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nimal Farm (Mass Market Paperback, 미국판, 50th Anniversary) - 『동물농장』 원서
조지 오웰 지음 / Signet / 200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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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오웰의 <동물농장>. 좋아하는 작가이기도 하고 <1984>만큼이나 많이 회자되는 작품이길래 언젠가는 봐야지 하고 있었는데 새로 산 크레마의 열린 서재를 둘러보다 보니 이 책이 있다. 나는 빌린 적이 없는데 뭔 일인지는 잘 모르겠고 잘 됐다 싶어 그냥 읽기로 했다. 마침 이 전에 끝낸 책이 <자본주의>라는 책이기도 해서 연결해 보기도 좋았다. (보다 보니 <우크라이나 편 서문>도 있는 걸 보아 우크라이나에서 발행된 건가 본데 도대체 어떤 경로로 내 장비에 들어와 있는 건지.)



존스 부부가 운영하는 영국의 한 농장. 어느 날 나이 든 돼지 메이저는 이상한 꿈을 꾸었다. 주인 부부가 문단속을 마치고 들어가자 동물들을 불러놓고 이야기한다. 사실 우리는 인간을 위해 살고 주는 사료 먹으며 일만 하면서 비참하게 살아가잖아. 그러니까 인간은 나쁜 존재야. 우리끼리 살면 더 잘 살 수 있어. 그러니 혁명을 일으키는 거야! 인간만 없으면 우리는 고된 노동은 덜 하고 훨씬 풍요롭게 살 수 있을 거야.


얼마 후 메이저는 죽는다. 메이저의 말을 들은 동물들은 합심하여 존스 부부로부터 농장을 뺏는데 성공한다. 사람들이 농장을 되찾으러 총까지 들고 왔었지만, 동물들은 두 번이나 공격을 막아낸다.


혁명 후 동물들은 자신만의 질서를 만들어 간다. 그중에서도 가장 큰 영향력을 행사하는 두 동물이 있는데, 나폴레옹이라는 돼지와 스노우벨이라는 개다. 둘은 농장의 발전을 위해 서로 다른 계획안을 제시한다. 투표를 통해 어떤 계획을 택할지 결정하기로 한 날, 나폴레옹의 계략에 의해 스노우벨은 농장을 떠나게 된다.


이후 농장은 나폴레옹을 필두로 한 돼지 집단의 지배를 받는다. 동물들은 혁명 당시 농장의 7대 원칙을 정해놓고 헛간 한쪽 벽에 새겨놓기까지 하지만, 그런 것쯤 수정하면 그만이다. 나폴레옹은 자신을 지켜줄 군대, 입장을 대변해 줄 언론인, 지지해 줄 세력을 만들어 단단한 자리를 구축한다.



아둔하고 성실한 동물들은 나폴레옹을 당해낼 재간이 없다. 배워봤자 글자 몇 개 읽을 줄 모른다. 그리고 사실 이들은 공부할 시간도 필요도 없다. 늘 극심한 노동에 시달리기 때문이다. 늘 일만 하는 이들에게 글자가 다 무슨 소용인가. 무지한 이들은 아는 건 없고, 배우는 것도 없으며, 과거의 기억은 자꾸만 왜곡된다. 이런 이들을 지배하는 건 누워서 떡 먹는 것보다 쉽다.



지배계급인 돼지의 수법이 한국과 북한에서 일어나는 일과 너무 똑같아 책을 읽으며 곳곳에서 서늘해졌다. 북한에서 노동을 최고로 숭배하고 지배계급을 우상화하는 모습이나, 머지않은 과거 우리나라에서 쉽게 볼 수 있었던 (혹은 지금도 볼 수 있는) 어처구니없는 말 바꾸기 등등. 어떤 부분은 <1984>의 모습과 겹쳐 보이기도 했으나, 다 읽고 나니 두 소실이 완전히 똑같은 건 아니라 이 책 또한 나름대로 읽을만한 가치가 있구나 싶었다.



조지 오웰의 소설이라고는 <1984>와 <동물농장> 두 권밖에 안 읽었지만, 그의 소설은 늘 소름 끼치게 사실적이다.  일단 재미가 있고, 경각심을 주고, 배울 게 많고 등등의 장점도 장점이지만, 이 작가가 가장 좋은 건 무엇보다 대담함이다. 다들 차마 하지 못 하는 이야기를 너무나 정교하고 차갑게 꺼낸다. 여봐란듯이. 사람들이 외면하려는 세상의 모습을 이렇게나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작가라니. 가슴 철렁하지만 꼭 읽어볼 만 하다.


Unpopular ideas can be silenced, and inconvenient facts kept dark, without the need for any official ban.

인기 없는 이론은 소리를 낼 수 없게 되고, 불편한 진실은 드러나지 않게 된다. 공식적으로 금지하는 일 따위는 하지 않아도 된다.

45
Man is the only real enemy we have. Remove Man from the scene and the root cause of hunger and overwork is aboished for ever.

인간이 우리의 최대의 적이다. 인간을 이곳에서 몰아내면 배고픔과 과한 노동의 원인도 영원히 없어지는 거다.

67
The Seven Commandments
1. Whatever goes upon two legs is an enemy.
2. Whatever goes upon four legs, or wings, is a friend.
3. No animal shall wear clothes.
4. No animal shall sleep in a bed.
5. No animal shall drink alcohol.
6. No animal shall kill any other animal.
7. All animals are equal.

7대 원칙
1. 두 발로 걷는 생물은 종류 불문 다 적이다.
2. 네 발로 걷는 생물, 혹은 날개 달린 생물은 모두 우리의 친구다.
3. 동물은 옷을 입어서는 안 된다.
4. 동물은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
5. 동물은 술을 마셔서는 안 된다.
6. 동물은 다른 동물을 죽여서는 안 된다.
7. 모든 동물은 평등하다.

123
It says, ‘No animal shall sleep in a bed with sheets"

‘동물은 침대보가 있는 침대에서 자면 안 된다.‘라고 적혀 있었다.

198
but in fact, no animal had ever actually retired.

하지만 실제로는 은퇴한 동물은 하나도 없었다.

200
The truest happiness, he said, lay in working hard and living frugally.

나폴레옹이 말했다. 제일 행복한 건, 열심히 일하고 검소하게 사는 겁니다.

204
If they went hungry, it was not from tyrannical human beings ; if they worked hard, at least they worked for themselves.

동물농장에서 만약 동물들이 굶주리게 된다 해도, 인간의 무자비함 때문은 아니었다. 적어도 이곳의 동물들은 자기 자신을 위해 일했으므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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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EBS 다큐프라임 자본주의 - 쉬지 않고 일하는데 나는 왜 이렇게 살기 힘든가
EBS 자본주의 제작팀 지음 / 가나출판사 / 2015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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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모임에서 누군가가 읽는 걸 보고 꼭 읽으리라 벼르고 별렀던 <자본주의>. 자본주의는커녕 은행 공인인증서도 제대로 쓸 줄 모르는 나로서는 어렵지 않을까 생각도 했지만, 생각 외로 쉬운 책이라 술술 잘 넘어갔다. 덕분에 나는 전 세계 거의 모든 국가가 채택하고 있는 이놈의 자본주의라는 제도에 대해 조금이나마 배울 수 있게 되었다.


언젠가 연예인이 받는 몸값이 어마어마하다는 걸 알고는 어떻게 저렇게까지 받을 수 있을까 생각해본 적이 있다. 자본주의를 파는 건 광고라는데, 광고 안에서 최대한 매력적인 모습을 보이며 각종 상품을 닥치는 대로 판매하느라 열을 올리는 연예인들을 보면, 혹은 홈쇼핑의 진행자들을 보면, 참 기이하게 느껴졌다. 그렇게 번 돈을 모아 으레 건물을 하나둘씩 사 모으는데, 도대체 그 많은 돈은 다 어디로 가는 걸까? 우리나라가 전 세계에서 경제규모 11위라는데, 서울이 아시아에서 두 번째로 부자인 도시라는데, 어릴 때보다 지금 우리가 훨씬 잘 산다는데, 사람들도 같이 부자가 됐을까? 뭐 이런 생각.


책에서는 우선 자본주의의 기본 원리부터 차근차근 설명한다. 우리는 세상에 존재하는 돈이 전부 실재할 것이라 믿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그 많은 돈은 실제로 존재하지 않는다. ㄱ이라는 사람이 돈을 맡기면 은행에서는 10%만 남기고 나머지 90%는 ㄴ에게 대출을 해준다. 모든 사람들이 한번에 돈을 찾지는 않기 때문이란다. 이때 ㄴ이 대출받은 돈은 실재하기 않고 그저 컴퓨터 전산 상에 존재하는 돈이다. 그런데 이 가상의 돈에 대한 수수료 혹은 이자를 은행에 납부해야만 한다. 그런데 이 돈 또한 저절로 생기지 않는다.누군가가 대출을 받아야만 생긴다. 이런 식으로 세상에 도는 돈은 실제보다 엄청나게 큰 액수로 부풀려진다.


이렇게 시중에 돈이 많이 돌게 되면 돈의 가치가 떨어져 물가가 오른다. 물가가 오르면 소비가 줄어든다. 소비가 줄면 기업에서는 인원 감축을 하고, 실업률이 높아져 경제 공황이 찾아온다. 중앙은행에서는 이자율을 높여 시중에 풀린 돈의 양을 조절한다. (어디서 주워들은 얘긴데 이 방법은 이론과는 달리 실효성이 별로 없다고 한다) 결론적으로 자본주의라는 체재에서 물가는 필연적으로 오를 수밖에 없고, 경제 호황과 불황이 번갈아 찾아오게 된다.


이 기본 원리를 바탕으로 책에서는 금융업계에서 왜 그렇게 각종 상품을 강권하는지, 시도 때도 없이 소비를 권하는지 이야기한다. 자본주의가 어떻게 생겨나 어떤 변화를 거쳐 지금까지 왔는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부터 칼 마르크스의 <자본론>, 케인스의 거시경제학과 하이 에크의 신 자유주의를 통해 설명해준다. (금융 무식자인 나에게도 전혀 어렵지 않았다.)


책에 따르면, 전 세계 대다수의 사람들을 절대 빈곤에서 구해준 제도는 자본주의밖에 없다. 문제가 많으나 장점이 많은 제도임에는 분명하다. 그러나 자본주의에도 빈틈은 있고, 시대가 변함에 따라 고쳐 써야 하는 부분이 있기 마련이다. 또한 자본주의를 어떻게 수리해 쓰느냐에 따라 우리의 미래가 달라질 것이다. 다시 말해 자본주의의 미래는 다름 아닌 나의 미래이고, 우리 모두의 미래이다.


그런데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원인이 뭔지를 우선 알아야 하니까. 원인부터 해결책까지 친절하게 알려주어 좋았다. 이래서 책이 좋더라. 더 알고 싶으면 더 봐야 하겠지만, 일단은 이 정도도 만족이다.

15
빚은 선(善)이다. 빚이 없으면 자본주의가 정상적으로 작동되지 않기 때문이다. (...) 자본주의의 입장에서, ‘빚이 없는 사람‘은 나쁜 사람이고 도움이 되지 않는 사람이다.

21
물가가 계속해서 오르는 비밀은 바로 ‘돈의 양‘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돈의 양이 많아지면 돈의 가치가 하락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물가가 오르게 된다. (...) 결국 ‘물가가 오른다‘라는 말의 진짜 의미는 ‘물건의 가격이 비싸졌다‘라는 말이 아니라 ‘돈의 가치가 하락했다‘라는 말이다.

29
결과적으로 돈이란 우리가 서로 주고받는 그 무언가가 아닌, 은행이 창조해낸 결과물이다. 이렇게 있지도 않은 돈을 만들어 내고 의도적으로 늘리는 이런 과정을 우리는 ‘신용창조‘,‘ 신용팽창‘ 등의 용어로 부른다.

31
자본주의 경제체제는 ‘돈으로 굴러가는 사회‘가 아니라 ‘돈을 창조하는 사회‘라고 해야 보다 정확할 것이다.

88
전 세계는 미국의 금융에 운명을 맡기고 있다. 이는 당신도 예외가 아니다.

171
"우리는 10년 뒤에 지금보다 더 금융이 중요한 세상에 살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어야 합니다. 10년 전보다 지금 금융이 훨씬 중요한 것처럼요."

299
어떻게 보면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바로 이러한 부분이다. 경제를 보는 것이 아니고, 돈을 버는 것이 아니고, 분배의 시스템을 보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봐야 한다는 것.


361
"복지란 우리가 서로에게 해주는 보험입니다."

364
"가난한 사람들이 있으면 돈이 들어요. 세금을 내지 않고 세금은 받기만 하죠. 복지의 목적은 사람들이 힘든 시기를 지나서 생산적이 되도록 돕는 것이어야 합니다."

370
사회가 얼마나 문명화 됐는지 측정하는 척도 중 하나는 바로 ‘약자가 어떻게 배려 받는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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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Book] 종의 기원
정유정 지음 / 은행나무 / 2016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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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 보기 시작하면 절대로 놓을 수 없는 마성의 이야기를 쓰는 작가. 정유정의 신작..이라고 하기에는 나온 지 꽤 된 작품이지만 어쨌든 신간이 나왔다길래 봐야지 봐야지 하다가 드디어 봤다! 7년의 밤, 내 심장을 쏴라, 28년에 이어 이 작품까지 봤으니, 작가님의 장편은 모두 다 봤다. 흐흐흐.


작가님의 다른 작품도 그렇듯 워낙 이야기가 조밀하게 흘러간다. 등장인물이라고는 주인공 유진과 어머니, 이모, 이복형제 해진, 죽은 형과 아버지, 22층 사는 강아지 헬로와 헬로 견주, 그 외로는 꼭 필요할 때만 등장하는 용이네 호떡집 사장님과 형사 (경찰인가?) 두 명이 다다. 이야기가 펼쳐지는 장소도 집을 거의 벗어나지 않고, 나가봐야 집 근처가 전부다. (건장한 성인 남자가 뛰어서 1시간 반 안에 도달할 수 있는 정도의 거리인) 무대가 좁아서 그런가 더 긴장을 놓을 수 없다. 영화로 만들어도 재미있겠다 싶다.


주인공 유진은 올해 이십 대 중반의 남자다. 이제 막 로스쿨을 합격했다. 간질을 앓고 있다. 그래서 그 좋아하던 수영을 그만뒀다. 평생 약을 먹으며 관리해야 하고, 혹시 물속에서 발작이라도 일으키면 죽을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진은 하루라도 약을 먹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런데 시합을 앞둔 어느 날, 우연히 약을 걸렀다가 몸이 가뿐해지고 기운이 펄펄 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시합에서도 기존의 기록보다 확연히 단축되는 결과가 나왔다. 이를 계기로 의사의 말을 듣지 않고 멋대로 약을 먹다 안 먹다 한다.



참 이상하다. 약을 먹지 않으면 자꾸 밖으로 나가 배회하고 싶은 '개병'이 도진다. 그러면 발작을 하고 기절을 하는지, 약을 안 먹은 날 몸에 넘치는 기운을 감당하지 못 해 밖으로 기어코 기어 나간 날은 필름이 끊기듯 기억이 끊겨있다. 이 증상이 바로 엄마가 수영을 그만두게 한 이유다. 게다가 유진과 유진의 엄마는 아빠와 형을 바다에서 잃었다. 가족여행을 갔다가.



엄마는 필사적으로 유진의 수영을 말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십 중반의 다 큰 아들을 통금시간까지 정해가며 관리한다. 유진의 말에 따르면, 유진의 인생은 남이 깔고 앉은 방석이다. 자신의 뜻대로 했던 건 아무것도 없었다. 어느 날 새벽, 그놈의 개병이 도져 밖에 나가 헤매다 들어와 잠든 유진은 말도 안 되는 상황 속에 눈을 뜨게 된다. 그리고는 몰랐던 자신의 정체를 알아가게 된다.


작가님의 작품은 요샛말로 참 '쫄깃'하다. 빈틈도 쉴 새도 없다. 아주 섬세하고, 의료용 장비처럼 날카롭고 번뜩이는 듯도 하다. 작품 속 악인은 나쁜 놈보다는 못된 놈에 가까운 느낌이다. 좀, '덜 된 인간' 느낌.



나는 그렇게 생각한다. 사람은 다 타고난다고. 사실 어릴 땐 노력으로 바꿀 수 있다고 생각했지만,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하며 살다 보니 이 말을 철석같이 믿게 되었다. 내 생각이 맞는다면 나쁜 놈들도 타고 나는 건데, 후천적 노력으로 변화를 주기 힘들뿐더러 평범한 인간의 논리로는 설득도 불가능하다. 똑같이 극한 상황에 처한다 해도, 자기 눈 찌르는 사람이 있고 남의 눈 찌르는 사람이 있다. 타고난 미친놈의 시선에서 쓴 이야기라 미친놈의 입장을 대변하는 느낌도 들었지만, 미친 짓을 하면서 변명 따위를 하다니 더욱 용서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님의 소설은 언제나 재미있다. 이런 팽팽한 이야기를 작가님이 아니면 누가 쓰겠냐 말이다. 다만 두 번은 못 보겠다. 신경줄이 끊어질 것만 같아서.


참, 크레마로 책 보는 건 생각보다 훨씬 괜찮았다.

5
어렵사리 차지한 형의 짝꿍 자리를 다른 사람에게 내주어야 했다. 고지가 코앞인데, 까다로운 관문들을 형과 동급으로 통과한 마당에, 고작 편도염 따위로.

11
내 인생은 두 여자가 깔고 앉은 방석이나 다를 바 없었다.

58
참으로 이상한 일이었다. 단둘이 있을 때의 해진은 나와 가장 친한 것 같았다. 단둘이 있을 때 어머니 역시 그랬다. 오로지 나만 바라보면서 사는 것 같았다. 세 사람이 함께 있으면 나는 늘 차순으로 밀려나는 기분이었다. 그런 분위기가 아주 자연스럽게 형성된다는 점에서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그런 내가 쪼잔한 놈처럼 느껴져서 더 기분이 좋지 않았다.

126
물속은 어머니가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온전히 나의 세상이었다. 그 안에서 무엇이든 해날 수 있었다. 내가 원하는 대로, 뭐든.

130
운명은 제 할 일을 잊는 법이 없다. 한쪽 눈을 감아줄 때도 있겠지만 그건 한 번 정도일 것이다. (...) 올 것은 오고, 벌어질 일은 끝내 벌어진다. 불시에 형을 집행하듯, 운명이 내게 자객을 보낸 것이었다. 그것도 생의 가장 중요한 순간에, 가장 잔인한 방식으로.

196
망각은 궁극의 거짓말이다. 나 자신에게 할 수 있는 완벽한 거짓이다.

354
어머니가 옳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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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고] The Bfg (Paperback, Reissue)
로알드 달 지음 / Puffin / 1998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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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판 제목 <내 친구 꼬마 거인>. 몇 년 전  이 소설을 영화화 한 <마이 리틀 자이언트>라는 작품을 다운로드해 봤는데, 가슴이 따뜻해져서 책도 꼭 봐야겠다고 생각했었다. 동네 알라딘 중고서점에 갔다가 당연히 집어왔다. 생각해보니 나의 책과 관련된 일상에는 알라딘 서점이 반드시 연결되어 있다.

 

 


소피는 고아다. 부모님이 교통사고로 돌아가셨다. 그래서 고아원에서 다른 아이들과 같이 산다. 고아원의 원장 선생님은 엄격한 분이라 규칙을 하나라도 어기면 혼쭐이 난다. 취침 시간 이후에는 화장실도 못 가게 되어있다.

 

 



잠을 못 이루던 어느 밤, 거리에는 지나다니는 사람도 없고 늘 보던 바깥 풍경이 낯설게 보이던 바로 그때, 사람보다 4배는 크고 한 손에는 네모난 서류 가방을, 다른 한 손에는 트럼펫 같은 걸 들고 검은 망토를 펄럭이며 잠든 인간들의 창문을 기웃거리는 거인을 보게 된다. 소피는 영문도 모른 채 잠옷 바람으로 거인에게 잡혀 거인이 사는 나라로 끌려간다.

 

 



영특한 소피는 이제 다 끝이라고 생각한다. 이제 저 덩치 큰 괴물이 나를 잡아먹겠지. 요리를 해서 먹을까, 산 채로 꿀꺽할까?

 

 



거인 나라에 사는 동료(?)들은 모두 사람을 잡아먹는 식인 거인이다. 하루에 한 번씩 사람을 사냥하러 인간 세계로 떠난다. 터키인이 맛있고, 그리스인은 기름기가 너무 많아 싫단다. 날이 더울 땐 차가운 에스키모인이 제격이고.(그나마도 지겨우면 칠레로 가면 된다) 영국 사람도 인기 있는 종(?)이다.

 

 



그런데 이 커다란 친구는 인간을 먹지 않는다.  스노즈컴버라는 맛없는 (굳이 얘기하자면 똥 맛이 나는) 야채 같은 걸 먹고산다. 싫지만 사람을 먹지 않으니 선택의 여지가 없다. 그냥 참고 먹는 수밖에. 그래서 이 친구는 인간을 잡아가는 법이 없지만, 소피는 예외다. 인간은 거인을 보면 안 되는 거다. 소피가 자기를 본 이상 어쩔 수 없다. 인간들이란 원래 못 돼놔서, 분명 이리저리 소문을 낼 거고, 그럼 거인은 동물원에 갇혀 구경거리 신세가 될지도 모른다.

 

 



그래도 다른 거인들보다는 훨씬 덩치가 작은 이 꼬마 거인은 꿈을 채집하여 인간들에게 나눠주며 산다. 사는 곳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가서 꿈을 잡아병에 일일이 넣어놨다가, 원하는 대로 조합하여 트럼펫 같은 도구로 잠든 인간의 방에 훅 불어주면 인간은 꿈을 꾸게 된다.

 

 



소피는 꼬마 거인 친구를 따라 스노즈컴버도 먹어보고, 꿈을 잡으러 같이 가기도 한다. 인간 세상의 탄산음료와 비슷하지만 다른 기능을 하는 프롭스코틀도 마셔본다. (맛있고 재미있기까지 한!) 못 된 거인들이 인간 사냥을 하러 떠나는 것을 보고, 뭔가 할 수 있는 게 없을까 고민하다 한 가지 생각을 해내고, 꼬마 거인 친구와 함께 계획을 실행하기로 한다.

 

 



아이들 보는 책은 환상적인 장치가 참 재미있다. 전하고자 하는 바는 단순할지 모르나 전달 방식이 성인들 이야기처럼 심각하거나 무게를 잡지 않아 마음에 든다.

 

 



제일 좋은 건 등장인물을 굳이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거다. 우리 어른들은 이해심을 넓힌답시고, 혹은 설득력 있게 말하겠다고 착한 사람은 착한 사람대로, 나쁜 사람은 나쁜 사람대로 인물이 지나온 생과 성격과 가정 환경 따위까지 구구절절 늘어놓지만, 아이들 보는 책에서는 그럴 필요가 없다. 착한 사람은 그냥 착하고, 나쁜 사람은 그냥 나쁘니까.

 

 


어쩌면 어른들이 사람을 이해하는데 과정과 도움이 필요한 건 아이들보다 이해력이 떨어져서 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든다. 이해하기 위해 설명까지 늘어지게 필요하다니. 그냥 그렇구나, 인정해버리면 그만인 것을. 긴긴 설명 끝에 아~ 그렇구나! 이해하는 척하며 오만을 떨지만, 시간과 상황과 인물만 바뀌면 또 이해가 '안' 간다며 법석을 떤다.

 

 


그런 젠체 따위 하지 않는 직선적이고 솔직한 이야기가 마음에 든다. 로알드 달 특유의 재치와 사랑스러운 장치도 좋다. 작가님의 책이라면 빼놓지 말고 다 읽어봐야겠다. 아 참, 영화와 책은 결말이 조금 다르다. 궁금하신 분은 직접 확인하시길.

13
The Giant (if that was what he was) wearing a ling BLACK CLOAK. In one hand, he was holding what looked like a VERY LONG, THIN TRUMPET.

거대한 괴물은 (소피가 보고 있는 것이 괴물이 맞는다면) 검은색 망토를 두르고 있었어요. 한 손에는 아주 길고 얇은 트럼펫 같은 것을 들고 있었답니다.

15
In the moonlight, Sophie caught a glimpse of an enormous long pale wrinkly face with the most enormous ears. The nose was as sharp as a knife, and above the nose there were two bright flashing eyes, and the eyes were staring straight at Sophie. There was a fierce and devilish look about them.

달빛 아래에서 소피는 크고, 길고, 창백한 거인의 주름투성이 얼굴을 보았습니다. 귀도 어찌나 크던지요. 코는 칼처럼 뾰족했고, 코 위로는 커다란 두 개의 눈이 빛나고 있었습니다. 거인은 소피를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어요. 거인의 표정은 어딘가 모르게 날카롭고 못 돼 보였습니다.

39
All at once, a huge tear that would have filled a bucket rolled down one of the BFG‘s cheeks and fell with a splash on the floor. It made quite a puddle. Sophie watched with astonishment. What a strange and moody chreaure this is, she thought.

갑자기 거인의 커다란 눈에 눈물이 가득 고이더니 뺨을 타고 흘러내렸습니다. 양동이 하나 정도는 가득 채우고도 남을 만한 양이었습니다. 바닥으로 떨어진 눈물은 웅덩이 하나는 됨 직했습니다. 소피는 깜짝 놀라 거인을 쳐다보았어요. 뭐 이런 마음 약한 거인이 다 있어, 생각하면서요.

53
"I think you speak beautifully.‘ Sophie said.
"You do?" cried the BFG, suddenly brightening. "You really do?"
"Simply beautifully," Sophie repeated.

"거인 아저씨 말 되게 잘 해요." 소피가 말했어요.
"정말?" 거인 친구가 소리쳤습니다. 얼굴이 삽시간에 밝아졌어요. "정말 그렇게 생각해?"
"그렇다 마다요." 소피는 다시 한 번 말했습니다.

87
"Human beans babies and little childdlers is spending half thier time sleeping, so you is only four."
"I‘m eight,‘ Sophie said.
"You may think you is eight.‘ the BFG said. "But you has only spent four years of your life with your little eyes open.‘

"인간간의 아기와 어린이들은 반 정도는 자는 데 쓴다. 그러니까 너는 아직 사 살밖에 안 됐다."
"전 여덟 살 이라고요." 소피가 말했습니다.
"너는 여덟 살이라고 생각하겠지만," 거인 아저씨가 말을 이었습니다. " 눈을 뜨고 보낸 시간은 4년 밖에 되지 않다."

116
"Grown-up human beans is not famous for their kindness."

"어른 인간간은 친절하지는 않다."

203
"It serves them right left and centre." he said.

"제대로 지대로 그대로 고대로 돌려받았군." 거인 아저씨가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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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he Wizard of Oz (Audio CD 3장, Unabridged Edition, 도서별매) Puffin Classics 2009 New Edition 33
라이먼 프랭크 바움 지음 / Puffin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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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릴 적 읽었던 <오즈의 마법사>. 겁 많은 사자와 양철 로봇과 허수아비와 도로시가 원하는 것을 찾아 떠나는 여정을 그린 동화. 알라딘 중고서점 갔다가 또 덥석 집어왔다. 그런데 읽다 보니 작가가 내용을 가미해서 만든 또 다른 이야기인가 보다. (원작이 잘 기억이 나지 않아 어떤 부분이 추가됐는지, 어떤 부분은 원작과 같은지 잘 모르겠다. 아무래도 원작을 다시 봐야겠다)



미국 캔자스 주에 사는 도로시라는 아이는 숙모, 삼촌과 함께 살고 있다. 어느 날 폭풍이 몰려오고, 미처 지하로 대피하지 못 한 도로시와 강아지 토토는 집과 함께 폭풍우에 휘말려 알 수 없는 곳으로 떨어진다.



그런데 알고 보니 도로시가 타고(?) 온 집이 이 나라의 못된 마녀를 깔아뭉개 죽인 모양이다. 그 보답으로 착한 마녀가 도로시의 이마에 키스를 해주고, 죽은 마녀의 은색 신발을 갖게 된다. 이 두 가지는 부적처럼 여행 내내 도로시를 지켜준다.



그러나 도로시는 집에 가고 싶은 생각뿐이다. 삼촌과 숙모도 보고 싶다. 사람들에게 물어봤더니 오즈라는 대단한 마법사가 있다길래 찾아가서 집에 가는 길을 물어보기로 한다. 그러나 그곳까지 가려면 사막을 통과해야만 한다. 도로시는 어떤 대가를 치르더라도 찾아가 보기로 한다.



이 여정에서 참 많은 친구를 만난다. 첫 번째로 만난 허수아비는 뇌가 없다. 그래서 오즈라는 마법사를 만나러 간다는 도로시를 따라가보기로 한다. 뇌를 달라고 부탁해보려고. 사고로 다리를 잃고 팔을 잃고 머리도 잃어 양철로 몸을 갈아 끼웠다는 양철 로봇은 심장을 달라고 부탁하겠다며 같이 따라나선다. 심장이 없으면 사랑을 하지 못 하니까. 마지막 동행이 된 덩치 큰 사자는 사실 겁이 많다. 겁이 많은 사자라는 게 부끄러운 이 친구는 오즈의 마법사를 만나 용기를 달라고 부탁해 볼 작정이다.



이들 넷은 서로 의지하며 길을 떠난다. 서로를 잃어버리기도 하고, 쥐 떼의 도움을 받고, 드디어 오즈를 만나지만 원하는 걸 그냥 줄 수는 없다며 또 다른 임무를 받고, 다시 길을 떠나 못 된 마녀에게 붙잡혔다가, 오즈가 부여한 임무를 마친 후, 세 가지 소원을 들어주는 모자를 획득한다. 오즈가 사는 나라로 돌아와 심장과 머리와 용기를 (어쨌든) 얻지만, 도로시는 계획대로 캔자스로 떠나지는 못 하게 되고, 다시 남쪽으로 떠나 나무에게 공격받고, 도자기 나라를 만나고, 동물의 나라를 지나고, 착한 마녀를 만나 도로시를 도와주고, 허수아비와 양철 로봇과 사자는 각자의 자리로 돌아간다.


어디까지가 원작이고 어느 부분이 작가가 보탠 부분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아 비교는 힘들지만 아이들이 보는 동화답게 깜찍한 설정이 귀여웠다. (예를 들어, 소원을 들어주는 모자는 한 발을 들고 주문을 외운 후 다른 발을 들고 주문을 외워야만 한다) 여행에서 마주치는 다양한 이들과 줄줄이 겪게 되는 사건이 재미있어 이야기 속의 이야기를 읽는 듯한 재미도 있었다.



네 주인공이 원하는 것들이 사실은 멀리 있는 건 아니었고 그렇게 특별한 것도 아니었다. 방법을 몰랐을 뿐. 하지만 용기를 내어 경험을 하고, 경험을 한 다음에야 본인에게 맞게 쓸 수 있는 법. 그렇게 발견한 인생의 소중함은 전에 느끼던 것과는 다르다.

원작은 나중에라도 따로 봐야 하겠지만, 이런 각색 형식의 책도 좋았다. 그래서 도로시는 이후에 어떻게 살았을까? 캔자스 주에서 삼촌, 숙모와 살다가 폭풍우에 떠밀려 네 친구와 재미있는 여행을 한 도로시라는 아이를 만난다면 한 번 물어봐 주시길.

27
‘No matter how dreary and grey our homes are, we people of lesh and blood would rather live there than in any other country, be it ever so beautiful. There is no place like home.‘

‘아무리 집이라는 곳이 별 특별할 것도 없고 우중충한 곳이라 해도 말이야, 우리 사람들에게는 집만 한 곳이 없어. 그 어떤 좋은 나라보다도, 뭐니 뭐니 해도 집이 최고야.‘

43
‘Don‘t you dare to bite Toto! You ought to be ashamed of yourself, a big beast like you, to bite a poor little dog!‘

‘토토를 물기만 해봐! 창피한 줄 알아! 너 같은 커다란 짐승이 가녀린 강아지를 물려고 들다니!‘

49
The Tin Woodman know very well he had no heart, and therefore he took great care never to be cruel or unkind to anything.

양철 로봇은 심장이 없기 때문에, 잔인하거나 못 돼지지 않도록 늘 조심했어요.

73
I have always thought myself very big and terrible ; yet such little things as flowers come near to killing me, and such small animals as mice have saved my life. How strange it all is!

난 말이야, 내가 덩치도 크고 무서운 동물이라고 생각했는데, 꽃처럼 작은 존재 때문에 죽을 수도 있고, 쥐같이 작은 동물이 생명의 은인이 될 수도 있다니. 그동안은 생각도 못 한 일이었어!

107
‘We dare not harm this little girl,‘ he said to them, ‘for she is protected by the Power of Good, and that is greater than the Power of Evil.‘

‘이 아이를 해쳐서는 안 되겠어,‘ 하고 말했다. ‘도로시는 선한 힘이 수호하는 아이야. 악은 선을 이길 수 없어.‘

145
‘How can I help being a humbug,‘ he said, ‘when all these people make me do things that everybody knows can‘t be done? It was easy to make the Scarecrow and the Lion and the Woodman happy, because they imagined I could do anything.‘

‘나는 어쩔 수 없는 사기꾼이구먼.‘ 하고 말했다. ‘불가능하리라고 생각했던 일을 하게 되는데 말이야. 내가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믿으니까 허수아비와 사자와 양철 로봇 모두가 행복해지잖아.‘

171
‘and I am thankful I am made of Straw and cannot be easily damaged. There are worse things in the world than being a Scarecrow.‘

‘난 이제 내가 짚으로 만든 허수아비라는 게 감사해. 그러니까 잘 다치지 않잖아. 세상에는 허수아비보다 못 한 것도 많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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