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ABC 살인 사건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ㅣ 애거서 크리스티 에디터스 초이스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김남주 옮김 / 황금가지 / 2013년 12월
평점 :
현대 추리소설이라고 해도 어색하지 않을 만큼 사건이 숨 가쁘게 진행되고, 반전 또한 훌륭하다. 이상심리에 대한 이해도가 지금처럼 높지 않던 시기에 'ABC 순서에 따라 무작위로 사람을 죽인다'는 컨셉 자체가 사실 파격적이다. 여기에 유명인인 푸아로에게 범행을 예고하며 보란듯이 과시하는 행동까지! 온갖 이상 성격의 집합체 아닌가? 작중에서도 이 사건은 언론에 큰 화제가 되며 영국 전역이 떠들썩해진다.
제목이 'ABC 살인사건'인만큼 ABC가 작품에 자주 등장한다. 일단 범죄를 예고하는 편지의 발신자도 ABC이고, 범죄 현장에서는 매번 ABC 철도안내서가 발견된다. 작품 중간 중간 '제삼자의 설명'에 등장하는 알렉산더 보나파르트 커스틴도 이니셜이 ABC이다! 심지어 이 요란한 이름의 남자는 몹시 의심스럽다. 범죄현장에 계속 나타나고, 거동도 수상하다. 게다가 푸아로의 추리는 점점 커스틴을 제삼자가 아닌 당사자의 위치로 끌어 당기는데... 과연 그가 범인일까?
피해자가 많은 만큼 그들의 가족, 친구 등으로 등장하는 인물들도 많은데 하나같이 개성 있다. 상냥하고 선한 메리 드로어, 날카로운 지성을 지닌 메건 바너드, 유약한 도널드 프레이저, 쾌활하고 결단력 있는 프랭클린 클라크, 실리적인 도라 그레이 등... 범인을 잡기 위한 이들의 연대는 사실 뭉클하기까지 하다.
또 하나 빼놓을 수 없는 캐릭터가 바로 크롬 경위이다. 프랑스에 지로가 있다면 영국엔 크롬이 있다! 거들먹거리며 푸아로를 무시하는 그의 태도는 독자로 하여금 실소가 나오게 한다.
역시나 푸아로는 마지막에 모두를 모아두고 한 판의 추리 쇼를 펼치는데, 플롯이 어찌나 촘촘하게 짜여 있는지 감탄이 나온다. 왜 ABC 살인사건인지는 물론 하다못해 왜 편지의 수신자가 푸아로인지까지 아주 깔끔하게 설명이 된다. 역시 애거서 크리스티의 대표작답다.
그리고 여우를 잡아, 상자 속에 넣어, 절대로 풀어주지마.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