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면관의 살인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
아야츠지 유키토 지음, 박수지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2년 12월
평점 :
절판


사람의 얼굴이란 모든 본질을 비춘다고 봐야 할까. 표정과 속마음이 서로 다르고, 진실보다는 거짓인 경우가 더 많으니 무엇 하나 제대로 파악 되는 게 없다고 해도 이상하지 않다. 가면이란 도구와 단어의 쓰임새가 괜히 생겨난 게 아니다. 처음부터 본질이 존재하는지 아닌지 아예 알 수 없게 가려버리는 역할. 이걸 하나의 개인이 아닌 세계를 덮어버리면 본질이란 아예 존재하지 않게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본질이 존재하지 않는 세상에서 진실은 어떻게 발견할 수 있을까. 가면 너머에는 어떤 진실이 존재하는 걸까.

시시야 가도미는 괴기 소설가인 휴가 쿄스케의 부탁으로 도쿄 외진 곳에 위치한 기면관에서 열리는 모임에 대신 참석하게 된다. 희귀한 가면 컬렉션으로 가득한 어느 재력가의 별장으로 역시나 나카무라 세이지가 만들었다는 점에서 심상치 않은 기운을 느끼고 가게 된 것이다. 눈이 내리는 4월에 예정된 참가자들이 저택에 모이고 개인실 외에는 정해진 가면을 쓰고 다녀야 한다는 규칙 속에서 정해진 일정이 진행된다. 그런데 다음 날 폭설로 인해 기면관이 고립되고, 안채에 있는 기면의 방에서 주최자인 카케야마 이츠시가 살해된 채로 발견되는데...

암흑관 이후로 오랜 시간이 걸려 나온 관 시리즈 후속작이다. 전작인 암흑관에서 그 동안 나온 관의 흔적이 모두 들어 있어서 상당히 놀랐던 기억이 있다. 그런데 이 기면관의 경우는 거기서 미리 예고한 거나 다름 없다고 작중 스토리에서 언급된다. 사실상 모든 관들의 종착점이 암흑관인 셈이라 그 동안 보아온 관들의 흔적은 물론, 앞으로 나올 관에 대한 예고 역시 존재했다고 봐야 할지 모르겠다.

이번 기면관의 특징이라면 비슷한 체형의 사람들과 얼굴을 가린 가면이다. 보통 추리소설에서 사건이 발생하면 신원을 확인하는 문제가 우선인데, 이 작품은 그걸 대놓고 이용한다고 예고하는 거나 다름 없다. 다만 신원 확인을 숨기는 트릭은 너무나 고전적이고 비교적 추리 과정이 심심한 편이다. 이걸로 메인 추리 전부를 담당하려면 자연스레 대단한 걸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이 커지게 된다. 게다가 관 시리즈 특성상 비밀 장치의 역할 역시 주요 관심 대상이고. 그렇기에 이 작품은 비교적 아쉽다는 반응이 나올 수밖에 없긴 하다.

트릭이나 추리 자체가 흥미롭지 않다는 건 아니다. 가면이란 제한적인 상황에서 주어진 정보로만 진실을 찾아내는 과정은 보기보다 어렵게 나타난다. 끊임 없는 가정이 제시 되고. 이미 증명됐다고 여기던 사실에도 계속 혹시나 하는 여지를 두게 되고. 결론적으로는 뚜렷하게 증명되는 건 얼마 없이 의심만 늘어난다고 할 수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맹점과 고정 관념을 타파하며 조금씩 논리를 구축해 밝혀지는 반전은 꽤 나쁘진 않다. 진짜 가면으로 가려 놓은 듯한 시커먼 어둠의 비밀 그 자체였다.

비밀 장치에 대해서는 전작인 암흑관에서 뭔가 의존도를 줄여 나가려는 듯한 느낌이 없잖아 있어서 기대를 낮추고 있던 편이다. 그런데 기면관이라는 컨셉과 꽤 어울리는 비밀 장치를 보여주고, 이게 사건의 트릭과 매우 직접적인 연관성을 가져서 상당히 좋게 봤다. 추리에서 비밀 통로하면 반칙이라는 인상이 너무 강하다 보니 활용도를 더욱 살릴 필요가 있다. 관 시리즈의 경우는 초창기 시절에 이런 지적을 많이 받은 편이고, 갈수록 비밀 장치가 필수요소가 되면서 개선하려 노력한 편이다. 그렇게 무엇을, 어떤 식으로, 왜 그렇게 해야 했는지를 비밀 통로와 잘 엮은 트릭으로 거듭된 개선을 증명했다고 본다.

문제라면 사건이 발생해서 해결되기까지 시간상의 과정은 자체는 짧은데, 분량은 길다는 점이다. 여기에 긴박하고 스릴 있게 하는 요소가 거의 없이 잔잔한 하게 흘러가서 템포가 축 처지게 한다. 앞서 말한 대로 추리 과정 대부분이 신원 확인에 대한 부분이 많고 그 만큼 했던 말을 반복하는 경향까지 있어 더하다 할 수 있다. 굳이 이렇게 장황하게 다룰 필요 있을까 싶을 정도로 분량이 늘어진다는 느낌이 들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다. 이 단점을 감안하고 계속 읽을 필요가 있느냐 하면 호불호가 있다고 밖에 말하지 못하겠다. 이 작품의 기묘한 분위기에 나름 몰입했다면 흥미로운 부분이 많을 테고. 그저 가면의 정체만 중요하게 여겼다면 불필요한 잔가지가 많게 보일 만해서 그렇다.

이제 남은 관은 작가가 집필 중이라고 밝혔던 쌍둥이 관이다. 국내 번역 기준으로는 아동도서 시리즈에 묶여 나와 정발이 되지 않았던 깜짝관까지 해서 두 개라 할 수 있다. 최후의 피날레인 만큼 시시야 가도미와 건축가 나카무라 세이지에게 어떤 마지막을 보여줄지 기대가 크다. 이건 언제 볼 수 있을까. 번역이 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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