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 인도 여행을 갔던 당시, 알고 지내던 한국인 지인의 남친은 이탈리아 요리사였다. 그 집에 초대되어 그녀의 남친이 만들어 준 이탈리아 피자를 먹어본 기억이 있는 데 그때 먹었던 이탈리아 피자는 그 전까지 최고로 맛있다고 생각했던 피자헛 피자가 아니었다. 일단 그렇게 크고 두껍지 않았다. 작은 펜 크기로 도우도 얇고 무엇보다 그 고소했던 치즈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도 그때 먹었던 피자 맛을 잊지 못할 즈음 우연히 대학로에 있던 이탈리아식 피자 가게에서 다시금 당시의 피자를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된 이태리 음식을 한국 레스토랑에서 먹기엔 식사비가 만만치 않다. 웬만한 매니아가 아니라면 정통 레스토랑을 찾아다니기엔 부담스럽다. 더군다나 나이가 먹을 수록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도 사라지고 이제는 음식도 맛이 아닌 문화로 만나는 것을 즐긴다. 음식 문화에 대한 접근으로 책 만한 것이 없다. 혀가 아닌 머리로 만나는 음식의 세계. 그래서 이런류의 책이 너무도 반갑고 재밌다. 이 책 [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 는 나의 구미에 딱 맞는 책이다. 평소 음식 관련된 책 읽기를 즐겨하는 데 이 책은 단순히 식재료와 요리과정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라는 나라와 세계사와의 역학관계 이탈리아 안의 소도시이며 이탈리아 정통을 간직한 볼로냐의 음식. 볼로냐의 문화 정치적 배경, 볼로냐에 사는 사람들과 유럽 전반의 역사까지 넘겨볼 수 있다.
사실 이태리라고 하면 나폴리나 시칠리아 섬과 같은 남부에 대한 이미지가 더 많았는데 이 책을 보며 이탈리아 북부의 성향과 색깔을 다시 재정립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사상적으로 과격하고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치도 먹히지 않았다는 볼로냐의 붉은 사상적( ?) 신념은 인상깊었다.
이 책을 쓴 권은중은 정년이 보장 된 회사를 그만두고 이탈리아 음식을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의 ICIF라는 요리학교에 들어가 요리를 배우고 현지 레스토랑에서 인턴생활을 하기도 한 반백의 작가다. 요리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인문학적 지식도 해박하여 책에 풀어놓은 요리를 포함한 내용들에 빠져들게 한다.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작가의 박식함에 감탄할 듯 싶다. 이 책은 이탈리아 도시 볼로냐의 정통 파스타로 시작해 프로슈토와 살루미라는 햄, 토마토, 치즈와 와인. 커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준다. 챕터마다 다루는 음식의 소재와 그 음식을 둘러싼 내용들이 생생해서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그라노 파다노의 맛을 어떤 맛일까가 궁금하게 만든다. 이탈리아의 문화나 경제적 수준이 그닥 좋지 않고 관광도시임에도 인프라나 치안이 발달되지 않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 데 이탈리아 특히 볼로냐라는 도시안에 그토록 깊은 전통과 자부심이 서려 있을 줄이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우린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이 책을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평소 세계사나 지리 역사 문화를 통틀어 공부하길 좋아하는 데 역시 활자로 접근하는 문화는 한계가 있다. 볼로냐가 품고 있는 향내와 음식, 쏟아지는 햇빛과 하늘 빛, 그리고 장인이 내려주는 커피 맛을 경험해 볼 수 없음이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