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왜 내 말을 안 들을까? - 20년 경력 상담심리사가 실전에서 써먹는 듣는 기술, 말하는 기술
도하타 가이토 지음, 김소연 옮김 / 문예출판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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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끄럽지만 나는 말이 많은 편이다. 말로 스트레스를 푸는 타입이라고나 할까. 자기 주장도 세고, 침묵도 잘 견디지 못한다. 어릴 때는 지적 허영심에 차서 아는 척도 많이 했었다. 누군가는 나를 밥맛없다 생각했겠지만 운 좋게도 내게 말을 재밌게 하고, 참 시원시원하다고 해주는 좋은 사람이 주변에 더  많았다. 그래서 별다른 문제의식을 느끼지 못하던 내가 이 사실을 깨달았던 것은 나와 같은 사람과 대화할 때였다. 한 가지 더 깨달은 점은? 와, 타인의 말을 듣는다는 거 생각보다 엄청 피곤한 행위였구나!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말수가 좀 줄었다. 상사나 동료의 말을 들어야 하는 경우가 많아졌기도 하고, 나 스스로도 굳이 내가 내 의견이나 감정 등을 말하고 싶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수다쟁이 기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아서, 가끔 임금님 귀는 당나귀 귀라고 외칠 대나무 숲(보통은 친한 친구나 가족)을 찾기도 했었다. 그러나 어느 날부터는 이조차도 피곤하고 지친다는 생각이 들었다. 내가 힘들다는 점을 상대방에게 납득시키기 위해 내가 회사에서 왜 이런 상황에 놓인건지, 내 상사는 어떤 사람인지, 우리 팀 분위기가 어떤지 등등 회사 외부인이라면 알 수 없는 이런 배경 설명을 하기가 힘에 부쳤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내 편 들어줘라 하기에는 상대방을 감정 쓰레기통으로 대하는 것 같고. 그렇게 나는 입을 다물고 스트레스를 속으로 삭이기 시작했다.


 그렇게 스스로의 상처를 핥고 달래면서, 한 가지 변화가 일어났다. 다른 사람의 힘든 이야기가 듣기 싫어졌다. 나도 힘든데, 타인의 힘듦까지 들어주고 보듬어줄 여유는 없었다. 사람들이 차 한 잔 하자고 해도 바쁘다며 안 가고, 동기들이 저녁이나 먹으며 스트레스 풀자는 소리도 듣기 싫었다. 어차피 가봤자 끝도 없는 불행 퍼레이드만 들어야 할건데, 내가 왜? 그렇게 스스로 고립시키고 역시 인생은 각자도생이지! 라고 생각했다.


 이 책은 내게 저 당시를 떠올리게 했다. 제목인 '사람들은 왜 내 말을 안 들을까?'와 달리 타인의 말을 듣지 않고 싶은 것이 내 고통의 원인이었지만, 이 책에서는 들을 여유가 없는 사람이 듣지 못하는 것은 너무나 자연스럽고 당연한 사실이라고 지적한다. 잘 듣기 위한 방법으로 일단 누군가에게 자신의 어려움 먼저 털어놓고, 자신이 들을 수 있는 공간을 만들라고 조언을 할 정도다. 누구에게나 듣기 총량은 정해져 있어, 내 안의 소리를 듣다 보면 남의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원리라고나 할까.


 이 책은 단순히 듣기나 말하기에 대한 스킬을 알려주는 책이 아니다. 저자는 듣기와 말하기라는 행동을 빌어 사람과 사람간의 소통의 중요성, 더 나아가 연대의 회복에 대해 말하고 있다. 이는 인트로에서부터 분명하게 드러난다. 저자는 우리 사회의 병폐 대부분이 듣지 않는 것에서 일어난다고 꼬집으며, 듣기의 회복이 필요하다고 역설한다. 그렇다면 우리는 왜 듣지 않게 된 것일까? 책은 이 지점에서 시작해서 우리가 다시 듣기 위해 필요한 게 무엇인지 짚어보고, 마지막에 실생활에서 적용할 수 있는 간단한 듣기와 말하기(저자는 '들려주기'라고 표현한다) 스킬까지 제시한다. 이 스킬들은 사실 너무나 간단하고 엉뚱해 보여 피식 웃음이 나오기도 하지만 오히려 딱딱한 스킬들에 비해서 실제 따라해보기에 부담이 느껴지지 않는다.


 스킬을 제외한 각 장은 저자가 쓴 '사회계평'이라는 평론과 그에 대한 해설로 이루어져 있다. 저자가 상담심리사라서 그런가, 담담하고 진솔한 저자의 글에 나도 모르게 책을 읽으면서 위로를 받고 있었다. 전문용어도 거의 나오지 않고 평이하고 쉽게 쓰여 막힘 없이 읽힌다. 저자가 쓴 평론은 작금의 사회에 대한 날카로운 통찰력을 보여주지만 해설에서는 저자가 지닌 인간에 대한 따스한 애정, 듣기의 회복을 통해 사회에 온기가 돌기 바라는 소망이 엿보인다.


 제목만 보고 소통의 기술을 다룬 책일 것이라 생각했는데, 그보다 더 깊은 이야기를 다루고 있어서 기분 좋게 놀랐다. 개인적인 경험 때문인지 저자의 이야기에 크게 공감할 수 있었고, 그래서 책 읽는 시간이 더 즐거웠다. 청자로서, 화자로서, 그리고 소통을 지켜보는 제삼자로서 내가 어떻게 행동해야 할 지 알게 되었다.



이 게시물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아 작성되었습니다.

 



내 이야기를 들려주자, 여기서부터 시작합시다. 당신이 이야기를 듣지 못하는 것은 누군가가 당신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아서입니다. 마음이 쫓기고 위태로울 때 우리는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내 이야기를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야 합니다. ... ‘듣기‘는 ‘누군가가 내 이야기를 들어줄 때‘ 가능합니다. - P17

결핍은 바꿀 수 없더라도 거기에 있는 고독과 마주할 수는 있습니다. 나 때문에 고통받고 있다는 걸, 듣습니다. 이게 바로 관계가 점차 악화할 때 가장 필요한 일입니다. ‘듣기‘는 "미안해요, 내가 잘 몰랐어요"라고 말하기 위해 존재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 P47

그건 실패했을 때 자기책임을 묻는 우리 사회의 목소리다. 희박해진 유대 관계란 무슨 일이 생기면 폭력적으로 내팽겨쳐지는 관계에 불과하다. - P53

옳은 일을 하느냐 마느냐를 고민하고, 결단할 수 있는 것은 건강할 때뿐입니다. 컨디션이 좋지 않을 때는 눈앞에서 일어나는 일에 반응하기 벅찹니다. 그러므로 궁지에 몰렸을 때는 주변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릴 만한 언행을 하게 되는 겁니다. 어쩔 수 없습니다. 그럴 때 필요한 건 강한 의지가 아니라, 진단서를 써줄 의사입니다. - P117

모두가 염려하고 있다. 그리고 본인도 그 염려에 의지할 수 있다. 이게 마음 회복의 핵심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모두가 들으려 하고 있다. 그리고 본인도 나의 이야기를 누가 듣는 걸 두려워하지 않게 되었다. 이때 마음은 회복되어 간다. 여기에 ‘듣기‘의 힘이 있습니다. - P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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