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 -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02 -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사 크리스티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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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말이 필요없는 추리소설의 걸작. 클로즈드 서클의 원형이나 다름없는 이 작품은 등장인물들이 하나하나 살해당할 때마다 긴장감과 공포감이 손에 땀을 쥐게 한다. 장르적으로 보면 추리소설보다는 스릴러 소설에 가깝지 않나 싶을 정도. 내가 알던 그 동요가 이렇게나 음산한 분위기를 만들어낼 수 있을 줄은 몰랐다.


 소설의 긴장감은 바로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분위기에서 비롯된다. 사실 섬에 모인 이들은 누군가에 의해 엄선된 것으로, 법의 이름으로 처벌되지 못할 죄를 지은 사람들이다. 서로의 죄를 아는 상태다 보니 이들은 처음부터 상호간의 불편함을 느끼는데, 연이은 살인사건으로 자신의 목숨이 위협에 빠지게 되자 의심은 극도의 불신으로 증폭된다. 아이러니하게도 등장인물들은 죽음으로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데 작중인물 뿐만 아니라 독자 입장에서도 도대체 누가 범인인지 의심의 화살을 수없이 돌린다. 물리적으로도, 심리적으로도 고립된 등장인물들이 서로를 범인으로 의심하며 끊임없이 경계하는 모습은 사람보다는 야생에서 생존본능만 남은 짐승에 가까워 몸서리쳐진다.


 사실 이 소설은 반전으로 유명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으로 살아남은 인물이 죽음을 맞이하는 일련의 과정이 더 인상 깊었다. 최후의 생존자만 남으면서 해소된 줄 알았던 긴장감이, 홀린 듯이 죽음으로 나아가는 인물의 모습에 언제 그랬냐는 듯이 고조된다. 그리고 ‘아무도 없는 섬’이 된 병정 섬의 모습에는 공포 어린 공허감만 남는다.


 이 작품의 제목인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단순히 소설의 결말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작중에서 서로를 의심하고 배신하면서 인간성이 사라지는 모습을 뜻하기도 한다는 생각이 든다. 결국 그 섬에 인간은 아무도 없지 않았는가. 서로에 대한 의심과 배신 사이에서 적나라하게 드러난 어두운 인간의 본성은 죄의식이란 무엇인지, 정의란 무엇인지 철학적 질문을 던지게 하고, 결국 이 질문들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대질문으로 귀결된다. 추리소설로서의 재미도 훌륭하지만, 보다 깊은 생각할 거리를 준다는 점에서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으로 꼽힐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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뾰족한 전나무의 땅 휴머니스트 세계문학 37
세라 온 주잇 지음, 임슬애 옮김 / 휴머니스트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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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뾰족한 전나무의 숲'을 읽는 내내 평화로운 감정이 내 주변을 감도는 느낌이었다. 어수선한 현실이 마음이 어지럽더라도, 이 책을 펼치면 저 멀리 메인 주 뉴잉글랜드의 평온한 해안가 마을, 더닛 랜딩으로 떠날 수 있었다. 사실 처음에는 낯선 구조에 소설의 서사를 파악하기 어려웠지만 익숙해지고 나자, 한 장 한 장 읽어내려가 아직 읽지 않은 페이지의 두께가 점점 얇아지는 것이 아쉬웠다. 왼손에 잡히는 책의 두께가 두꺼워질수록 마음은 충만해지는데, 점점 얇아지는 오른쪽 두께에 마음이 헛헛해지는 역설적인 상황이라니.


 이 책은 특이하게도 화자에 대한 정보를 알려주지 않는다. 화자의 이름이 뭔지, 몇 살인지, 어떤 사회적 배경을 지니고 있는지 전혀 나오지 않는다. 그저 여름을 맞아 더닛 랜딩에 왔으며, 나이가 지긋하고, 글을 쓴다는 점 정도만 알 수 있다. 하지만 화자에 대한 정보가 극히 제한되기 때문에 오히려 독자가 화자에게 더 쉽게 동화되어 작품 속에 몰입할 수 있다. 책을 읽다 보면 어느 새 내가 화자가 되어 더닛 랜딩에서 머물고 있는 기분이 든다.


 화자의 담담한 서술 또한 이 소설의 백미이다. 감정 표현이 두드러지지는 않지만, 시종일관 더닛 랜딩과 사람들에 대해 따뜻하고 애정어린 시선은 충분히 느낄 수 있다. 화자가 바라본 더닛 랜딩은 뾰족한 전나무가 늘어선 해안선과 절벽에 농장들이 서 있고, 아름다운 섬들이 수놓은 푸른 바다에 파도가 넘실거리는 곳이다. 풍경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마다 내 눈앞에 아름다운 그 모습이 생생하게 펼쳐진다.


 여기에 넉넉한 인심의 토드 부인을 비롯해 나이에 걸맞는 현명함과 어진 마음을 지닌 블래킷 부인, 무뚝뚝하지만 심성은 착한 윌리엄, 과거의 무용담에 빠져 있는 리틀페이지 선장, 떠난 아내를 그리워 하며 그녀와의 추억 속에 빠져 사는 일라이저, 그리고 작중에선 이미 세상을 떠났지만, 실연의 아픔에 젖어 고독한 삶을 선택한 조애나 등 다양한 인물들이 등장하는데, 그들은 서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고 넉넉한 마음으로 포용하며 살아간다. 갈수록 각박해지고 뾰족해지는 내 마음을 돌아보며 좀 더 둥글게 다듬어 봐야겠다는 의지를 다지기도 했다.


 이 소설은 화자가 더닛 랜딩을 떠나는 것으로 마무리되는데, 책을 읽는 나도 마치 긴 휴가가 끝난 것 같은 마음이었다. 평화로운 시골마을의 전형인 더닛 랜딩이 내 마음의 안식처로 자리잡은 듯하다. 윌라 캐더의 ‘루시 게이하트’에 이어서 두 번째로 읽는 미국 지방주의 소설인데, 어째서 윌라 캐더가 그토록 극찬을 했는지 알 수 있었다. 극적인 드라마는 없지만, 머리맡에서 듣는 가만가만 속삭이는 이야기와 같은 이 소설은 언제라도 손 닿는 데에 평화로운 마을을 가까이 둘 수 있다는 점에서 독자 입장에서는 정말 고마운 책이다.

이런 여름의 행복에도 한계는 있겠으나 단순한 생활이 주는 편안함은 충분히 매력적이라 소박한 삶에 결핍된 바를 채워주었고, 평화가 선사하는 선물은 분투하는 살아가는 자들이 누리기 어려운 법이었다. - P1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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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직필
요한 하리 지음, 이지연 옮김 / 어크로스 / 2025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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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집중력 저하, 우울증 등 현대 사회에 팽배한 문제에 대해 새로운 관점을 제시해 온 요한 하리가 이번에는 비만 치료제와 식품 산업에 대해 파헤친다. 전작 ‘도둑맞은 집중력’에서 집중력 저하가 개인의 의지 박약이 아닌 사회 구조적 문제임을 역설했던 저자이기 때문에 이번에는 어떤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줄 지 기대하며 ‘매직필’의 가제본을 펼쳐봤다.


 이 책의 ‘매직필’은 삭센다, 위고비 등 비만 치료제를 의미한다. 일전에 삭센다를 처방받은 지인을 만났었는데, 정말 몰라보게 살이 빠져서 어디 아픈 줄 알고 놀랐었다. 식단, 운동 없이 주사를 맞기만 해도 이 정도로 살을 뺄 수가 있다니, 이런 약이 보편화되면 평생 숙제라는 다이어트에서 이제 해방될 수 있는건가 하는 생각과 함께 현대 의학의 발전에 감탄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요한 하리는 여기서 한 발 더 나아가서, “왜 이런 약이 필요해졌는가?”라는 질문을 던진다. 사실 위고비가 나오기 전부터 다이어트는 이미 하나의 산업을 이루고 있었고, 수많은 식욕억제제가 처방되고 있었다. 심지어 위 절제술이나 지방흡입과 같은 물리적인 시술과 수술도 이루어졌다. 왜 사람은 이토록 힘들게 살을 빼야 하는 상황에 놓였을까? 아니, 왜 사람들이 이렇게 살이 쪘을까?


 요한 하리의 질문은 비만을 개인적 차원에서 벗어나 사회적 차원에서 바라볼 수 있는 계기를 제공한다. 비만을 단순히 식욕을 자제하지 못하고, 운동이나 식단 등 노력해서 살 뺄 의지가 없는 개인의 문제로 볼 것이 아니라, 식욕을 자극하는 음식, 건강하지 못한 음식을 소비하게끔 만드는 사회 구조를 짚어보자는 것이다. 누구나 양질의 음식을 먹고 싶지만, 경제적이거나 환경적 이유로 그게 어려운 사람들도 있다. 이런 이들이 비만이 되는 걸 그저 개인의 문제로 치부할 수 있을까? 요한 하리는 이를 지적하며 현대 식품산업을 파고든다.


 현대 식품산업이 살찌는 인간을 만들고, 현대 의학은 살빼는 약을 만든다. 스스로 비만치료제를 투약해 본 저자는 그 경험담을 진솔하게 털어놓는다. 부작용도 겪고 왠지 모를 거북함도 느끼며 약을 끊을까 고민도 하던 그는, 그럼에도 이 비만치료제가 당장 비만으로 고통받는 이들에겐 말 그대로 ‘매직필’임을 확인하고 다시 한 번 기회를 주기로 한다.


 저자의 비만치료제 체험기와 이에 대한 탐구 결과가 궁금하다. 정말 비만치료제가 비만 문제의 정답이 될 수 있을지, 아무 문제가 없는건지 의구심이 든다. 그리고 우리가 지금 먹고 있는 음식이 우리 몸에 어떤 영향을 끼치고 있는지도 알고 싶다. 전세계에 걸친 방대한 조사내용과 요한 하리 특유의 쉽고 재밌는 서술이 합쳐져 전작에 이어 또 한번 즐거운 지적탐구의 시간을 선사할 것 같아 기대된다. 그 끝에는 기존의 관념을 깨부수는 기분좋은 충격이 기다리고 있지 않을까.

우리는 지난 40년간 철저하게 포만감을 훼손시키는 음식을 먹어왔다. 그리고 이제는 포만감을 되찾아줄 약을 원한다 - P1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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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속노화를 위한 초간단 습관
지미 모하메드 지음, 이연주 옮김 / 한빛비즈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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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의 노후 준비는 건강이라는 말이 있다. 기대수명이 아니라 건강 수명을 신경 쓰는 시대, 이제는 얼마나 오래 사는지보다 얼마나 오래 건강을 유지하면서 일상을 영위하는지가 더 중요하다. 질병의 치료보다 예방이 더 중요해지면서 ‘저속 노화’에 대한 관심도 급증하고 있다.

'저속 노화를 위한 초간단 습관'은 제목 그대로 노화의 속도를 늦추기 위해 우리가 일상에서 실천할 수 있는 35가지 습관을 제시한다. ‘1,000보 더 걷기’, ‘규칙적으로 자고 일어나기’, ‘자연 환기하기’ 등 정말 간단한 내용이라 "정말 이게 다라고?" 싶은 생각이 들지만, 오히려 실천하기에는 부담이 없다. 사실, 다들 알고 있으면서도 실천하지 않았던 내용도 많아 반성하게 되기도 한다.

저자가 의사이기 때문에, 각 습관과 노화의 관계를 의학적으로 설명해 주는데, 일반인도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는 점이 이 책의 큰 장점이다. 해독 주스, 사우나, 아로마 테라피 등 대체 의학적 요법에 대해서도 작용 기전이나 관련 연구를 기반으로 건강상의 효과를 차근차근 설명한다.

그렇다고 해서 이 책이 기존의 건강 속설을 단순히 되풀이하는 것은 아니다. 편두통에 대한 오해, 알츠하이머와 혈압의 관계, 설탕 섭취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되는 허브 등 새로운 건강 지식도 얻을 수 있다. 생선이 좋다고 해서 무작정 식단에 추가하는 것이 아니라, 중금속 오염 문제까지 고려해야 한다는 점은 그간 간과했던 부분이라 저자의 지적이 더욱 와닿았다.

아는 것과 실천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지금 당장 건강에 큰 문제가 없다고 해서 좋지 않은 습관을 바로잡지 않는다면, 누적된 결과는 나중에 한꺼번에 밀려온다. 질병이 생기면 그때는 이미 늦었음을 저자는 계속 강조한다. 건강한 지금 이 순간부터 미리미리 건강을 챙기는 것이 ‘저속 노화’의 핵심이다. 노화를 지연시키겠다는 거창한 목표에 압도되지 말고, 자외선 차단제 바르기와 같이 작고 쉬운 것부터 하나하나 실천해 보자.

음식을 먹을 때 잠시 입으로 느끼는 즐거움보다 그 음식이 장기적으로 우리 몸이 어떤 영향을 미칠지 생각해야 합니다. - P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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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당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 - 톨스토이 아포리즘
레프 니콜라예비치 톨스토이 지음, 석영중 옮김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4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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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톨스토이의 작품을 읽다 보면 사랑과 행복, 윤리 등 인생에 대한 깊은 그의 깊은 통찰력을 느낄 수 있다. ‘전쟁과 평화’나 ‘안나 카레니나’ 등 그의 장편소설은 읽을 때마다 각기 다른 주인공에게 초점을 맞추면서 읽으면 여러 번을 읽어도 새롭고 느끼는 바도 다르다. 그의 단편소설들도 ‘인간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라는 질문을 꿰뚫는 경우가 많아 여운이 오래 간다.


 ‘나는 당신이 행복하다고 생각했습니다’는 톨스토이의 글을 묶은 아포리즘이다. 본질, 사랑, 자연, 일상 그리고 행복이라는 4가지 주제 아래에 ‘전쟁과 평화’, ‘안나 카레니나’, ‘부활’, ‘이반 일리치의 죽음’, ‘카자크인들’, ‘광인의 수기’ 등 톨스토이의 다양한 작품에서 발췌한 문장들이 엮여있다. 짧은 문장들이지만 그 안에 담긴 뜻은 결코 가볍지 않아 한 글자 한 글자 곱씹으며 아껴 읽었다. 작품의 문장들을 따로 읽으니 스토리와 무관하게 문장 자체가 지닌 의미에 집중하면서 깊이 사유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었다.


 톨스토이가 말하는 행복은 사실 거창하지 않다. 그의 작품 곳곳에서 다루어지듯, 소박하고 선한 삶이 톨스토이가 말하는 행복한 삶이다. 상호 섬김의 법칙에 따라 살면 행복할 수 있다는 톨스토이의 외침은 타인과 비교하고, 내 욕심을 앞세우며 투쟁하듯 살아가는 현대인에게 경종을 울린다.


 톨스토이는 진정한 행복은 사랑에서 나온다고 믿었다. 사실 그의 작품에는 다양한 사랑의 형태가 등장한다. 안나와 브론스키, 네흘류도프와 카츄샤, 레빈과 키티, 피에르와 나타샤를 보고 있자면, 그 유명한 ‘안나 카레니나’의 첫 문장처럼 진정한 사랑은 비슷하다. 서로 간의 깊은 신뢰와 이해, 헌신 등을 바탕으로 한 사랑은 인생을 더 충만하게 하고 행복의 근간이 된다.


 그의 글을 읽으면서 결국 행복은 내 마음가짐에 달렸다는 단순한 진리를 새삼 깨닫게 되었다. 그 마음가짐을 실천에 옮기는 것이 쉽지는 않지만, 이 책을 길잡이 삼아서 노력해 보려고 한다. 마음이 어수선하거나 흔들릴 때는 책이 훌륭한 안식처가 되어 줄테니, 행복한 삶을 향해 노력하는 길이 그렇게 험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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