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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담 보바리 ㅣ 을유세계문학전집 109
귀스타브 플로베르 지음, 진인혜 옮김 / 을유문화사 / 2021년 1월
평점 :
이것은 재독 리뷰입니다... 초독은 3년 전으로 기억됩니다
욕망을 처벌한 소설인가, 욕망을 기록한 소설인가
— 『마담 보바리』 재독하며


플로베르 / 을유문화사 (펴냄)
어떤 고전은 첫 독서보다 두 번째 독서에서 더 낯설어진다. 내게는 마담 보바리가 그렇다. 처음 읽었을 때 나는 에마 보바리를 단편적으로만 이해했던 것 같다. 오래된 교과서적 독해에 크게 벗어나지 않는 독서였다. 그러나 다시 읽으며 다른 생각이 들었다.
우리는 흔히 이 소설을 불륜과 허영이 부른 비극으로 설명한다. 실제로 이 작품은 출간 당시 종교적 도덕과 미풍양속을 해쳤다는 이유로 법정에까지 서야 했다. 이 재판은 얼마나 우스운가!! 이 작품이 얼마나 당대의 도덕 감각을 불편하게 만들었는지를 보여주기 때문이다.
플로베르는 에마의 행동을 설교하지 않는다. 그렇다고 동정으로 감싸지도 않는다. 그는 그저 냉정한 거리에서 바라본다. 그 거리감이 이 소설을 독특하게 만든다.
책의 줄거리는 다들 아시다시피 에마는 평범한 시골 의사 샤를과 결혼한다. 그러나 결혼은 그녀가 꿈꾸던 삶의 입구가 아니라 오히려 출구(?)였다. 수도원에서 읽었던 낭만적인 소설들, 화려한 파리 사교계, 정열적인 사랑과 세련된 삶에 대한 환상은 그녀의 현실과 너무 멀었다. (당대 많은 여성들이 이런 감정을 느꼈지 않을까? )
문제는 에마의 욕망이 아니라 그 욕망을 담을 세계가 없다는 사실이었다.
19세기 프랑스 시골 사회에서 여성의 삶은 놀라울 만큼 단순했다. 결혼, 가정, 아이, 그리고 끝없는 일상의 반복. 지적인 야망도, 사회적 이동도, 자기실현도 거의 허용되지 않았다. 그런 시대에 에마가 느낀 권태는 단순한 개인의 성격 문제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에마는 너무 많은 상상력을 가진 여성이었고, 너무 작은 세계에 갇혀 있었다. 그래서 나는 이번 재독에서 플로베르의 여성관을 조금 다르게 읽게 되었다. 그는 에마를 타락한 여성으로 그리기보다, 욕망을 가진 인간이 현실과 충돌하는 과정을 실험하듯 기록한 것으로 보인다. 그 실험은 잔인할 정도로 냉정하지만, 매우 정직하다.
플로베르가 남긴 유명한 말이 있다.
“마담 보바리, 그것은 나다.
이런 고백은 놀랍고 놀랍다. 이런 솔직함 때문에 플로베르를 좋아한다. 반면 여성 작가가 이런 문장을 썼더라면 어땠을까? ( 감히 '여자 따위'가 '여자 주제'에 글을 쓸 수 없던 시대임을 감안하면 ) 아마 돌 때려 맞지 않았을까요....
이 말은 단순한 농담이 아니다. 플로베르는 에마의 허영과 욕망, 환상과 환멸을 자신 안에서도 발견했을 것이다. 즉 그는 여성을 비난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이 아니라 인간의 욕망 그 자체를 관찰하기 위해 이 소설을 썼다고 볼 수도 있다. 욕망을 관찰하기 위한 도구로써 여성 화자를 택한 점 놀랍다. 이 부분은 나의 독서력이 더 자라야 아마도? 분석할 수 있지 않을까?
어떤 관점에서 이 소설은 톨스토이의 『안나 카레니나』와 비교된다. 두 작품 모두 불륜과 사회적 파멸을 겪는 여성의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두 인물의 비극은 꽤 다르다. 안나 카레니나는 사랑 때문에 사회와 충돌한다. 그녀는 진짜 사랑을 선택하지만 사회가 그것을 용납하지 않는다. 비극은 외부 세계와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반면 에마 보바리의 사랑은 어떤가?
이것은 사랑 자체보다 사랑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그녀가 갈망한 것은 특정한 남자라기보다 낭만적인 삶의 이미지였다. 그래서 그녀의 비극은 사회만이 아니라 자신의 욕망과 환상 속에서도 자라난다.
이 점에서 에마는 또 다른 세계문학의 여주인공, 입센의 『인형의 집』의 노라와도 대비된다. 노라는 결국 집을 떠난다. 그녀는 자신이 인형처럼 살았다는 사실을 깨닫고 문을 닫고 나간다. 하지만 에마는 떠나지 못한다. 떠날 세계를 상상했지만 실제로 만들어내지는 못한다. 그녀는 탈출 대신 환상을 선택하고, 그 환상은 결국 그녀를 집어삼킨다.
다시 읽은 『마담 보바리』는 불륜의 이야기라기보다 권태의 이야기였다. 에마의 삶에는 특별한 비극이 없다. 물론 비극의 정도에는 개인 차이가 있다. 그저 너무 평범한 결혼과 너무 조용한 시골 생활이 있을 뿐이다.
문제는 그녀가 이미 다른 삶을 꿈꾸어 보았다는 데 있다. 수도원에서 읽었던 낭만적인 이야기들, 화려한 무도회, 열정적인 사랑.... 그러나 현실은 그 모든 상상보다 훨씬 단조롭다.
플로베르는 바로 그 지점을 집요하게 관찰한다. 사람이 꿈꾸는 삶과 실제로 살아가는 삶 사이의 미묘한 간극. 에마는 그 간극을 견디지 못한 사람이다.
그래서 그녀의 욕망은 언제나 한 발짝 늦게 도착하고, 사랑은 언제나 기대보다 작다.
그래서 『마담 보바리』는 단순한 불륜 이야기나 도덕적 교훈이 아니라 욕망과 현실 사이의 간극을 해부한 소설에 가깝다. ( 책을 제대로 읽었나) 싶은 일부 인플루언서들 혹은 일부 책튜버들의 후킹 문장에 '불륜 소설' 어쩌고 쓰인 문구를 보면 클릭하지도 않을뿐더러 참으로 1차원적인 감각에 가깝다는 생각으로 혀를 끌끌 차게 된다. 책을 처음 접하는 학생들이 수행평가 등을 위해 이런 저급한 영상을 시청하고 또 이런 영상이나 글을 통해 책을 이해할까 봐 걱정이 앞선다.
플로베르는 에마를 처벌하지 않는다. 대신 그 간극이 얼마나 잔혹하게 인간을 소모시키는지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 이야기는 오늘의 우리에게 무엇을 말해 줄까.
19세기 여성의 삶은 분명 지금보다 훨씬 제한적이었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에마의 권태는 완전히 낯설지 않다는 점이다. 우리는 여전히 수많은 이미지 속에서 살아간다. 소셜 미디어, 광고, 드라마, 로맨스. 삶은 언제나 더 화려하고 더 강렬하게 보인다.
그리고 현실은 우리 상상과 꽤 멀다.
어쩌면 에마 보바리는 19세기의 인물이 아니라 욕망과 이미지 속에서 살아가는 현대인의 모습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끊임없이 더 강렬한 삶을 상상할수록 현실의 평범함은 더 견디기 어려워지기 때문이다. 『마담 보바리』 재독하며.... 이 소설은 한 여성의 파멸 이야기라기보다
욕망이 현실보다 커졌을 때 인간에게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에 대한, 차갑고도 아름다운 기록.....이라고 쓸 수 있겠다.
내가 알기로 을유의 마담 보바리 표지는 가장 슬픈 뒷모습인데... 다시 봐도 슬프다
정확히 3년 후 재독해보겠다..... 그때까지 내가 존재한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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