판사의 언어, 판결의 속살 - 판사란 무엇이며, 판결이란 무엇인가
손호영 지음 / 동아시아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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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가끔 신문에 판결에 대한 기사가 실리면 대개 2가지 중 하나다. 국민 감정과 배치되는 판결이 나와 공분을 사거나, 반대로 차갑기만 할 것 같은 판결문에 판사의 따뜻한 마음이 담겨 화제가 되거나. 보통은 전자가 더 많은 것 같은데, 가끔씩 들려오는 미담이 그래서 더 소중하게 여겨진다.


 가끔 접하는 판결문들은 하나같이 감정이라고는 메마르고, 사실관계와 명확한 논리 전개로 가득 찬 냉정한 글이었다. 법이란 사회의 기틀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고 생각하면서도 이런 글은 쓰는 사람도 재미없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이 책의 저자는 판결을 하나의 이야기이자 콘텐츠로 본다. 판사가 자신이 맞닥뜨린 문제에 대해 고민한 과정과 결론이 판결에 담겨 있기 때문이다. 콘텐츠로서의 판결이라, 한 번도 생각해 본 적이 없는 관점이다.


 이 책은 크게 3부로 구성되어 있다. 판결문을 쓸 때 판사가 고려하는 원칙들, 판사가 판결문을 쓰는데 활용하는 기술적인 요소들, 판결문에서 드러나는 판사의 생각들. 모두 실제 판결문의 문장을 기반으로 저자의 사유가 펼쳐진다. 판사라서 왠지 판결문처럼 글을 쓸 것 같지만(?) 전혀 그렇지 않다. 오히려 판결문과 달리 글에서 법과 사람에 대한 애정과 따스함이 느껴진다.


 1부는 우리 사회에서 법이 맡고 있는 역할을 상기시켰다. 사실 법의 존재가 일상생활에서는 잘 느껴지지 않는다. 개인적으로는 그런 사회가 건강한 사회라고 생각한다. 법이 이미 사람들에게 충분히 체화되어서 굳이 인식하지 않고도 법을 준수하며 사는 사회라는 의미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런 상황에서는 법의 의미를 잊기 쉬운데, 1부에서는 판결에 드러난 법의 원칙들에 대해 다룬다. 법이란 곧 그 사회에서 할 수 있는 행동의 한계를 규정짓기 때문에 보수적일 수 밖에 없는데 그로 인해서 안정성이란 덕목을 얻을 수 있지만, 반면 변화에 유연하게 대처하지 못한다는 문제가 있다. 이 둘 사이의 균형점을 찾는 것이 굉장히 어려운데, 판사들도 항상 이 지점에서 고민이 많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2부는 판결문에 등장하는 수사적인 기법들을 주로 다룬다. 판례를 참고하기도 하고, 통계를 언급하기도 하고, 전문가 자문을 받기도 하고... 마치 대학생 때 배운 논리적 글쓰기의 한 사례를 보는 기분이었다. 결국 판사는 판결문으로 소통하는 사람이니, 재판 당사자와 국민들이 판사의 주장을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도록 판결문을 쓰는데 상당한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을 새삼 알 수 있었다.


 마지막 3부는 판결문답지 않은 판결문들이 많이 있었다. 자신의 감정을 적나라하게 드러낸 문장이나 상대의 주장을 반박하면서 다소 격양된 듯한 문장들을 보며 '아, 판사들도 사람이구나' 싶었다. 세상 무미건조한 글인 줄 알았던 판결문 속에 이렇게나 이질적인 문장들이라니. 본인들이 쓰는 문장이 기존 판결문의 문법과 맞지 않다는 것을 알면서도 이렇게 쓸 수 밖에 없었던 판사들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법이 사람들에게 조금 더 친숙하게 다가갈 수 있기를 바라며 이런 문장들을 쓰지 않았을까?


 판사들이라고 하면 고압적이거나 권위적인 이미지가 가장 먼저 생각난다. 아마 언론에 보도된 몇몇 사건들 때문에 더더욱 그러할 것이다. 하지만 판결문으로 바라본 판사들은 법의 테두리 안에서 자신이 맡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하는 사람이었고, 한편으로는 재판 당사자들에 대한 배려가 느껴지기도 했다. 다른 직업에 대해 이렇게 깊이 들어가본 적은 거의 처음인데, 내 직업에 대해서도 돌아볼 기회가 되었다. 만약 내가 내 직업으로 글을 쓴다면, 나는 무엇으로 글을 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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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하라 죽이기 - #퍼뜨려주세요_이것이_진실입니다
도미나가 미도 지음, 김진환 옮김 / 라곰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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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소설이 다루고 있는 온라인에서의 마녀사냥은 사실 새롭지 않다. 일방적인 한 쪽의 주장만 믿고 다른 쪽을 매도해 재산상의 피해를 끼치고, 심지어는 누군가의 생명까지 앗아가는 사건들이 얼마나 많았던가. 어쩌면 이 소설이 흡입력 있게 읽히는 이유는 우리가 이런 사이버 불링에 너무 익숙해서 이지 않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이 소설은 인터넷에서 일어나는 마녀사냥을 현실과 똑같이 구현했다. 일방적으로 아이하라를 비난하는 노마구치 부부와 네기시 키미에, 객관적인 사실 검증은 뒷전인 채 여기에 편승해서 아이하라를 물어뜨는 사람들, 그저 조회 수, 시청률에 눈 먼 사이버 렉카와 언론사들... 2~3달 지나자 이슈는 잊혀지고, 아이하라가 법적 대응을 예고하자 이들은 슬그머니 꼬리를 내린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들을 보면서 참 입맛이 썼다. 이미 만신창이가 된 아이하라에게 이들의 뒤늦은 사과와 변명이 무슨 소용이 있나. 


 단순히 마녀사냥이 일어나는 과정뿐만 아니라 여기에 가담하는 주요 인물들의 심리도 자세하게 묘사된다. 처음에는 제대로 된 사과를 원했던 노마구치 부부와 그들의 친구 네기시 키미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이상 자신들과 같은 피해자를 만들 수는 없다는 정의감에 사로잡혀 아이하라에 대한 비난을 멈추지 않는다. 특히 네기시 키미에는 친구를 위한다는 자기합리화와 자신이 인터넷에서 엄청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자기 효능감에 빠져서 오히려 피해자인 노마구치 부부보다도 더 적극적으로 나선다. 정작 아이하라가 변호사를 선임하고, 아이하라의 동료들이 객관적 사실을 제시하며 노마구치 부부와 네기시의 주장을 논파하자 이 둘 사이의 관계에는 균열이 가게 되고, 이 모든 상황을 서로의 탓으로 돌린다. 그들의 어쭙잖은 정의감은 진짜 법 앞에서 그렇게 쉽게 무너지는 것이었다. 


 그래도 아이하라에 대한 마녀사냥 과정에도 그녀에게 힘이 되어주는 사람들도 존재한다. 온라인에서 만난 친구, 그녀의 고객, 회사 동료 몇몇이 그녀를 위해 외로운 싸움을 이어간다. 온라인 친구인 유리코의 존재가 흥미로운데, 온라인이 누군가를 가해하는 공간이 될 수도 있지만, 시공간을 뛰어넘어서 새로운 친구를 사귀는 공간이 될 수 있다는 양면성을 잘 보여주기 때문이다.


 한편 이 소설을 더욱 흥미롭게 만드는 것은 아이하라의 직장, 하르모니아 우에노이다. 단순히 사이버불링만 다뤘다면 밋밋했을텐데, 직원에 대한 사이버불링에 대처하는 이 회사의 방식이 혈압을 오르게 하지만 소설에 더 빠져들게 만든다. 경영진들은 아이하라를 이 상황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지만 정작 아이하라에 대해서는 나몰라라 하고 아무런 도움을 주지 않는다. 심지어는 사태의 심각성을 전혀 깨닫지 못하는 무능함과 무관심까지. 문제는 왠지 이조차도 현실에서 있을법한 사람들이고 실제 있을 수 있는 상황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이 소설, 너무 현실고증이 잘 되어 있다.


 이 소설의 반전이라면 반전이라 할 수 있는 것은, 아이하라가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건다는 점이다. 물론 하자쿠라의 조언이 있었기 때문이긴 하지만, 의외긴 했다. 보통은 이런 일이 일어나면 사이버불링 가해자를 명예훼손으로 고소하는 방법을 생각하는데, 회사를 상대로 소송을 걸다니? 하지만 하자쿠라의 주장도 납득이 되는 것이, 결국 이러한 상황을 만든 것도 회사, 이를 방치한 것도 회사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논픽션 같던 이 소설이 소설이구나(좋은 의미로), 생각하게 되는 부분이다. 나름 통쾌한 한 방이랄까.


 이야기는 재판을 시작하기도 전에 끝난다. 이 사태를 겪은 아이하라 뿐만 아니라 그녀의 동료들도 대거 회사를 그만둔다. 당연하지, 직원을 저렇게 내팽개친 회사를 누가 다니고 싶을까. 안타까운 점은 사실 가해자는 회사인데 결국 떠나는 건 직원이라는 점이다. '절이 싫으면 중이 떠나라'는걸까. 


 사실 결말이 속시원하다고 할 수는 없다. 아이하라는 평생 안고 가야 할 상처를 받았고, 재판이라는 지난한 과정이 그녀 앞에 놓여 있다. 사실 소송에서 이긴다고 해도 아이하라에게 있었던 일이 일거에 사라지는 것도 아니고, 그때쯤 되면 사람들 뇌리에서 이 사건은 잊혀져서 딱히 명예회복이 되지 않을 수도 있다. 아니면 되려 잊혀졌던 사건을 끄집어 내서 그녀의 상처도 헤집어 지던가. 그래도 그 가혹한 시간을 버티고 단단해진 아이하라가 새로운 출발을 위해 한 발 나아가는 걸 보면 이 정도면 해피엔딩이라는 생각이 들면서 그녀를 응원하고 싶어진다. 아이하라 뿐만 아니라 각자 새로운 길로 나아갈 그녀의 동료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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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노미야는 문장을 눈으로 좇으며 ‘핸런의 면도날‘을 떠올렸다. ‘어리석음으로 충분히 설명되는 일을 악의 탓으로 돌리지 말라‘는 뜻이었다. 결국 미노의 무능함이 소란을 만들고, 악의를 찾아내려던 사람들이 일을 키운 셈이다. 단지 작은 실수들이 겹쳤을 뿐인데. - P27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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벙어리 목격자 - 애거서 크리스티 재단 공식 완역본 황금가지 애거서 크리스티 전집 32
애거서 크리스티 지음, 원은주 옮김 / 황금가지 / 2007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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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반부에 에밀리 아룬델의 시점에서 작품이 진행되는데, 주요 인물들과 그녀의 관계, 집안 분위기 등을 자연스럽게 알 수 있다. 부유하지만 꼬장꼬장한 에밀리 아룬델과 그녀의 돈을 탐내는 그녀의 조카들. 많이 익숙한 그림이다. 저 당시나 지금이나 돈을 둘러싼 인간의 탐욕은 변하지 않아서 씁쓸하다.


 그렇게 돈으로 엮인 관계를 유지하던 아룬델 양과 조카들. 다들 아룬델 양에게서 한 몫 챙겨보려는 수작을 부리고, 또 서로가 서로를 견제하며 집안에는 긴장감이 흐른다. 그 긴장감은 아룬델 양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면서 폭발한다. 이 사고에서 아룬델 양은 뭔가 석연치 않은 점을 느끼고 조카들에 대한 의심을 품기 시작한다. 이 시점에서 아룬델 양이 어떤 정황에서 의심을 느끼는지는 명확히 드러나지 않아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한다.


 이후 2달의 시간을 훌쩍 뛰어넘어, 아룬델 양은 이미 사망한 상황에서 푸아로가 등장한다. 모두가 아룬델 양이 병으로 사망했다고 믿고, 그 많은 재산을 말벗인 미니 로슨에게 상속한 것에 대해서만 관심을 가지고 왈가왈부한다. 푸아로는 능숙하게 사람들에게 접근하여 그간의 사정들을 캐내고, 리틀 하우스에서 아룬델 양이 계단에서 굴러 떨어진 것이 단순 사고가 아니라는 점을 발견한다. 누군가 계단에 실을 걸어 아룬델 양의 발이 걸리게 한 것이다. 이토록 단순한 방법이라니! 아룬델 양은 본인이 무언가에 걸려서 넘어졌다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아채고, 가족 중 누군가가 본인을 해하려고 했다 생각한 것이다. 그래서 유언장을 바꿔 미니 로슨에게 전 재산을 상속하는 다소 성급한 결정을 내린 것이고. 이걸 몰랐던 살인자는 아룬델 양을 확실하게 죽여 미수에 그쳤던 범죄를 완성하는데, 정작 기대했던 재산은 엉뚱한 사람에게 넘어갔으니. 이게 이 작품의 아이러니다. 범죄행위가 살인범의 동기와는 정반대인 결과를 초래했다는 점. 그간 보통의 추리소설에서는 범죄를 통해 살인범이 자신의 목적을 달성했는데, 이 작품에서는 이게 비틀리며 재미를 더한다.


 아룬델 양의 재산을 둘러싼 조카들의 반응도 흥미롭다. 찰스와 테레사는 불법적인 방법을 써서라도 재산을 되찾겠다며 이를 갈지만, 사실 남매인 그 둘도 서로를 믿지 못하는 모양새다. 벨라는 재산을 되찾기 위한 소송을 포기하고, 미니 로슨의 동정심에 기대어 본인의 어려운 처지를 역설하고 도움을 받으려고 한다. 건달 같은 찰스, 화려한 파티걸의 삶을 살며 돈을 탕진한 테레사, 그런 테레사를 동경하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는 벨라, 착하지만 둔한 미니 로슨, 이 네 사람의 캐릭터성도 흥미롭다. 사실 익숙한 캐릭터들이긴 한데 이 조합들이 모여서 만드는 묘한 시너지가 있다.  

 

 결말에 가서 밝혀진 범인의 정체는 좀 놀랍지만, 이내 수긍하게 된다. 분명 끔찍한 범죄자인데 안타까운 마음이 드는 것은 나도 내가 가지지 못한 것들을 바라는 인간이기 때문일까? 물론 그렇다고 해서 살인이 용서된다는 것은 아니지만. 외딴 곳에서 고된 삶(범인의 계층을 고려했을 때)을 살면서 스스로를 고립시키고, 그 탈출구로 생각한 것이 살인이라니. 결국 스스로 자기 자신을 파괴하는 길에 이른 셈이다. 범인이 죽고 나서야 범인은 원하던 바가 이뤄졌으니, 이것도 참 아이러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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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피는 미술관 - 매일 내 마음에 그림 한 점, 활짝
정하윤 지음 / 이봄 / 2022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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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단, 책이 정말 화사하다. 형광 핑크에 가까운 배경에 표지를 가득 채운 갖가지 꽃들까지 눈길을 확 잡아챈다. 비가 오는 우중충한 날에 읽으면 기분이 화사해질 것 같은 그런 책.


 모네, 반 고흐, 고갱, 클림트 등 유명한 화가의 작품도 많지만 낯선 화가들의 작품들도 많아서 책장 넘기는 재미가 쏠쏠하다. 아는 화가여도 시기에 따른 화풍의 변화나 그 당시 화가의 개인사에 따른 작품의 분위기 등을 느낄 수 있다.


 꽃 그림이라고 하면 굉장히 화사할 것 같지만, 의외로 음울한 느낌을 주는 그림도 있고 이게 꽃이야? 싶을 정도로 형태가 뭉그러진 그림도 있다. 화가의 감정에 따라 꽃이 활짝 펴 생기가 돌기도 하고, 쓸쓸하게 스러져 가기도 한다.


 사실 꽃은 보고만 있어도 기분이 좋아진다. 최근에 카페에 갔다가 화병에 프리지어가 풍성하게 꽂혀있는 것을 보고 나도 모르게 우와! 하고 감탄사를 내뱉은 적이 있다. 꽤나 피곤한 날이었는데 그 순간만큼은 갑자기 에너지가 솟았다. 꽃을 그린 화가들도 그랬을까? 그들은 왜 꽃을 그렸을까. 꽃의 생명력, 아름다움을 화폭에 붙잡아 두려고? 아니면 꽃과 함께 즐거운 시간을 보내는 사람들에 대한 애정과 관심? 팍팍한 도시살이에 자연 한 조각이 너무나 그리워져서? 지고 있는 꽃을 보자니 슬픈 감상에 젖어서? 저마다의 이유가 있겠지만 꽃을 그리면서 화가들도 잠시나마 시름을 잊을 수 있지 않았을까 싶다. 아름다운 꽃은 바라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고, 설령 지고 있는 꽃이라도 다음 해에 아무 일도 없었던 것 마냥 또 아름답게 피어날테니 그림을 그리면서 삶의 희망을 조금은 얻을 수 있지 않았을까.


 많은 그림들이 좋았지만, 그 중에서도 마리 에그너의 꽃 피는 보금자리. 유제프 메호페르의 오월의 태양, 하랄 솔베리의 여름밤이 특히 좋았다.


< 꽃 피는 보금자리 (마리 에그너) >


 이 작품은 보자마자 라일락 향이 코 끝에 스치는 듯했다. 어쩜 이렇게 정교하게 그림을 그렸는지, 마치 내가 그림 속에 들어간 느낌. 작은 정원에 따스한 봄날의 햇살이 화사하게 내리쬐고 그 밑에 풍성한 라일락과 만개한 꽃나무... 정원 한 켠에 의자를 두고 차를 홀짝이며 하염없이 라일락과 꽃들을 바라보면 얼마나 좋을까? 보금자리라는 제목처럼 그림이 주는 따뜻함에 보고 있는 내가 나른해 진다.



 < 오월의 태양 (유제프 메호페르>


 티타임을 즐기던 귀부인(어쩌면 메호페르의 부인?)은 차 마시다 말고 정원을 바라보고 있다. 아름다운 풍경을 가까이서 눈에 담고 싶다는 듯. 층고가 높은 공간에는 밝은 빛이 내리쬐고, 꽃나무는 무성하게 꽃을 피운 채 곧게 서 있다. 보고만 있어도 평화롭고, 마음이 충만해진다. 아마 이 그림을 그리던 메호페르도 이런 감정을 느끼지 않았을까?



 < 여름밤 (하랄 솔베리>


 여름밤이라는 제목과 달리, 그림 속은 완전한 밤이 아니다. 바로 백야 현상이다. 컨버스 한켠이 아직 훤하게 밝고, 그 위로 옥색, 푸른색 하늘이 펼쳐진다. 유럽에 가면 흔하게 볼 수 있는 테라스. 난간에는 빨간 꽃과 하얀 꽃이 넝쿨처럼 둘러싸여 있고, 테이블에는 마시다 만 술잔들이 놓여있다. 노르웨이는 가보지 못 했지만 이 그림을 보는 순간 유럽 여행이 생각났다. 난간마다 화분이나 넝쿨식물이 있고, 조그마한 테이블에 나와서 차를 마시거나 술을 마시는 사람들. 아, 이게 유럽의 낭만이구나 싶었다. 차분한 분위기의 이 그림은 노르웨이의 백야에 대한 환상을 내게 심어줬다. 언젠가 노르웨이의 여름에 나도 저런 테라스에서 고즈넉한 시간을 보내봐야지. 


 < 평화를 구하며 날개를 편 비둘기 (마리아 프리마첸코>


 저자는 마지막 작품으로 우크라이나 화가의 작품을 실었다. 이 책이 재작년 6월에 출간되었으니, 시기가 시기인 만큼 탁월한 선택이었다고 생각한다. 심지어 이 화가의 작품이 전쟁 중 파괴되었다고 하니 전쟁은 말 그대로 모든 것을 앗아간다는 말이 절절하게 와닿는다. 하루 빨리 평화가 오기를, 이 작품처럼 평화가 꽃처럼 활짝 만개하는 날이 오기를.

 

작품은 파괴될지라도 작품의 아름다움은 결코 죽지 않는다. 한 계절 피었다가 지고, 다시 다음 계절에 힘껏 봉오리를 올리는 수많은 꽃처럼 말이다. - P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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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끼는 당근을 먹지 않는다 - 우리가 동물에 대해 알아야 할 진실
위고 클레망 지음, 박찬규 옮김 / 구름서재(다빈치기프트) / 2023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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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근에는 동물보호에 대한 인식이 높아졌지만, 여전히 반려동물을 유기하는 사건이나 길고양이를 잔혹하게 학대하는 사건들이 심심찮게 일어나 사람들의 공분을 사곤 한다. 멀리 아프리카의 밀렵꾼이나, 아마존의 채벌꾼들에 의해 동물들이 무차별 학살 당하고 생태계까지 무너진다는 기사도 종종 나온다.


 우리는 동물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사실 같은 인간에 대해서도 아직까지 모르는 점이 한가득인데, 동물들에 대해서는 아는 게 더 없지 않을까? 동물들의 사고 능력이나 의사소통 방식, 그들의 사회에 대해 우리는 일부만 알 뿐, 미지의 영역이 더 크다.


 이 책은 사람들이 흔히 동물에 대해 잘못 알고 있는 점을 잡아주고, 동물에 대한 제대로 된 이해를 기반으로 한 동물과 인간의 공존이 중요하다는 점을 역설한다. 그래서 제목도 '토끼는 당근을 먹지 않는다'이다. 토끼가 당근을 안 먹어...? 책에서 저자는 사람들이 토끼가 당근을 먹는다고 믿게 된 이유를 설명하는데, 그 이유란 게 전혀 토끼와 관계가 없다는 점이 웃플 따름이다.


 저자는 여러 사람들을 인텨뷰하고, 본인 스스로도 현장을 찾아다니며 그들의 경험담과 자신의 경험담을 적절히 들려주는데, 돌고래 캐시 이야기가 정말 마음 아팠다. 자유롭게 바다를 헤엄쳐야 할 돌고래가 좁은 수족관에 갇혀서 쇼에 동원되고, 결국 스스로 선택한 길이 죽음이라니... 죽어서야 자유를 찾을 수 있다는 걸 캐시도 알았던걸까?


 사실 공장형 축산, 동물쇼, 동물 서식지 파괴 등은 익숙한 내용이었지만 사냥은 처음 보는 이야기라 놀라웠다. 한국에서 사냥이 매우 제한적인 반면, 유럽이나 북미에서는 사냥이 고급 아웃도어 스포츠라는 사실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이렇게 규모가 크고, 조직적으로 행해지는 줄은 몰랐다. 사실 축산이나 동물쇼는 먹을 것을 얻는다거나 경제적 이득을 창출한다는 명분이라도 있지, 사냥은 그저 유흥을 위해 동물을 죽이는건데... 그걸 재밋거리라고 즐긴다고 하니 소름이 끼쳤다. 


 개인적으로 비건은 아니지만 채식 위주의 식습관을 가지고 있고최대한 동물복지 식품을 사려고 노력한다. 동물원, 아쿠아리움도 어릴 때 이후로는 가지 않고, 동물쇼도 안 본다. 사실 이러한 선택들은 동물을 보호하는 취지도 있지만 나 자신의 효용에 따른 것이기도 했다. 육류를 잘 소화시키지 못하고, 동물원, 아쿠아리움, 동물쇼는 굳이 비싼 돈 주고 볼만큼 재미있는지도 모르겠고  보고 있으면 괜히 마음만 불편하고... 솔직히 나 하나 노력한다고 뭐가 바뀔까? 라는 생각도 항상 한 켠에 있었다. 저자 또한 이 부분을 지적한다. 그래도 계속 하라고, 행동이 중요하다고. 개인 차원에서 행동하고, 더 큰 힘을 발휘하기 위해 집단으로 뭉쳐서 행동하라고 말한다. 


 저자의 말처럼 인간은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인간은 지구를 마치 자기 것인 마냥 빠르게 소진하고 있다. 그로 인한 미래가 어떤 모습으로 다가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날씨가 좋은 날이면 집 근처 천변을 산책하다 보면 가끔씩 어미 오리와 새끼 오리들이 평화롭게 떠다니는 것을 볼 수 있다. 집 뒤에 야트막한 산을 올라가다 운이 좋으면 다람쥐를 볼 수 있다. 모두 기분 좋은 순간들이다. 이 깜짝 선물 같은 순간을 계속 누릴 수 있기를, 나뿐만 아니라 미래세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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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생물학자 파스칼 피크는 이 사실을 다음과 같은 말로 요약했다. "인간만이 생각하는 동물은 아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동물이 아니라고 생각하는 유일한 존재다" - P23

킁킁이 피난처에 구조되어 온 닭들은 모두 ‘삶‘의 상처를 안고 그곳에 왔다. "모두 다르에 염증이 있어요. 최선을 다해 돌보고 매일 보살펴도 오래 살 수는 없습니다. 모두 일찍 죽도록 프로그램되어 있으니까요" - P59

숲속에서는 보호종이든 아니든 차이가 없습니다. 한 마리의 동물을 풀어주려면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지만, 방아쇠를 한 번 당기는 것으로 모든 것이 끝나 버리죠 - P141

거대한 생명사슬의 작은 고리 중 하나일 뿐인 인간은 결코 혼자 살아남을 수 없다. 소설가 로맹 가리는 말했다. "요로지 인간만을 위해 만들어진 세상에서 인간이 설 자리는 없다." 우리에게는 다른 동물들이 필요하다. 그들의 관심사는 곧 우리들의 관심사이기도 하다. - P1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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