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모두의 적 - 해적 한 명이 바꿔놓은 세계사의 결정적 장면
스티븐 존슨 지음, 강주헌 옮김 / 한국경제신문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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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17세기 인도양 에서 카리브해까지 주름잡았던 해적이자 해적선이었던 팬시호의 우두머리 헨리 에브리의 행적을 주 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하지만 단순히 해적이었던 헨리 에브리의 개인적인 궤적만을 다룬 것이 아닌 대항해 시대를 거치며 유럽과 동양 특히 인도와 무역을 하기 위해 설립된 최초의 무역회사인 동인도 회사의 특성과 무술림 제국이었던 아브랑제브 왕족이 지배하던 인도의 배경도 함께 살펴 볼수 있다. 개인적으로 세계사에 흥미를 가지고 있지만 대항해 시대 보물선을 노리는 해적이 있었다는 건 어릴 적 읽었던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의 동화 '보물섬' 이나 영화 캐러비안의 해적 등과 같이 흥미진진한 에피소드를 통해 접해본 것이 다였지만 이 책의 표지에 적혀있는 문구처럼 해적 헨리 에브리가 저지른 담대한 도둑질이 역사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장면으로 묘사되고 접근되어 가는 이야기는 흥미로웠다.

역사학자 필립 스턴이 설득력있게 주장했듯이, 새뮤얼 애니슬리가 수라트 무역 사무소에 연금된 상태에서 처음 구상했던 이 전략은 인도와 영국 간의 관계에서 중대한 전환점이었다는 게 훗날 판명되었지만, 대영제국이 인도 아대륙을 지매하게 되는 과정에 대한 전통적인 해석에서는 간과되었다.

인류 모두의 적 중에서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영국의 비호아래 해적질을 한다고 판단한 인도의 무굴제국이 영국과의 무역을 철회하자 동인도회사는 폐업 위기에 몰리고 그 와중에 회사의 도난을 살리기 위한 명분으로 얻어낸 바다의 법적 지배권은 추후 영국이 인도를 식민지로 삼아 세계 강국으로 거듭나게 해 주는 계기를 마련해 준 발판이 되었다.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헨리 에브리는 인류 모두의 적이자 범죄자가 아닌 영국으로서는 세계사적으로 중요한 인물이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저자의 말대로

' 역사는 픽션과 구분되지 않고 이야기의 흐름을 조금만 뒤틀어도 결과가 크게 달라질' 수 밖에 없으니 함부로 단언할 순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을 쓴 저자 스티브존슨은 일반적인 관점으로는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을 콕 찍어 이야기를 펼쳐 나가고 있다. 저자는 말한다

역사의 넓은 관점에서 볼 때 대부분의 대치는 대체로 사소한 충돌, 즉 금세 꺼버리는 불꽃에 불과하다. 그러나 간혹 누군가가 그은 성냥불이 온 세상을 밝히기도 한다. 이 책은 그런 성냥불 중 하나에 대한 이야기다

안류 모두의 적 중에서

그런 관점에서 본다면 이 책은 탁월하다. 특히 무굴제국의 왕족들이 타고 있던 건스웨이호를 낚아체는 과정과 해적들의 이야기는 읽는 재미가 있다. 또한 지금도 소말리아 인근에 해적이 출몰하는 이유로 영국 해적이 기원이 되었다는 사실도 재미있었다. 해적에 관한 매우 흥미로운 이야기를 다룬 ' 인류 모두의 적'은 생소하지만 흥미로운 이야기가 가득하며 읽다 보면 빠져드는 소설적 묘미를 가지고 있는 색다른 세계사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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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강대국의 입지가 흔들리다 - 냉전, 한국 전쟁, 베트남 전쟁 세계통찰 시리즈 15
한솔교육연구모임 지음 / 솔과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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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솔 교육 연구 모임에서 집필해서 출간한 세계통찰 시리즈 중 미국역사를 다룬 15번째 책이며 특히 전쟁파트 중 세 번째 이야기다. 전 편격인 ' 강대국 중의 강대국이 되다 ' 가 제 2차 세계대전을 다뤘다면 이 책 ' 초 강대국의 입지가 흔들리다'는 소련과 벌인 냉전시기와 각종 무기를 물량으로 쏟아부었던 한국 전쟁과 미국 역사상 오점으로 남은 베트남 전쟁을 다루고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 서평을 쓰고 있는 오늘이 지나고 내일은 한국전쟁 발발 71주년이다. 개인적으로 한때 한국 근현대사를 공부하며 6. 25전쟁사에 관해 여러 권의 책을 찾아 읽은 적이 있다. ( 성공회대 김 동춘 교수의 책들이 좋았다 ) 역사를 공부함에 있어 전쟁사는 전쟁사만 가지고도 역사의 계보를 이어갈 만큼 흥미로운 파트다. 하지만 고대 한국사의 숱한 전쟁들과 하물며 중국 전쟁사는 알아도 지금 내가 살고 있는 현재까지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한국 전쟁 ( 6.25 전쟁 ) 에 대해서는 무관심하다는 인상을 자주 받곤한다. 사실 내 나이대들이 학교를 다니던 시절, 역사 교과과정에서 다뤘던 근현대사는 범위자체가 워낙 적은 분량이었고 이념 문제는 예민한 문제였으니 그랬을 수도 있다. 어쨌든 미국역사를 다루며 한국 전쟁에 대해 읽다보니 반갑기도 마음이 쓰리기도 했다. 패권국가 미국이 관여했지만 소모도 많았던 한국 전쟁과 베트남 전쟁 두 전쟁에 대한 내용들은 인상깊었다. 개인적으로 이 책에서 조금 아쉬운 부분이 있다면 한국 전쟁당시 맥아더에 대한 과한 칭송과 더불어 맥아더와 친분이 깊었던 이승만에 대해 긍정적으로만 다룬 부분들이 조금 아쉬웠다. 하지만 한국전에 참여해서 어느나라보다 용감히 싸웠던 터키 군에 대한 부분은 사뭇 감동이 되었다.

이 책의 첫 번째 챕터에서 다룬 미국과 소련의 냉전시기에 있었던 다양한 에피소드나 스파이 소환 문제들은 마치 60년대를 배경으로 한 영화를 보듯 흥미로웠다. 세계 2차 대전이 끝나고 얼렁뚱당 세계 열강의 자리에 올라선 소련 ( 얼렁뚱당이란 표현은 없지만 책에서 다루는 소련의 이미지는 마치 그래 보였다 ) 과 이제는 세계에서 가장 강한 나라가 되어버린 미국, 두 나라의 30년이 넘도록 이어진 냉전의 결과는 허무했다. 페레스트로이카 를 선언한 고르바초프에 의한 사회주의 해체와 소련의 붕괴, 역사의 뒤안으로 사라진 사회주의를 위해 그토록 많은 희생을 치룬 두 나라가 곧 이어 등장할 한국과 베트남이라니 아이러니하다.

이 책은 미국을 중심에 놓고 세 가지 전쟁 키워드를 가지고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시기적으로 일어난 역사적 사건들을 최대한 살려 이야기를 이끌어 나가는 방식 덕분에 역사책 임에도 너무도 잘 읽힌다는 장점이 있다. 역사를 잘알못 하는 독자도 또는 청소년들도 쉽게 읽을 수 있도록 방대한 이야기를 잘 정리해서 흥미롭게 풀어내는 데는 탁월하다. 개인적으로 베트남 역사만 따로 공부해 볼까 하는 생각도 있었는데 이 책에서 다룬 베트남 전쟁에 대한 이야기로 대략적인 흐름을 이해하게 되서 좋았다. [ 세계통찰 시리즈 ] 여러모로 흥미로운 시리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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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차 세계대전 : 강대국 중의 강대국이 되다 세계통찰 시리즈 14
한솔교육연구모임 지음 / 솔과나무 / 2021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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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은 한솔교육 연구모임에서 쓴 세계통찰 시리즈 중 14번째 책으로 전쟁파트를 다룬 책이다. 독립 전쟁이후 미국이 세계를 주름잡는 패권국가가 되는 데는 전쟁 특히 세계 제 2차 대전을 언급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핵심 포인트는 명확하다. 개인적으로 역사 중에서 근현대사를 좋아하고 미국 역사는 강준만의 미국사 산책과 기타 여러 단행본으로 읽었었다. 그동안의 독서를 통해 미국의 역사는 개국부터 현대까지 흐름을 이해하고 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은 유독 쉽고 재미있게 느껴졌다. 이 책을 만든 분들이 교육회사 한솔의 연구모임의 연구자들이 쓴 책이라서 그런걸까? 핵심적인 내용을 쉽고 상세하게 풀어놓아 흥미롭게 읽힌다. 사실 많은 사람들이 역사를 어려워하는 건 시중에 나와있는 예전의 책들이 불필요하게 어렵고 복잡하기 때문이다. 나도 그런류의 책들로 공부했고 개인적으로 한국의 근현대사나 미국현대사등 그나마 인물과 사상의 강준만 교수 시리즈가 접근성이 좋아 흐름을 그 책들로 잡았지만 이 책은 그런면에서 본다면 청소년들도 부담없이 읽을 수 있도록 잘 정리되어 있고 가독성도 매우 좋다. 또한 폐이지마다 실린 사진들은 다른 책에서 보지 못한 희귀사진이 많아 책을 만들며 자료정리를 꼼꼼이한 공들인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미국을 주제로 하고 있지만 이 책의 1장은 유럽 전쟁을 다루고 있다. 주제가 미국 역사인데 왜 유럽 전쟁을 다루고 있을까? 하는 의아심도 가질 수 있지만 역사는 세계가 맞물려 움직이는 유기체와도 같아서 국가별로 끊임없이 서로 영향을 주고 받는다. 국소적으로 잘라서 역사에 접근하는 건 좋은 방법이 아니며 공부하는 사람 입장에서도 넓은 시야로 접근해야 공부하기가 쉽다.

이 책은 1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인 1918년 베르사유 조약에서 부터 시작된다. 천문학적인 전쟁 배상금을 독일에게 물리는 영국과 프랑스등 승전국의 압박을 보며 경제학자 케인즈의 예언은 소름이 돋았다. 이런 디테일한 부분은 몰랐는 데 흥미로웠다. 케인즈의 예언대로 이 책은 히틀러의 등장과 이후 파시즘의 광풍으로 발발하게 되는 세계 제 2차대전과 미국의 개입을 다루고 있으며 같은 시기 동아시아 역사에서 미국과 일본의 한 판 대전 또한 흥미진진하다. 세계대전에 대한 전체적인 시각과 시점을 달리한 접근법 속에서 미국의 역할과 위상을 따로 잘 다루고 있어 흐름을 이해하기에 좋다. 그래서일까? 유럽 뿐만 아니라 동아시아 상황을 본격적으로 다루게 될 후편도 기대가 되며 전체 흐름을 다룬 뒤 책 뒤편에 실어놓은 다양한 읽을 꺼리들도 시선을 잡느다. 얼마 전 읽었던 휴머니스트 출판의 [ 나는 히틀러의 아이였습니다] 에서 읽었던 히틀러가 양육한 레벤스보른 이야기가 실려있어 반가웠다. 책 한 권에 다양하고 집약적인 지식들을 갖추고 있다. 이 책 시리즈가 미국을 시작으로 중국 일본을 넘어 중남미와 유럽까지 다룰 예정이라니 이 라인만 따라가도 세계사는 통달하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 [,세계통찰 시리즈] 는 청소년을 포함 세계사 입문자도 무난히 읽을 수 있는 장점을 다 갖춘책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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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 맛, 향기, 빛깔에 스며든 인문주의의 역사
권은중 지음 / 메디치미디어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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젊은 시절, 인도 여행을 갔던 당시, 알고 지내던 한국인 지인의 남친은 이탈리아 요리사였다. 그 집에 초대되어 그녀의 남친이 만들어 준 이탈리아 피자를 먹어본 기억이 있는 데 그때 먹었던 이탈리아 피자는 그 전까지 최고로 맛있다고 생각했던 피자헛 피자가 아니었다. 일단 그렇게 크고 두껍지 않았다. 작은 펜 크기로 도우도 얇고 무엇보다 그 고소했던 치즈맛을 잊을 수가 없었다. 한국에 돌아와도 그때 먹었던 피자 맛을 잊지 못할 즈음 우연히 대학로에 있던 이탈리아식 피자 가게에서 다시금 당시의 피자를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제대로된 이태리 음식을 한국 레스토랑에서 먹기엔 식사비가 만만치 않다. 웬만한 매니아가 아니라면 정통 레스토랑을 찾아다니기엔 부담스럽다. 더군다나 나이가 먹을 수록 맛있는 음식에 대한 욕구도 사라지고 이제는 음식도 맛이 아닌 문화로 만나는 것을 즐긴다. 음식 문화에 대한 접근으로 책 만한 것이 없다. 혀가 아닌 머리로 만나는 음식의 세계. 그래서 이런류의 책이 너무도 반갑고 재밌다. 이 책 [ 볼로냐,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 는 나의 구미에 딱 맞는 책이다. 평소 음식 관련된 책 읽기를 즐겨하는 데 이 책은 단순히 식재료와 요리과정만을 설명하는 것이 아니라 이탈리아라는 나라와 세계사와의 역학관계 이탈리아 안의 소도시이며 이탈리아 정통을 간직한 볼로냐의 음식. 볼로냐의 문화 정치적 배경, 볼로냐에 사는 사람들과 유럽 전반의 역사까지 넘겨볼 수 있다.

사실 이태리라고 하면 나폴리나 시칠리아 섬과 같은 남부에 대한 이미지가 더 많았는데 이 책을 보며 이탈리아 북부의 성향과 색깔을 다시 재정립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사상적으로 과격하고 무솔리니의 파시즘 정치도 먹히지 않았다는 볼로냐의 붉은 사상적( ?) 신념은 인상깊었다.

이 책을 쓴 권은중은 정년이 보장 된 회사를 그만두고 이탈리아 음식을 배우기 위해 이탈리아의 ICIF라는 요리학교에 들어가 요리를 배우고 현지 레스토랑에서 인턴생활을 하기도 한 반백의 작가다. 요리에 대한 열정만큼이나 인문학적 지식도 해박하여 책에 풀어놓은 요리를 포함한 내용들에 빠져들게 한다. 실제로 만나서 이야기를 해도 시간가는 줄 모르게 작가의 박식함에 감탄할 듯 싶다. 이 책은 이탈리아 도시 볼로냐의 정통 파스타로 시작해 프로슈토와 살루미라는 햄, 토마토, 치즈와 와인. 커피 등에 대한 이야기를 끝없이 들려준다. 챕터마다 다루는 음식의 소재와 그 음식을 둘러싼 내용들이 생생해서 책을 읽다보면. 도대체 그라노 파다노의 맛을 어떤 맛일까가 궁금하게 만든다. 이탈리아의 문화나 경제적 수준이 그닥 좋지 않고 관광도시임에도 인프라나 치안이 발달되지 않았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 데 이탈리아 특히 볼로냐라는 도시안에 그토록 깊은 전통과 자부심이 서려 있을 줄이야, 자세히 보지 않으면 우린 모르는 게 너무 많다는 걸 이 책을 보며 다시금 깨달았다. 평소 세계사나 지리 역사 문화를 통틀어 공부하길 좋아하는 데 역시 활자로 접근하는 문화는 한계가 있다. 볼로냐가 품고 있는 향내와 음식, 쏟아지는 햇빛과 하늘 빛, 그리고 장인이 내려주는 커피 맛을 경험해 볼 수 없음이 개인적으로 무척 아쉬웠다.

나는 의아했다 ' 왜 볼로냐는 이탈리아의 도시는 물론이고 미국이나 유럽의 도시와도 다른 에너지가 느껴지는 가' 하는 의문을 갖게 되었다. 이 책은 내가 가진 그 의문과 거기에 대한 내 나름의 해답을 찾아가는 과정을 담고 있다

볼로나, 붉은 길에서 인문학을 만나다 중에서

작가의 의문의 발로 덕분에 작가의 시선을 따라 이탈리아 볼로냐를 간접적으로나마 구석구석 함께 들여다 봤으니 나름 운이 좋았다. 언젠가 기회가 닿는 다면 꼭 해보고 싶은 유럽여행. 강렬한 욕구에 불을 지핀 이 책은 그럼에도 매우 맛있는 책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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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틈의 온기 - 출근길이 유일한 산책로인 당신에게 작가의 숨
윤고은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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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소소하지만 마음에 남는 에세이집 [ 빈틈의 온기] 는 내 기준에서 잘 씌어진 글 모음집이며 읽으면서 힐링이 된 책이었다.

출근길 단상과 더불어 여행이나 일상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고 감각적인 글로 풀어낸 이 책의 작가 윤고은은 소설가다. 한국 소설을 열심히 찾아읽을 때 만났다면 작가의 소설도 찾아 읽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면서, 소설의 색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라디오 방송을 좋아하지 않아서 작가가 진행하는 방송을 들어볼 기회는 희박하지만 웬지 방송보다는 글로 만나는 작가의 분위기에 더 매력을 느낄 듯 싶다.

가방을 뒤적뒤적할 때마다 나는 어부의 심정이 된다. 바다에 던져둔 그물을 끌어 올릴 때 랑 좀 비슷하달까. 단지 가방에서 출입증 하나를 꺼내려고 했을 뿐인데 미역도 딸려오고 다시마도 딸려오는 느낌이다. 중략

가방에서 목걸이 형태의 출입증을 꺼낼 때마다 귓가에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주제가였던 < 손에 손 잡고 > 란 노래가 흐른다

빈틈의 온기 중에서

책을 펴서 읽은 지 얼마 안돼 이 문장을 만났을 때부터 책에 대한 신뢰가 급 생겼다. 한장 한장 아껴읽는 맘으로 읽어내려간, 오랫만에 재밌게 읽은 에세이집이다. 작가의 글을 한줄한줄 읽어가며 글을 어떻게 이렇게 맛깔스럽게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욕심이 발동하면서 작가가 한 없이 부럽다가도 그건 모두 사소한 일상을 꼼꼼히 기록하는 기록의 힘과 관찰의 미학이 나은 결정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만큼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못 쓰는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쓰지 않는 탓이다.

이 책 표지 뒷면에 씌여진 간략한 리뷰 중 공감가는 문장을 발견했다. ' 그녀가 관찰한 삶의 조각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입을 막고 쿡쿡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문 보영 시인이 쓴 감상글이 딱 내 마음이었다. 나는 이 책을 잠자기 전 이부자리에서 주로 읽었는 데 나도 모르게 큭큭 대서 옆 지기에게 한마디 듣기도 했다.

차에 시동을 걸 때마다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리는 것 같았고 세상 모든 차들이 나를 향해 기울어지는 착시 현상을 겪었으며 길모퉁이에서 어린아이들이 뛰어나올까 긴장했다. 중략

세상 모든 경적이 나를 조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빈틈의 온기 중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운전 못하는 내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작가의 글은 생생하며 아기자기하고 꼼꼼하고 독특하고 보드랍다. 표지에 실린 외모와는 다르게 엉뚱하며서도 속내 깊은 글들을 읽으며 천상 작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출근길 단상들을 읽으며 젊은 시절,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그때도 떠오르고 이 책 [ 빈틈의 온기 ]는 모처럼 책을 읽으며 행복이란 걸 느끼게 해 준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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