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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비 팜
조앤 라모스 지음, 김희용 옮김 / 창비 / 2020년 12월
평점 :
' 베이비 팜' 이라는 제목의 소설은 대리모를 소재로 한 소설이다. 소설 속에 등장하는 '골든 오크스 농장'은 최상위 부자들을 대상으로 그들을 위한 엄선된 기준으로 선발된 호스트들을 철저히 관리 통제하고 열달 동안 좋은 식단과 환경을 제공하여 건강하게 아이를 생산해내는 일(?)을 하는 사업체다. 임신을 수익성 좋은 비즈니스로 여기고 접근하는 자본주의와 과학의 발전이 만들어낸 결과물이라 해야할까?
소설의 소재가 제목처럼 '아기 농장'의 대리모들의 이야기라 자칫 충격적인 내용이 담긴 소설이 아닐까 싶어 책을 읽기 전에 내심 부담을 가졌다. 이즈음 독서 모임에서 함께 읽었던 '시녀이야기'와 ' 증언들'의 여파도 한 몫한듯 싶다. 하지만 '베이비 팜'은 디스토피아 소설 '시녀이야기'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다.
'여성을 아기를 생산해내는 자궁'으로만 보는 접근 방식은 닮아 있으나 베이비 팜은 페미니즘적 관점보다는 미국이 쌓아올린 자본주의의 병페를 고스란이 보여주는 소설이다. 특히 아메리칸 드림을 쫒아 미국으로 건너와 쉬지 않고 노동을 하고 그렇게 모은 돈으로 고국의 가족을 건사하는 필리핀 이민 여성들에 대한 삶의 묘사는 많은 여운을 남겼다.
이 책에 등장하는 네 명의 여성인 아테와 제인, 레이건, 메이는 각각 다른 환경에서 살아온 여성들이다.
필리핀에서 미국으로 건너와 보모로서 갈고 닦은 노하우를 제인에게 전수해주는 늙은 여인 아테, 아테의 사촌이지만 순수하고 모성애 가득한 필리핀 여인 제시. 좋은 집안에서 자라고 명문대학을 졸업했지만 사명감을 위해 호스트에 지원한 레이건과 골든 오스크 농장을 이끌어 가는 성공지향적이고 욕망덩어리인 관리자 메이 등의 조화는 다채롭다. 살아온 환경과 색깔이 다른 네 명의 여인이 어우러지고 변주되며 진행되는 서사의 묘미는 소설의 재미를 한 층 더 한다.
소설 에서 의뢰인이 누군지도 모르는 아이를 임신한 체 골든 오스크 농장에서 관리당하며 열 달을 지내야 하는 호스트라는 직업은 경제 상황이 열악한 이민자나 유색인종 여성들을 타겟으로 삼는다.
자신들의 커리를 더 쌓기 위해 혹은 몸매를 위해 건강을 위해 아이가 필요하지만 자신의 몸과 시간을 내어가며 임신할 수 없는 여성들을 위한 대리모. 소설을 읽으며 남의 아이를 내 뱃속에 키우면서 아기가 꿈틀거려도 감흥할 수 없는 감정은 어떤 것인지, 과연 여성이라는 존재가 돈 만을 생각하며 열달을 견뎌 낼 수 있을까 하는 반문이 들었다. 그래서일까? 뱃속의 아기보다는 친딸 아말리아를 그리워하는 제인의 아픔에 부쩍 공감이 갔다.
이 책을 쓴 작가 조앤 라모스은 필리핀 출신 작가다. 작가 본인이 성장 과정에서 경험한 필리핀 이주 여성들의 삶을 소설 속에 잘 녹여내고 있다. 소설 '베이비 팜'은 네 명의 여성 캐릭터들을 통해 돈으로 움직이는 미국 사회에 대한 풍자와 이민자들의 삶까지도 섬세한 묘사로 고스란히 담고 있는 수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