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틈의 온기 - 출근길이 유일한 산책로인 당신에게 작가의 숨
윤고은 지음 / 흐름출판 / 202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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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쓴 글은 읽는 것만으로도 힐링이 된다. 소소하지만 마음에 남는 에세이집 [ 빈틈의 온기] 는 내 기준에서 잘 씌어진 글 모음집이며 읽으면서 힐링이 된 책이었다.

출근길 단상과 더불어 여행이나 일상의 이야기들을 재미있고 감각적인 글로 풀어낸 이 책의 작가 윤고은은 소설가다. 한국 소설을 열심히 찾아읽을 때 만났다면 작가의 소설도 찾아 읽었을 텐데 하는 아쉬움도 들면서, 소설의 색은 어떨까 하는 궁금증도 들었다. 개인적으로 라디오 방송을 좋아하지 않아서 작가가 진행하는 방송을 들어볼 기회는 희박하지만 웬지 방송보다는 글로 만나는 작가의 분위기에 더 매력을 느낄 듯 싶다.

가방을 뒤적뒤적할 때마다 나는 어부의 심정이 된다. 바다에 던져둔 그물을 끌어 올릴 때 랑 좀 비슷하달까. 단지 가방에서 출입증 하나를 꺼내려고 했을 뿐인데 미역도 딸려오고 다시마도 딸려오는 느낌이다. 중략

가방에서 목걸이 형태의 출입증을 꺼낼 때마다 귓가에 1988년 서울 올림픽 공식주제가였던 < 손에 손 잡고 > 란 노래가 흐른다

빈틈의 온기 중에서

책을 펴서 읽은 지 얼마 안돼 이 문장을 만났을 때부터 책에 대한 신뢰가 급 생겼다. 한장 한장 아껴읽는 맘으로 읽어내려간, 오랫만에 재밌게 읽은 에세이집이다. 작가의 글을 한줄한줄 읽어가며 글을 어떻게 이렇게 맛깔스럽게 쓸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글 욕심이 발동하면서 작가가 한 없이 부럽다가도 그건 모두 사소한 일상을 꼼꼼히 기록하는 기록의 힘과 관찰의 미학이 나은 결정체라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만큼 글을 잘 쓰지는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글을 못 쓰는 가장 큰 이유는 글을 쓰지 않는 탓이다.

이 책 표지 뒷면에 씌여진 간략한 리뷰 중 공감가는 문장을 발견했다. ' 그녀가 관찰한 삶의 조각들을 따라가다보면 어느새 입을 막고 쿡쿡 웃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문 보영 시인이 쓴 감상글이 딱 내 마음이었다. 나는 이 책을 잠자기 전 이부자리에서 주로 읽었는 데 나도 모르게 큭큭 대서 옆 지기에게 한마디 듣기도 했다.

차에 시동을 걸 때마다 어디선가 폭발음이 들리는 것 같았고 세상 모든 차들이 나를 향해 기울어지는 착시 현상을 겪었으며 길모퉁이에서 어린아이들이 뛰어나올까 긴장했다. 중략

세상 모든 경적이 나를 조준하는 것처럼 느껴졌다

빈틈의 온기 중에서

이런 저런 이유로 운전 못하는 내 이야기를 하는 듯했다. 어찌나 공감이 가던지.. 작가의 글은 생생하며 아기자기하고 꼼꼼하고 독특하고 보드랍다. 표지에 실린 외모와는 다르게 엉뚱하며서도 속내 깊은 글들을 읽으며 천상 작가 라는 생각을 했다. 그녀의 출근길 단상들을 읽으며 젊은 시절, 지하철을 타고 출근하던 그때도 떠오르고 이 책 [ 빈틈의 온기 ]는 모처럼 책을 읽으며 행복이란 걸 느끼게 해 준 에세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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