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하라 죽이기 - #퍼뜨려주세요_이것이_진실입니다
도미나가 미도 지음, 김진환 옮김 / 라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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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온라인에서의 마녀사냥은 사실 새롭지 않다. 일방적인 한 쪽의 주장만 믿고 다른 쪽을 매도해 재산상의 피해를 끼치고, 심지어는 누군가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이 소설이 흡입력 있게 읽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런 사이버 불링에 너무 익숙해서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소설은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마녀사냥을 현실과 똑같이 구현했다. 일방적으로 아이하라를 비난하는 노마구치 부부와 네기시 키미에, 객관적인 사실 검증은 뒷전인 채 여기에 편승해서 아이하라를 물어뜨는 사람들, 그저 조회 수, 시청률에 눈 먼 사이버 렉카와 언론사들... 2~3달 지나자 이슈는 잊혀지고, 아이하라가 법적 대응을 예고하자 이들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참 입맛이 썼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아이하라에게 이들의 뒤늦은 사과와 변명이 무슨 소용이 있나. 


 단순히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과정뿐만 아니라 여기에 가담하는 주요 인물들의 심리도 자세하게 묘사된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사과를 원했던 노마구치 부부와 그들의 친구 네기시 키미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를 만들 수는 없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아이하라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특히 네기시 키미에는 친구를 위한다는 자기합리화와 자신이 인터넷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자기 효능감에 빠져서 오히려 피해자인 노마구치 부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정작 아이하라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아이하라의 동료들이 객관적 사실을 제시하며 노마구치 부부와 네기시의 주장을 논파하자 이 둘 사이의 관계에는 균열이 가게 되고, 이 모든 상황을 서로의 탓으로 돌린다. 그들의 어쭙잖은 정의감은 진짜 법 앞에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이하라에 대한 마녀사냥 과정에도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 그녀의 고객, 회사 동료 몇몇이 그녀를 위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온라인 친구인 유리코의 존재가 흥미로운데, 온라인이 누군가를 가해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양면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편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아이하라의 직장, 하르모니아 우에노이다. 단순히 사이버불링만 다뤘다면 밋밋했을텐데, 직원에 대한 사이버불링에 대처하는 이 회사의 방식이 혈압을 오르게 하지만 소설에 더 빠져들게 만든다. 경영진들은 아이하라를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지만 정작 아이하라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무능함과 무관심까지. 문제는 왠지 이조차도 현실에서 있을법한 사람들이고 실제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소설, 너무 현실고증이 잘 되어 있다.


 이 소설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이하라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점이다. 물론 하자쿠라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의외긴 했다. 보통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사이버불링 가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방법을 생각하는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다니? 하지만 하자쿠라의 주장도 납득이 되는 것이, 결국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도 회사, 이를 방치한 것도 회사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논픽션 같던 이 소설이 소설이구나(좋은 의미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나름 통쾌한 한 방이랄까.


 이야기는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다. 이 사태를 겪은 아이하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동료들도 대거 회사를 그만둔다. 당연하지, 직원을 저렇게 내팽개친 회사를 누가 다니고 싶을까. 안타까운 점은 사실 가해자는 회사인데 결국 떠나는 건 직원이라는 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걸까. 


 사실 결말이 속시원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하라는 평생 안고 가야 할 상처를 받았고, 재판이라는 지난한 과정이 그녀 앞에 놓여 있다. 사실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아이하라에게 있었던 일이 일거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때쯤 되면 사람들 뇌리에서 이 사건은 잊혀져서 딱히 명예회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되려 잊혀졌던 사건을 끄집어 내서 그녀의 상처도 헤집어 지던가. 그래도 그 가혹한 시간을 버티고 단단해진 아이하라가 새로운 출발을 위해 한 발 나아가는 걸 보면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아이하라 뿐만 아니라 각자 새로운 길로 나아갈 그녀의 동료들도.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시노미야는 문장을 눈으로 좇으며 ‘핸런의 면도날‘을 떠올렸다. ‘어리석음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일을 악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결국 미노의 무능함이 소란을 만들고, 악의를 찾아내려던 사람들이 일을 키운 셈이다. 단지 작은 실수들이 겹쳤을 뿐인데.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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