닥터 글라스 아티초크 픽션 1
얄마르 쇠데르베리 지음, 공진호 옮김 / 아티초크 / 201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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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의사하면 병을 고치는 사람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의사가 개인적인 문제까지 해결해주는 만물박사는 아니다. 간혹 몇몇 사람들이 잘못 생각하는 점인데, 의사는 의학적 지식으로 병을 알아내서 진료를 하는 건 자기가 할 수 있고 아는 분야니까 가능한 것이다. 단순히 내 몸의 이상을 해결할 수 있다해서 개인적인 일까지 해결해줄 수 있다고 여기는 건 그 의사에게도 실례되는 일이다.

 그런데 여기, 스웨덴 스톡홀름에 있는 의사 닥터 글라스는 병이 아닌 환자의 개인적인 일에 끼어든다.

 스톡홀름에서 개인병원을 운영하는 닥터 글라스. 그의 병원에는 아픈 게 아닌 개인적 문제를 해결해달라 오는 손님이 오는 경우가 있는데, 대부분은 의사의 원칙을 들먹이며 돌려보내는 게 전부다. 그런데, 단 하나. 그레고리우스 목사의 부인이 문제를 해결해달라는 것에는 자신도 모르게 부탁을 들어주게 된다. 닥터 글라스는 그레고리우스 목사에게 부인에게 병이 있다는 둥, 하면서 멀리 떨어뜨려 놓으려 하지만 그의 생각대로 되지 않는다. 결국, 닥터 글라스는 그레고리우스 목사를 죽이는 방법까지 고민하게 되는데...

 주인공이자 화자인 닥터 글라스는 특이한 인물이었다. 의사임에도 의사를 왜 했냐고 한탄하는 건 물론, 매사의 모든 게 불평인 까칠한 사람이면서도 어떻게 보면 대단히 감상적인 사람이다. 도와달라는 사람에게 아픈 것도 아니면서 왜 의사한테 오냐고 따지면서도, 정말 어이없게 안타까운 기분이 드는데 그냥 도와줄까? 하고 생각하는 경우인데 정말 웃긴 사람이라는 생각 밖에 들지 않는다.

 그저 한 여자를 도와주기 위한 계획 과정이 나타나지만, 한편으로는 닥터 글라스라는 인물이 대단히 외로운 사람이라는 게 들어나 보였다. 주로 자신이 가지지 못한 것에 대해 한탄하고, 자기의 이상과는 다른 현실에 거리를 두는데, 이게 욕구불만으로 까칠한 생각이 표출되는 것 같아 보였다. 또, 어떻게 보면 글라스는 대단한 순정파이기도 한다. 욕구를 위한 사랑이 아닌 그저 감정만으로의 사랑만 추구하고, 욕구에 대한 이미지가 다가오면 거리를 두는 걸보면 오히려 그레고리우스 목사와 위치가 바뀐 것 같아 보일 정도였다.

 작중 나타나는 20세기 초 유럽의 종교와 의학에 대한 이미지를 보면 주요인물 구도에서 닥터 글라스와 그레고리우스 목사가 대립관계인 것과 비슷한데, 아마 작가가 당시의 시대적 이미지를 자연스럽게 나타냄과 동시에 비판하려한 의도로 보였다. 그것도 단순히 구시대적인 사고가 현시대에 맞지 않다, 신시대적인 사고가 오히려 전통을 무시한다는 둥, 하는 고리타분한 문제와는 다른 것이었다. 과학이 발달함으로서 종교의 입지가 작아진 것에 대한 묘사였는데, 과거 유럽이 종교적 세계관을 가지고 있던걸 생각하면 의미심장한 부분이었다. 대체로 자기가 알고 있던 세계가 더 넓다는 것에 대한 초라함이라고 표현된다. 이것은 과거에는 어디든 의지할 곳이 있었지만, 모든 것의 진실이 밝혀진 현재에는 의지할 곳을 찾아 볼 수 없다는 뜻으로 보였다.

 닥터 글라스는 질병이 아닌 개인적 문제까지 해결에 나섰다. 하지만 그의 외로움은 어떤 의사가 해결해 줄지 알 수 없으니 안타까울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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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의 - 죽은 자의 일기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29
정해연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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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바야흐로 헬조선 시대. 잘 사는 사람은 더 잘 살고, 못 사는 사람은 더 못 사는 파국. 거기에 서로가 정의라며 떠드는 형세에 누가 정의고 누가 사기꾼인지도 구분할 수 없을 정도다.

이러한 배경에서 과연 정의가 있을 수 있는 것인가. 정해연 작가의 악의는 이러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나타낸 것 같아서 소름이 돋을 정도였다.

 영인시의 주상복합건물에서 투신사건이 발생한다. 투신장소는 다름아닌 시장 선거후보인 강호성의 자택이었다. 투신에 이어 집 안에서는 강호성의 노모가 살해당한채로 발견된다. 경찰은 투신한 강호성의 부인이 저지른 범죄로 넘어가려 하지만 서동현 팀장은 강호성에게 의심의 눈길을 돌리는데...

 보통 추리소설에서 범죄자와 수사관이 쫓고 쫓는 구도가 나오는 건 당연하다. 그런데, 이 작품에서는 긴박감이 넘치지만 전혀 시원스럽지가 않다. 오히려 답답한 상황이 더 답답해지고 마는 첩첩산중이다. 수사관이 무능하면 욕이라도 하겠지만, 서동현 형사는 그런 이미지와 완전 거리가 멀다. 오히려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현실적으로 멋진 형사의 이미지 그 자체다. 그럼에도 상황이 답답한데 도대체 누구한테 따져야할까.

 탐정이나 형사가 실수를 하거나, 환경적인 요소 때문에 수사에 난항을 겪는 건 다른 작품에서도 꽤 있었다. 하지만 악의는 정말 지나치다. 유능한 캐릭터가 아무 것도 못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는 가? 결국에는 이긴다는 느낌을 전혀 주지 않기 때문에 제발 좀 이겨라라고 바랄 정도다. 그렇기 때문에 이런 게 바로 현실에서의 사건과 추리라 느꼈다. 아무리 괴짜스럽고 유능한 인물이라도 현실 환경이라면 여러모로 제약을 받는 게 당연하다.

 이렇게 답답함에도 불구하고 이 소설이 정말 대단하다 느끼는 건, 사람이 얼마나 위선적인 괴물이 될 수가 있고 이런 일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현실의 문제점을 잘 나타냈기 때문이다. 거기에 곳곳에 뿌려진 예상치 못한 복선까지 연결되면서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도 상당했다.

 서동현 형사가 난항을 겪는 이런 사건을 다른 탐정이나 형사가 맡는다면 단번에 해결할까? 나는 그 어떤 천재적인 인물이나 하드보일드한 인물이 맡아도 결국에는 공권력으로 전부 밟아 버릴 것이라 생각한다. 그러니 이게 바로 헬(hell)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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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0
도진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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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뫼비우스_도진기

 

 서울행 고속열차 안에서 민경은 마약을 가진 누추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자신을 판사라 소개하면서 자신이 겪은 시간여행에 대해 늘어 놓는데... 

 작가가 판사인 만큼, 법조인으로서의 경험담이 반영되어 보이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도 추문에 휩싸이고, 심지어는 그 일에 직접 대응할 수도 없는 처지라 법조인이라는 위치가 정말 힘들 게 보였다.
 누구나 다 생각할 법한 시간여행과 차이가 많아서 놀라웠다. 일종의 시간여행이라는 것의 편견을 깼다고 하는 게 더 좋을듯 하다. 시간여행하면 과거가 바뀌는 타임패러독스니 뭐니 여러 가설이 나오는데, 도진기 작가의 시간여행에서 나오는 문제를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본다.

 
 네일리스트_이경민

 오피스텔에서 네일아트 영업을 하는 나. 어느 날, 704호에 살던 매춘부 여자가 살해당한 일이 일어나 경찰이 찾아오는 등 소란스러워진다. 그러던 중, 살해된 여자와 친했다던 손님이 찾아오는데... 
  한 마디로 짧고 굵은 내용이었다. 얼핏보면 별 토대 없이 빨리 끝난 스릴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큰 장식 없이 핵심만 늘어놓고 깔끔하게 끝내서 더 느낌있게 완성되었다고 본다. 군거더기를 더 넣었다면 쓸 때 없이 질질 끌다가 끝날 뻔 한 걸, 제목과 어울리게 네일아트에 관한 비중과 본질인 스릴러를 적절하게 배치해서 나온 결과라 생각한다.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잔혹동화_송시우

  한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실종된다. 아이의 엄마는 높은 집에사는 여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수색하지 않은 곳이 젓갈 파는 노모의 아들이 있는 방 밖에 없다며 소란을 피운다. 이윽고 마을사람들 역시 아들을 의심하고 방문을 열기로 하는데...
 제목 그대로 구연동화 투로 서술되어 있어서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가벼운 말투 속에 숨은, 제목 그대로 잔혹한 진실을 강하게 어필해서 정말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얼마나 치졸하고, 위선적인지 너무나 잘 나타나 있었다. 얼핏보면 사건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보이는 전개이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만만한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밖에 안 됐다

 사건 해결과 책임 떠넘기기가 얼마나 비슷하면서 다른지 잘 알 수 있었다. 범인을 잡는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 다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범인이 물증으로 잡힌 것이라면 몰라도, 그저 심증으로만 몰아 붙여서 범인이라 한다면 그게 과연 사건 해결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책임 떠넘기기 인가. 또, 설사 진짜 범인을 잡는다 하더라도 그 범인에게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까지 따질 수 있을까?

 아마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며 사건의 본질을 깨닫지 않는 이상, 잃어버린 아이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_정해연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 강 씨. 오물테러, 주민의 말도 안 되는 요구, 거기에 우울증 걸린 여자의 투정까지. 하루하루가 이렇게 요란스러운 와중에 투신사건까지 벌어지는데...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는 전개가 돋보였다. 아파트가 배경인데다 주인공이 경비쪽 인물이라 현대, 특히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많이 나와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부분은 다소 현실적인 사건이지만, 거기에 걸맞는 추리가 더해져 리얼일상?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었다고 생각한다. 작중에 언급되는 사건이 있는 만큼 후에 다른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까지 해 본다.
 

 해무_전건우

 

 오래전 방문했던 산골 오지의 마을 해무. 이름 그대로 사시사철 해무에 둘러싸여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그곳에서 오래전 함께 동거한 순자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다.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해무 마을로 향해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오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수 없이 많이 보았다. 하지만 마을 자체의 숨겨진 비밀이 공포로 다가오는 구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을 자체의 기묘함도 있지만 순전히 주인공의 개인적인 심리에서 오는 압박감이 더 강하다던가, 민간신앙적 색깔이 짙다는 점이다. 거기에 주인공이 어쩌다 마을로 오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간다는 점에서도, 마을이 공포의 본질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 도사린 공포가 본질로 보인다.

 해무 마을에서는 안개에 휘말리면 영원히 길을 잃는다고 했다. 하지만 안개에 휘말리는 것과 직접 들어가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본다. 휘말리는 건 말 그대로 내 잘못이 아니지만, 직접 들어가는 건 본인의 선택이라 자신의 잘못인 것이다.


 라면 먹고 갈래요? _신원섭

 집에서 일을 하는 연정은 옆집의 게임만 하며 사는 남자 때문에 신경 쓰인다. 한편, 그 게임광 남자를 노리는 두 명의 청부업자가 있는데...
 평범한 일상과 그 뒤에 숨은 세계의 이원 중계를 보여주는 구성인데,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두 세계가 완전 따로 놀고 있고, 접점이라고는 그냥 집이 가깝다는 것 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 뒤에는 이런 스릴 넘치는 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것 밖에 없다는 느낌이다.
 스릴 넘치는 부분도 영 별로였다. 쫓고 쫓기는 긴박감 같은 건 없고 그냥 싸움질 한 번, 과거회상 한 번, 다시 싸움질 하고 끝이다. 평범한 일상을 통과하며 아슬아슬하게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나을 법한데, 이것도 아예 직접적인 접점없이 완전히 분리시켜 놓아서 총체적으로 두 이야기가 따로 노는 지경이 됐다고 본다. 차라리 연애면 연애, 스릴러면 스릴러처럼 하나만 파고 썼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죽음의 신부_박하익

 수환은 접촉사고로 인해 검진을 받던 중, 암을 진단받고 거기에 말기라는 판정까지 나와 절망에 빠진다. 그는 이 모든 일이 결혼식 당일 종적을 감췄던 하정에게 있다면서 괴로워하며 친구 진태에게 하소연한다. 그러자 진태는 오래 전 동창이 목격했다던 하정의 대한 얘기를 꺼내는데...

  큰 범죄나 사건 없이 그저 한 사람에 대한 걸 파해치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 치고는 흥미진진했다. 사실 특별한 것 없이 내 주위의 아는 사람에게서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 것도 스릴넘치는 일일 것이다.

 제목을 보면 섬뜩한 내용으로 보이지만, 읽다보면 제목의 죽음은 그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공포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음하면 다들 삶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삶이 계속되면서 죽는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나는 계속 살아있지만 내가 아는 세계는 계속 죽는 것이다. 이런 죽음이라면 비록 실질적인 죽음에서는 멀어질 수 있겠지만, 기억의 죽음은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죽음은 영원한 공포라고 본다.

 이렇게 스릴과 감동이 함께 뭍어나는 내용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밤은 온다_김주동

 

 면사무소에서 귀농 관련 민원을 받는 혜정은 전기울타리 설치 건으로 방문한 주름진 한 민원인과 대면한다. 민원인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지만, 혜정은 그에게서 꺼림직함을 느낀다. 이후, 혜정은 뒤를 쫓아다니는 검은 그림자를 느끼는데...
 농촌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치고는 약간 모자란 부분이 보였다. 아니, 단점으로 치면 그렇고 장점으로 치자면 너무나 직설적인 스릴러라 할 수도 있겠다. 배배 꼬지 않고 숨김 없이 바로 진행하는 구성은 막힘이 없었지만, 너무 뻔히 예상 할 수 있던 부분이 다소 있어서 김이 빠졌다. 영화나 소설은 스포일러가 치명적인데, 아예 대놓고 스토리를 너무 예상하기 쉽게 해놓으면 긴박감 같은 부분이 없어지지 않나 싶다.

 거기에 시점이 정리되지 않고 서술되어 있어서 읽기에 정신이 없었다. 한 인물의 시점이 쭉 나오다가 중간에 다른 인물의 시점이 나오고, 또 다른 시점이 나오는 게 1인칭스러우면서 분산되어 있는 3인칭 같다 하고 싶다. 그나마 문단을 나눠서 했다면 모를까, 후반에 가서는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만큼의 긴 문단 안에서 시점이 바뀌는 경향까지 있어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보기 힘들었다.

 
 

 검은 학 날아오르다_조동신

 

 한산도 대첩이 일어난지 1년. 이순신 휘하의 첩보병 만호눈 군관 정평구로 부터 전라도 지방의 의병대장이 왜군에게 생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정평구는 관아에 잡혀있는 의병대장 구출작전을 설명하며 기발한 발명품을 보여주는데...

 임진왜란하면 여기저기서 많이 쓰인 소재긴 하지만, 첩보전과 인질구출 같은 부분은 본 적이 없어서 참신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그 당시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차(비거)와 실존인물인 정평구까지 등장시켜 만든 역사스릴러라 정말 흥미진진했다.

  비록 임진왜란을 주배경으로 해 전쟁이 주요 내용이지 않나 싶지만, 주요핵심은 아마 비차로 보인다. 실제 기록에서도 임진왜란 중에 비차가 있었다, 어떻게 생겼다, 그리고 정평구가 고안했다 말고는 아무런 기록도, 설계도도 없는 실정이다. 작가는 이 사료를 보고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아마 이랬을 것이다 하면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단순히 역사적 배경으로 한 소설이 아닌 그 시대적 상황에서 인물들이 할 법한 심리상태까지 나타낸 것도 포인트였다.
 
 

 충분히 예뻐_장유남

 오래 전 알던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대가로 하게 된 범죄. 조건은 납치한 여자와 모텔에서 3일 동안 있는 것. 그런데 납치한 여자를 향한 의문의 쪽지가 자꾸만 오는데...

 허술한 납치범과 대범한 피해자 같은 뻔한듯한 구성으로 보였는데, 의외의 반전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를 보여줬다. 납치범과 피해자의 위치가 바뀌는 주객전도 상황은 코미디나 범죄물에서도 나오는 상황인데, 거기에 기타 다른 변수까지 동원되서 이게 납치극인지 아니면 납치극을 빙자한 제 2의 범죄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돋보이는데, 단순히 외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하며 진부하게 하지 않고 스릴러 형식으로 나타내니 더 몰입이 되는 것 같았다.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섬뜩하게 나타낸 것도 주목할 점이다. 그저 외모 때문에 싸움박질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외모가 뛰어나다는 것에만 몰두하면 사람이 얼마나 괴물이 되고, 아무리 겉모습이 미인이라 할지라도 당장 도망치고 싶어질 정도로 무서워지는지 그건 직접 느껴봐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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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관 - 밀실 살인이 너무 많다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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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추리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뭘까? 명탐정 코난의 영향으로 다들 어느 정도 들어는 봤을 것이다. 알리바이, 트릭, 밀실. 그 중 밀실은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부터 내려온 단골 소재다. 그런 밀실이 하나도 아닌 7개.
 진지한 느낌을 기대하며 첫 단편을 보고 밀실 살인소설이라면서 왜 이래? 라고 성질 급하게 판단하신 분들은 뒤에 작가와 역자 후기를 미리 보셔야 할 겁니다. 저도 진작에 안 봤으면 오리하라 이치를 오해할 뻔했습니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초기 소설이라는 점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냥 쉽게 말해 머리 아프게 고민말고 밀실로 즐기자는 내용이니, 가볍게 보는 편이 좋습니다.
 추리하지말고, 즐기세요~

 

 밀실의 왕자

 

시라오카에서 매년 열리는 스모 대회에서 연승을 이어가던 서쪽 상점회의 쓰후노우미를 꺾고 동쪽의 도키토야마가 승리한 날, 밀실의 체육관에서 기절한 4명의 상인들 틈 사이에 도키토야마가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밀실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구로호시 경감은 난해한 사건에 흥미를 보임과 동시에 도저히 풀 수 없는 밀실의 장벽에 한계를 느끼는데...
 밀실 덕후인 구로호시 경감의 좌충우돌 서장을 장식하는 만큼, 가볍게 볼 만한 밀실 사건이다. 얼핏보면 정말 답이 없는 밀실인데, 알고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는 구성을 보여준다. 

 낚시줄과 기타 등등으로 문 밖에서 문을 잠그는 기행이라던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 나올 법한 비밀장치 같은 추리소설 적인 복잡한 장치 없이도 간단히 밀실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얼핏보면 구로호시 경감을 작가가 대놓고 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들

 한 여자에게서 큰아버지의 변고를 신고 받고 출동한 구로호시 경감. 도착한 저택은 대부호 가자미 아키라의 저택으로 신고한 여자는 아키라의 조카였다. 아키라의 방이 잠겨 있는 걸 확인한 구로호시 경감은 또 다시 밀실병이 도지면서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아키라의 방에는 두 구의 옷을 걸친 백골 사채와 둔기, 독극물 등 흉기로 추정되는 온갖 도구들이 발견된다. 더욱 큰 문제는 방 열쇠가 백골 시체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인데...
 첫 밀실부터 너무 가벼워서 기대도 안 했는데, 의외로 진기명기한 밀실이 나와서 놀라웠다. 무엇보다 조금은 현실적인 구석이 있는 밀실이라 다른 밀실들에 비해서 다소 많은 기묘함을 느꼈다. 문제는 밀실은 사족을 못 쓰면서 정작 해결을 못하는 구로호시 경감이었으니...

 불량한 밀실

 시라오카에 있는 두 야쿠자 조직, 야마다 회와 산와 회의 대립으로 경찰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돈다. 급기야 야마다 회에서 로켓포를 입수 했다는 첩보가 들리자 산와 회는 핵 셸터까지 구입해 회장 보호에 나선다. 마침내 로켓포가 산와 회 저택을 휩쓸지만 핵 셸터에는 그 어떤 상처를 내진 못한다. 그러나 산와 회 회장은 셸터 안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는데...

 밀실 외에도 뭔가 일본스러운 예능요소들이 많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예상 외로 엄청난 화력을 보여주는 야쿠자라던가, 일본식 저주의식, 거기에 밀실의 핵심이 되는 핵 셸터까지... 이 쯤하면 더 할 말은 없다.

 거창한 장식이 많지만, 역시나 별거 아닌 것으로 밀실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면 결과적으로 불량한 밀실은 밀실 사건이 아니라 거의 밀실을 가장한 생쇼였지만...
 
 그리운 밀실

 시라오카 출신의 베스트셀러 추리작가 쓰지이 야스오. 그는 2년 전, 별장겸 작업실인 통나무집에서 3명의 편집자의 눈을 피해 밀실인 서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2년 뒤, 연재하던 밀실의 부호경감의 해결편 발표를 앞두고 문제의 서재에서 쓰지이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상당히 수위 높은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동기가 좀 어이없지만 나름 공감이 가서 참으로 요상한 밀실이었다. 아마 여기 범인 뿐 아니라 추리독자들이라면 전부 공감할 만한 동기라 해도 될 법 하다.

 여담이지만, 언제 들었던 추리소설에서 가장 어이없는 결말이라는 얘기가 여기서 나온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와키혼진 살인사건

 교직 은퇴 후, 시라오카로 이사 온 오쿠야마 교스케. 그는 얼마 전, 와카혼진에서 발생한 밀실사건에 영감을 받아 <와카혼진 살인사건> 집필에 나선다. 그 사건은 다름 아닌 와카혼진의 잇폰야나기 가에서 일어난 밀실살인인데...
 아무래도 패러디 작품의 명성 때문인지(일단 제목부터 보면 알만한 분들은 다 아니까..)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사건이 나름 진지한 느낌이 강했다. 작품 속 작품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앞에서부터 내용 구조가 탄탄한 느낌이어서 약간은 유머스러운 면이 줄어들어 보였다.
 나름 반전의 반전이 묘미인 작품이었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부터가 어이없을 정도이니;;

 불투명한 밀실

 시라오카 주민센터 공사 건으로 맞붙은 호소다 건설과 기요카와 건설. 그런데 기요카와 건설이 물밑공작으로 공사를 따내자, 두 건설사 사이의 대립은 깊어진다. 그러던 중, 기요카와 건설 사장이 회사이자, 자택의 사무실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그것도 밀실에서...
 의외로 간단하게 보이나 은근히 복잡하게 보이는 밀실이라 작가가 또 어떤 기발하면서도 간단한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나중에 쓰여진 것이라 그런지 의외로 구로호시 경감의 헛다리도 나름 논리적으로 나온다. 그 동안 그냥 심증으로만 범인 취급하거나, 부실한 추리로 일관하던 것과 달리 이것저것 가능성을 따지는 모습이 나와서 이 아저씨가 그 아저씨 맞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천외소실 사건

 시라오카 산 케이블카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정황상 자살한게 분명하지만, 흉기는 발견되지 않고 케이블카 내부를 보면 분명 누군가 더 있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어 갈피를 못 잡는 상황에 이른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살해된 여자가 한 남자와 케이블카에 탄 걸 목격한 사람까지 나타나는데...
 그냥 방도 아닌 케이블카라는 공간을 이용한 밀실이라는 점이 눈에 뛸 정도다. 무엇보다 케이블카에서 나타날 수 있을 맹점을 이용한 트릭 아닌 트릭 또한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들 만큼이나 꽤나 큰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마지막 반전까지.
 여담으로 이 작품이 일곱 개의 관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단편이라 그런지, 이전 단편과 다른 느낌이 많았다. 여기서는 구로호시 경감이 거의 페이크 주인공 취급이라 초기에는 그를 주연으로 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뭐, 결론적으로는 7개의 밀실에서 허탕치는 희대의 개그 캐릭터가 됐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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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소도중
미야기 아야코 지음, 민경욱 옮김 / arte(아르테) / 2015년 10월
평점 :
절판


 

 

 일본의 요시와라는 에도시대의 매춘업소인 유곽이 있던 곳으로 알고 있다. 현대에는 매춘이라 하면 이미지가 좋지 않은데 그 옛날 에도시대의 유녀는 어땠을지 짐작이 가질 않는다. 사진으로 보면 온갖 화려한 이미지를 보이는 경우가 많은데, 그 화려함 너머의 진짜 모습은 어땠을까?

 화소도중은 요시와라 유곽의 유녀들을 주인공으로 한 사랑이야기다. 어쩌면 그냥 유녀를 주인공으로 한 야한 로맨스 소설로 보이기도 하겠지만, 화려함 속에 숨어있던 사람다운 삶의 소망과 진정한 애정을 보여주면서 그냥 문학상을 받은 책이 아니라는 걸 제대로 보여준다.

 연작 형식으로 진행되어 마지막에 가면 작품 곳곳에서 언급됐던 인물 대부분이 한 번씩 주연을 한 것을 볼 수 있다. 이런 걸 보면 단 한 명의 일탈이나 소망이 아니라 대부분의 유녀들이 염원하고 고민하던 문제라 볼 수 있을 지도 모른다.

 금기의 사랑, 사랑의 배신, 잃어버렸던 가족애, 친근함이라는 이름의 애정 등. 여러 형태의 사랑과 애환을 보면 화려한 이미지가 물색하게 유녀는 그저 비련의 여주인공일 뿐이었다. 때로는 완전한 비극, 또 때로는 쓸쓸함. 무엇보다 가장 힘든 건 좋아하는 남자를 둘 수도 없고, 있어도 함께 할 수 없다는 현실일 것이다.

 이런 사연들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유곽의 여인들은 물론, 기타 관계자들(몇몇 손님과 머리손질 해주는 장인)까지 하나의 가족처럼 서로를 아껴준다는 것이다. 아마도 서로의 처지를 가장 잘 아는 위치인 만큼 유대감이 잘 형성된 게 아닌 가 한다.

 제목 만큼 작중묘사나 인물들은 여러의미로 화려하다. 하지만 일생일대의 가장 화려한 순간을 경험하지 못하고, 의미없이 지속되는 화려한 생활에 모든 걸 놓아버린 듯한 모습에 박제된 것 같다는 표현을 쓰고 싶다. 변치 않은 화려한 모습이 계속 유지되고 있지만, 의미와는 반대로 본질적인 화려함은 이미 죽은 상태이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화려하면 할 수록 더욱 안타깝게 보인다는 아이러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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