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2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박인용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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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보비는 골프를 치다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어가는 남자를 발견하고 남자는 이내 '그들은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마지막 말을 남기고 사망한다. 이를 단순히 불행한 사고라고 생각했던 보비는 죽은 남자의 여동생 부부라는 사람들을 만나 남자의 마지막 말을 전한다. 이후 그에게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종래에는 모르핀 과다복용으로 죽을 뻔한다. 일련의 사건을 겪으며 어쩌면 남자가 살해당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하게 된 보비와 그의 소꿉친구 프랭키는 사건의 전모를 파헤치기 위해 의기투합하게 된다.


 보비와 프랭키가 가진 단서라고는 '그들은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라는 정말 뜬금없는 마지막 말과 보비가 봤다는 여자의 사진(바꿔치기 되었다는 점에서 의미심장하다), 보비를 대신해 그 남자의 시체를 지킨 로저 배싱턴프렌치라는 남자. 이 세 가지뿐이다. 어디서 많이 본 애거서 크리스티식의 씩씩한 히로인인 프랭키는 자신의 사회적 지위를 능수능란하게 활용하여 배싱턴프렌치 가문에 접근하고 여기서 흔하디 흔한 삼각 아니 사각관계가 펼쳐진다. 일단, 마약중독자 남편과 그를 사랑하고 가정을 지키려는 아내가 나온다. 그러면 당연히 딸려나오는 것은? 그런 아내를 사랑하는, 어딘가 범죄의 음습한 냄새가 나는 의사, 그리고 그 의사에게 짓눌려 사는 듯한 겁먹은 아내. 알고 보니 이 겁먹은 아내가 죽은 남자가 지녔던 사진 속 여인이라면? 이제 배싱턴프렌치에 대한 의심은 사라지고 수상한 의사 선생만 남는다...

 물론 이대로 시시하게 끝나면 애거서 크리스티가 아니다. 이 작품엔 반전도 있고, '그들은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라는 수수께끼와 같은 말도 명쾌하게 설명된다. 사실 저 말이 나오게 된 경위, 곧 범죄의 트릭이 새롭긴 했는데... 왜인지 모르게 애거서 크리스티의 다른 작품들이 떠오른다. 보비와 프랭키의 관계나 그들이 겪는 모험은 '부부탐정'의 토미나 터펜스, '갈색 양복의 사나이'의 해리와 앤이 겪는 일과 아주 유사하고, 프랭키는 '침니스의 비밀'과 '세븐 다이얼스'의 번들이 생각난다. 모이라는 '골프장 살인사건'의 마르트 양이 떠오르기도 하고, 범인의 마지막 편지는 '갈색 양복의 사나이'의 범인을 생각나게 한다! 전작들과만 비교해도 이 정도?

 그렇다고 해서 이 작품이 재미없는 것은 아니다. 어느 정도 추리소설 읽어 본 사람이 보기에 이 작품은 대놓고 함정을 파놓고 독자를 유인하는데 느긋하게 그 함정을 피하며 나름대로 추리해보는 재미가 있다. 그리고 일단 '그들은 왜 에번스를 부르지 않았지?'라는 이 문장이 나온 이유가 궁금해서라도 끝까지 읽게 된다. (중간에 설마 이거 맥거핀은 아니겠지 하는 의심이 들긴 한다...) 어느새 나보다 어려진 보비와 프랭키의 풋풋함과 발랄함도 이 작품의 매력 중 하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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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막의 비극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4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박슬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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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거서 크리스티 작품에서 연극 하면 빼놓을 수 없는 인물인 새터스웨이트와 푸아로가 동시에 등장하는 작품이다. 다만, 푸아로는 초반에 아주 잠깐 나왔다가, 이후 중반부가 지나서야 다시 나온다.

 이 작품의 재밌는 점은 첫 페이지에 실제 연극대본마냥 캐릭터별 역할이 부여되어 있다는 점이다. 찰스 경은 감독, 리튼고어 양과 새터스웨이트는 조감독, 푸아로는 조명(!)이다. 이 작품을 다 읽고 나면 의미심장하게 다가오는 부분.

 3막의 비극이라는 제목에 맞게 작품은 총 3장으로 구성되어 있다. 1막에서는 당연히 주요 등장인물들이 나오고, 첫 사건인 배빙턴 목사 사망사건이 발생한다. 2막에서는 바솔로뮤 경이 사망한 뒤, 찰스 경, 리튼고어 양, 새터스웨이트가 자체적으로 사건에 대한 조사를 벌인다. 그리고 3막에 짜잔, 우리의 푸아로가 등장하고, 찰스 경과 리튼고어 양, 새터스웨이트는 배빙턴 목사 사망 당시 만찬에 참석했었던 사람들을 만나러 다니며 단서를 수집한다.

 작품 읽는 내내 '무슨 타이밍이 이렇게 잘 맞아? 너무 작위적인거 아냐?' 라는 생각이 문득 문득 들었는데, 결말에 이르면 왜 그런 느낌을 받았는지 한 번에 설명이 된다. 전혀 연관이 없어 보이는 3가지의 사건이 어떻게 연결이 될까 궁금했는데 말 그대로 관계없음이 해답이었다니! 허를 찌르는 애거서 크리스티의 솜씨가 여과없이 드러난다.

 푸아로도 충분히 연극적인 사람이라고 생각했는데(범인을 밝힐 때 관련자들을 관객으로 모아둔다거나, 경계심을 늦추기 위해 영어가 서툰 외국인 흉내를 낸다거나)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고 아마 푸아로도 찰스 경을 보며 나보다 더 한 사람이 있다니 하고 생각하지 않았을까? 물론 직업배우와 같은 선상에서 비교할 일은 아니지만....

"무슈 푸아로, 정말 대단합니다. 정말 대단해요."
푸아로는 짐짓 겸손한 척 대꾸했다.
"그건 아무 것도 아닙니다. 그렇고말고요. 그저 3막의 비극이 벌어졌고, 이제 막을 내린 겁니다."

푸아로가 조용히 말했다.
"그보다 더 끔찍한 가능성도 있지요. 그게 저였을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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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BC 살인 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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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사건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반전 또한 훌륭하다. 이상심리에 대한 이해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던 시기에 'ABC 순서에 따라 무작위로 사람을 죽인다'는 컨셉 자체가 사실 파격적이다. 여기에 유명인인 푸아로에게 범행을 예고하며 보란듯이 과시하는 행동까지! 온갖 이상 성격의 집합체 아닌가? 작중에서도 이 사건은 언론에 큰 화제가 되며 영국 전역이 떠들썩해진다.

 제목이 'ABC 살인사건'인만큼 ABC가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일단 범죄를 예고하는 편지의 발신자도 ABC이고, 범죄 현장에서는 매번 ABC 철도안내서가 발견된다. 작품 중간 중간 '제삼자의 설명'에 등장하는 알렉산더 보나파르트 커스틴도 이니셜이 ABC이다! 심지어 이 요란한 이름의 남자는 몹시 의심스럽다. 범죄현장에 계속 나타나고, 거동도 수상하다. 게다가 푸아로의 추리는 점점 커스틴을 제삼자가 아닌 당사자의 위치로 끌어 당기는데... 과연 그가 범인일까?

 피해자가 많은 만큼 그들의 가족, 친구 등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은데 하나같이 개성 있다. 상냥하고 선한 메리 드로어,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메건 바너드, 유약한 도널드 프레이저, 쾌활하고 결단력 있는 프랭클린 클라크, 실리적인 도라 그레이 등... 범인을 잡기 위한 이들의 연대는 사실 뭉클하기까지 하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크롬 경위이다. 프랑스에 지로가 있다면 영국엔 크롬이 있다! 거들먹거리며 푸아로를 무시하는 그의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실소가 나오게 한다.

 역시나 푸아로는 마지막에 모두를 모아두고 한 판의 추리 쇼를 펼치는데, 플롯이 어찌나 촘촘하게 짜여 있는지 감탄이 나온다. 왜 ABC 살인사건인지는 물론 하다못해 왜 편지의 수신자가 푸아로인지까지 아주 깔끔하게 설명이 된다.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답다.

그리고 여우를 잡아, 상자 속에 넣어, 절대로 풀어주지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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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소포타미아의 살인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애거서 크리스티 푸아로 셀렉션 2
애거사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5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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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애거서 크리스티는 1928년 바그다드 여행 이후 고고학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그녀의 두 번째 남편 맥스 맬로언도 고고학자로, 남편과 발굴 여행을 같이 다녔다고 하는데 그래서인지 그녀의 작품은 중동이 배경인 경우가 종종 있다.


 이 작품도 제목에 '메소포타미아'가 있듯이 이라크의 한 유적 발굴지가 배경이다. 배경만 이러할 뿐 사건 자체는 치정극이다. 다만, 이국적인 배경이 주는 긴장감이나 소소한 미스터리들이 있긴 하다.

 푸아로는 처음부터 이 사건에 대해 라이드너 부인의 성격을 파악하고 이해하는데 집중한다. 발굴단원들이 생각하는 라이드너 부인은 조금씩 다르지만 그녀가 항상 관심의 대상이 되고 싶어하고, 타인을 좌지우지하는 일을 즐겼다는 사람이었다는 점은 쉽게 유추할 수 있다.

 여기에 라이드너 부인을 둘러싼 하나의 드라마가 더 있는데, 작품의 심리 스릴러적 요소를 더해준다. 라이드너 부인이 전 남편이 독일 스파이임을 알고서 그에 대해 밀고했고, 이로 인해 전 남편 또는 그의 동생이 그녀에 대해 깊은 원한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렇게 전 남편 일가가 유력 용의자로 떠오르며 발굴단원 중 누군가가 신분세탁을 한 전 남편이나 동생일지 모른다는 의심이 피어오른다.

 푸아로는 라이드너 부인을 중심으로 복잡하게 얽힌 발굴단 내의 인간관계와 이들의 심리를 능숙하게 파고든다. 결국 그녀의 성격을 완벽하게 그려낸 푸아로는 사건의 진상을 알아내고 모든 이들 앞에서 밝힌다. 사실 푸아로는 라이드너 부인뿐만 아니라 범인의 심리 또한 파악하여 증거 하나 없지만 범인을 옭아맨다. 소유되고 싶지 않은, 차라리 소유하는 쪽을 원하는 라이드너 부인과 강한 소유욕을 지닌 범인은 그 만남 자체가 애초에 파국을 예정하고 있던 것이 아닐까.

 이 작품에서도 보여주듯 개개인마다 한 사람에 대해 각자의 관점을 가지고 다르게 이해한다. 결국 어떤 이를 딱 하나의 특성으로 규정짓기란 불가능하다. 그러니 내가 보는 저 사람이 저 사람의 전부고, 내가 저 사람을 다 안다고 생각하지 말자.

나는 라이드너 부인에 대해 생각하고 또 생각했다. 그녀는 정말 어떤 여자였을까....? 때로는 그녀가 무시무시한 여자였던 것 같고, 때로는 그녀가 내게 얼마나 친절했는지, 그녀의 목소리가 얼마나 부드러웠는지.... 그녀의 아름다운 금발 같은 것들이 생각나기도 한다. 결국 그녀는 비난보다는 동정을 받아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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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위의 카드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8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허형은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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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푸아로와 올리버 부인, 배틀 총경, 레이스 대령을 한 작품에서 만날 수 있다니! 이 사실만으로도 이 작품은 크리스티 팬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마플 양이 빠진 것은 조금 아쉽지만....

 범죄를 저지른 (것으로 의심되는) 사람을 불러 모은다는 설정은 '그리고 아무도 없었다'를 떠오르게 한다. 물론 이 작품은 정작 이들을 불러모은 사람이 피해자가 된다는 점에서 차이점이 있지만, 오히려 범죄자가 또 범죄를 저질렀다는 긴장감을 자아낸다.

 인간 심리의 대가인 푸아로는 생뚱맞게도 브리지 게임에 집중하여 손님들의 성격과 당시의 상황을 파악하고, 우직한 배틀 총경과 허당끼 있는 올리버 부인은 각자의 자리에서 할 수 있는 만큼 손님들을 만나며 정보를 캐낸다. 경찰인 배틀이 공식적 범위 안에서 조심스럽게 최대한의 정보를 얻어내는 반면, 앞뒤 재지 않고 달려드는 올리버 부인의 접근방식은 웃음을 자아낸다. 근데 또 이게 의외로 먹힌단 말이지 아쉽게도 레이스 대령은 중간에 급한 용무로 하차(?)하지만 그 또한 자신의 정보망을 가동해서 톡톡히 제 역할을 다 한다.

 작품이 진행되면서 로버츠 선생, 로리머 부인, 데스파드 소령, 메러디스 양에 대한 정보가 차곡차곡 모이고, 누군가는 살인 혐의를 벗지만 또 다른 사람의 혐의는 짙어진다. 이 중 누가 셰이터나의 살인범일까? 점점 수사망을 좁혀가던 중 4명의 손님 중 한 사람이 자신이 범인이라 거짓 자백을 하고, 자신이 범행을 목격했다고 실토한다. 그러나 그 사람은 다음날 사망하고, 작품의 긴장감은 점점 고조된다.

 결국 죄 지은 자는 법의 심판을 받게 된다. 셰이터나의 살인범뿐만 아니라 과거에 죄를 지은 자들도 각자 벌을 받았고, 죄 짓지 않은 사람들은 행복한 미래를 향해 나아가니 완전한 권선징악의 결말이라고나 할까.

 다만, 푸아로, 올리버 부인, 배틀 총경, 레이스 대령까지 총출동한 사건치고는 어정쩡하다. 이 쟁쟁한 캐릭터들이 나와서 각자의 역량을 한껏 뽐내기 보다는 뭔가 쿡쿡 찔러만 보다 사건이 해결된 느낌? 사실 유력 용의자들이 줄줄이 죽어나가니 남은 사람이 범인이 될 수 밖에 없었지만... 이 캐릭터들을 한데 모아 이 정도로 밖에 쓰지 못했다는 것이 못내 아쉽다.

"성실하고 정직하고 열정적으로 인내심을 가지고
맡은 바를 다하는 경관, 그게 내 방식입니다. 으스대지도 않고 기교를 부리지도 않으며 그저 정직하게 흘리는 땀이 전부입니다. 둔감하면서 조금 우둔하게 하자는 주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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