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하라 죽이기 - #퍼뜨려주세요_이것이_진실입니다
도미나가 미도 지음, 김진환 옮김 / 라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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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온라인에서의 마녀사냥은 사실 새롭지 않다. 일방적인 한 쪽의 주장만 믿고 다른 쪽을 매도해 재산상의 피해를 끼치고, 심지어는 누군가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이 소설이 흡입력 있게 읽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런 사이버 불링에 너무 익숙해서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소설은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마녀사냥을 현실과 똑같이 구현했다. 일방적으로 아이하라를 비난하는 노마구치 부부와 네기시 키미에, 객관적인 사실 검증은 뒷전인 채 여기에 편승해서 아이하라를 물어뜨는 사람들, 그저 조회 수, 시청률에 눈 먼 사이버 렉카와 언론사들... 2~3달 지나자 이슈는 잊혀지고, 아이하라가 법적 대응을 예고하자 이들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참 입맛이 썼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아이하라에게 이들의 뒤늦은 사과와 변명이 무슨 소용이 있나. 


 단순히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과정뿐만 아니라 여기에 가담하는 주요 인물들의 심리도 자세하게 묘사된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사과를 원했던 노마구치 부부와 그들의 친구 네기시 키미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를 만들 수는 없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아이하라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특히 네기시 키미에는 친구를 위한다는 자기합리화와 자신이 인터넷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자기 효능감에 빠져서 오히려 피해자인 노마구치 부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정작 아이하라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아이하라의 동료들이 객관적 사실을 제시하며 노마구치 부부와 네기시의 주장을 논파하자 이 둘 사이의 관계에는 균열이 가게 되고, 이 모든 상황을 서로의 탓으로 돌린다. 그들의 어쭙잖은 정의감은 진짜 법 앞에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이하라에 대한 마녀사냥 과정에도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 그녀의 고객, 회사 동료 몇몇이 그녀를 위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온라인 친구인 유리코의 존재가 흥미로운데, 온라인이 누군가를 가해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양면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편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아이하라의 직장, 하르모니아 우에노이다. 단순히 사이버불링만 다뤘다면 밋밋했을텐데, 직원에 대한 사이버불링에 대처하는 이 회사의 방식이 혈압을 오르게 하지만 소설에 더 빠져들게 만든다. 경영진들은 아이하라를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지만 정작 아이하라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무능함과 무관심까지. 문제는 왠지 이조차도 현실에서 있을법한 사람들이고 실제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소설, 너무 현실고증이 잘 되어 있다.


 이 소설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이하라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점이다. 물론 하자쿠라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의외긴 했다. 보통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사이버불링 가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방법을 생각하는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다니? 하지만 하자쿠라의 주장도 납득이 되는 것이, 결국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도 회사, 이를 방치한 것도 회사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논픽션 같던 이 소설이 소설이구나(좋은 의미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나름 통쾌한 한 방이랄까.


 이야기는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다. 이 사태를 겪은 아이하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동료들도 대거 회사를 그만둔다. 당연하지, 직원을 저렇게 내팽개친 회사를 누가 다니고 싶을까. 안타까운 점은 사실 가해자는 회사인데 결국 떠나는 건 직원이라는 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걸까. 


 사실 결말이 속시원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하라는 평생 안고 가야 할 상처를 받았고, 재판이라는 지난한 과정이 그녀 앞에 놓여 있다. 사실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아이하라에게 있었던 일이 일거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때쯤 되면 사람들 뇌리에서 이 사건은 잊혀져서 딱히 명예회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되려 잊혀졌던 사건을 끄집어 내서 그녀의 상처도 헤집어 지던가. 그래도 그 가혹한 시간을 버티고 단단해진 아이하라가 새로운 출발을 위해 한 발 나아가는 걸 보면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아이하라 뿐만 아니라 각자 새로운 길로 나아갈 그녀의 동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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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미야는 문장을 눈으로 좇으며 ‘핸런의 면도날‘을 떠올렸다. ‘어리석음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일을 악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결국 미노의 무능함이 소란을 만들고, 악의를 찾아내려던 사람들이 일을 키운 셈이다. 단지 작은 실수들이 겹쳤을 뿐인데.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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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목격자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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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부에 에밀리 아룬델의 시점에서 작품이 진행되는데, 주요 인물들과 그녀의 관계, 집안 분위기 등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부유하지만 꼬장꼬장한 에밀리 아룬델과 그녀의 돈을 탐내는 그녀의 조카들. 많이 익숙한 그림이다. 저 당시나 지금이나 돈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은 변하지 않아서 씁쓸하다.


 그렇게 돈으로 엮인 관계를 유지하던 아룬델 양과 조카들. 다들 아룬델 양에게서 한 몫 챙겨보려는 수작을 부리고, 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집안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그 긴장감은 아룬델 양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폭발한다. 이 사고에서 아룬델 양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끼고 조카들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아룬델 양이 어떤 정황에서 의심을 느끼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후 2달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아룬델 양은 이미 사망한 상황에서 푸아로가 등장한다. 모두가 아룬델 양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믿고, 그 많은 재산을 말벗인 미니 로슨에게 상속한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 푸아로는 능숙하게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간의 사정들을 캐내고, 리틀 하우스에서 아룬델 양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한다. 누군가 계단에 실을 걸어 아룬델 양의 발이 걸리게 한 것이다. 이토록 단순한 방법이라니! 아룬델 양은 본인이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가족 중 누군가가 본인을 해하려고 했다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유언장을 바꿔 미니 로슨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는 다소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이고. 이걸 몰랐던 살인자는 아룬델 양을 확실하게 죽여 미수에 그쳤던 범죄를 완성하는데, 정작 기대했던 재산은 엉뚱한 사람에게 넘어갔으니. 이게 이 작품의 아이러니다. 범죄행위가 살인범의 동기와는 정반대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 그간 보통의 추리소설에서는 범죄를 통해 살인범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게 비틀리며 재미를 더한다.


 아룬델 양의 재산을 둘러싼 조카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찰스와 테레사는 불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재산을 되찾겠다며 이를 갈지만, 사실 남매인 그 둘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모양새다. 벨라는 재산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포기하고, 미니 로슨의 동정심에 기대어 본인의 어려운 처지를 역설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건달 같은 찰스, 화려한 파티걸의 삶을 살며 돈을 탕진한 테레사, 그런 테레사를 동경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벨라, 착하지만 둔한 미니 로슨, 이 네 사람의 캐릭터성도 흥미롭다. 사실 익숙한 캐릭터들이긴 한데 이 조합들이 모여서 만드는 묘한 시너지가 있다.  

 

 결말에 가서 밝혀진 범인의 정체는 좀 놀랍지만, 이내 수긍하게 된다. 분명 끔찍한 범죄자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바라는 인간이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용서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외딴 곳에서 고된 삶(범인의 계층을 고려했을 때)을 살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그 탈출구로 생각한 것이 살인이라니. 결국 스스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길에 이른 셈이다. 범인이 죽고 나서야 범인은 원하던 바가 이뤄졌으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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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미술관 - 매일 내 마음에 그림 한 점, 활짝
정하윤 지음 / 이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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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책이 정말 화사하다. 형광 핑크에 가까운 배경에 표지를 가득 채운 갖가지 꽃들까지 눈길을 확 잡아챈다.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에 읽으면 기분이 화사해질 것 같은 그런 책.


 모네, 반 고흐, 고갱, 클림트 등 유명한 화가의 작품도 많지만 낯선 화가들의 작품들도 많아서 책장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는 화가여도 시기에 따른 화풍의 변화나 그 당시 화가의 개인사에 따른 작품의 분위기 등을 느낄 수 있다.


 꽃 그림이라고 하면 굉장히 화사할 것 같지만, 의외로 음울한 느낌을 주는 그림도 있고 이게 꽃이야? 싶을 정도로 형태가 뭉그러진 그림도 있다. 화가의 감정에 따라 꽃이 활짝 펴 생기가 돌기도 하고, 쓸쓸하게 스러져 가기도 한다.


 사실 꽃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최근에 카페에 갔다가 화병에 프리지어가 풍성하게 꽂혀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적이 있다. 꽤나 피곤한 날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갑자기 에너지가 솟았다. 꽃을 그린 화가들도 그랬을까? 그들은 왜 꽃을 그렸을까. 꽃의 생명력, 아름다움을 화폭에 붙잡아 두려고? 아니면 꽃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 팍팍한 도시살이에 자연 한 조각이 너무나 그리워져서? 지고 있는 꽃을 보자니 슬픈 감상에 젖어서?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꽃을 그리면서 화가들도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름다운 꽃은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설령 지고 있는 꽃이라도 다음 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또 아름답게 피어날테니 그림을 그리면서 삶의 희망을 조금은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그림들이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마리 에그너의 꽃 피는 보금자리. 유제프 메호페르의 오월의 태양, 하랄 솔베리의 여름밤이 특히 좋았다.


< 꽃 피는 보금자리 (마리 에그너) >


 이 작품은 보자마자 라일락 향이 코 끝에 스치는 듯했다. 어쩜 이렇게 정교하게 그림을 그렸는지, 마치 내가 그림 속에 들어간 느낌. 작은 정원에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 화사하게 내리쬐고 그 밑에 풍성한 라일락과 만개한 꽃나무... 정원 한 켠에 의자를 두고 차를 홀짝이며 하염없이 라일락과 꽃들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 보금자리라는 제목처럼 그림이 주는 따뜻함에 보고 있는 내가 나른해 진다.



 < 오월의 태양 (유제프 메호페르>


 티타임을 즐기던 귀부인(어쩌면 메호페르의 부인?)은 차 마시다 말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가까이서 눈에 담고 싶다는 듯. 층고가 높은 공간에는 밝은 빛이 내리쬐고, 꽃나무는 무성하게 꽃을 피운 채 곧게 서 있다. 보고만 있어도 평화롭고, 마음이 충만해진다. 아마 이 그림을 그리던 메호페르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 여름밤 (하랄 솔베리>


 여름밤이라는 제목과 달리, 그림 속은 완전한 밤이 아니다. 바로 백야 현상이다. 컨버스 한켠이 아직 훤하게 밝고, 그 위로 옥색, 푸른색 하늘이 펼쳐진다. 유럽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테라스. 난간에는 빨간 꽃과 하얀 꽃이 넝쿨처럼 둘러싸여 있고, 테이블에는 마시다 만 술잔들이 놓여있다. 노르웨이는 가보지 못 했지만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유럽 여행이 생각났다. 난간마다 화분이나 넝쿨식물이 있고, 조그마한 테이블에 나와서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 아, 이게 유럽의 낭만이구나 싶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이 그림은 노르웨이의 백야에 대한 환상을 내게 심어줬다. 언젠가 노르웨이의 여름에 나도 저런 테라스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봐야지. 


 < 평화를 구하며 날개를 편 비둘기 (마리아 프리마첸코>


 저자는 마지막 작품으로 우크라이나 화가의 작품을 실었다. 이 책이 재작년 6월에 출간되었으니, 시기가 시기인 만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 화가의 작품이 전쟁 중 파괴되었다고 하니 전쟁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하루 빨리 평화가 오기를, 이 작품처럼 평화가 꽃처럼 활짝 만개하는 날이 오기를.

 

작품은 파괴될지라도 작품의 아름다움은 결코 죽지 않는다. 한 계절 피었다가 지고, 다시 다음 계절에 힘껏 봉오리를 올리는 수많은 꽃처럼 말이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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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당근을 먹지 않는다 - 우리가 동물에 대해 알아야 할 진실
위고 클레망 지음, 박찬규 옮김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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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건이나 길고양이를 잔혹하게 학대하는 사건들이 심심찮게 일어나 사람들의 공분을 사곤 한다. 멀리 아프리카의 밀렵꾼이나, 아마존의 채벌꾼들에 의해 동물들이 무차별 학살 당하고 생태계까지 무너진다는 기사도 종종 나온다.


 우리는 동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같은 인간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모르는 점이 한가득인데, 동물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더 없지 않을까? 동물들의 사고 능력이나 의사소통 방식, 그들의 사회에 대해 우리는 일부만 알 뿐, 미지의 영역이 더 크다.


 이 책은 사람들이 흔히 동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점을 잡아주고, 동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동물과 인간의 공존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래서 제목도 '토끼는 당근을 먹지 않는다'이다. 토끼가 당근을 안 먹어...?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토끼가 당근을 먹는다고 믿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 이유란 게 전혀 토끼와 관계가 없다는 점이 웃플 따름이다.


 저자는 여러 사람들을 인텨뷰하고, 본인 스스로도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경험담과 자신의 경험담을 적절히 들려주는데, 돌고래 캐시 이야기가 정말 마음 아팠다. 자유롭게 바다를 헤엄쳐야 할 돌고래가 좁은 수족관에 갇혀서 쇼에 동원되고, 결국 스스로 선택한 길이 죽음이라니... 죽어서야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걸 캐시도 알았던걸까?


 사실 공장형 축산, 동물쇼, 동물 서식지 파괴 등은 익숙한 내용이었지만 사냥은 처음 보는 이야기라 놀라웠다. 한국에서 사냥이 매우 제한적인 반면,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사냥이 고급 아웃도어 스포츠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규모가 크고, 조직적으로 행해지는 줄은 몰랐다. 사실 축산이나 동물쇼는 먹을 것을 얻는다거나 경제적 이득을 창출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지, 사냥은 그저 유흥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건데... 그걸 재밋거리라고 즐긴다고 하니 소름이 끼쳤다. 


 개인적으로 비건은 아니지만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고최대한 동물복지 식품을 사려고 노력한다. 동물원, 아쿠아리움도 어릴 때 이후로는 가지 않고, 동물쇼도 안 본다. 사실 이러한 선택들은 동물을 보호하는 취지도 있지만 나 자신의 효용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육류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동물원, 아쿠아리움, 동물쇼는 굳이 비싼 돈 주고 볼만큼 재미있는지도 모르겠고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만 불편하고... 솔직히 나 하나 노력한다고 뭐가 바뀔까? 라는 생각도 항상 한 켠에 있었다. 저자 또한 이 부분을 지적한다. 그래도 계속 하라고, 행동이 중요하다고. 개인 차원에서 행동하고, 더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 집단으로 뭉쳐서 행동하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은 지구를 마치 자기 것인 마냥 빠르게 소진하고 있다. 그로 인한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집 근처 천변을 산책하다 보면 가끔씩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들이 평화롭게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집 뒤에 야트막한 산을 올라가다 운이 좋으면 다람쥐를 볼 수 있다. 모두 기분 좋은 순간들이다. 이 깜짝 선물 같은 순간을 계속 누릴 수 있기를, 나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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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자 파스칼 피크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했다. "인간만이 생각하는 동물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존재다" - P23

킁킁이 피난처에 구조되어 온 닭들은 모두 ‘삶‘의 상처를 안고 그곳에 왔다. "모두 다르에 염증이 있어요. 최선을 다해 돌보고 매일 보살펴도 오래 살 수는 없습니다. 모두 일찍 죽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으니까요" - P59

숲속에서는 보호종이든 아니든 차이가 없습니다. 한 마리의 동물을 풀어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방아쇠를 한 번 당기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죠 - P141

거대한 생명사슬의 작은 고리 중 하나일 뿐인 인간은 결코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소설가 로맹 가리는 말했다. "요로지 인간만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에서 인간이 설 자리는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동물들이 필요하다. 그들의 관심사는 곧 우리들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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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왜 내 말을 안 들을까? - 20년 경력 상담심리사가 실전에서 써먹는 듣는 기술, 말하는 기술
도하타 가이토 지음, 김소연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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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럽지만 나는 말이 많은 편이다. 말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자기 주장도 세고, 침묵도 잘 견디지 못한다. 어릴 때는 지적 허영심에 차서 아는 척도 많이 했었다. 누군가는 나를 밥맛없다 생각했겠지만 운 좋게도 내게 말을 재밌게 하고, 참 시원시원하다고 해주는 좋은 사람이 주변에 더  많았다. 그래서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던 내가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것은 나와 같은 사람과 대화할 때였다. 한 가지 더 깨달은 점은? 와, 타인의 말을 듣는다는 거 생각보다 엄청 피곤한 행위였구나!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말수가 좀 줄었다. 상사나 동료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굳이 내가 내 의견이나 감정 등을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다쟁이 기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가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대나무 숲(보통은 친한 친구나 가족)을 찾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는 이조차도 피곤하고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들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내가 회사에서 왜 이런 상황에 놓인건지, 내 상사는 어떤 사람인지, 우리 팀 분위기가 어떤지 등등 회사 외부인이라면 알 수 없는 이런 배경 설명을 하기가 힘에 부쳤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내 편 들어줘라 하기에는 상대방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하는 것 같고. 그렇게 나는 입을 다물고 스트레스를 속으로 삭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상처를 핥고 달래면서,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다른 사람의 힘든 이야기가 듣기 싫어졌다. 나도 힘든데, 타인의 힘듦까지 들어주고 보듬어줄 여유는 없었다. 사람들이 차 한 잔 하자고 해도 바쁘다며 안 가고, 동기들이 저녁이나 먹으며 스트레스 풀자는 소리도 듣기 싫었다. 어차피 가봤자 끝도 없는 불행 퍼레이드만 들어야 할건데, 내가 왜? 그렇게 스스로 고립시키고 역시 인생은 각자도생이지! 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내게 저 당시를 떠올리게 했다. 제목인 '사람들은 왜 내 말을 안 들을까?'와 달리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싶은 것이 내 고통의 원인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들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잘 듣기 위한 방법으로 일단 누군가에게 자신의 어려움 먼저 털어놓고, 자신이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라고 조언을 할 정도다. 누구에게나 듣기 총량은 정해져 있어, 내 안의 소리를 듣다 보면 남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원리라고나 할까.


 이 책은 단순히 듣기나 말하기에 대한 스킬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듣기와 말하기라는 행동을 빌어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의 중요성, 더 나아가 연대의 회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는 인트로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병폐 대부분이 듣지 않는 것에서 일어난다고 꼬집으며, 듣기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듣지 않게 된 것일까? 책은 이 지점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다시 듣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짚어보고, 마지막에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한 듣기와 말하기(저자는 '들려주기'라고 표현한다) 스킬까지 제시한다. 이 스킬들은 사실 너무나 간단하고 엉뚱해 보여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오히려 딱딱한 스킬들에 비해서 실제 따라해보기에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다.


 스킬을 제외한 각 장은 저자가 쓴 '사회계평'이라는 평론과 그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가 상담심리사라서 그런가, 담담하고 진솔한 저자의 글에 나도 모르게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있었다. 전문용어도 거의 나오지 않고 평이하고 쉽게 쓰여 막힘 없이 읽힌다. 저자가 쓴 평론은 작금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지만 해설에서는 저자가 지닌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 듣기의 회복을 통해 사회에 온기가 돌기 바라는 소망이 엿보인다.


 제목만 보고 소통의 기술을 다룬 책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기분 좋게 놀랐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저자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책 읽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청자로서, 화자로서, 그리고 소통을 지켜보는 제삼자로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알게 되었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자, 여기서부터 시작합시다. 당신이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입니다. 마음이 쫓기고 위태로울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 ‘듣기‘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 가능합니다. - P17

결핍은 바꿀 수 없더라도 거기에 있는 고독과 마주할 수는 있습니다. 나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걸, 듣습니다. 이게 바로 관계가 점차 악화할 때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듣기‘는 "미안해요, 내가 잘 몰랐어요"라고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P47

그건 실패했을 때 자기책임을 묻는 우리 사회의 목소리다. 희박해진 유대 관계란 무슨 일이 생기면 폭력적으로 내팽겨쳐지는 관계에 불과하다. - P53

옳은 일을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고, 결단할 수 있는 것은 건강할 때뿐입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반응하기 벅찹니다. 그러므로 궁지에 몰렸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릴 만한 언행을 하게 되는 겁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강한 의지가 아니라, 진단서를 써줄 의사입니다. - P117

모두가 염려하고 있다. 그리고 본인도 그 염려에 의지할 수 있다. 이게 마음 회복의 핵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가 들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본인도 나의 이야기를 누가 듣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마음은 회복되어 간다. 여기에 ‘듣기‘의 힘이 있습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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