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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모아 극장
엔도 슈사쿠 지음, 김석중 옮김 / 서커스 / 2010년 2월
평점 :
품절
나는 워낙에 문외한에 게으름 뱅이라 엔도슈사쿠의 이름은 들어봤어도, 막상 책은 한번도 읽어보지 못했다. 그런 문외한에게도 친절한 엔도님은 이렇게 말씀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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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에 대해 고정화된 어떤 이미지가 만들어지는 게 숨이 갑갑할 정도로 불편하게 느껴져 견딜 수 없다. 나는 3년에 1편 정도의 비율로 무겁고 딱딱한 주제를 다룬 소설을 쓰는데 그런 소설이 발표되고 나면 독자들로부터 내가 항상 세상과 인생의 문제로 고뇌하고 있는 듯한 이미지를 갖게 하는 게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며 참을 수 없이 싫은 생각이 든다. 실제로 그런 내용의 편지를 독자로부터 받으면 나 자신이 위선자라는 기분이 들고 정신 위생상으로도 좋지 않다.
그래서 그 뒤로 나는 이런저런 형태로 나 자신이 경박한 인간이라는 사실을 애독자들에게도 알리고자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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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아, 애독자가 아닌 내가 읽어도 되는 책인건지.. 요즘 디씨니 베플이니 워낙에 유머의 달인들이 미치도록 넘쳐나 사무실에서 일하다 커피뿜을 뻔한거 입으로 틀어막으며 처 웃다가 교수에게 혼났다는 베플에 하마터면 처 웃을 뻔한 기억이 매일매일 반복되는, 그러니까 촌철살인의 황금기에 살고 있는 나로서는 다른 책도 안보고 이 책을 보기에는 엔도님께 좀 미안한 마음이 많았다.
어쨌거나 엔도 슈사쿠의 유모아 극장은, 정말 터럭만큼도 논리적이지 못한 공상과 미치도록 혼자 낄낄대는 정신적 문제를 앓고 있는 나에게 아, 희망이 되는 소설이었달까. 아, 나는 병자는 아니었구나 하는 마음까지도 얻게 한, 치료와 치유에 효과적인 소설이었다.
뭐 모든 작품이 다 재밌고(말은 경박하다 하셔놓고 유모아에 이렇게 심혈을 기울였을 줄은..싸이 회원 한번 하셨으면 투멤도 한번 하셨을 듯) 특히나 요즘 개청춘 이후로 이어지고 있는 개 시리즈를 예견이라도 한 듯, 이미 개에 대해 이렇게 평하시는 엔도선생님의 말씀은 정말 담아둘만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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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그 개한테 흥미를 갖게 된 것은 그 기묘한 생김새 때문이었다. (중략) 안경을 쓴 듯한 그 얼굴은 내가 게이오 대학에 다닐 때의 늙은 철학 교수를 떠올리게 할 정도였다. 나는 별 생각없이 그를 선생님이라고 부르기 시작했다.
"선생님, 저녁밥입니다."
그러면 그 선생은 콜록콜록 천식걸린 사람처럼 기침을 하면서 툇마루까지 천천히 다가왔다.
선생은 정말이지 선생다웠다. 낮 동안에 내가 방에서 공부를 하면서 가끔 얼굴을 들어보면 그도 마당 한가운데에 점잖게 앉아서 미동도 하지 않았다. 몰래 그 모습을 살펴보니 그 개는 자신의 코 주위를 날아다니는 파리를 쳐다보며 무슨 명상에 빠져 있는 것 같았다. 한 시간이 지나도 두 시간이 지나도 선생은 한 곳에 앉은 채로 움직이려 하지 않았다. 저녁이 되어 책상 위의 책이 슬슬 회색의 저녁안개에 싸이기 시작할 때, 나는 의자에서 일어나 툇마루로 나갔다. 그런데 기척을 듣고 이쪽을 힐끗 돌아다보는 그의 안경 쓴 얼굴에는 자못 인생의, 아니 견생犬生의 무게를 참고 견디는 듯한 철학자의 표정이 떠올라 있었다.
"저 개는 여태까지 봤던 개들과는 다른 것 같아."
나는 아내에게 말했다.
"저 개는 어딘가 현자의 품격이 있어. 말하자면 세상을 초월한 덕이 높은 사대부의 모습이 있다고나 할까."
"한심한 소리 좀 그만해요."(후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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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 이 한심한 소리가 얼마나 좋은지, 아흑,
물론 슈사쿠님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유모아는 에이 뭐에요 하고 넘어가고, 그냥 휘릭 쓴 거에나는 그만 실소를 금치 못하는 건지도 모를, 역시나 코드 안 맞는 바보같은 독자일듯 싶긴해도 생각해보면 그렇게 대차고 힘차게, 사력을 다해 서로를 죽일 것처럼 싸우던 커플이라도 백마디 말과 비싼 선물보다 방귀 한사발(음 함량이 너무 많나?)이 오히려 싸움을 그치게 하듯, 웃음하나 휙 던져 영창에라도 보낼 표정으로 멱살이라도 잡을 것 같던 팔을 살그머니 어깨에 얹고 어깨동무로 산을 내려오던 나와 어느 장교의 경험(아, 방구 한사발은 예시이며 나와는 상관이 없음)으로 인간이 가진 그 큭큭대는 웃음을 유발하는 유모아야 말로, 얼마나 기분 좋은 것인지를 또 던져주신 슈사쿠님께,(어우 문장 길다)
어쩔 수 없이 별점을 집어넣어야 입력이 되는 리뷰의 특성상 감히 별을 꾹꾹 채워버리는 만행으로 보답해 드리는 것 외에는, 내가 할 수 있는 게 없으려나.(별 마이너스 주는 건 없나? 한번 해보고 싶은데...그럼 혼나겠지)
p.s
어우 오늘은 인용 길게 하니까 뭔가 길어보이네, 아유 좋아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