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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곱 개의 관 - 밀실 살인이 너무 많다
오리하라 이치 지음, 김은모 옮김 / 한즈미디어(한스미디어) / 2015년 11월
평점 :
절판
추리하면 생각나는 키워드는 뭘까? 명탐정 코난의 영향으로 다들 어느 정도 들어는 봤을 것이다. 알리바이, 트릭, 밀실. 그 중 밀실은 포의 모르그 가의 살인에서부터 내려온 단골 소재다. 그런 밀실이 하나도 아닌 7개.
진지한 느낌을 기대하며 첫 단편을 보고 밀실 살인소설이라면서 왜 이래? 라고 성질 급하게 판단하신 분들은 뒤에 작가와 역자 후기를 미리 보셔야 할 겁니다. 저도 진작에 안 봤으면 오리하라 이치를 오해할 뻔했습니다... 작가의 데뷔작이자, 초기 소설이라는 점도 이해하셔야 합니다.
그냥 쉽게 말해 머리 아프게 고민말고 밀실로 즐기자는 내용이니, 가볍게 보는 편이 좋습니다.
추리하지말고, 즐기세요~
밀실의 왕자
시라오카에서 매년 열리는 스모 대회에서 연승을 이어가던 서쪽 상점회의
쓰후노우미를 꺾고 동쪽의 도키토야마가 승리한 날, 밀실의 체육관에서 기절한 4명의 상인들 틈 사이에 도키토야마가 사망한 채로 발견된다.
밀실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구로호시 경감은 난해한 사건에 흥미를 보임과 동시에 도저히 풀 수 없는 밀실의 장벽에 한계를 느끼는데...
밀실
덕후인 구로호시 경감의 좌충우돌 서장을 장식하는 만큼, 가볍게 볼 만한 밀실 사건이다. 얼핏보면 정말 답이 없는 밀실인데, 알고보면
생각보다 별거 아니었다는 구성을 보여준다.
낚시줄과 기타 등등으로 문 밖에서 문을 잠그는 기행이라던가, 아야츠지
유키토의 관 시리즈에 나올 법한 비밀장치 같은 추리소설 적인 복잡한 장치 없이도 간단히 밀실을 만들 수 있다는 점이 얼핏보면 구로호시 경감을
작가가 대놓고 까고 있는 듯한 느낌이다.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들
한 여자에게서 큰아버지의 변고를 신고 받고
출동한 구로호시 경감. 도착한 저택은 대부호 가자미 아키라의 저택으로 신고한 여자는 아키라의 조카였다. 아키라의 방이 잠겨 있는 걸 확인한
구로호시 경감은 또 다시 밀실병이 도지면서 문을 부수고 들어간다. 아키라의 방에는 두 구의 옷을 걸친 백골 사채와 둔기, 독극물 등 흉기로
추정되는 온갖 도구들이 발견된다. 더욱 큰 문제는 방 열쇠가 백골 시체들 사이에 있었다는 것인데...
첫 밀실부터 너무 가벼워서 기대도
안 했는데, 의외로 진기명기한 밀실이 나와서 놀라웠다. 무엇보다 조금은 현실적인 구석이 있는 밀실이라 다른 밀실들에 비해서 다소 많은 기묘함을
느꼈다. 문제는 밀실은 사족을 못 쓰면서 정작 해결을 못하는 구로호시 경감이었으니...
불량한 밀실
시라오카에 있는
두 야쿠자 조직, 야마다 회와 산와 회의 대립으로 경찰들 사이에서 긴장감이 돈다. 급기야 야마다 회에서 로켓포를 입수 했다는 첩보가 들리자 산와
회는 핵 셸터까지 구입해 회장 보호에 나선다. 마침내 로켓포가 산와 회 저택을 휩쓸지만 핵 셸터에는 그 어떤 상처를 내진 못한다. 그러나 산와
회 회장은 셸터 안에서 사망한 채로 발견되는데...
밀실 외에도 뭔가 일본스러운 예능요소들이 많이 나오는
내용이었다. 예상 외로 엄청난 화력을 보여주는 야쿠자라던가, 일본식 저주의식, 거기에 밀실의 핵심이 되는 핵 셸터까지... 이 쯤하면 더 할
말은 없다.
거창한 장식이 많지만, 역시나 별거 아닌 것으로 밀실이 만들어 질 수
있다는 걸 보여준다. 솔직히 말하면 결과적으로 불량한 밀실은 밀실 사건이 아니라 거의 밀실을 가장한 생쇼였지만...
그리운
밀실
시라오카 출신의 베스트셀러 추리작가 쓰지이 야스오. 그는 2년 전, 별장겸 작업실인 통나무집에서 3명의 편집자의 눈을 피해
밀실인 서재에서 홀연히 사라졌다. 그 후 2년 뒤, 연재하던 밀실의 부호경감의 해결편 발표를 앞두고 문제의 서재에서 쓰지이의 시체가
발견되는데...
다른 작품들에 비해서 상당히 수위 높은 살인사건이 발생하는 내용이다. 그런데 동기가 좀 어이없지만 나름 공감이 가서
참으로 요상한 밀실이었다. 아마 여기 범인 뿐 아니라 추리독자들이라면 전부 공감할 만한 동기라 해도 될 법 하다.
여담이지만, 언제 들었던 추리소설에서 가장 어이없는 결말이라는 얘기가
여기서 나온 게 아닌 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째 한 글자도 틀리지 않고 정확하게 맞아 떨어졌기 때문이다.
와키혼진 살인사건
교직 은퇴 후, 시라오카로 이사 온
오쿠야마 교스케. 그는 얼마 전, 와카혼진에서 발생한 밀실사건에 영감을 받아 <와카혼진 살인사건> 집필에 나선다. 그 사건은 다름
아닌 와카혼진의 잇폰야나기 가에서 일어난 밀실살인인데...
아무래도 패러디 작품의 명성 때문인지(일단 제목부터 보면 알만한 분들은 다
아니까..) 다른 작품들에 비해 사건이 나름 진지한 느낌이 강했다. 작품 속 작품이라는 설정 때문인지, 앞에서부터 내용 구조가 탄탄한 느낌이어서
약간은 유머스러운 면이 줄어들어 보였다.
나름 반전의 반전이 묘미인 작품이었다.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부터가 어이없을
정도이니;;
불투명한 밀실
시라오카 주민센터 공사 건으로 맞붙은 호소다 건설과 기요카와 건설. 그런데 기요카와
건설이 물밑공작으로 공사를 따내자, 두 건설사 사이의 대립은 깊어진다. 그러던 중, 기요카와 건설 사장이 회사이자, 자택의 사무실에서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그것도 밀실에서...
의외로 간단하게 보이나 은근히 복잡하게 보이는 밀실이라 작가가 또 어떤 기발하면서도 간단한 생각을
했는지 궁금해질 정도였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다른 작품들에 비해 나중에 쓰여진 것이라 그런지
의외로 구로호시 경감의 헛다리도 나름 논리적으로 나온다. 그 동안 그냥 심증으로만 범인 취급하거나, 부실한 추리로 일관하던 것과 달리 이것저것
가능성을 따지는 모습이 나와서 이 아저씨가 그 아저씨 맞나 하는 생각이 들정도였다.
천외소실 사건
시라오카 산
케이블카에서 한 여성이 살해된 채로 발견된다. 정황상 자살한게 분명하지만, 흉기는 발견되지 않고 케이블카 내부를 보면 분명 누군가 더 있었다는
흔적이 남아 있어 갈피를 못 잡는 상황에 이른다. 거기에 결정적으로 살해된 여자가 한 남자와 케이블카에 탄 걸 목격한 사람까지
나타나는데...
그냥 방도 아닌 케이블카라는 공간을 이용한 밀실이라는 점이 눈에 뛸 정도다. 무엇보다 케이블카에서 나타날 수 있을 맹점을
이용한 트릭 아닌 트릭 또한 존 딕슨 카를 읽은 사나이들 만큼이나 꽤나 큰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마지막 반전까지.
여담으로 이 작품이
일곱 개의 관 중에서 가장 먼저 쓰인 단편이라 그런지, 이전 단편과 다른 느낌이 많았다. 여기서는 구로호시 경감이 거의 페이크 주인공 취급이라
초기에는 그를 주연으로 할 생각이 없었던 것으로 보였다. 뭐, 결론적으로는 7개의 밀실에서 허탕치는 희대의 개그 캐릭터가 됐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