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 피는 미술관 - 매일 내 마음에 그림 한 점, 활짝 꽃 피는 미술관
정하윤 지음 / 이봄 / 2022년 6월
평점 :
구판절판


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일단, 책이 정말 화사하다. 형광 핑크에 가까운 배경에 표지를 가득 채운 갖가지 꽃들까지 눈길을 확 잡아챈다.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에 읽으면 기분이 화사해질 것 같은 그런 책.


 모네, 반 고흐, 고갱, 클림트 등 유명한 화가의 작품도 많지만 낯선 화가들의 작품들도 많아서 책장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는 화가여도 시기에 따른 화풍의 변화나 그 당시 화가의 개인사에 따른 작품의 분위기 등을 느낄 수 있다.


 꽃 그림이라고 하면 굉장히 화사할 것 같지만, 의외로 음울한 느낌을 주는 그림도 있고 이게 꽃이야? 싶을 정도로 형태가 뭉그러진 그림도 있다. 화가의 감정에 따라 꽃이 활짝 펴 생기가 돌기도 하고, 쓸쓸하게 스러져 가기도 한다.


 사실 꽃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최근에 카페에 갔다가 화병에 프리지어가 풍성하게 꽂혀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적이 있다. 꽤나 피곤한 날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갑자기 에너지가 솟았다. 꽃을 그린 화가들도 그랬을까? 그들은 왜 꽃을 그렸을까. 꽃의 생명력, 아름다움을 화폭에 붙잡아 두려고? 아니면 꽃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 팍팍한 도시살이에 자연 한 조각이 너무나 그리워져서? 지고 있는 꽃을 보자니 슬픈 감상에 젖어서?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꽃을 그리면서 화가들도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름다운 꽃은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설령 지고 있는 꽃이라도 다음 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또 아름답게 피어날테니 그림을 그리면서 삶의 희망을 조금은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그림들이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마리 에그너의 꽃 피는 보금자리. 유제프 메호페르의 오월의 태양, 하랄 솔베리의 여름밤이 특히 좋았다.


< 꽃 피는 보금자리 (마리 에그너) >


 이 작품은 보자마자 라일락 향이 코 끝에 스치는 듯했다. 어쩜 이렇게 정교하게 그림을 그렸는지, 마치 내가 그림 속에 들어간 느낌. 작은 정원에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 화사하게 내리쬐고 그 밑에 풍성한 라일락과 만개한 꽃나무... 정원 한 켠에 의자를 두고 차를 홀짝이며 하염없이 라일락과 꽃들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 보금자리라는 제목처럼 그림이 주는 따뜻함에 보고 있는 내가 나른해 진다.



 < 오월의 태양 (유제프 메호페르>


 티타임을 즐기던 귀부인(어쩌면 메호페르의 부인?)은 차 마시다 말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가까이서 눈에 담고 싶다는 듯. 층고가 높은 공간에는 밝은 빛이 내리쬐고, 꽃나무는 무성하게 꽃을 피운 채 곧게 서 있다. 보고만 있어도 평화롭고, 마음이 충만해진다. 아마 이 그림을 그리던 메호페르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 여름밤 (하랄 솔베리>


 여름밤이라는 제목과 달리, 그림 속은 완전한 밤이 아니다. 바로 백야 현상이다. 컨버스 한켠이 아직 훤하게 밝고, 그 위로 옥색, 푸른색 하늘이 펼쳐진다. 유럽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테라스. 난간에는 빨간 꽃과 하얀 꽃이 넝쿨처럼 둘러싸여 있고, 테이블에는 마시다 만 술잔들이 놓여있다. 노르웨이는 가보지 못 했지만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유럽 여행이 생각났다. 난간마다 화분이나 넝쿨식물이 있고, 조그마한 테이블에 나와서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 아, 이게 유럽의 낭만이구나 싶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이 그림은 노르웨이의 백야에 대한 환상을 내게 심어줬다. 언젠가 노르웨이의 여름에 나도 저런 테라스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봐야지. 


 < 평화를 구하며 날개를 편 비둘기 (마리아 프리마첸코>


 저자는 마지막 작품으로 우크라이나 화가의 작품을 실었다. 이 책이 재작년 6월에 출간되었으니, 시기가 시기인 만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 화가의 작품이 전쟁 중 파괴되었다고 하니 전쟁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하루 빨리 평화가 오기를, 이 작품처럼 평화가 꽃처럼 활짝 만개하는 날이 오기를.

 

작품은 파괴될지라도 작품의 아름다움은 결코 죽지 않는다. 한 계절 피었다가 지고, 다시 다음 계절에 힘껏 봉오리를 올리는 수많은 꽃처럼 말이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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