벙어리 목격자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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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는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초반부에 에밀리 아룬델의 시점에서 작품이 진행되는데, 주요 인물들과 그녀의 관계, 집안 분위기 등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부유하지만 꼬장꼬장한 에밀리 아룬델과 그녀의 돈을 탐내는 그녀의 조카들. 많이 익숙한 그림이다. 저 당시나 지금이나 돈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은 변하지 않아서 씁쓸하다.


 그렇게 돈으로 엮인 관계를 유지하던 아룬델 양과 조카들. 다들 아룬델 양에게서 한 몫 챙겨보려는 수작을 부리고, 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집안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그 긴장감은 아룬델 양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폭발한다. 이 사고에서 아룬델 양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끼고 조카들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아룬델 양이 어떤 정황에서 의심을 느끼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후 2달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아룬델 양은 이미 사망한 상황에서 푸아로가 등장한다. 모두가 아룬델 양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믿고, 그 많은 재산을 말벗인 미니 로슨에게 상속한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 푸아로는 능숙하게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간의 사정들을 캐내고, 리틀 하우스에서 아룬델 양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한다. 누군가 계단에 실을 걸어 아룬델 양의 발이 걸리게 한 것이다. 이토록 단순한 방법이라니! 아룬델 양은 본인이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가족 중 누군가가 본인을 해하려고 했다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유언장을 바꿔 미니 로슨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는 다소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이고. 이걸 몰랐던 살인자는 아룬델 양을 확실하게 죽여 미수에 그쳤던 범죄를 완성하는데, 정작 기대했던 재산은 엉뚱한 사람에게 넘어갔으니. 이게 이 작품의 아이러니다. 범죄행위가 살인범의 동기와는 정반대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 그간 보통의 추리소설에서는 범죄를 통해 살인범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게 비틀리며 재미를 더한다.


 아룬델 양의 재산을 둘러싼 조카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찰스와 테레사는 불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재산을 되찾겠다며 이를 갈지만, 사실 남매인 그 둘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모양새다. 벨라는 재산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포기하고, 미니 로슨의 동정심에 기대어 본인의 어려운 처지를 역설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건달 같은 찰스, 화려한 파티걸의 삶을 살며 돈을 탕진한 테레사, 그런 테레사를 동경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벨라, 착하지만 둔한 미니 로슨, 이 네 사람의 캐릭터성도 흥미롭다. 사실 익숙한 캐릭터들이긴 한데 이 조합들이 모여서 만드는 묘한 시너지가 있다.  

 

 결말에 가서 밝혀진 범인의 정체는 좀 놀랍지만, 이내 수긍하게 된다. 분명 끔찍한 범죄자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바라는 인간이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용서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외딴 곳에서 고된 삶(범인의 계층을 고려했을 때)을 살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그 탈출구로 생각한 것이 살인이라니. 결국 스스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길에 이른 셈이다. 범인이 죽고 나서야 범인은 원하던 바가 이뤄졌으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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