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추리 스릴러 단편선 5 밀리언셀러 클럽 - 한국편 30
도진기 외 지음 / 황금가지 / 201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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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의 뫼비우스_도진기

 

 서울행 고속열차 안에서 민경은 마약을 가진 누추한 남자를 만난다. 그는 자신을 판사라 소개하면서 자신이 겪은 시간여행에 대해 늘어 놓는데... 

 작가가 판사인 만큼, 법조인으로서의 경험담이 반영되어 보이는 내용이었다. 자신의 잘못이 아닌 일에도 추문에 휩싸이고, 심지어는 그 일에 직접 대응할 수도 없는 처지라 법조인이라는 위치가 정말 힘들 게 보였다.
 누구나 다 생각할 법한 시간여행과 차이가 많아서 놀라웠다. 일종의 시간여행이라는 것의 편견을 깼다고 하는 게 더 좋을듯 하다. 시간여행하면 과거가 바뀌는 타임패러독스니 뭐니 여러 가설이 나오는데, 도진기 작가의 시간여행에서 나오는 문제를 보면 아무 것도 아니라고 본다.

 
 네일리스트_이경민

 오피스텔에서 네일아트 영업을 하는 나. 어느 날, 704호에 살던 매춘부 여자가 살해당한 일이 일어나 경찰이 찾아오는 등 소란스러워진다. 그러던 중, 살해된 여자와 친했다던 손님이 찾아오는데... 
  한 마디로 짧고 굵은 내용이었다. 얼핏보면 별 토대 없이 빨리 끝난 스릴러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큰 장식 없이 핵심만 늘어놓고 깔끔하게 끝내서 더 느낌있게 완성되었다고 본다. 군거더기를 더 넣었다면 쓸 때 없이 질질 끌다가 끝날 뻔 한 걸, 제목과 어울리게 네일아트에 관한 비중과 본질인 스릴러를 적절하게 배치해서 나온 결과라 생각한다.
 
 잃어버린 아이에 관한 잔혹동화_송시우

  한 마을에서 여자아이가 실종된다. 아이의 엄마는 높은 집에사는 여자의 증언을 바탕으로 마을에서 유일하게 수색하지 않은 곳이 젓갈 파는 노모의 아들이 있는 방 밖에 없다며 소란을 피운다. 이윽고 마을사람들 역시 아들을 의심하고 방문을 열기로 하는데...
 제목 그대로 구연동화 투로 서술되어 있어서 상당히 독특한 느낌을 받았다. 거기에 가벼운 말투 속에 숨은, 제목 그대로 잔혹한 진실을 강하게 어필해서 정말 멋진 작품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책임을 떠넘기는 상황이 얼마나 치졸하고, 위선적인지 너무나 잘 나타나 있었다. 얼핏보면 사건의 해결을 위한 노력을 보이는 전개이지만, 결론적으로 보면 만만한 상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것 밖에 안 됐다

 사건 해결과 책임 떠넘기기가 얼마나 비슷하면서 다른지 잘 알 수 있었다. 범인을 잡는 것이 사건의 본질이라 다들 생각할 것이다. 그런데 그 범인이 물증으로 잡힌 것이라면 몰라도, 그저 심증으로만 몰아 붙여서 범인이라 한다면 그게 과연 사건 해결을 위한 것인가, 아니면 책임 떠넘기기 인가. 또, 설사 진짜 범인을 잡는다 하더라도 그 범인에게 사건이 일어나게 된 원인까지 따질 수 있을까?

 아마 모두가 자신의 책임을 인정하며 사건의 본질을 깨닫지 않는 이상, 잃어버린 아이는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것 같다.


 
 누군가_정해연

  경기도의 한 아파트에 근무하는 경비원 강 씨. 오물테러, 주민의 말도 안 되는 요구, 거기에 우울증 걸린 여자의 투정까지. 하루하루가 이렇게 요란스러운 와중에 투신사건까지 벌어지는데...
 분위기를 너무 무겁게 하지 않으면서, 사회적 문제를 지적하는 전개가 돋보였다. 아파트가 배경인데다 주인공이 경비쪽 인물이라 현대, 특히 우리나라 아파트에서 일어날 법한 일들이 많이 나와서 공감이 가는 부분이 많았다.

 본격적인 사건이 일어나는 부분은 다소 현실적인 사건이지만, 거기에 걸맞는 추리가 더해져 리얼일상? 추리소설 같은 느낌이었다고 생각한다. 작중에 언급되는 사건이 있는 만큼 후에 다른 에피소드가 나오지 않을까 예상까지 해 본다.
 

 해무_전건우

 

 오래전 방문했던 산골 오지의 마을 해무. 이름 그대로 사시사철 해무에 둘러싸여 기묘한 분위기를 형성하는 그곳에서 오래전 함께 동거한 순자가 죽었다는 연락이 온다. 나는 무엇에 이끌리듯 해무 마을로 향해 장례식에 참석하는데...
 오지 마을을 배경으로 한 소설은 수 없이 많이 보았다. 하지만 마을 자체의 숨겨진 비밀이 공포로 다가오는 구도와는 다른 느낌이었다. 마을 자체의 기묘함도 있지만 순전히 주인공의 개인적인 심리에서 오는 압박감이 더 강하다던가, 민간신앙적 색깔이 짙다는 점이다. 거기에 주인공이 어쩌다 마을로 오는 게 아니라 직접 찾아간다는 점에서도, 마을이 공포의 본질이 아니라 주인공의 내면에 도사린 공포가 본질로 보인다.

 해무 마을에서는 안개에 휘말리면 영원히 길을 잃는다고 했다. 하지만 안개에 휘말리는 것과 직접 들어가는 것은 차이가 있다고 본다. 휘말리는 건 말 그대로 내 잘못이 아니지만, 직접 들어가는 건 본인의 선택이라 자신의 잘못인 것이다.


 라면 먹고 갈래요? _신원섭

 집에서 일을 하는 연정은 옆집의 게임만 하며 사는 남자 때문에 신경 쓰인다. 한편, 그 게임광 남자를 노리는 두 명의 청부업자가 있는데...
 평범한 일상과 그 뒤에 숨은 세계의 이원 중계를 보여주는 구성인데, 솔직히 별 감흥이 없었다. 두 세계가 완전 따로 놀고 있고, 접점이라고는 그냥 집이 가깝다는 것 뿐 아무런 관련이 없었다. 그저 평범한 일상 뒤에는 이런 스릴 넘치는 세계가 있다는 걸 보여주려 한 것 밖에 없다는 느낌이다.
 스릴 넘치는 부분도 영 별로였다. 쫓고 쫓기는 긴박감 같은 건 없고 그냥 싸움질 한 번, 과거회상 한 번, 다시 싸움질 하고 끝이다. 평범한 일상을 통과하며 아슬아슬하게 일이 벌어지는 상황이라면 그나마 나을 법한데, 이것도 아예 직접적인 접점없이 완전히 분리시켜 놓아서 총체적으로 두 이야기가 따로 노는 지경이 됐다고 본다. 차라리 연애면 연애, 스릴러면 스릴러처럼 하나만 파고 썼으면 더 나았을 것 같다는 생각이다.

 죽음의 신부_박하익

 수환은 접촉사고로 인해 검진을 받던 중, 암을 진단받고 거기에 말기라는 판정까지 나와 절망에 빠진다. 그는 이 모든 일이 결혼식 당일 종적을 감췄던 하정에게 있다면서 괴로워하며 친구 진태에게 하소연한다. 그러자 진태는 오래 전 동창이 목격했다던 하정의 대한 얘기를 꺼내는데...

  큰 범죄나 사건 없이 그저 한 사람에 대한 걸 파해치는 과정을 나타내는 것 치고는 흥미진진했다. 사실 특별한 것 없이 내 주위의 아는 사람에게서 숨겨진 비밀을 알게 되는 것도 스릴넘치는 일일 것이다.

 제목을 보면 섬뜩한 내용으로 보이지만, 읽다보면 제목의 죽음은 그저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느끼는 공포의 이미지일 뿐이라는 걸 알 수 있을 것이다. 죽음하면 다들 삶이 끝나는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런데, 삶이 계속되면서 죽는다고 하면 믿을 수 있을까? 나는 계속 살아있지만 내가 아는 세계는 계속 죽는 것이다. 이런 죽음이라면 비록 실질적인 죽음에서는 멀어질 수 있겠지만, 기억의 죽음은 또 다른 아픔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다고 본다. 그래서 어떤 식으로든 죽음은 영원한 공포라고 본다.

 이렇게 스릴과 감동이 함께 뭍어나는 내용을 어디서 또 볼 수 있을지 모르겠다.

 

 


 그렇게 밤은 온다_김주동

 

 면사무소에서 귀농 관련 민원을 받는 혜정은 전기울타리 설치 건으로 방문한 주름진 한 민원인과 대면한다. 민원인은 원하는 답을 듣지 못하고 돌아가지만, 혜정은 그에게서 꺼림직함을 느낀다. 이후, 혜정은 뒤를 쫓아다니는 검은 그림자를 느끼는데...
 농촌을 배경으로 한 스릴러치고는 약간 모자란 부분이 보였다. 아니, 단점으로 치면 그렇고 장점으로 치자면 너무나 직설적인 스릴러라 할 수도 있겠다. 배배 꼬지 않고 숨김 없이 바로 진행하는 구성은 막힘이 없었지만, 너무 뻔히 예상 할 수 있던 부분이 다소 있어서 김이 빠졌다. 영화나 소설은 스포일러가 치명적인데, 아예 대놓고 스토리를 너무 예상하기 쉽게 해놓으면 긴박감 같은 부분이 없어지지 않나 싶다.

 거기에 시점이 정리되지 않고 서술되어 있어서 읽기에 정신이 없었다. 한 인물의 시점이 쭉 나오다가 중간에 다른 인물의 시점이 나오고, 또 다른 시점이 나오는 게 1인칭스러우면서 분산되어 있는 3인칭 같다 하고 싶다. 그나마 문단을 나눠서 했다면 모를까, 후반에 가서는 한 페이지를 가득 채울 만큼의 긴 문단 안에서 시점이 바뀌는 경향까지 있어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보기 힘들었다.

 
 

 검은 학 날아오르다_조동신

 

 한산도 대첩이 일어난지 1년. 이순신 휘하의 첩보병 만호눈 군관 정평구로 부터 전라도 지방의 의병대장이 왜군에게 생포되었다는 소식을 접한다. 정평구는 관아에 잡혀있는 의병대장 구출작전을 설명하며 기발한 발명품을 보여주는데...

 임진왜란하면 여기저기서 많이 쓰인 소재긴 하지만, 첩보전과 인질구출 같은 부분은 본 적이 없어서 참신했다고 본다. 무엇보다 그 당시에 만들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비차(비거)와 실존인물인 정평구까지 등장시켜 만든 역사스릴러라 정말 흥미진진했다.

  비록 임진왜란을 주배경으로 해 전쟁이 주요 내용이지 않나 싶지만, 주요핵심은 아마 비차로 보인다. 실제 기록에서도 임진왜란 중에 비차가 있었다, 어떻게 생겼다, 그리고 정평구가 고안했다 말고는 아무런 기록도, 설계도도 없는 실정이다. 작가는 이 사료를 보고 알 수 없는 부분에 대해서 아마 이랬을 것이다 하면서 쓰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
 단순히 역사적 배경으로 한 소설이 아닌 그 시대적 상황에서 인물들이 할 법한 심리상태까지 나타낸 것도 포인트였다.
 
 

 충분히 예뻐_장유남

 오래 전 알던 친구에게 돈을 빌리는 대가로 하게 된 범죄. 조건은 납치한 여자와 모텔에서 3일 동안 있는 것. 그런데 납치한 여자를 향한 의문의 쪽지가 자꾸만 오는데...

 허술한 납치범과 대범한 피해자 같은 뻔한듯한 구성으로 보였는데, 의외의 반전으로 전혀 예상치 못한 전개를 보여줬다. 납치범과 피해자의 위치가 바뀌는 주객전도 상황은 코미디나 범죄물에서도 나오는 상황인데, 거기에 기타 다른 변수까지 동원되서 이게 납치극인지 아니면 납치극을 빙자한 제 2의 범죄인지 알 수 없게 만들었다.

 외모지상주의에 대한 비판이 돋보이는데, 단순히 외모에 대해 이렇다 저렇다 왈가왈부하며 진부하게 하지 않고 스릴러 형식으로 나타내니 더 몰입이 되는 것 같았다. 외모보다 마음이 중요하다는 걸 섬뜩하게 나타낸 것도 주목할 점이다. 그저 외모 때문에 싸움박질하는 수준과는 차원이 다르다. 외모가 뛰어나다는 것에만 몰두하면 사람이 얼마나 괴물이 되고, 아무리 겉모습이 미인이라 할지라도 당장 도망치고 싶어질 정도로 무서워지는지 그건 직접 느껴봐야 알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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