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개 도시로 읽는 영국사 - 세계를 사로잡은 대중문화 종주국 영국의 도시와 역사 이야기
김현수 지음 / 다산초당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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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사에 관심이 많긴 하지만 내가 알고 있는 영국사는 단편적이다. 대학교에서 서양사 강의를 많이 듣긴 했지만 이상하게도 영국사와는 연이 닿지 않았고, 그러다 보니 내가 아는 영국사는 중간 중간 공백이 크게 뚫려 있어서 이 공백을 한번쯤 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30개 도시로 읽는 영국사’를 읽기 전 ‘30개 도시로 읽는 세계사’나 ‘30개 도시로 읽는 일본사’ 등을 이미 읽어봤기에 책의 구성이 어떨지에 대해서는 대강 짐작했다. 하지만 이 책은 기본적으로 지리적 위치와 함께 영국의 색슨족, 주트족, 앵글로족, 켈트족과 같은 부족과 이들이 세운 왕국들을 고려하여 30개 도시를 선정하고, 영국에 존재했던 수많은 왕국들에 대해서도 간략하게 설명하고 있다. 지도나 도시의 유적지 등 그림과 사진도 풍부해서 역사서이자 여행서 같은 느낌도 든다.


 책에서 다루는 30개 도시들 중 몇몇은 익숙하지만, 일리, 리즈 등 생소한 도시들도 많아서 목차를 보는 것만으로도 설렌다. 물론 익숙한 도시여도 도시가 지닌 역사까지 알고 있는 것은 아니어서 내가 생각하는 도시의 이미지와 역사를 비교하며 읽는 재미가 있다. 학구적인 대학 도시일 것 같은 옥스퍼드에 수 차례 피로 얼룩진 역사가 있다는 사실을 알고 놀라기도 했고, 로빈후드로만 알고 있었던 노팅엄이 근대에 레이스 산업으로 유명했다는 걸 알고 둘의 부조화에 피식 웃기도 했다. 특히 개인적으로 잘 알지 못했던 스코틀랜드, 웨일스, 북아일랜드의 도시들을 다룬 3부를 가장 재미있게 읽었다.


 각 도시들의 과거부터 현재 모습까지 폭넓게 다루다 보니 도시가 변화하는 모습을 보는 것도 흥미로웠다. 과거 영국의 수도였던 윈체스터가 그 위상을 잃고 런던에 밀렸다는 점이나, 별 주목받지 못한 도시였던 맨체스터가 면직산업으로 성장하고 축구와 문화로 지금까지도 세계적으로 유명한 도시라는 점 등을 보면 도시가 피워내는 역사의 역동성을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영국은 언젠가 꼭 가보고 싶다 생각했으면서도, 정작 어디를 가고 싶은지 생각하면 런던 말고 떠오르는 곳이 없었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니 글로스터에 가서 대성당의 찬란한 스테인드 글라스도 보고 싶고, 콜체스터에 가서 로마 성벽을 거닐며 브리타니아를 느껴보고 싶다. 카디프 성의 벽화나 사진으로만 봐도 황홀한 아랍 룸도 직접 가보고 싶다.


 세계사를 논할 때 영국은 빼놓을 수 없는 나라이다. 한때 해가 지지 않는 나라, 산업혁명의 발상지, 입헌군주국이라는 독특한 정체, 다채로운 대중문화의 종주국… 영국 하면 떠오르는 이미지이다. 이 책에서 만날 수 있는 30곳의 도시들은 우리가 아는 영국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앞으로도 이 시리즈가 계속 나와서 더 많은 국가와 도시의 역사에 대한 지식을 쌓을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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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9년 은일당 사건 기록 - 사라진 페도라의 행방 부크크오리지널 3
무경 지음 / 부크크오리지널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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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29년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라 너무 어둡고 무겁지는 않을까 생각했었다. 하지만 주인공이 창씨개명한 조선인 순사에게 고문을 당하고 이등시민 취급받는 조선인의 모습들이 나오기는 해도 전반적인 작중 분위기는 마냥 무겁지는 않고, 오히려 신식과 구식이 뒤섞인 당시 경성의 길거리나 생활상이 더 눈에 들어온다. 


 작품의 주요 내용은 도쿄에서 돌아온 유학생 에드가 오가  두 건의 도끼 살인사건에 연루되면서 자신의 결백을 입증하고 범인을 추적하는 것이다. 하지만 살인사건을 풀어나가는 과정보다 작중 인물들이 더 흥미롭다.


 일단 작중 분위기를 끌어올리는데는 주인공 에드가 오의 역할이 크다. 일단 에드가 오라는 이름과 페도라부터 수트까지 완벽한 차려입은 겉모습, 말끝마다 강조하는 ‘모던’에 대한 집착부터가 식민지 조선과는 동떨어진 모습이다. 여기에 일본 유학까지 다녀온 엘리트 지식인인데 하는 행동은 철없는 대학생같은 괴리감은 잔인한 살인사건과 대비되어 작품 분위기를 한결 가볍게 만든다.


 하숙집 딸이자 과외 학생인 선화는 에드가 오와 함께 누이와 같은 케미를 보여주는데, 가끔은 선화가 누나 같이 여겨질 때도 있다. 또한 냉철한 상황 판단이나 추론 능력은 에드가 오보다 낫다. 탐정의 조수이지만 탐정보다 능력이 떨어지는 조수라는 클리셰를 뒤집은 캐릭터랄까. 아니, 사실 진짜 탐정은 선화일지도.


 다방 흑조의 주인이자 과거 에드가 오의 과외학생이었던 연주는 등장이 많지는 않지만 출중한 능력을 보여준다. 선화와 마찬가지로 탐정보다 능력있는 조언자로서 신스틸러 역할을 톡톡히 했다. 개인적으로는 사실 연주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마담 흑조는 곤란한 이야기를 청한다’를 먼저 읽어서 연주가 이 소설에서 어떻기 그려질지 궁금했는데, 비중이 크지 않아서 아쉬웠다. 


 이외에 어딘가 수상해 보이는 계향, 헌책방 할아버지, 약방의 감초같은 영돌아범, 냉정하기 그지없는 미나미 순사부장 등 소설 속 등장인물 하나하나가 개성이 강해서 1920년대 경성의 모던 보이인 에드가 오가 크게 이질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근현대사 시간이나 문학시간이 항상 암울한 시기로만 배웠던 일제강점기에도 이렇게나 다양한 사람들이 나름의 일상을 영위하며 살고 있었다는 사실을 문득 깨달았다. 


 보통 일제강점기를 배경으로 하는 작품들은 독립운동가들이 등장하여 일제와 맞서 싸우는 내용이 많다. 하지만 그 당시에 그들과 같은 영웅 또는 악질적인 친일파만 있었을까. 독립에 대한 열망은 있어도 이를 실천에 옮기지 못하거나, 아니면 나라가 어떻게 되든 하루하루 먹고 살기 바쁜 사람들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에드가 오 또한 일제의 만행과 그에 영합한 자들에 대해서는 분노하지만 독립 운동에 투신할 정도의 적극적 열정은 없고, 그저 공허하게만 느껴지는 모던을 부르짖으며 계몽을 외친다. 뒤팽이나 홈즈같은 탐정을 꿈꾸며 사건 조사에 나서지만 엄청난 추리력을 발휘하지도 못한다. 하지만 에드가 오가 밉지 않게 여겨지는 것은, 그의 소시민적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사건 자체도 거창한 대의가 아닌 순전히 개인적 동기에서 비롯되었다는 점도 에드가 오의 캐릭터성과 궤를 같이 한다.


 1929년 경성, 누군가는 독립운동을 하고, 누군가는 일제에 부역하던 그 시간, 그 곳에는 지금 우리와 같은 일반 사람들이 있었다. 하루하루를 살아내기 바쁜 사람들, 마음 속에 뜻은 있지만 아직 펼치지 못한 자들. 개인적으로는 시리즈가 진행될 수록 에드가 오가 어떤 모습을 보일지가 기대된다. 그리고 선화의 가족사, 연주와 에드가 오의 과거 등 에드가 오를 둘러싼 사람들이 펼쳐낼 드라마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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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산티아고인가
나선영 지음 / 바른북스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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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왜, 산티아고인가’는 산티아고 순례길 중 가장 유명한 프랑스 길, 그 800km 긴 여정 동안 저자가 만난 순례길을 글과 사진으로 생생하게 보여준다. 순례길의 시작, 생장 피에 드 포르부터 팜플로나, 로그로뇨, 부르고스, 레온, 사리아 등 차근차근 저자가 걸어간 길을 따라가다보면 나도 어서 이 길을 걷고 싶다는 마음이 차오른다.


 저자는 그 길에 나름의 이름을 붙였다. 사랑의 길, 영혼의 길, 비움의 길, 외로움의 길, 후회의 길, 고독한 길 등등. 길을 꾸며주는 다채로운 수식어를 보고 있자니 그 길의 어떤 부분에서 저자는 이러한 단어들을 떠올렸을지, 이 단어들이 지금 내게 주는 의미가 무엇인지 등 단어 자체에 대해서 차분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800km를 사람의 힘으로 걷다 보니 산티아고 순례길은 편안한 여행길만은 아닐테다. 평탄한 길도 있고 오르막길도 있고, 진창인 길도 있고 돌밭도 걸어야 한다. 하지만 마냥 쉬운 길이 아니기 때문에 문득 마주치는 해바라기 꽃밭이나 십자가 등이 주는 울림이 더욱 크지 않을까. 저자가 길을 걸으며 곱씹었던 감정들과 깨달음은 아직 산티아고 순례길을 밟아보지 못한 내게 감동과 함께 순례길에 대한 갈망을 일깨웠다.


 ‘왜, 산티아고인가’ 라는 책 제목을 봤을 때, 왜 나는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고 싶은지 생각해 보았다. 산티아고 순례길의 존재를 알게 된 건 10년도 더 전이었다. 그때나 지금이나 종교가 없는 나는 순례라는 행위 자체에 큰 감흥이 없었고, 800km를 걷는다는 건 순례보다는 고행에 가깝게 느껴졌다. 그렇게 힘든 길을 지나 도달한 곳에서 과연 그 고생에 상응하는 보람이나 깨달음을 얻을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직장인이 되고, 여기저기 치이다가 바닥까지 내려앉았을 때, 우연히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 대성당 앞에서 감격에 겨워하는 순례자들의 영상을 보고 문득 나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나서고 싶어졌다. 그 기나긴 길 위에서 혼자만의 싸움을 이겨낸 뒤 맞이한 대성당은 어떤 느낌일까. 온갖 외부 변수에 의해 부평초마냥 흔들리다 가라앉은 상황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은 내게 종교적 의미보다는 온전히 나 자신의 의지로 행할 수 있는 탈출구처럼 보였고, 40살이 되던 해에 그 길을 걸으리라 다짐하게 되었다.


 내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는다면 어떤 단어들이 떠오를지, 어떤 감정이 밀려올지 궁금하다. 저자와는 또 다른 나만의 감정과 단어로 완성될 길, 그 길을 걸을 날을 기대하며 하루하루를 버티고 살아간다. 결과만이 중요하게 여겨지는 세상에서 산티아고 순례길을 많은 이들이 찾는 이유는 결과가 아닌 그 과정이 더 의미있는 행위이기 때문이 아닐까. 가리비 문양과 노란 화살표를 따라 묵묵히 걸어갈 날이 기다려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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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랜드로 읽는 그리스 신화
김원익 지음 / 세창출판사(세창미디어) / 2024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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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음 책을 받았을 때 그 두께와 무게에 놀랐다. 그리스 신화에서 나온 브랜드만으로 이렇게 두꺼운 책이 나올 수 있다니 하는 생각과 함께 목차를 보는 순간 태초부터 시작해 올림푸스 12신들, 수많은 영웅 이야기까지 방대한 그리스 신화를 총망라하고 있다는 점에서 또 놀랐고, 이 신화 속 이야기와 관련있는 브랜드뿐만 아니라 상품명, 가게 상호, 지역이나 거리 이름, 영화, 연극, 소설, 음악 등 수많은 작품들이 이렇게나 많다는 사실에 다시 한 번 놀랐다.


 신화에 대해 관심이 많아 어릴 적부터 관련된 책을 많이 봤지만, 신화는 그저 옛날 사람들이 자연현상 등을 어떻게 이해했는지와 그들의 문화와 생활상을 보여주는 과거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지금까지도 우리 옆에 다양한 모습으로 남아 있는 그리스 신화의 흔적을 보면서 과거의 이야기가 현대에도 엄청난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별 생각 없이 지나쳤던 브랜드나 상품명이 왜 이렇게 지어졌는지,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생각해 보는 기회가 되었다. 프랑스의 엘리제 궁전이나 샹젤리제 거리와 같이 그리스 신화에서 기원했다는 사실 자체를 몰랐던 경우에는 새로운 지식을 쌓는 기쁨도 있었다.


 수많은 브랜드를 다루다 보니 그리스 신화에 대해서도 폭넓게 다루고 있어 신화에 대한 이해도 또한 깊어졌다. 보통 그리스 신화를 다룬 책에서 가볍게 짚고 넘어가는 태초의 신들이나 티탄족의 가계도, 올림푸스 12신부터 시작해서 아프로디테와 아도니스, 오르페우스와 에우리디케 등 사랑 이야기, 헤라클레스, 테세우스, 이아손과 아르고호의 모험, 트로이 전쟁 등 영웅 이야기까지 그리스 신화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이야기들은 모두 담겨 있다. 이미 아는 내용은 브랜드의 관점으로 보니 새롭고, 모르던 내용은 몰라서 또 새롭고, 한 편 한 편 읽을 때마다 그리스 신화가 새롭고 신선하게 느껴진다.


 이 책의 또 한 가지 장점은 책 곳곳에 그리스 신화와 관련된 그림이나 조각, 유적지 사진이 배치되어 있다는 점이다. 고대의 도자기, 조각부터 르네상스 이후의 그리스 신화를 배경으로 한 그림 등이 많이 실려있는데, 몰랐으면 그냥 지나쳤을 도자기 그림들이 신화를 알고 나니 무엇을 의미하는지 보여서 신기하다. 또 그림 속 인물들이 누구인지 드러내는 상징물을 찾거나, 그림이 신화의 어떤 장면을 묘사하는 것인지 알아보는 즐거움이 있다. 그리스 하면 파르테논 신전만 떠올랐는데 수많은 신전들을 보면서 하나하나 모두 찾아가서 신전의 주인과 관련된 신화의 일화들을 되새겨 보고 싶어졌다.


 독서를 세상을 보는 눈을 키우고, 나를 둘러싼 세계에 대한 이해도를 높이는 활동이라고 생각할 때, 이 책은 그 목적에 정확히 부합하는 책이다. 인간다운 신과 영웅들의 이야기라고 생각했던 그리스 신화가 지금 우리 삶 구석구석에 스며들어 있다는 점을 잘 알 수 있다.


 머나먼 곳에 있는 그리스의 신화가 지금 우리나라의 아파트 이름이나 가게 상호명, 가수들의 노래 제목에서 살아 숨쉬는 것을 보면 참 신기하다는 생각이 든다. 유럽 문명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그리스 신화는 그 유럽 문명이 전세계를 휩쓸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우리 고유의 신화보다도 익숙한 이야기가 되었다. 이토록 오래 살아남은 그리스 신화의 원동력은 무엇일까. 인간적인 신들의 모습인지, 드라마틱한 영웅들의 이야기인지 궁금하다. 덧붙여 그리스 신화 외에도 북유럽 신화나 중국 신화, 한국 신화는 우리의 일상에 어떤 모습으로 남아있을지 궁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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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쳤지만 무너지지 않는 삶에 대하여 - 탈진의 시대, 인류사 내내 존재했던 피로의 인문학 A to Z
안나 카타리나 샤프너 지음, 김지연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4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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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번아웃이라는 말이 비교적 최근에 광범위하게 쓰이기 시작했지만 이미 번아웃은 과거에도 존재했던 정신적 상태였다. 조금이라도 자기 일에 진심을 담는 사람이라면, 한번쯤은 겪는 것이 번아웃이 아닐까. 저자의 말처럼 번아웃을 최선을 다해 불타버린 이후 조용한 절망에 빠져있는 작은 영웅들의 훈장이라고 정의한다면 더더욱이나 그렇다.

하지만 번아웃을 경험하는 그 순간에는 최선을 다했다거나, 훈장이라거나 하는 말이 그저 공치사로만 들리고, 그저 허탈함과 막막함만 느껴질 뿐이다. 지쳐서 이제 뭘 해야할지, 뭘 할 수는 있을지도 모르겠는데 직장이든 가정이든 어딘가에 매여서 계속 무언가를 바쁘게 해야 하는 상황. 이 구조를 바꿔보겠다고 착실히 걸어오던 길의 경로를 확 틀어버리는 것도 사실 쉽지 않은 결정이라 어떻게든 자기를 추스르고 달래 일으켜 가던 길을 쭉 걸어가는 게 할 수 있는 게 최선책으로 보인다.


 ‘지쳤지만 무너지지 않는 삶에 대하여’은 저자가 번아웃, 넓게 말하면 피로에 대해 쓴 A부터 Z까지의 26편의 글의 집합체이다. 무언가 읽기조차 힘들 사람들을 위해 짧은 글로 구성한 저자의 세심함이 돋보인다. 26편의 글은 심리학, 사회학, 역사학, 철학, 문학 등에서 발췌한 키워드에 대한 저자의 단상을 다룬다. 단순히 심리학적으로 번아웃을 분석하고 그에 대한 해결책을 제시하기 보다는 번아웃의 근원과 역사부터 시작해 다양한 문학 작품과 영화에서 다뤄진 번아웃이나 이를 극복하는 방법 등을 제시하고 있어서 보다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


 특히, 저자가 일방적으로 독자에게 번아웃을 극복하려면 이렇게 해야한다는 식의 행동 방침을 주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경험담이나 역사 속 위인들의 이야기도 풀어놓으면서 마치 이야기를 듣는 느낌으로 책을 읽을 수 있어서 마음이 편안해졌다. 내가 본 문학작품이나 영화가 이렇게도 볼 수 있다는 점이 신선하고, 그저 대단한 인물이었던 사람들도 다들 번아웃을 겪어봤다는 점에서 동질감을 느끼기도 하면서 그 자체로 위로가 되었다.


 번아웃이라는 현상 자체는 새로운 것이 아니지만, 최근에 좀 더 번아웃에 대한 인식이나 민감도가 커진 것을 느낀다. 그만큼 지친 사람이 많다는 의미일 것이다. 하지만 지쳤다고 삶을 무너뜨리기에는 삶이 아깝다. 지쳤다는 것 자체가 무언가를 열심히 해왔다는 방증일텐데, 그렇게 살아온 삶은 한순간에 포기할 수는 없으니까. 다만 지친 만큼 잠시 쉬어가야 할텐데, 그때 이 책을 옆에 두고 쉬엄쉬엄 읽어나간다면 다시 일어나는 힘을 얻을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미리 예방조치처럼 그날 그날 끌리는 알파벳을 골라 읽어봐도 좋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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