곧, 그 밤이 또 온다 ㅣ 소소한설 1
김강 지음, 이수현 그림 / 득수 / 2025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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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강 소설집/ 득수 (펴냄)



밤은 늘 갑자기 온다.

어떤 날은 가로등이 깜빡거리듯 조용히 오고 또 어떤 날은 이미 지나가 버린 사랑처럼 느닷없이.

지금 내게 중요한 것은 밤은 반복된다는 점이다.



김강의 짧은 소설집 『곧, 그 밤이 또 온다』를 읽으며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줄거리보다 순간이었다. 짧은 이야기들이 건드리는 감정은 꽤 오래 남는다. 밤길을 달리는 차창 밖으로 가로등이 휙휙 지나가듯, 한 장면이 스치고 지나간 뒤에도 한동안 눈앞에 여전히 아리는 잔상 같은 감정이

책을 덮은 후에도 오래 나를 따라다녔다.


사랑은 느닷없이 시작하고, 느닷없이 끝난다


이 소설집을 읽기 전에 작가를 전혀 몰랐다. 이 소설집을 읽고 나서 거꾸로 작가의 데뷔작 2017년 심훈 문학상 대상 수상작을 찾아봤다. 거꾸로 더듬어 읽기를 좋아한다. 바람직한 시작이다.

포라는 곳을 배경으로 스승과 제자가 화자가 되어 지민원이라는 의원을 운영한 교라는 이의 삶을 언급하는 방식이 독특했다. 《장미의 꽃을 기억하다》라는 제목이 잘 어울리는 소설이다. 마음 좋던 교가 변해버린 이유를 자세히 언급하지는 않는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내게도 장미 시절 꽃을 기억해 주는 사람이 있다면, 반대로 장미의 꽃을 기억하는 사람이 되기로 결심해 본다.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제주를 찾은 현상과 수진, 제주시 애월읍 고내리...

베트남에서 결혼 이민 온 여자, 제주를 떠나 육지로 간 사람, 다양한 사건이 얽히고설킨 제주 이야기... 재개발과 일용직 노동자의 이야기를 은유적으로 담은 《닭의 장풀》

월지의 밤, 월지에 던져 넣은 사랑 《곧, 그 밤이 또 온다》


받지 못한 전화 한 통, 이미 끝나버린 사랑, 누군가가 떠난 자리, 그리고 그 사실을 뒤늦게 깨닫는 순간들. 《이기전 1, 2》 사과데이로 이어지는 서사가 그 짧은 순간이 오래 남는다. 이 소설의 리뷰를 흔히 쓰듯이 줄거리로 쓰려고 하면 실패다. 작가가 말하려고 했던 것은 무엇일까? 작은 식물에 대한 관심에서 소설은 시작되나 싶다가도 마침내 소행성 L2001에 이어지는 우주적인 관점까지~~

작가의 관심은 작은데서 큰 것으로 다양하게 옮겨간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사랑을 바라보는 시선이다. 이 책에서 사랑은 드라마처럼 시작되지 않는다. 오히려 이렇게 말한다.

누군가를 찾아보지만 더 이상 보이지 않는 순간.

그 사람이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 마음에서 먼저 사라졌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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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0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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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은 재독 리뷰입니다... 초독은 3년 전으로 기억됩니다



욕망을 처벌한 소설인가, 욕망을 기록한 소설인가

— 『마담 보바리』 재독하며












플로베르 / 을유문화사 (펴냄)









어떤 고전은 첫 독서보다 두 번째 독서에서 더 낯설어진다. 내게는 마담 보바리가 그렇다.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에마 보바리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오래된 교과서적 독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독서였다. 그러나 다시 읽으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이 소설을 불륜과 허영이 부른 비극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출간 당시 종교적 도덕과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법정에까지 서야 했다. 이 재판은 얼마나 우스운가!! 이 작품이 얼마나 당대의 도덕 감각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에마의 행동을 설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정으로 감싸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냉정한 거리에서 바라본다. 그 거리감이 이 소설을 독특하게 만든다.


책의 줄거리는 다들 아시다시피 에마는 평범한 시골 의사 샤를과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은 그녀가 꿈꾸던 삶의 입구가 아니라 오히려 출구(?)였다. 수도원에서 읽었던 낭만적인 소설들, 화려한 파리 사교계, 정열적인 사랑과 세련된 삶에 대한 환상은 그녀의 현실과 너무 멀었다. (당대 많은 여성들이 이런 감정을 느꼈지 않을까? )

문제는 에마의 욕망이 아니라 그 욕망을 담을 세계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시골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놀라울 만큼 단순했다. 결혼, 가정, 아이, 그리고 끝없는 일상의 반복. 지적인 야망도, 사회적 이동도, 자기실현도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 시대에 에마가 느낀 권태는 단순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에마는 너무 많은 상상력을 가진 여성이었고, 너무 작은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재독에서 플로베르의 여성관을 조금 다르게 읽게 되었다. 그는 에마를 타락한 여성으로 그리기보다, 욕망을 가진 인간이 현실과 충돌하는 과정을 실험하듯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실험은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지만, 매우 정직하다.






플로베르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마담 보바리, 그것은 나다.

이런 고백은 놀랍고 놀랍다. 이런 솔직함 때문에 플로베르를 좋아한다. 반면 여성 작가가 이런 문장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 감히 '여자 따위'가 '여자 주제'에 글을 쓸 수 없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 아마 돌 때려 맞지 않았을까요....

이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플로베르는 에마의 허영과 욕망, 환상과 환멸을 자신 안에서도 발견했을 것이다. 즉 그는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 그 자체를 관찰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볼 수도 있다. 욕망을 관찰하기 위한 도구로써 여성 화자를 택한 점 놀랍다. 이 부분은 나의 독서력이 더 자라야 아마도?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관점에서 이 소설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비교된다. 두 작품 모두 불륜과 사회적 파멸을 겪는 여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인물의 비극은 꽤 다르다.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 때문에 사회와 충돌한다. 그녀는 진짜 사랑을 선택하지만 사회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비극은 외부 세계와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반면 에마 보바리의 사랑은 어떤가?

이것은 사랑 자체보다 사랑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녀가 갈망한 것은 특정한 남자라기보다 낭만적인 삶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그녀의 비극은 사회만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환상 속에서도 자라난다.






이 점에서 에마는 또 다른 세계문학의 여주인공,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와도 대비된다. 노라는 결국 집을 떠난다. 그녀는 자신이 인형처럼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을 닫고 나간다. 하지만 에마는 떠나지 못한다. 떠날 세계를 상상했지만 실제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녀는 탈출 대신 환상을 선택하고, 그 환상은 결국 그녀를 집어삼킨다.


다시 읽은 『마담 보바리』는 불륜의 이야기라기보다 권태의 이야기였다. 에마의 삶에는 특별한 비극이 없다. 물론 비극의 정도에는 개인 차이가 있다. 그저 너무 평범한 결혼과 너무 조용한 시골 생활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녀가 이미 다른 삶을 꿈꾸어 보았다는 데 있다. 수도원에서 읽었던 낭만적인 이야기들, 화려한 무도회, 열정적인 사랑.... 그러나 현실은 그 모든 상상보다 훨씬 단조롭다.

플로베르는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관찰한다. 사람이 꿈꾸는 삶과 실제로 살아가는 삶 사이의 미묘한 간극. 에마는 그 간극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욕망은 언제나 한 발짝 늦게 도착하고, 사랑은 언제나 기대보다 작다.





그래서 『마담 보바리』는 단순한 불륜 이야기나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욕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해부한 소설에 가깝다. ( 책을 제대로 읽었나) 싶은 일부 인플루언서들 혹은 일부 책튜버들의 후킹 문장에 '불륜 소설' 어쩌고 쓰인 문구를 보면 클릭하지도 않을뿐더러 참으로 1차원적인 감각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책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 수행평가 등을 위해 이런 저급한 영상을 시청하고 또 이런 영상이나 글을 통해 책을 이해할까 봐 걱정이 앞선다.



플로베르는 에마를 처벌하지 않는다. 대신 그 간극이 얼마나 잔혹하게 인간을 소모시키는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줄까.

19세기 여성의 삶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에마의 권태는 완전히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이미지 속에서 살아간다. 소셜 미디어, 광고, 드라마, 로맨스. 삶은 언제나 더 화려하고 더 강렬하게 보인다.



그리고 현실은 우리 상상과 꽤 멀다.


어쩌면 에마 보바리는 19세기의 인물이 아니라 욕망과 이미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끊임없이 더 강렬한 삶을 상상할수록 현실의 평범함은 더 견디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마담 보바리』 재독하며.... 이 소설은 한 여성의 파멸 이야기라기보다

욕망이 현실보다 커졌을 때 인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차갑고도 아름다운 기록.....이라고 쓸 수 있겠다.






내가 알기로 을유의 마담 보바리 표지는 가장 슬픈 뒷모습인데... 다시 봐도 슬프다

정확히 3년 후 재독해보겠다..... 그때까지 내가 존재한다면...


#재독리뷰

#책장파먹기

#고전다시읽기

#나만의챌린지

#에마보바리

#마담보바리

#구스타브플로베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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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위대한 몸 - 최신 의학이 밝혀낸 면역, 질병, 노화의 비밀 ㅣ 프린키피아 9
줄리아 엔더스 지음, 질 엔더스 그림, 배명자 옮김 / 21세기북스 / 2026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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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줄리아 앤더슨 (지음)/ 21세기북스









의학적으로 설명하기 어려운 증상, 혹은 설명은 가능하지만 100% 확신하기 어려운 질병은 생각보다 많다. 아마 이 글을 읽는 사람들 가운데에도 그런 경험을 한 이들이 있을 것이다.

얼마 전 나는 밤마다 견디기 힘든 피부 가려움증을 겪었다. 낮에는 아무렇지도 않았지만 밤이 되면 참기 어려울 정도로 가려웠고, 긁다 보니 상처까지 생겨 팔다리를 드러내기 어려울 정도였다. 여러 방법을 시도해 보았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했고, 결국 약을 중단한 채 거의 포기하다시피 했을 때 거짓말처럼 증상이 사라졌다.

이 책의 저자 역시 몸에 대해 깊이 관심을 갖게 된 계기가 할머니의 죽음 이후 찾아온 원인 불명의 피부 질환이었다고 말한다. 우리는 흔히 약을 고장 난 부품을 갈아 끼우듯 사용하지만, 저자의 말처럼 인간의 몸은 그렇게 단순한 기계가 아니다. 몸은 지극히 유기적인 존재이며, 감정과 환경, 생활 방식까지 모두 연결되어 작동한다.







스트레스로 인해 여러 신체 증상을 경험해 본 나로서는 양약과 한의학을 두루 접해 보기도 했다. 물론 이런 이야기를 쓰면 의료인들이 불편하게 느낄 수도 있겠다. 그럼에도 분명한 것은, 우리는 때때로 몸의 신호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치료만 반복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내 몸이 보내는 신호를 더 빨리, 더 정확하게 읽는 방법은 무엇일까. 그 질문이 간절한 마음으로 이 책을 펼치게 만들었다. 내 몸에 대한 궁금증과 절실한 마음으로 읽기 시작한 이 책은 예상과 조금 다른 방식으로 나를 설득했다. 이 책은 어떤 병을 어떻게 고칠 것인가에 대해 말해주지 않는 대신 우리가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한 가지 사실을 먼저 언급했는데 그것은?

몸은 하나의 거대한 균형 시스템이라는 사실이다.




예를 들어 우리가 생명을 유지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산소조차도 완벽하게 통제되는 물질은 아니라고 한다. 세포가 산소를 처리하는 과정에서 일정 확률로 ‘활성산소’가 만들어지고, 이 미완성 분자는 강한 반응성을 지닌 채 몸속을 떠돌며 다른 물질들과 반응하려 한다. 우리 몸은 이를 막기 위해 여러 효소 시스템을 가동하지만, 때때로 이 균형이 흔들리기도 한다. 흥미로운 점은 여기 있었다. 문제는 산소 자체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라는 것.

너무 부족해도, 너무 많아도 몸은 흔들린다.






책을 읽으며 깨닫게 되는 것은 이것이 산소에만 해당하는 이야기가 아니라는 점이다. 우리는 늘 무엇인가를 더 많이 가지려 한다. 더 건강한 음식, 더 많은 운동, 더 많은 수면. 하지만 몸의 원리는 의외로 단순하다. 과식도 문제지만 과도한 수분 섭취조차 위험할 수 있다. 심지어 잠도 너무 많이 자면 오히려 피곤해진다는 것을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결국 몸은 언제나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온다. 어떻게 균형을 유지할 것인가라는 질문이다!







이책이 흥미로운 이유는 우리가 흔히 ‘적’이라고 생각했던 존재들조차 이 균형 속에서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바이러스와 박테리아 역시 그렇다. 우리는 최근 몇 년 동안 바이러스를 공포의 대상으로만 바라보는 데 익숙해졌다. 코로나 펜데믹을 겪으며 더욱 그렇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 속에서는 정반대의 이야기들도 존재한다.

예컨대 아주 오래전 인류의 조상은 레트로바이러스에 감염되었고, 그 사건 덕분에 태반이라는 구조가 안정적으로 기능할 수 있었다고 한다. 말하자면, 어머니의 면역체계가 태아를 공격하지 않도록 만드는 과정에 바이러스가 관여했다는 이야기다. 아이러니하게도 우리는 어떤 바이러스들 덕분에 존재할 수 있었다.







이런 관점을 접하다 보면 몸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조금씩 달라진다. 알레르기 역시 마찬가지다. 예전에는 단순히 ‘겁먹은 면역체계의 과잉 반응’이라고 여겨졌지만, 최근 연구자들은 다른 질문을 던기기 시작했다.

면역세포는 왜 그렇게 겁을 먹게 되었을까?

어쩌면 그 반응에는 나름의 이유가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 질문은 처음 책을 펼쳤을 때 내가 던졌던 질문과도 닮아 있다.






왜 어떤 증상들은 설명이 잘 되지 않을까. 왜 몸은 때때로 예측할 수 없는 방식으로 반응할까.

저자는 이런 질문에 단정적인 답을 주지는 않는다. 대신 몸을 하나의 생태계처럼 바라보도록 도와준다. 면역, 장, 호흡, 근육, 수면까지 서로 연결되어 끊임없이 신호를 주고받는 거대한 시스템으로 접근하게 한다.







예를 들어 수면을 설명하는 대목은 꽤 인상적이다. 깨어 있을 때는 비교적 최근에 진화한 뇌 영역이 외부 세계를 관리하지만, 잠이 들면 훨씬 오래된 뇌 영역이 통치권을 넘겨받는다. 이 오래된 뇌는 심장박동과 호흡, 염증 상태 같은 내부 신호들을 점검하며 몸을 정비한다. 말하자면 낮 동안 바쁘게 일하던 관리자들이 물러나고, 밤에는 오래된 관리자가 조용히 몸의 질서를 정리하는 셈이다.

생각해 보면 우리가 ‘잠이 든다’는 행위조차 단순한 휴식이 아니라 몸 전체가 참여하는 하나의 민주적인 과정이다.


책을 덮으며 나는 처음 던졌던 질문으로 다시 돌아왔다. 내 몸의 신호를 더 빨리 읽을 수 있는 방법은 무엇일까.

어쩌면 그 답은 생각보다 단순할지도 모른다. 몸을 고쳐야 할 기계로 보지 않는 것. 증상을 단순히 제거해야 할 결함으로만 보지 않는 것. 그리고 무엇보다, 몸이 보내는 작은 신호들을 하나의 이야기처럼 읽어보려는 태도.


이런 관점에서 이 책은 새로운 건강 비법을 알려주는 책이라기보다, 몸을 이해하는 시선을 조금 바꾸어 주는 책이라고 본다. 그리고 그 시선의 변화만으로도 우리는 이미 몸과 조금 더 가까워지는 기분이 들었다.



잘 아시다시피 한 번 무너지면 돌이키기 힘든게 건강입니다. 이 책 추천해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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넥스트 AI, 공간 컴퓨팅 - 애플·구글·메타가 사활을 건 2035 공간 기술 패권 시나리오
최형욱.전진수 지음 / 21세기북스 / 202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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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최형욱 전진수/ 21세기북스(펴냄)







처음 이 책을 펼쳤을 때, 솔직히 말하면 두려움과 설렘이 함께 찾아왔다. 경제전망이라는 분야는 생소했고, ‘AI’와 ‘XR’, ‘공간 컴퓨팅’이라는 단어들은 마치 먼 미래의 이야기처럼 느껴졌기 때문이다. 하지만 책을 넘길수록, 이 기술들이 단순한 공상 과학이 아니라 우리 삶의 물리적 공간을 현실처럼 바꾸어 놓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 몰입해 읽게 되었다.





두 저자는 스마트폰 이후 평면의 디스플레이에 갇혀 있던 디지털 정보가 현실 공간으로 자연스럽게 확장되는 시대를 순서대로 언급한다. 벽이 거대한 영화 스크린이 되고, 회의실 테이블이 아이디어를 펼치는 캔버스로 변하는 과정. 또한 우리의 손짓과 시선, 목소리, 심지어 사고의 흐름까지 새로운 인터페이스가 된다는 사실은 눈앞에 이미 와있는 미래를 다시 체험하는 기분이다.






무엇보다 흥미로운 점은, 이 미래가 단순히 기술 발전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아닐까? 애플, 메타, 구글, 마이크로소프트가 펼치는 치열한 플랫폼 경쟁 속에는 기업의 전략과 인간의 본능을 이해하려는 철학적 고민이 느껴졌다. 누가 우리의 ‘시야’를 차지할 것인가, 단순히 화면 안에서 머무를 것이냐, 아니면 우리의 현실과 일상을 지배할 것인가. 이런 질문들이 곧 경제전망과 기술 혁신, 인간 중심의 상상을 한데 묶어준다.






공간 컴퓨팅을 통해 AI는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의 능력과 감각을 확장하는 파트너가 된다. 산업 현장에서는 공장이 말을 걸고, 교육 현장에서는 학생의 상상력이 곧 실험실이 된다. 기술과 인간의 경계가 무너진 자리에서, 우리는 스스로를 ‘슈퍼 개인’으로 설계할 기회를 갖는다. 그리고 이 책은 그 설계도를 이해하는 법에 대해 알려준다.


무엇보다 마음에 남는 점은, 기술 변화의 맥락 속에서 ‘우리가 무엇을 선택하고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해보게 된다는 점이다. 단순히 최신 기술을 소개하는 책은 기존에도 얼마든지 접할수 있었다. 이 책은 나아가 내가 설계자가 될 수 있는 길과, 경제적·산업적 기회를 읽는 힘을 기르라고 말한다. 이제 먼 미래 이야기가 아니라 준비된 사람에게는 기회가 되는 세상이다.




책을 덮고 나니, 나는 비로소 ‘경제전망’이 숫자와 지표만의 세계가 아니라는 점을 인식하게 되었다. 기술과 인간, 상상과 현실이 만나는 지점에서 미래의 경제와 삶은 동시에 움직이고 있다. 그리고 인공지능과 공간 컴퓨팅은 단순한 도구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의 의미와 창조적 상상력을 시험하는 새로운 무대라고 저자는 말한다.






이 책은 나처럼 AI와 공간 컴퓨팅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도 흥미롭다. 경제와 기술의 거대한 흐름을 감각적으로 이해하게 해주는 안내서로 가치가 충분하다. 미래를 살아가는 인간으로서 나의 역할을 무엇인지 묻는 계기가 되어준 책이다.


2035년, 과연 우리가 공간 속에서 어떻게 존재하고, 무엇을 창조할지 상상해 보게 하는 일은 즐겁다. 추천합니다


#넥스트AI #공간컴퓨팅 #XR기술 #AI혁신 #미래기술

#경제전망 #미래산업 #플랫폼패권 #빅테크전쟁 #인공지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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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타임스 죽이기 - 현실적 악의
서맨사 바바스 지음, 김수지.김상유 옮김 / 푸른길 / 2026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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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서맨사 바바스 지음/ 푸른길 (펴냄)









평소 뉴욕타임스 하면 어떤 이미지기 떠오르는가? 세계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신문으로 알고 있다. 흔히 세계 최고 권위의 신문이라는 이미지로 인식하는 분들이 많을 것이다.

또한 정치, 국제 문제, 문화, 과학 등 거의 모든 분야에서 깊이 있는 보도를 하는 매체라는 인식이 많다. 그래서 중요한 국제 사건이 발생하면 사람들은 뉴욕타임스는 어떻게 보도했을까라며 찾아본다고 한다. 이는 단순히 뉴스를 전달하는 신문이라기보다 탐사보도와 저널리즘 윤리의 상징처럼 여겨지기도 한다.







권력과 정부를 감시하는 언론이라는 이미지 강하다.

사건의 시작은 뉴욕타임스에 실린 한 편의 광고였다. 민권운동을 지원하기 위한 모금 광고였는데, 남부의 경찰 탄압을 비판하는 내용이 포함되어 있었다. 해당 광고를 문제 삼아 앨라배마주의 공공업무 위원 L. B. 설리번이 뉴욕타임스를 상대로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한다. 하지만 사건은 단순한 법적 분쟁으로 끝나지 않는다.

그 시대는 마틴 루서 킹 주니어를 중심으로 미국 민권운동이 격렬하게 전개되던 시기였다고 한다. 남부의 권력자들은 언론을 상대로 수많은 명예훼손 소송을 제기하며 비판적인 보도를 억압하려 했을 것이다.






즉, 이 소송은 단순히 신문의 문제가 아니라 언론이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권리 자체를 위협하는 사건이었다.

연방 대법원은 이 사건에서 중요한 원칙을 세운다. 공직자를 비판하는 보도가 일부 사실 오류를 포함하더라도, 악의적인 허위가 아니라면 표현의 자유로 보호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판결은 언론과 시민이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 훨씬 넓은 공간을 열어 주었다.


책에서 특히 인상 깊었던 부분은 이 판결이 단지 법리의 발전이 아니라 거리에서 싸운 사람들의 역사와 연결되어 있었다는 사실이다.

설리번 판결은 법정에서 갑자기 등장한 원칙이 아니었다.






그것은 거리에서 맞아가며 행진하던 사람들, 인종차별에 맞서 싸우던 시민들, 그리고 그 현실을 기록하려 했던 언론이 함께 만들어 낸 결과였다.

뉴욕타임스는 19세기부터 지금까지 이어진 신문이기 때문에 미국 사회의 역사와 변화를 기록해 온 거대한 아카이브 같은 존재이기도 하다.

그래서 뉴욕타임스의 기사들은 단순한 뉴스가 아니라 그 시대가 무엇을 고민했는지 보여주는 기록처럼 느껴진다.






책을 읽으며 이 이야기가 단순한 법정 사건의 기록이 아니라 민주주의가 스스로를 지키는 과정에 관한 이야기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책의 중심에는 1964년 미국 연방 대법원의 역사적인 판결이 언급된다. 겉으로 보면 명예훼손 소송에 관한 판례이지만, 그 본질은 훨씬 더 큰 질문을 던진다.






언론은 어디까지 권력을 비판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

표현의 자유는 저절로 주어지지 않는다!!


책은 단순한 미국 헌법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의 사회에도 그대로 이어지는 질문을 던진다. 권력을 비판할 자유가 사라지면 민주주의는 얼마나 오래 버틸 수 있을까. 민주주의는 거대한 제도가 아니라 사람들이 말할 수 있는 용기와 그것을 보호하려는 법으로 유지된다는 점을 잊지 말아야겠다.


#뉴욕타임스죽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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