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조 후카가와의 기이한 이야기 미야베 월드 2막
미야베 미유키 지음, 김소연 옮김 / 북스피어 / 200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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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언제나 소문이 만들어진 법인가 보다. 한 두 사람이 모이면 멀쩡하던 집이 귀신의 집이 되고, 더 여럿이 모이면 학교에 기이한 것이 나온다는 괴담이 되고, 조금 더 여럿이 보이면 도시를 떠도는 전설이 되는 걸보면. 이러한 모습은 아마 옛날에도 있었을 것이다.

 혼조 7대 불가사의를 보면 대체로 기이하지만 어딘가 다른 괴담들에 비해서 소박한 느낌이 있었다. 다른 일본의 괴담이나 전설을 보면, 사람이 죽거나 엄청난 피해를 입는 내용을 종종 볼 수가 있다. 그에 반해 혼조 7대 불가사의에 속하는 기담들은 애들 장난 수준으로 보일 정도다. 그래서 자연의 경이로움을 변조한 다른 무서운 이야기들과 달리, 혼조 7대 불가사의는 단순히 사람들의 호기심과 소박함이 만들어낸 재치있는 기이한 이야기가 아니었을까 한다.
 또한 작중 소재로 언급되는 혼조 후카가와의 7대 불사가의를 보면, 현대의 학교괴담에 영향을 준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일본의 학원괴담이라는 것들은 대부분 7개라 한다. 이런 점을 보며 현대에 와서 장소만 바뀌었을 뿐이지, 에도 시대의 혼조 후카가와에서 떠돌던 기담들은 아직도 그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외잎갈대

 혼조 후카가와에서 초밥으로 유명한 오우미야의 주인, 도베에가 늦은 밤 다리에서 살해당한다. 그 소식을 들은 메밀국수 가게의 히코지는 어린 시절, 오우미야의 딸과 엮인 외잎갈대의 추억을 회상하는데...
 어린시절에 다들 한 번 쯤은 이런 약속해 본 적 있을 것이다. 나는 커서 꼭 성공할 것이다. 하지만 진짜로 이걸 지키는 경우가 있을까. 아마 불우한 이들이 넘처나던 과거, 에도 시대에도 있었을지도 모른다.
 사건이라던가, 사연이 이렇게도 소박한 게 있을까 할 정도로 다른 단편에 비해 큰 느낌은 없는 편이다. 하지만 어린 시절의 약속과 그 이후의 삶에 대해 생각해볼 여지는 충분했다.
 외잎갈대는 우리가 잘 모르는 자연현상의 일종일 수도 있으나, 아마도 어린 시절의 각오와 꿈을 잃지 않고 자라온 이의 올곧은 마음의 결실일지도 모른다.

배웅하는 등롱

 담뱃가게 오노야에서 고용살이를 하던 오린은 주인집 아가씨의 주술행위를 도와 매일 밤 에코인 경내의 자갈을 주으러 간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에코인 경내로 가는 길에 등롱의 불빛이 나타나기 시작하는데...
 얼핏보면 섬뜩한 괴담처럼 보일 수도 있는 내용을, 미미여사님 특유의 분위기가 만나니 어딘지 모르게 푸근한 분위기로 변했다. 그저 밤길을 쫓아오는 이라면 무섭겠지만, 그 사람을 생각해서 배웅하는 것이라면 무서운 게 아닐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면 간단해 보이겠지만, 사실 등불에 해당되는 이가 진실을 말하지 않는 이상 알 수 없는 일일지도 모른다.
 등롱의 존재만큼이나 알 수 없는 게 사람 간의 마음으로 보였다. 작중에 나오는 등롱이야 누군지는 모르지만 있다는 것을 인식할 수 있으나, 마음은 있다는 것조차 인식할 수 없으니 답답할 수 밖에 없다. 그래서 배웅하는 등롱의 진짜 모습은 사람 잡아먹는 불덩어리 요괴가 아닌, 전할 수 없는 간절한 마음이 형상화 되어 나타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두고 가 해자

 남편을 잃고 보리밥집에서 일하며 사는 오시즈. 어느 날, 보리밥집에서 긴시 해자에 대한 괴담으로 시끌시끌하던 와중, 한 불량배가 오시즈의 남편이 긴시 해자가 있는 곳에서 간기 도령으로 환생했다며 소리친다. 그 때문에 오시즈는 마음이 더욱 울적하던 중, 집 근처에서 물갈퀴 발자국을 발견하게 되는데...
 작중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모시치 대장이 제대로 사건을 수사하고 해결하는 면모가 나타나는 편이라 나름 흥미진진했다. 단순히 혼조의 치안을 담당하는 감찰관으로 보이던 모시치 대장이 얼마나 평민들 개개인을 생각하고 걱정하는지 알 수 있었다.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는 말이 있다. 이건 말 조심하라는 얘기 인데, 어떤 사람은 이걸 잘못 알아듣고 실제로 그렇다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경우도 있는 모양이다. 에드거 앨런 포의 단편 <고자질하는 심장>에도 나오듯이 범죄자에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자신의 양심 자체일 것이다. 그런데, 그 와중에도 이 양심을 다른 이에게 전가하려는 불한당이 있는 모양이다. 이처럼 죄를 죄로 덮어버릴지언정, 범죄를 지켜본 이는 수없이 많을 것이다. 그게 사람이 아닌 것일지도 모른다.
 아마도 이 <두고 가 해자>는 아무 이유없이 남의 것을 뺏는 괴담이 아니라, 뭔가 찔리는 게 있으니 그걸 숨기지 말고 내놓으라는 괴담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

 이시와라 초에서 일어난 살인사건. 모시치 대장은 길에 널린 잎 때문에 범인의 흔적을 찾지 못해 안타까워 한다. 그 후, 근처의 오하라야 잡곡가계에서 모밀잣밤나무의 잎이 지지 않는다는 소문이 도는데...
 에도시대 풍의 잠입수사와 부모를 인정하지 않은 자녀의 대립적인 면을 볼 수 있는 내용이었다. 소재가 된 기담을 보면 다른 기담에 비해 무섭다기 보다는, 소소하고 단순히 기묘하다는 정도라서 이걸 어떻게 나타냈을지 정말 궁금할 정도였다.
 살인 사건 속에 얽힌 인간 관계와 곳곳에 숨겨져 있던 의미는 나름의 반전이었다. 두고 가 해자에서도 보면 범인이 중요했었는데, 여기서 범인은 그저 작은 요소에 불과했고, 정작 중요한 것은 사건 속에 있었던 관계자들이었다.
 잎이 지지 않는 나무는 그저 나뭇잎이 떨어지지 않는 것이 아니라, 쌓이고 쌓여가는 과거의 흔적을 부정하려는 시도였을지도 모른다. 시든 잎들 속에 있었던 잊고 싶은 과거, 그리고 푸른 잎들 속에 있는 찬란한 현실. 과연, 이 둘은 사람들의 눈을 피해 서로의 존재를 알고 있으면서도 부정하고 있었던 것일까. 아니면 정말로 잎이 떨어지지 않은 것, 그 자체였을까.

축제 음악

 모시치 대장의 동생 딸인 오토시는 위로를 받고 싶어서 모시치 대장의 집을 방문한다. 그때 모시치 대장은 먼저 온 여인과 대면하고 있었다. 그런데 여인은 줄 곧 자기가 누구를 죽였다며 떠뜨는데...
 외모에 관한 얘기가 많이 나와서 예나 지금이나 외모는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어디서든 문제점으로 떠오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와 더불어 모시치 대장의 조카 시점이라 그런지, 모시치 대장을 가장 잘아는 이들에게는 그가 어떻게 보이는지 잘 나타난 편이었다.
 이 축제 음악이라는 기담과 여기서 나오는 외모에 대한 얘기는 참으로 조합이 잘 맞아들어 보였다. 축제 음악 기담은 어디서 들려오는지 모를 신나는 축제음악을 따라 가다보면 자신이 언제 어디에 있는지 모르게 된다는 건데, 이걸 외모를 비웃는 다는 걸로 비유한 것이다. 그래서 이 의미를 알았을 때는 정말 씁쓸한 표현이 아닐 수가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많은 이들이 함께 하며 떠들썩한 축제 소리. 그러나 아무리 쫓아도 나는 그걸 볼 수가 없다. 이건 정녕 나를 비웃는 다는 것이고, 사람을 비웃을 만한 걸로 가장 모욕을 주는 것은 외모 밖에 없을 것이다.

발 씻는 저택

 오미요는 미모의 새어머니를 따르며 아버지 조베에와 함께 음식점 오노야에서 지내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새어머니가 과거 불우한 시절의 악몽을 꾼 후 누추한 여자가 오미요 눈 앞에 서성이는데...
 배웅하는 등롱처럼 괴담 같은 분위기가 강하지만, 모시치 대장이 등장하는 만큼 그 뒤에 숨겨진 진실은 씁쓸하기만 하다.
 발 씻는 저택이라는 기담을 통한 범죄의 전말은 일종의 트라우마처럼 보였다. 지금도 가난해지지 않으려는 사람들이 많은데, 옛날에는 더욱 심했을 것이고 그 만큼 재산을 노린 범죄들이 많았을 것이다. 그러나 그 시절의 기억은 아무리 해도 지워지지 않는 모양이다. 발 씻는 저택에 나오는 더러운 발처럼 그건 씻어도 씻어도 지워지지 않는 과거의 낙인이며, 현재에서 죄를 계속 저지르게 만드는 굴레였을 것이다.

꺼지지 않는 사방등

 마음 약한 아버지로 인해 남자보는 눈이 유별난 오유. 그녀에게 왠 누추한 중년 남자가 접근한다. 남자는 오유가 10년 전 실종된 버선 가게 딸과 비슷하게 생겼다며, 사례금을 가로채자고 하는데...
 부부사이의 문제를 다룬 내용으로, 그 동안 나왔던 살인사건 같은 것에 비해 일상적인 느낌이 강하지만 역시나 조용히 넘어가지는 못한다.
 꺼지지 않는 사방등 역시, 잎이 지지 않는 모밀잣밤나무처럼 별거 아닌 것처럼 보이는 기담을 정말 효과적으로 활용한 것이다. 단순히 사방등이 꺼지지 않는 것을 넘어, 이 사방등이 무엇을 나타내는 상징인가를 나타내서 놀라웠다.
 불은 무언가를 태워서 계속 피어오른다. 그런데 태우는 게 없는데도 불이 꺼지지 않는 다면, 보이지 않는 무언가를 태운다는 의미일 것이다. 그건 아마,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자리 잡은 좋지 않은 것일테고 그걸 끊임없이 태우면서 타오르는 사방등은 엄청난 증오의 불길일지도 모르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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