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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로하, 나의 엄마들 (양장)
이금이 지음 / 창비 / 2020년 3월
평점 :
하와이로 이민 간 조선인들과 사진 신부는 근현대사 시간에 한 토막의 이야기로 접한 것이 전부였다. 본문 한두 줄에 교과서 한 귀퉁이에 짧은 코너로 소개된 그들의 모습은 고된 노동에 지쳐 있었다. 그당시엔 식민지 시절, 나라 잃은 설움이 어딜 가든 덜어졌을까, 어디에서나 힘들게 살았겠지 하고 무심하게 지나쳤었는데, ‘알로하, 나의 엄마들’에서 만난 이들의 삶은 강인한 생명력과 희노애락으로 반짝이고 있었다.
각자의 사정은 다르지만, 조선에서보다는 잘 살 수 있으리라는 희망을 품고 머나먼 하와이로 떠난 사진 신부들. 하지만 그들을 기다리는 것은 나이나 경제적 여건을 속인 신랑들이다. 설레야 할 신랑 신부의 첫 만남은 신부들의 통곡으로 가득 찬다. 조선으로 돌아가겠다 하지만 여비를 구할 수 있을리도 없고, 결국 퉁퉁 부은 눈으로 결혼식을 치른 사진 신부들은 신랑들의 거주지에 따라 여기저기 흩어진다.
자신을 속인 신랑 외에도 그들을 기다리는 고된 노동과 백인들의 멸시, 차별은 그들의 마음을 사정없이 할퀴지만, 먼저 온 한인 이주자들의 도움과 단단한 의지로 그들은 머나먼 타지에서 악착같이 삶을 일구어 낸다. 그나마 사정이 나은 버들도 남편의 첫사랑으로 마음고생을 하면서도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한다.
이들의 고단한 삶은 당시의 굴곡진 역사와도 궤를 같이한다. 어려운 살림에도 조선 독립을 위해서 너나 없이 적극적으로 나서는 모습에는 마음이 뜨겁다가도, 독립운동 파벌이 나뉘어 서로 대립하고, 친하게 지내던 이들이 갈라지는 모습을 보고 있자면 답답해진다. 여기에 버들의 남편 태완이 독립운동에 매진하느라 가정에 소홀할 때는 그를 응원하면서도, 가장 노릇까지 해야 하는 버들을 생각하면 안타까워진다. 독립운동가들뿐만 아니라 그들의 가족들 또한 얼마나 인고의 시간을 버텨왔을지, 새삼 존경심이 치솟는 순간이다.
버들이 숱한 고난의 시간을 이겨낼 수 있었던 것은 연대의 힘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와이에 처음 온 버들이 이내 적응했던 것도 캠프 사람들의 따뜻한 도움이 있었기 때문이고, 태완이 떠난 시간을 견뎌낸 것도 홍주와 송화가 있었기 때문이다. 특히 버들과 홍주가 다툰 뒤 다시 화해하는 장면에서는 정치적 입장이나 의견을 떠나 순수하게 인간 대 인간으로 힘을 합치는 모습이 뭉클했다.
막바지에 이른 소설은 버들의 딸, 펄의 시점으로 전환된다. 에이미 탄의 ‘조이 럭 클럽’이 연상되는 부분이다. 애초에 조선이라는 국적을 가져본 적이 없는 버들과 태완도 안타깝지만, 제대로 된 미국 시민으로 인정받기 위해 참전을 결정했다는 데이비드의 외침에도 이민 2세대의 애환이 녹아 있다. 펄과 버들 사이에도 장벽이 있긴 하지만, 서로에 대한 진한 애정이 있기에 이 둘은 결국 그 벽을 허물어 뜨린다. 펄의 꿈을 진심으로 응원해주는 버들의 모습에서 공부에 대한 열망으로 하와이 행을 선택했던 옛날의 버들이 떠올라 마음이 아련해진다.
‘알로하, 나의 엄마들’은 단순히 한 사람의 이야기를 넘어서, 한 시대를 살아낸 이들의 삶에 대한 깊은 이해를 선사한다. 그들의 강인한 의지와 연대는 지금을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큰 울림을 준다. 파도타기와 같은 삶을 견뎌낸 이들을 보며 우리도 각자의 파도를 잘 넘을 수 있는 힘을 얻길 바란다.
"저 아들이 꼭 우리 같다. 우리 인생도 파도타기 아이가." - P3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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