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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다리를 목이라고 치면 ㅣ 바톤핑크 환상문학 서클 33
제럴드 그리핀 / 바톤핑크 / 2023년 7월
평점 :
아일랜드의 애비도니 마을에서 무릎 바로 위부터 잘려진 채로 돌아다니는 다리가 갑자기 나타난다. 그 다리는 어딘 가를 향해 계속 나아가자 사람들은 어디로 가는지 궁금한 나머지 계속 따라가게 되고, 이 다리에 관해 전해지는 어떤 전설을 알게 되는데...
1827년에 출간된 단편집이자 민담집인 <Holland-Tide: Or Munster Popular Tales>에 수록된 작품이다. 특정 신체 부위만 살아서 돌아다닌다는 얘기는 전 세계적으로 꽤 많은 편이다. 대체로 손이나 팔이 제일 많고, 그 다음으로 발이나 다리, 잘린 목이 자주 나오는 편이다. 아무래도 손이나 팔은 그 자체로 기어 다니는 모습만 해도 상당히 기괴한 인상을 주고. 목 역시 그 자체 만으로 상당한데 말을 걸기까지 할 수 있으니 더욱 소름 끼칠 것이다. 그렇다 보니 발이나 다리는 상대적으로 강렬함이 떨어져 보일 만하다.
이 작품에 나온 다리에 대한 묘사를 보면 공포보다는 신비한 면이 더욱 강했다. 자신을 쫓아온 사람들을 상대로 장난을 치는 것 같은 가볍고 익살스러운 걸음걸이이나, 요상할 정도로 쫓고 쫓는 추격전을 이어간 사람들에 대한 묘사도 그렇고 기묘함과 유쾌함이 동시에 느껴진다. 다리의 외형도 뭔가 고풍스러운 옛 귀족 같은 분위기가 가득하다는 점도 이러한 환상적인 면을 더 돋보이게 한다.
다리의 정체에 대해 알려주는 전설은 중세 유럽 귀족의 추악한 면과 권선징악을 다룬 흔하면서 섬뜩한 이야기이긴 하다. 다만 다리가 잘리게 된 경위에 다소 황당한 면이 있어서 무서움 반, 익살스러움 반이 섞인 느낌이다. 이래서 떠돌아 다니는 다리에 무서운 인상이 없었을지도 모르겠다. 이미 원한을 품은 일은 끝났지만 성불은 하지 못했다. 그렇다면 최대한 무서운 인상을 주지 않으려 할 만하다. 아무런 해를 끼치지 않고, 오히려 도움을 요청하고 싶어도 대부분 도망쳐 버리고도 남으니까. 다리만 있으니 의사소통은 애초에 불가능해서 더 그럴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