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녀굴 - 영화 [퇴마 : 무녀굴] 원작 소설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17
신진오 지음 / 황금가지 / 2010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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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부분의 공포소설은 사회의 어두운면이나 귀신이 등장하는 초자연적인면, 러브크래프트 같은 미지의 존재가 나타나는 면 같은 것이 많아 보였다.
 설화를 주제로 전개되는 무녀굴은 제주도의 김녕사굴 설화와 전통신앙의 분위기가 표지그림에서 부터 많이 느껴졌다. 
 국내는 물론이고 각 나라마다 고유의 설화가 있을 것이고 그 중에는 공포스러운 분위기를 띄는 설화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설화를 주제로해서 나온 작품은 기껐해야 설화 모음집 정도의 수준 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무녀굴은 설화에서도 많은 소재를 찾을 수 있고 전통 설화에 관심을 가지게 할 수 있는 것을 보여주는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김녕사굴에서 시작된 저주는 뱀처럼 냉혹하고 잔인했다. 우리에게는 약간의 이국 느낌을 주는 제주도가 신비로운 곳으로 여겨질 만큼 작중의 나오는 제주도의 모습은 익숙하면서 낯선 분위기를 주었다.
 제주도에서부터 뿜어져 나온 저주는 엑소시스트를 연상시키는 초자연적 공포 분위기에 다가 퇴마적 분위기를 만들었다. 초반의 저주에 관한 실체가 스물스물 기어나오다가 중반에 가서 갑자기 팍터져 나왔을 때 그 느낌은 현실의 논리로는 허용이 안 되는 검은 그림자의 돌풍이 모든 것을 쓸어버리는 것 같았다.

  여기서 나오는 퇴마사 진영은 현실과 비현실의 경계에서 세상을 조율하고 있는 조율사처럼 느껴졌다. 현실이면 현실, 비현실이면 비현실에 맞게 나오는 진영의 모습에서 어딘지 모르게 히어로물에서 나오는 영웅의 기질이 느껴졌다. 그리고 퇴마사라는 캐릭터는 바로 이런 느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결말에 다다라서는 마치 영화 클라이막스에서 사건의 모든 것이 절정에 이르러서 악의 승리냐, 아니면 정의의 승리냐를 가를 결정적인 순간이 시간을 멈추게 만든 것처럼 숨막히게 했다. 설화를 바탕으로 이런 현대적 퇴마 내용을 만들어낸 것이 정말 대단하다고 느낀 부분이었다.

 이렇게 김녕사굴 설화로 거대한 내용을 만든 것을 보면 앞으로 설화라는 요소가 무궁무진한 잠재적 소재로 쓰일 가능성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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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미
류현재 지음 / 손안의책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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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 먹히는 것. 여러방면으로 생각해볼 수도 있지만, 일단 단순히 생각하자면 식탁에 차려진 음식들에게 가장 어울린다. 한때 생명체였던 것이 손질되어 식탁에 차려져 먹힌다. 우리에게는 그저 식문화에 불과한 것이지만, 자연적으로 볼 때는 잔인한 순리일 것이다. 하지만 자연스러운 순리에 따른 먹히는 것이 아닌 부당하게 먹히고, 또는 부당하게 먹게 되는 것은 요리라는 단순한 걸로 설명되지 않을 것이다. 그건 탐욕스러운 인간 관계에서 비로소 설명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경기도 양평 지평리 한 구석에 위치한 고급 일식집 야미. 거기서 나오는 고급요리의 맛은 환상적이라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밤에만 영업하는 방침을 고수하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야미의 주방장 성곤은 자신의 식칼이 없어졌다며 알바생인 지철을 범인으로 몬다. 신고를 받고 지평리 파출소에서 나온 경찰까지 오게 되지만, 결국 성곤의 식칼은 발견되지 않는다. 며칠 후, 야미의 뒷편에 위치한 야산에서 검찰총장 후보인 여현수가 살해된 현장에서 문제의 식칼이 발견되는데...

 요리, 특히 일본식 요리나 수산물 요리가 자주 언급되는 특징이 있어서 렉스 스타우트의 네로 울프 시리즈 같은 요리 미스터리 같은 느낌이 들었다. 조리방법 같은 구체적인 부분까지 나왔다면 더 좋았겠지만, 요리 이름만 언급하거나 어떻게 하면 맛있게 된다는 것 같은 추상적인 느낌 밖에 없어서 약간 아쉬웠다.

 어떻게 보면 작중에 등장하는 이들 대부분이 정신병자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랑에 목매는 자, 부모에 목매는 자, 이익에 목매는 자 등등... 멀쩡한 사람이라면 하지 않을 짓들이 넘쳐나지만, 정작이 이들이 승리하고마는 말 그대로 부조리극이다. 무엇보다 이런 부조리한 상황이 우리나라 실정이랑 너무나 비슷하다는 것이다. 어른들은 어른들 대로 젊은 사람들에게 감언이설로 부당대우를 일삼고, 젊은 사람들은 젊은 사람들 대로 그런 상황에 절망하여 정신나간 괴물이 되는 현실. 거기에 자신들이 괴물을 만들어 놓고 괴물들 탓이라 하는 것을 보며, 말 그대로 서로 먹고 먹히는 괴물들이 사는 나라나 다름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미스터리 부분은 나름 구성면에서 나쁘지 않았다고 생각한다. 다만 곳곳에서 보이는 국내 드라마에서 흔히 나올 법한 특징들이 보여서 미스터리 소설로 보이다가도, 미스터리가 들어간 그냥 흔하디 흔한 국내 드라마 래퍼토리 같다는 생각이 자주들었다. 그런 부분이 미스터리답게 자연스럽게 들어간 곳도 있긴 있었다. 하지만 몇몇 부분에서 막장드라마처럼 갑작스럽게 진행되는 남녀관계 같이, 누가봐도 끼워 맞춘듯한 느낌드는 곳이 있어서 동시에 물을 흐린다는 생각도 들었다. 미스터리에서 연애적인 부분이 나오지 말라는 건 아니다. 다만, 사건 중간중간에 쉬는 타임에 나오는 것도 아니고 사건이 진행되는 판국에 연애요소가 나오는 건 불필요한 첨가물로 밖에 보이지 않을 뿐이다.

 야미, 그것은 아마 괴물들의 집합체일지도 모른다. 괴물처럼 구는 어른들과 그런 어른들이 만들어낸 진정한 괴물. 괴물처럼 구는 이들은 진정한 괴물을 보며 두려워 하지만 어쩌겠는 가. 그들이 만들어낸 업보이고, 그들의 생각없는 행동들로 인해 망가진 미래의 꿈나무들인데. 이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윗물이 맑아야 아랫물이 맑아진다는 것처럼 해야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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딥 블루 워터파이어 연대기 1
제니퍼 도넬리 지음, 이은숙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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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어공주는 신데렐라, 백설공주와 함께 어린 시절 자주 보았던 동화 속 주인공이다. 특히 인어공주는 인어라는 요소와 다른 동화와는 비교되는 비극적인 결말로 인상 깊은 이미지로 기억하고 있다.

 현재 수많은 동화를 소재로 한 판타지, 재해석 동화, 애니메이션 실사화 영화가 나오는 시대다. 하지만, 이상하게도 인어공주는 어릴 적에 많이 봐왔던 90년도 애니메이션 이외의 2차 창작은 찾아볼 수가 없거나 희소하다. 그나마 찾은 거라면 요근래에 나왔던 국내 드라마 잉여공주라던가, 2006년의 미국 영화 아쿠아마린이 전부다. 이런 상황에 나온 인어공주를 소재한 거대한 해양 판타지는 정말 탁월하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바닷속 인어 왕국, 미로마나의 공주 세라피나는 곧 있으면 열릴 왕위 계승 검증식과 노래연습으로 인해 심란한 상태다. 거기에 약혼자의 바람까지 겹쳐 더욱 더 싫증을 느낀다. 하지만 왕국을 위해 힘쓰는 부모님의 모습을 보고 세라피나는 실망시키지 않게 노력하기로 한다. 그리고 왕위 계승 검증식 당일. 많은 사람들이 모인 원형극장에 화살이 날아들면서 다른나라의 침략이 벌어지는데...

 인어공주의 비극적인 분위기를 많이 반영한 것인지, 초반부 치고는 상당히 스펙터클한 분위기에 주인공인 세라피나를 엄청 몰아붙인다. 아직 1부 밖에 안 됐는데, 죽거나 다치는 인물이 정말 많은 걸 보면 장난 아니다고 느낄 정도다. 하지만 제목인 딥 블루처럼 깊은 바닷속에서 일어나고 있을 법한 생물들 간의 쫓고 쫓기는 상황을 표현한 것일지도 모른다.

 작중 설정을 보면 정말 바닷속을 잘 표현했다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날씨를 보는 기준점이라던가, 난파선의 활용도, 기상천외한 애완동물들, 인어들이 사용하는 도구들의 디테일, 그리고 강기슭 쪽으로 갈수록 나타나는 현대의 쓰레기들과 그것들을 활용해서 생활하는 모습. 거기에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세이렌에서 모티브로 가져온 듯한 노래 마법은 정말 환상적이다.

 또한 매력적이라고 생각된 게 바로 인간의 존재였다. 참고로 작중에 나오는 바다 지명이 실제로 존재하는 지명에서 가져온 점을 보면 바닷속 위주로 나올 뿐이지, 지상은 우리가 알던 세계와 별반 다르지 않는 듯 하다. 인어의 시점에서 나오는 사람의 모습을 보면, 불법 포획하는 바다의 무법자들을 바다 생물들이 어떻게 여기는지 느낄 수 있는 대목이었다. 그래서 인어공주를 소재로 한 판타지지만, 알게 모르게 해양 환경적인 요소가 포함되어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공과 일행의 나이대가 나이대라 그런지, 볼 때마다 약간은 툭툭 튀는 면이 꽤 보였다. 느닷없는 돌발행동을 하거나 현재 상황과 관련없는 얘기를 하는 등, 이해할 수 없는 점으로 보일만한 곳이 보일 것이다. 하지만 이걸 개연성 없다 하기에 먼저, 이들의 나이대를 먼저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세라피나를 포함한 일행은 10대다. 본인도 겪어봐서 알지만, 10대 때가 가장 불안한 시기다. 그러니 이들의 행동이 갑작스럽게 튀거나 이상한 방향으로 나가는 건, 심리 상태가 너무 불안하다는 걸 반증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비록 1부부터 주인공을 너무 못 살게 굴긴 했지만, 앞으로의 세라피나가 어떻게 될지 궁금하다. 비극적으로 시작한 만큼 결말에는 해피엔딩이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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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파치
로렌조 카르카테라 지음, 최필원 옮김 / 펄스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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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나쁜 놈들과 치고 받고 싸우는 내용은 수 없이 많다. 그런데 가끔 보다보면 다들 한 번쯤은 이런 생각을 했었을 것이다. 저런 쓰레기 같은 놈을 왜 살려두는 거야, 그냥 시원하게 죽여, 주인공이 안 죽이면 내가 죽이고도 남을 것 같아. 이런 걸 원한다면 아파치는 정말 탁월한 선택일 것이다.
 과격 마약단속반 출신 부머, 범죄자 수준의 총기 전문가인 경찰 출신 데드아이, 날카로운 취조력이 특기였던 여형사 콜롬보 부인, 스릴을 즐기는 폭탄 처리반 출신 제로니모, 도청기술 만큼은 전문가였던 마약반 출신 핀스, 잠입수사요원으로 거리의 연기자였던 짐목사. 경찰 출신의 다양한 전문가인 이들이 길거리의 쓰레기들을 청소하러 나선다...
 미국 스타일의 거칠고 비열한 악당들이 활개를 치는 부분이 많음과 동시에 그 만큼 시원스럽게 때려 부숴버려서 시원시원한 느낌이라 할 수 있다. 스티븐 킹의 캐리 후반 부에 느꼈던 그 느낌을 여기서 다시 느낄 수 있었다는 게 놀라웠다.
 그 시원스러운 느낌은 그야말로 질리지 않도록 여러 방면으로 표현했다. 사회의 쓰레기는 끝까지 쫓아가서 죽이고, 육탄전과 폭발은 기본, 권총에서부터 로켓포까지 다양한 방법으로 제대로 박살낸다.
 등장인물 대다수가 법을 어기며 비도덕스러운 느낌을 풍기기 때문에 피카레스크 스타일의 작품이라 할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다르다고도 할 수 있는 게, 아파치 멤버들은 법을 어기며 범죄자들을 잡는 경우라, 대다수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악당이라는 이미지가 아니라 법적인 의미에서의 악당이다. 과거에는 악당이라고 하면 그냥 악당인 건데, 현대에는 아무리 착한 일을 과격하게 한다 해도 법과 다르면 악당인 것이다. 그래서 잘 보면 진정한 악당과 법적인 악당과의 싸움이라는 참으로 뭐라 할 수 없는 것들의 대결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장점이 큰 만큼 자잘한 단점도 보이기 마련인가 보다. 먼저, 책의 편집 상태가 읽기 불편하게 되어 있어서 가독성이 좀 떨어지는 편이다. 얼마나 읽기 불편하냐면 열린책들 세계문학전집 같이 한 페이지에 빽빽하게 나열되어 있는 구성이다.
 또한 엄청난 악인들이 판치는 내용이라 그냥 살인사건이 나오는 추리소설과는 전혀 판이 다르다. 때문에 마약상들의 상상을 초월한 범죄 행위와 인신매매 같은 분위기 때문에 조금 거부감을 느낄 수도 모른다. 얼마나 심하냐면 뉴스에서 보던 멕시코 마약 카르텔의 범죄행위라던가, 중동 테러리스트들이나 벌일 법한 잔혹한 범죄가 있는 그대로 다 나올 정도다.
 법률이라는 현실적인 장치로 인해 창작물에서도 나쁜 놈은 죽지 않는다. 하지만 아파치는 그야말로 죽어야할 것들을 끝까지 제대로 없애버린다. 그것도 현실적으로, 의미를 부여하면서, 단순히 화풀이로 종이에 끄적이는 복수극 따위와는 차원이 다르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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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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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언제나 소문이 만들어진 법인가 보다. 한 두 사람이 모이면 멀쩡하던 집이 귀신의 집이 되고, 더 여럿이 모이면 학교에 기이한 것이 나온다는 괴담이 되고, 조금 더 여럿이 보이면 도시를 떠도는 전설이 되는 걸보면. 이러한 모습은 아마 옛날에도 있었을 것이다.

 혼조 7대 불가사의를 보면 대체로 기이하지만 어딘가 다른 괴담들에 비해서 소박한 느낌이 있었다. 다른 일본의 괴담이나 전설을 보면, 사람이 죽거나 엄청난 피해를 입는 내용을 종종 볼 수가 있다. 그에 반해 혼조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기담들은 애들 장난 수준으로 보일 정도다. 그래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변조한 다른 무서운 이야기들과 달리, 혼조 7대 불가사의는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과 소박함이 만들어낸 재치있는 기이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또한 작중 소재로 언급되는 혼조 후카가와의 7대 불사가의를 보면, 현대의 학교괴담에 영향을 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본의 학원괴담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7개라 한다. 이런 점을 보며 현대에 와서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에도 시대의 혼조 후카가와에서 떠돌던 기담들은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잎갈대

 혼조 후카가와에서 초밥으로 유명한 오우미야의 주인, 도베에가 늦은 밤 다리에서 살해당한다. 그 소식을 들은 메밀국수 가게의 히코지는 어린 시절, 오우미야의 딸과 엮인 외잎갈대의 추억을 회상하는데...
 어린시절에 다들 한 번 쯤은 이런 약속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나는 커서 꼭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이걸 지키는 경우가 있을까. 아마 불우한 이들이 넘처나던 과거, 에도 시대에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건이라던가, 사연이 이렇게도 소박한 게 있을까 할 정도로 다른 단편에 비해 큰 느낌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약속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는 충분했다.
 외잎갈대는 우리가 잘 모르는 자연현상의 일종일 수도 있으나, 아마도 어린 시절의 각오와 꿈을 잃지 않고 자라온 이의 올곧은 마음의 결실일지도 모른다.

배웅하는 등롱

 담뱃가게 오노야에서 고용살이를 하던 오린은 주인집 아가씨의 주술행위를 도와 매일 밤 에코인 경내의 자갈을 주으러 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에코인 경내로 가는 길에 등롱의 불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얼핏보면 섬뜩한 괴담처럼 보일 수도 있는 내용을, 미미여사님 특유의 분위기가 만나니 어딘지 모르게 푸근한 분위기로 변했다. 그저 밤길을 쫓아오는 이라면 무섭겠지만, 그 사람을 생각해서 배웅하는 것이라면 무서운 게 아닐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해 보이겠지만, 사실 등불에 해당되는 이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등롱의 존재만큼이나 알 수 없는 게 사람 간의 마음으로 보였다. 작중에 나오는 등롱이야 누군지는 모르지만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으나, 마음은 있다는 것조차 인식할 수 없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배웅하는 등롱의 진짜 모습은 사람 잡아먹는 불덩어리 요괴가 아닌, 전할 수 없는 간절한 마음이 형상화 되어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 가 해자

 남편을 잃고 보리밥집에서 일하며 사는 오시즈. 어느 날, 보리밥집에서 긴시 해자에 대한 괴담으로 시끌시끌하던 와중, 한 불량배가 오시즈의 남편이 긴시 해자가 있는 곳에서 간기 도령으로 환생했다며 소리친다. 그 때문에 오시즈는 마음이 더욱 울적하던 중, 집 근처에서 물갈퀴 발자국을 발견하게 되는데...
 작중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모시치 대장이 제대로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면모가 나타나는 편이라 나름 흥미진진했다. 단순히 혼조의 치안을 담당하는 감찰관으로 보이던 모시치 대장이 얼마나 평민들 개개인을 생각하고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이건 말 조심하라는 얘기 인데, 어떤 사람은 이걸 잘못 알아듣고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고자질하는 심장>에도 나오듯이 범죄자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자신의 양심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이 양심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려는 불한당이 있는 모양이다. 이처럼 죄를 죄로 덮어버릴지언정, 범죄를 지켜본 이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게 사람이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두고 가 해자>는 아무 이유없이 남의 것을 뺏는 괴담이 아니라, 뭔가 찔리는 게 있으니 그걸 숨기지 말고 내놓으라는 괴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

 이시와라 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모시치 대장은 길에 널린 잎 때문에 범인의 흔적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 한다. 그 후, 근처의 오하라야 잡곡가계에서 모밀잣밤나무의 잎이 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도는데...
 에도시대 풍의 잠입수사와 부모를 인정하지 않은 자녀의 대립적인 면을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소재가 된 기담을 보면 다른 기담에 비해 무섭다기 보다는, 소소하고 단순히 기묘하다는 정도라서 이걸 어떻게 나타냈을지 정말 궁금할 정도였다.
 살인 사건 속에 얽힌 인간 관계와 곳곳에 숨겨져 있던 의미는 나름의 반전이었다. 두고 가 해자에서도 보면 범인이 중요했었는데, 여기서 범인은 그저 작은 요소에 불과했고, 정작 중요한 것은 사건 속에 있었던 관계자들이었다.
 잎이 지지 않는 나무는 그저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쌓이고 쌓여가는 과거의 흔적을 부정하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시든 잎들 속에 있었던 잊고 싶은 과거, 그리고 푸른 잎들 속에 있는 찬란한 현실. 과연, 이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부정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잎이 떨어지지 않은 것, 그 자체였을까.

축제 음악

 모시치 대장의 동생 딸인 오토시는 위로를 받고 싶어서 모시치 대장의 집을 방문한다. 그때 모시치 대장은 먼저 온 여인과 대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인은 줄 곧 자기가 누구를 죽였다며 떠뜨는데...
 외모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와서 예나 지금이나 외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문제점으로 떠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더불어 모시치 대장의 조카 시점이라 그런지, 모시치 대장을 가장 잘아는 이들에게는 그가 어떻게 보이는지 잘 나타난 편이었다.
 이 축제 음악이라는 기담과 여기서 나오는 외모에 대한 얘기는 참으로 조합이 잘 맞아들어 보였다. 축제 음악 기담은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신나는 축제음악을 따라 가다보면 자신이 언제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된다는 건데, 이걸 외모를 비웃는 다는 걸로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이 의미를 알았을 때는 정말 씁쓸한 표현이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함께 하며 떠들썩한 축제 소리. 그러나 아무리 쫓아도 나는 그걸 볼 수가 없다. 이건 정녕 나를 비웃는 다는 것이고, 사람을 비웃을 만한 걸로 가장 모욕을 주는 것은 외모 밖에 없을 것이다.

발 씻는 저택

 오미요는 미모의 새어머니를 따르며 아버지 조베에와 함께 음식점 오노야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새어머니가 과거 불우한 시절의 악몽을 꾼 후 누추한 여자가 오미요 눈 앞에 서성이는데...
 배웅하는 등롱처럼 괴담 같은 분위기가 강하지만, 모시치 대장이 등장하는 만큼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발 씻는 저택이라는 기담을 통한 범죄의 전말은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보였다. 지금도 가난해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옛날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고 그 만큼 재산을 노린 범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기억은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발 씻는 저택에 나오는 더러운 발처럼 그건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낙인이며, 현재에서 죄를 계속 저지르게 만드는 굴레였을 것이다.

꺼지지 않는 사방등

 마음 약한 아버지로 인해 남자보는 눈이 유별난 오유. 그녀에게 왠 누추한 중년 남자가 접근한다. 남자는 오유가 10년 전 실종된 버선 가게 딸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사례금을 가로채자고 하는데...
 부부사이의 문제를 다룬 내용으로, 그 동안 나왔던 살인사건 같은 것에 비해 일상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역시나 조용히 넘어가지는 못한다.
 꺼지지 않는 사방등 역시,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처럼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기담을 정말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단순히 사방등이 꺼지지 않는 것을 넘어, 이 사방등이 무엇을 나타내는 상징인가를 나타내서 놀라웠다.
 불은 무언가를 태워서 계속 피어오른다. 그런데 태우는 게 없는데도 불이 꺼지지 않는 다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태운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건 아마,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좋지 않은 것일테고 그걸 끊임없이 태우면서 타오르는 사방등은 엄청난 증오의 불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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