 중, 창고방에서 허공에 떠 있는 여자의 머리를 보게 되는데...

자녀에 대한 문제를 다룬 괴이한 이야기로 공포와 감동을 동시에 담고 있다. 태어날 때부터 말을 하지 못했다는 기이한 점에, 고용살이를 한 가게에서 목격하게 된 괴이까지 해서 겉으로만 보면 무서운 면이 꽤 많다. 그러나 다로와 아오이야 간의 숨겨진 사연과 진실을 보면 또 다른 괴이함을 느끼게 된다. 어떻게 이렇게 기막힌 우연이 있을 수 있을까.

추악한 악인은 죽어서까지 괴물이 되고, 죄 없는 이는 하늘이 끝까지 도와준다는 다소 흔한 옛날 이야기 같기도 하다. 그럼에도 단순한 우연으로 보일 부분을 나름의 복선으로 꽤 그럴싸한 연결성을 보여줘서 한층 더 흥미롭다. 뭔가에 대한 믿음이 생기거나, 이해 못할 풍습이 생기는데는 그럴 만한 이유가 다 있나 보다.

가을비 도깨비

고용살이 하는 곳을 바꾸기 위해 오신은 자신이 알던 중개업소를 찾아간다. 가게에는 자신이 알던 주인 아저씨가 아닌 모르는 여자가 있었다. 오츠타라고 자신을 소개한 여인은 중개업소 주인과 결혼 한지 얼마 안 된 사이라 하며 오신의 용건을 들어준다. 오신은 가노야라는 방앗간에서 하녀로 일하다가 해고를 당하게 됐고 그 이유가 연애 문제로 인한 것이었는데...

사람을 무엇으로 판단해야 되느냐의 문제를 다루는 내용이다. 이게 과연 선한 의도로 하는 제안일까. 겉모습만 보면 분명 괜찮아 보이지만 찬찬히 살펴보면 수상쩍은 면이 적지 않은데 믿어도 될까. 머리 아프게 고민할 필요 없이 무작정 믿고 싶어도 마음 한구석에는 뭔지 모를 불안감이 감돌기에 안심할 수가 없다. 이 문제를 도깨비에 비유하며 설명한다. 사람의 가죽을 쓴 도깨비가 숨어 살고 있다고 말이다.

외적으로 사람이 아닌 초자연적인 존재로서 설명되던 것과 다르게 이 작품의 괴이는 순수하게 사람 그 자체를 지칭한다. 멀쩡하게 사람과 섞여 살 수 없어, 사람을 해치고 살 수 밖에 없으니, 도깨비와 같은 사람이 아닌 존재라고. 살아 생전에 인간성을 잃은 이들이 괴기한 요물이 된다는 이야기가 많은 만큼, 사람이 아닌 존재라고 지칭되는 건 그 만큼 무거운 의미나 다름없다. 말이 어느 정도 순화되서 그렇지, 사실상 귀축 취급을 하는 것이니까.

명쾌한 해결과 답을 보여주던 다른 작품과 달리 여기서는 다소 애매모호하게 끝을 낸다. 이는 사람에 대한 판단은 누가 정해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가 결정해야 할 문제라는 의미로 보인다. 겉만 봐서 누가 도깨비인지 알 수 없으니, 답을 정해주는 이 역시 도깨비일지 모른다고 말이다. 그러니 이 문제에 대한 답은 본인의 마음에 달린 거나 마찬가지다. 사람으로 살게 될지, 아니면 도깨비로 살게 될지.

재티

기류초 5번가에 있는 나막신 가게인 다이라야에서 고용살이 일꾼이 칼부림을 저질렀다는 신고를 받은 세이고로 대장. 다친 사람은 가게 주인의 동생인 젠키치로 잠들어 있던 중에 습격을 당했다고 한다. 세이고로 대장은 가해자인 하녀 오코마의 상태가 이상한 것을 보고 의원을 불러 살펴보게 한다. 그러던 중, 오코마가 하얀 재를 뿜으며 죽어버리는데...

어떠한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과정에 가까워서 다소 추리에 가깝다는 인상을 준다. 물론 현실적인 사건이 아니라 괴이한 사건이다 보니 논리적인 추리가 아닌 호러 미스터리에 가깝다. 그래서 사건의 전말이 밝혀지고도, 추측과 해석의 영역으로 남기에 여전히 미스터리가 깊게 남는 편이라 할 수 있다.

낡은 집에서 무언가가 나오듯이 물건도 마찬가지다. 무언가가 씌여서 그걸 사용한 사람에게 영향을 끼치는 것이다. 여기서는 그것이 재티의 형태로 나타난다. 타고 남은 잿더미에서 피어오르는 허연 연기. 보통은 형체를 알 수 없을 사물에 붙어 있는 존재를 형상화하기 딱 좋은 매개체다.

연기란 이전부터 무언가를 숨기거나 어떠한 형체를 만들기 위해 자주 쓰이는 요소다. 이러한 연기를 만들어내는 건 바로 불이다. 오랜 인류의 역사와 함께 하며 생활에서 절대 떼어 놓을 수 없는 그것과 언제나 함께한다. 그렇다 보니 연기에 대해 어떠한 인상이 생긴다면 언제나 가까이에 무언가가 있다는 느낌을 받을 수밖에 없다. 이건 진짜 무언가가 있어서 그런 것일까, 아니면 연기처럼 쉽게 없어지지 않는 사람의 흔적을 나타내는 것일까. 이를 테면 쉽게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업보나 트라우마 같은 것 말이다.

바지락 무덤

요네스케는 중개업소를 물려준 돌아가신 아버지의 바둑 친구였던 할아버지인 마쓰베에의 문병을 가기 위해 바지락을 산다. 병석에 있던 마쓰베에는 문득 요네스케의 아버지가 죽기 전에 들었던 얘기가 떠올라 말해준다. 요네스케의 아버지는 10년마다 똑같은 얼굴의 다른 이름, 다른 경력을 가진 처녀가 고용살이할 곳을 찾으러 오는 일을 겪었다고 한다. 문제는 마쓰베에 역시 비슷한 경험을 했다는 것인데...

나이를 먹지 않고 겉모습을 그대로 유지한채 오랜 세월을 살아온 자. 불로불사로 살아가는 이에 대한 전설은 전세계적으로 꽤 있는 편이다. 이 작품 역시 비슷한 소재로 볼 수 있으면서, 뭔지 모를 기분 나쁜 섬뜩함을 매우 강하게 준다. 단순한 괴이를 넘어서는 꺼림직한 느낌이 유독 강해서 그렇다. 자세히 알면 안 되는 무언가를 집요하게 파고들지 마라. 알면 다친다. 이게 사실상 이 작품의 진짜 소재라는 생각이 들게 한다.

왜 하필이면 바지락일까 싶었는데, 생각해 보면 작중 주요 인물들 간의 관련성을 나타낸 것이 아닐까 한다. 단순히 바지락을 먹었다는 정도가 아니라 뭔가를 보고서 모른 척하지 않았다는 증거라고 말이다. 그렇기에 바지락 무덤이란 아는 사람만 알아보는 일종의 경고 표시라고 본다. 평소 조개류에 대해서는 별다른 생각이 없던 편이라, 이 작품의 마지막 부분처럼 섬뜩한 묘사가 가능할 줄은 몰랐다. 역시 해산물이라면 뭐든 무섭게 만드는 게 가능한 걸까.

한편으로는 호기심과 공포, 둘 중에서 무엇이 더 금단의 비밀을 파해치는 원동력이 되는 건지 궁금해진다. 보통은 호기심이 먼저라고 여겨지는 편이었는데, 이 작품을 보면 때로는 공포가 더 부추기는 걸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자신이 목격한 것이나 들은 것이 제발 틀리길 바라는 마음인 셈이다. 그래야 안심할 수 있거나, 확신을 가지며 불확실한 불안감을 내려놓을 수 있다고 믿는 것이다. 하지만 이 확인하는 과정이야 말로 곧 공포에 집어 삼켜지는 과정이나 다름 없다. 이걸 증명하는 대표적인 예시인 고딕 장르를 보면 확실히 알 수 있다. 사실상 어떻게 하든 공포에서 벗어날 수 없으니 선택지가 없는 셈이라 애초에 위화감을 인식하지 않도록 조심하게 최선이다. 이미 인식해 버렸다면 지나가는 일상의 한 부분이라는 듯이 최대한 신경 쓰지 않아야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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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다리를 목이라고 치면 바톤핑크 환상문학 서클 33
제럴드 그리핀 / 바톤핑크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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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일랜드의 애비도니 마을에서 무릎 바로 위부터 잘려진 채로 돌아다니는 다리가 갑자기 나타난다. 그 다리는 어딘 가를 향해 계속 나아가자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나머지 계속 따라가게 되고, 이 다리에 관해 전해지는 어떤 전설을 알게 되는데...

1827년에 출간된 단편집이자 민담집인 <Holland-Tide: Or Munster Popular Tales>에 수록된 작품이다. 특정 신체 부위만 살아서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전 세계적으로 꽤 많은 편이다. 대체로 손이나 팔이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 발이나 다리, 잘린 목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아무래도 손이나 팔은 그 자체로 기어 다니는 모습만 해도 상당히 기괴한 인상을 주고. 목 역시 그 자체 만으로 상당한데 말을 걸기까지 할 수 있으니 더욱 소름 끼칠 것이다. 그렇다 보니 발이나 다리는 상대적으로 강렬함이 떨어져 보일 만하다.

이 작품에 나온 다리에 대한 묘사를 보면 공포보다는 신비한 면이 더욱 강했다. 자신을 쫓아온 사람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 같은 가볍고 익살스러운 걸음걸이이나, 요상할 정도로 쫓고 쫓는 추격전을 이어간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기묘함과 유쾌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다리의 외형도 뭔가 고풍스러운 옛 귀족 같은 분위기가 가득하다는 점도 이러한 환상적인 면을 더 돋보이게 한다.

다리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는 전설은 중세 유럽 귀족의 추악한 면과 권선징악을 다룬 흔하면서 섬뜩한 이야기이긴 하다. 다만 다리가 잘리게 된 경위에 다소 황당한 면이 있어서 무서움 반, 익살스러움 반이 섞인 느낌이다. 이래서 떠돌아 다니는 다리에 무서운 인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원한을 품은 일은 끝났지만 성불은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무서운 인상을 주지 않으려 할 만하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대부분 도망쳐 버리고도 남으니까. 다리만 있으니 의사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해서 더 그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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