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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말하지 못한 모든 것
에밀리 파인 지음, 안진희 옮김 / 해리북스 / 2021년 3월
평점 :
절판
이 책은 작가의 자전적 이야기로 알콜 중독자의 딸로 살았고, 부모의 이혼과 그로 인한 청소년 시절의 비행을 회고하고 십대 시절 함부로 다뤘던 '여성의 몸'과 임신 실패에 대한 이야기를 페미니즘적 시각에서 다룬 에세이집이다.
단순하게 본다면 결손 가정에서 자란 작가 ( 심지어 아버지는 중증 알콜 중독자 ) 가 청소년 시절 방황을 끝내고 대학에 들어가 공부하고 작가로서 교수로서 나름 성공한 삶을 살게 된 파란만장한 인생 역전의 스토리처럼 보일 수도 있지만, 작가는 아빠와 딸의 관계에서 '딸'이라는 입장에 서서 객관적으로 알콜 중독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바라보며 성찰한다. 또한 십대 시절 치기어린 방황 가운데 자신의 몸을 함부로 굴리고 그런 자신의 몸을 아무런 함의 없이 함부로 취했던 남성들에 대한 무례함을 고백한다. 또한 임신을 하기위해 자신의 몸에 행했던 강박적 행위들과 임신 못하는 여성으로서의 자신의 몸에 대한 정당화를 위해 끊임없이 일에 매달렸던 지난 시간들을 객관화하여 담담히 쓰고 있다.
이 책 [ 내가 말하지 못한 모든 것 ] 을 쓴 작가 에밀리 파인은 아일랜드 국립 더블린 대학교의 현대 전공 부교수이자 비평가로서 여러 글을 썼던 작가다. 하지만 그녀가 용기를 내어 자신의 내밀한 몸과 어린시절과 가정사를 회고하듯 써 낸 자전적이야기는 강렬함 그 자체다
그녀는 이 책의 초고 원고를 다른 누군가에게 보여주기 위해 용기를 모으기까지 2년이 라는 시간이 걸렸다고 고백한다. 그 어떤 용기있는 여성이라도 자신의 몸 ( 특히 여성의 몸 ) 을 소재로 이토록 담담하고 객관적으로 고백하는 것이 과연 그리 쉽겠는가?
책을 읽으며 같은 성을 가진 독자로서 일정부분 공감을 하지만 이러한 삶을 내가 살았다면 그 상황을 객관화할 용기를 가질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는 여성이라는 성으로 살며 여성의 몸으로 겪을 수 있는 일들을 모두 경험했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여성학자 권김현영은 이 책의 추천자에서 ' 여성의 몸은 전쟁터' 라는 표현을 쓰며 '여성의 가치를 몸을 통해 규정하는 가부장제 사회에서 여성이 자기 자신의 몸을 통해 경험한 세계를 스스로의 언어로 표현하고 세계에 의미를 전달하는 건 거의 불가능'이라고 정의 내리고 있다.
권김현영의 말처럼 나 또한 사회적으로 구분되고 결정된 '여성의 몸' 에 대한 자기 결정권을 주장할 수 있는 인식조차 여성들 스스로 감지하지 못한 현실은 동양뿐만 아니라 서양에도 내재된 사회적 의식이라는 점이 인상깊었다. 그러나 그래도 그들 ( 그녀들 ) 은 표현하고 드러냄에 주저함이 없다. 물론 이 글을 써서 세상에 발표하기까지 여성작가의 결정과 고뇌가 쉽지만은 않았겠지만. 그래도 용기있는 그녀에게 박수를 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