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어×중용 필사책
공자.자사 지음, 최종엽 편저 / 유노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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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공자 § 자사 지음/ 유노북스








필사 이전에 먼저 《논어》와 《중용》이 뭔지 알아볼 필요가 있었다. 논어는 흔히 우리가 알듯이 공자가 직접 쓴 책이 아니라 공자가 제자들에게 했던 말, 제자들과 나눈 대화를 모아 둔 기록이다. 그래서 이 책은 필사를 하며 사람답게 산다는 건 뭔지, 타인과 관계는 어떻게 해야 할지, 배운다는 건 어떤 태도인지 묻는다.


『중용』은 어떤 책인가...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가 공자의 사상을 더 깊이 정리한 책이라고 한다. 논어보다 훨씬 사유적이고, 마음의 문제를 다룬다.

여기서 말하는 중용이란 무엇일까? 치우치지 않고, 중심을 지키는 마음의 상태를 말한다. 따라서 이 편역본은 두 책을 필사하며 마음이 무너지지 않게 잡아주고 다가올 새해를 맞이하여 새로운 결심을 바로 세우게 한다.







이 책의 필사가 특별한 이유는 필사의 대상이 논어와 중용이라는 데 있다. 공자에게서 배움은 삶을 다듬는 태도였다. 말과 행동, 관계와 책임을 통해 ‘사람으로 사는 법’을 익히는 과정. 자사는 그 배움을 한 단계 더 밀어 넣어 마음의 문제로 가져온다. 그렇다면 흔들리는 현실 속에서도 중심을 잃지 않는 법은 없을까?


치우치지 않는 감정의 균형. 『논어』가 삶의 자세를 가르친다면, 『중용』은 그 자세를 지탱하는 내면의 근육을 단련시킨다고 볼 수 있다.






저자는 이 두 고전을 필사에 적합한 언어로 정제해 제시한다. 단지 명문장을 고르는 데서 멈추지 않고, 왜 지금 이 문장이 필요한지, 오늘의 삶에 어떻게 닿는지를 짚는다. 각 장에 덧붙은 짧은 철학 에세이가 매력적이다. 필사는 결과가 아닌 과정으로 존중해야 한다. 이는 잘 쓴 글씨나 완성된 노트를 요구하지 않는다. 오히려 흐트러진 필체, 멈춘 문장, 다시 쓰는 한 줄까지도 사유의 일부로 받아들인다. 필사가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는 저자의 말에 공감한다. 단단함이란 흔들리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흔들릴 때 돌아올 수 있는 중심을 잡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는다.



나는 지금 어떤 속도로 살고 있는가.

나는 어떤 기준으로 흔들리고 있는가.

고전은 오래된 문장이 아니라 지금의 나를 지탱하는 문장이 된다.






문장을 따라 쓰기 위해서는 속도를 낮춰야 하고, 속도를 낮추는 순간 생각은 자연스럽게 따라온다. 이번 필사는 지식을 전달하기보다, 사유가 몸에 스며드는 과정을 경험하게 한다.






필사는 오랫동안 ‘수련’의 언어였다고 한다. 눈으로 읽고 머리로 이해하는 데서 끝나지 않고, 손의 리듬을 통해 문장을 다시 통과시키는 행위. 나는 여전히 필타를 선호하는 사람이다. 키보드 위에서 생각은 빠르게 정리되지만, 빠르다는 이유로 너무 쉽게 흘러가 버리기도 한다. 반면 필사는 생각을 붙잡아 둔다. 한 획 한 획 써 내려가는 동안 문장은 저항하고, 그 저항만큼 생각은 깊어지는 듯하다. 새해 새 마음으로 이 책을 추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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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어 제인 오스틴 - 젊은 소설가의 초상 ㅣ 디어 제인 오스틴 에디션
김선형 지음 / 엘리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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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김선형 에세이/ 엘리 (펴냄)








제인 오스틴도 좋지만, 김선형이라는 역자가 궁금해서 펼친 책이다.

제인 오스틴을 좋아하는 독자라면 이 책은 익숙한 작가에 대한 또 하나의 해설서처럼 보일지도 모른다. 위대한 고전 작가를 다루지만, 그보다 더 선명하게 드러나는 것은 한 번역가가 한 작가를 평생에 걸쳐 어떻게 읽고, 수집하고, 다시 쓰는가에 대한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뉴스레터 「제인 오스틴의 편지함」으로 이미 많은 독자를 만난 김선형. 이번 단행본에서 번역가이자 연구자, 그리고 열성적인 독자의 얼굴을 동시에 드러낸다. 번역가의 이름이 책의 신뢰도를 좌우한다고 믿는 독자 중 한 사람이라서 이번 독서는 자연스럽게 그 이름을 확인하는 과정이 되었다.






제인 오스틴을 위대한 작가 이전에 한 개인으로 복원하는 방식은 아름답다. 기존 제인 오스틴을 복원해 온 번역가들은 많았으나 하나의 위인전이 아닌 생활사의 감각으로 번역하기란 어떤가? 수많은 연구를 거듭하고 애정을 담아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열두 살에 상속을 주제로 글을 쓰던 소녀, 편지를 쓰고 다시 읽고 또 읽던 젊은 작가, 작은 시골 목사의 딸로서 상류층의 삶을 관찰하던 예리한 눈을 가진 인간이다. 이런 접근으로 나는 오스틴의 작품에 더 친밀해지고, 동시에 낯설어진다. 이미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소설들이 새로 읽히는 이유다.



세계적으로 수많은 독자들의 사랑을 받는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여러 편 읽었고 늘 창밖에서 그녀의 거실을 들여다보는 기분이었다. 전쟁사나 사회 이슈가 첨예하게 담긴 소설을 좋아하는 내게 제인 오스틴의 작품은 그리 매력적인 소설이 아니었다. 이건 내가 미학적으로 부재한 상태인 인간이 아니라 취향의 불일치일 뿐이다. 나는 소설에서 인간이 세계와 정면으로 충돌하는 순간을 사랑하는 독자인데, 제인 오스틴의 서사는 그 충돌이 실내에서, 예의 바른 언어로 처리된다는 느낌을 줘서 살짝 답답한 느낌이 없지 않다. 제인 오스틴의 소설이 위대하다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것 전혀 아니다. 위대한 작가임을 알고 있다. 다만 그 세계가 내 독서의 중력 안으로 들어오지 않는다. 나는 여성 작가의 작품을 멀리하는 독자가 아니다. 오히려 한계를 넘는 여성작가들을 더 많이 사랑한다. 다만 오스틴이 다루는 감정의 밀도와 규모가, 내가 소설에서 기대하는 존재론적 위기와는 다른 결에 놓여 있다는 느낌이다.







어떤 면에서 이 책은 AI 시대, 번역가의 자리를 묻기도 한다.

번역은 재현이 아니라 연주다

인공지능 번역이 일상이 된 시대를 살며 어떤가? 김선형은 번역이 무엇인지 다시 정의한다. 고전소설의 새 번역은 고전음악의 새로운 연주와 같다는 비유는 추상적인 얘기가 아니라, 책 전반에 걸쳐 구체적으로 입증된다. 문장의 호흡, 대사의 리듬, 인물의 목소리를 한국어로 어떻게 살아 있게 만들 것인가에 대한 고민은 인간 번역가만이 감당할 수 있는 영역임을 말한다.





사랑을 당연시하지 않는 사람들에게 바친다는 책 서두 문장은 너무 오래 남는다. 이미 통과해 온 감정의 시간 때문일까?

사랑이 당연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은 뭘까 한참을 생각해 봤다. 책 전체 텍스트보다 내가 더 오래 머물렀던 단 한 문장은 앞으로 내내 해결할 수 없는 숙제로 남을 것이다.


외국문학을 읽으면서 늘 번역의 선택이 궁금했던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다. 이 책은 제인 오스틴의 모든 것을 담은 책이면서 동시에, 김선형이라는 번역가가 어떤 방식으로 문학을 사랑해왔는지를 증명하는 책이다. 기존에 제인 오스틴의 작품을 많이 읽은 독자에게도 처음 접하는 독자에게도 새로운 재미와 동시에 깊은 울림을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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알렉산드로스 - 세계를 손에 넣은 대왕의 도전과 정복의 리더십 ㅣ 그레이트 하모니 2
필립 프리먼 지음, 노윤기 옮김 / 21세기북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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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복 중의 연대 너머에서, 행간을 살필 것~!!! 【 알렉산드로스】 세계를 손에 넣은 대왕의 도전과 정복의 리더십





필립 프리먼 지음 | 노윤기 옮김 | 21세기북스








먼저, 책의 저자님 이름이 낯익었는데 가만 생각해 보니 《한니발》의 저자셨다. 역시!!!!!!!


이 책은 제목이 약속하는 바를 충실히 썼다. 필립 프리먼은 알렉산드로스를 세계사에서 가장 성공한 정복자이자, 가장 매혹적인 리더십의 원형으로 복원한다. 마케도니아의 변방에서 출발해 그리스, 아시아,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인도에 이르기까지 이르는 책의 목차가 곧 정복의 지도라고 할 수 있다. 인간의 야망이 어디까지 어떻게 확장되는지 경로를 살피는 동안 내 심장소리가 더 크게 들렸다. 저자는 전투의 흐름, 정치적 판단, 문화 통합의 전략을 균형감 있게 엮으며 알렉산드로스를 단순한 전쟁 기계가 아닌 사유하는 지도자로 그려낸다.

알렉산드로스를 전면에 내세우는 많은 책을 읽었다. 이번에는 좀 다른 감각으로 그가 있기까지 조력자였던 여성들은 누구였을까? 이 부분을 찾기 위해 책 너머를 살펴야 했고 나의 상상력을 보태야 했다. 이런 독서는 너무 재밌다.





그의 어머니 올림피아스와 아버지 필리포스의 모습은 인간이면서 살짝 신격화된 모습. ( 나만의 소감이다^^... 저자는 객관성을 유지하려고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젊은 날 그들이 사랑을 나누고 알렉산드로스를 잉태하는 장면 인상적이다. 내내 알렉산드로스의 어머니를 떠올렸는데 그녀는 아름답고 총명하고 신비롭다......

특히 인상적인 지점은 알렉산드로스의 현장 리더십이다. 그는 항상 최전선에 섰고, 병사들과 동일한 위험을 감수했다. 게드로시아 사막에서 물을 버리는 장면이나, 인도 성채에서 홀로 성벽 안으로 뛰어드는 대목은 영웅 서사를 좋아하는 독자들에게 무한 도파민 세례다. 이 책이 오늘날까지 ‘리더십 교본’으로 읽히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명령하는 자가 아니라, 먼저 몸을 던지는 자라고 저자는 이 점을 강조한다.

그러나 바로 이 지점에서, 나에게 이 책은 동시에 아쉬운 역사서가 된다.





지금부터 내 생각__________

위대한 남성의 서사, 침묵당한 여성들

알렉산드로스의 생애에서 여성들은 배경으로만 존재한다. 어머니 올림피아스는 초반부에서 강렬하게 등장하지만, 곧 정치적 도구 혹은 기이한 인물로 밀려난다. 정복지의 공주들, 아내들, 합동결혼식에 등장하는 수많은 여성들은 제국 통합의 상징으로 기능할 뿐, 서사의 주체로 호명되지 않는다. 이 책의 연대기는 철저히 제왕의 시선으로 정렬되어 있다. ( 여성 작가가 썼더라면 과연 어떤 결과물이 나왔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다시 쓰고 싶다)

물론 이는 저자의 의도라기보다, 고대 사료 자체의 한계일 수 있다. 기록은 언제나 권력자의 것이었고, 전쟁은 남성의 언어로 쓰였다.( 전쟁을 저지른 사람도 남자였다).... 여기서 알렉산드로스의 ‘세계 제국’이 정말로 세계적이었는지 묻으면 그의 팬(?)들에게 돌 맞을까?

그가 허물고자 했던 경계에는 인종과 문화는 포함되었지만, 성별은 포함되지 않았던 것은 아닐까? 그는 과연 무엇을 허물고 싶었던 걸까?

이 책은 알렉산드로스의 포용을 말하지만, 그 포용의 범위가 어디까지였는지는 질문되지 않는다. 나는 여성 독자로서, 서사의 여백을 늘 의식하는 사람으로서 화려한 정복사의 이면을 계속 떠올렸다. 제국은 누군가의 침묵 위에 세워진 것은 아니었을까.














신이 되고자 한 인간, 그리고 균열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이 설득력을 가지는 이유는, 알렉산드로스를 완전한 영웅으로 봉인하는 않는다. 헤파이스티온의 죽음 앞에서 무너지는 모습, 클레이토스를 살해한 뒤의 자기혐오, 점점 심화되는 고독과 오만은 정복의 서사에 균열을 낸다. 저자의 손끝에서 알렉산드로스는 인간다운 모습으로 복원되는 듯싶다^^

33세에 끝난 생. “가장 강한 자에게”라는 유언. 이 모든 것은 위대함과 동시에 공허함을 남긴다. 제국은 분열되었고, 남은 것은 이름과 신화, 그리고 수많은 해석이다. 알렉산드로스가 추구했던 ‘세상의 끝’은 결국 도달 불가능한 지점이 아니었을까....





정복의 이면에서 나는 무엇을 살피고 싶었나?!

정복은 언제나 승자의 언어로 기록되어 왔다. 전투의 이름, 왕의 혈통, 지도 위에 긋는 경계선은 남았지만, 그 경계가 지나간 자리에서 누구의 삶이 무너졌는지는 거의 기록되지 않았다. 우리는 이제 정복 그 자체보다, 정복이 만들어낸 결론만 읽고 외운다. 지금 떠올려보면 학창 시절 역사 시간은 최악이었다. 전쟁 이후에도 계속되는 삶은 누구의 것이었는가! 제국의 확장 속에서 ‘통합’은 진정한 통합이었나? 그리고 마지막으로 내가 역사를 읽는 이유, 이름조차 남지 않은 이들은 어떤 방식으로 역사를 통과했는가 ( 여성들, 어린이, 소수자들.....)

정복의 이면을 읽는다는 것은, 전쟁을 도덕적으로 판단하겠다는 말이 아니니 오해 마시길!! 단지 기록의 시야를 확장하는 작업일 뿐! 내게 역사는 그렇다. 기록된 이면을 읽어내는 작업이다.





p. 165 장면에서 친구 헤파이스티온과 페르시아 왕족 여성들을 찾아갔던 일화

여성들은 키가 큰 헤파이스티온을 왕인 줄 알고 그의 앞에 엎드리자, 알렉산드로스는 깔깔 웃는다 ㅎㅎ

유머러스하고 자비로운 장면인데 이런 행간을 읽어내는 작업을 책의 저자는 어떤 기록에서 가져오셨을까 놀랍네

p. 391에서 귀하신 왕족들, 전사들이 잠시 엔조이는 이민족 여성을 만나지만

정말로 남자들이 결혼을 할 때는 고향 출신의 정숙한 여인을 원했다 ㅎㅎㅎ 게다가 이들이 기분을 풀어주기 위해 여성 하나당 많은 지참금이 필요했다.






기존 역사서, 전문가들이 언급하는 알렉산드로스: 위대한 남성, 이상화된 정복자

그동안 알렉산드로스에 대한 권위 있는 연구서들이 구축해온 기본 이미지는 분명하다. 그는 천재적 군사 전략가, 카리스마적 지도자, 문화 융합을 꿈꾼 이상주의적 제왕이었다. 로빈 레인 폭스, 피터 그린, 에른스트 바디안 등 주요 연구자들 역시 해석의 온도 차이가 살짝 있을 뿐, 알렉산드로스를 세계사를 전환시킨 인물로 규정한다.

특히 학계에서 반복되어온 핵심 이미지는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 불패에 가까운 전술적 천재.

둘째, 그리스 세계를 넘어 아시아까지 포괄하려 했던 코스모폴리탄적 비전.

셋째, 젊음과 과잉, 신성에 대한 집착이 만들어낸 비극적 영웅성이다.

필립 프리먼의 이 책 또한 이 계보 위에 놓여 있다. 그는 알렉산드로스를 잔혹한 정복자로만 축소하지 않고, 시대를 앞서간 통합자이자 몸으로 리더십을 증명한 인물로 설득력 있게 복원한다. 이는 분명 이 책의 강점이다.












반복되는 한계: 제왕의 내면은 풍부해지고, 주변은 다시 사라진다

전문가들의 연구가 축적될수록 알렉산드로스 개인의 내면은 정교해졌지만, 그와 동시에 그의 세계를 구성했던 다수의 삶은 다시 배경으로 밀려났다. 어머니 올림피아스, 아내들, 정복지의 여성들, 병참과 돌봄을 담당했던 이들, 패배 이후에도 그 땅에 남아 살아야 했던 사람들은 여전히 서사의 주변부에 머문다.

이는 특정 저자의 윤리적 결함이라기보다, 고대사 연구가 오랫동안 의존해온 사료 중심·권력 중심의 서술 구조에서 비롯된 문제가 아닐까

주변인, 잊힌 사람들을 복원하는 작업에 신경 써주시길.....

알렉산드로스가 복원되고 선명해지는 동안

그의 주변인들은 축소된다.





알렉산드로스를 다시 읽는 이유는 뭘까?

오늘날 우리가 알렉산드로스를 다시 읽는 이유는, 그를 더 위대하게 만들기 위해서가 아니다. 오히려 그의 위대함이 가능했던 조건과, 그 과정에서 소거된 것들을 함께 보아야 하기 때문이다. 필립 프리먼의 이 책은 그 출발점으로 충분히 유효하다. 그러나 그다음 질문은 독자의 몫이다.

우리는 이제 묻지 않을 수 없다.

위대한 정복자의 시대에, 이름 없이 살아간 사람들은 어떤 역사를 살았는가.

그리고 앞으로의 역사서는, 그들을 어디까지 불러낼 준비가 되어 있는가.

그 질문을 품고 읽을 때, 알렉산드로스는 비로소 과거의 영웅이 아니라 현재의 사유를 자극하는 인물로 다시 살아난다.





승자만 기록되는 역사에 대한 반대!!!

기존의 역사서는 전쟁을 남성의 영역으로, 정복을 진보의 증거로 '정당화'해왔다. 내가 사랑하는 SF 소설가들도 마찬가지다.

그러나 그런 서사 안에서 여성은 주체가 아니라 배경이 되었고, 민중은 숫자로만 남았다.

승리보다 지속을 기록하는 역사 영웅보다 관계를 중심에 놓는 역사

이는 특정 성별의 이야기를 덧붙이는 문제가 아니라,

역사를 바라보는 구조 자체를 바꾸는 일이라 믿으며 글을 닫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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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송길 위에서 건네는 안부 - 나를 치유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에 대하여
정정희 지음 / 가능성들 / 202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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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정정희 지음/ 문화제작소가능성














'풍경이 아니라 너라고 부르는 순간 달라진다'는 문장, 너무 와닿는다.






번아웃의 끝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소는 어디일까. 이 책은 그 질문에 ‘숲’이라고 답한다. 정확히는 저자의 고향 강릉의 해송 길이다. 누구에게나 번아웃은 찾아올 수 있는 감정이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함의 늪에 빠진 저자는 무너진 마음을 복구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자연 리터러시’를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우리는 주로 자연을 감상 대상으로만 다뤄왔다. 저자의 해송 숲을 걷는 장면은 마치 뇌과학과 인문학의 만남과 같다. 숲길 보행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면역 기능을 활성화한다는 과학적 설명은 이미 알고 있다. 여기에 저자가 말하는 마르틴 부버의 ‘나-너’ 관계 철학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자연 기록 전통이 겹쳐진다. 이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의 상대가 된다.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구성 또한 실천에 초점을 둔다. 1장은 도시인의 자연 결핍을 진단하고 숲 치유의 원리를 설명한다. 2장은 관찰 일기와 ‘나만의 나무’를 통해 자연을 읽는 기술을 제시한다. 3장은 자연을 거울삼아 내면을 들여다보고 글쓰기로 감정을 정리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4장은 일상에서 지속 가능한 웰니스 루틴을 설계하도록 돕는다. 각 장 말미에 배치된 ‘자연 스탬프’는 읽는 행위를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장치다. 14가지 관찰·기록 루틴은 꾸준히 지속 가능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번아웃 이후의 삶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번아웃 이후의 자기 이력을 과시하는 책도 아니다. 회복은 단번에 오지 않으며, 자연은 마법이 아니라 반복을 요구한다는 점을 저자는 몸으로써 경험으로써 말한다. 우리가 직접 숲으로 떠나지 못하더라도, 자연을 읽는 눈과 기록하는 손은 지금 여기서도 훈련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김익한 교수가 『거인의 노트』에서 추천한 문장처럼, 이 책은 일상의 무거운 짐을 잠시 내려놓고 자연 속에서 자연치유를 경험할 수 있는 힐링 에세이로서 깊은 위로를 전한다. 자연 에세이가 대세인 요즘, 이 책이 우리에게 전하는 메시지는 더욱 특별하게 다가오며, 바쁜 삶 속에서 잊기 쉬운 소중한 순간들을 다시금 되새기게 만든다.



최근 자연에세이를 종종 본다. 자연이 주는 감동과 그 체험을 글로 옮긴 많은 글들, 도시 생활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위안이자 다정한 안부다.





#김익한교수 #강릉 #힐링에세이 #자연치유 #자연에세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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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션토피아
고예나 지음 / 팔일오 / 2025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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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고예나 장편소설/ 팔일오 (펴냄)



《경성 브라운》의 작가 나는 이분의 작품을 처음 만나본다. 찾아보니 마이 짝퉁 라이프로 2008년 민음사 오늘의 작가 상을 수상하셨다고 한다. 종이책, 긴 글 읽지 않는 시대에 작가% 작가 지망생은 왜 이렇게도 많을까 잠시 생각해 봤다.






한눈에 들어오는 파란 표지처럼 맑고 단순해 보이지만, 읽을수록 불편하고 날카로운 소설이다. 작가는 조지 오웰의 동물농장을 여러 차 읽고 이 소설을 결심했다고 한다. 소설이 출발한 우화적 장치를 한국 사회의 현재로 끌어오며, 21세기의 정치적 기만과 무력한 대중을 정면으로 겨눈다. 이 작품이 한국판 동물농장으로 불리는 이유는 단순한 설정 유사성 때문이 아니라, 권력과 복종의 구조를 끝까지 밀어붙이는 태도에 있는지도 모르겠다.






이야기는 장수거북이 인간에게 붙잡혀 아쿠아리움으로 들어오면서 시작된다. 자유를 잃은 슬픔보다 먼저 등장하는 것은 안도감이다. 이미 그곳에 있던 옥토와의 재회, 먹이와 안전이 보장된 환경은 감금된 삶을 빠르게 일상으로 만든다. 이 지점에서 소설은 독자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언제 자유보다 안락을 먼저 선택하게 되었는가.

아쿠아리움이라는 배경이 내게는 낯설지 않았다. 돌고래나 상어, 바다생물을 잡아넣고는 먹이로 훈련시켜 길들이는 그리하여 인간의 밥벌이가 되는 곳이라 적으면 너무 비판적인가! 동물 복지를 말하자 그러는 너는 고기를 안 먹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나는 더 할 말이 없었던 적...






밤이 되면 인간이 사라지고, 바다생물들만의 회의가 열린다. 탈출이라는 단어는 이상처럼 떠오르지만, 동시에 위험과 책임을 동반한다. 누군가는 바다의 기억을 이야기하고, 누군가는 이곳이 더 낫다고 말한다. 논쟁은 점점 정치화된다. 흔히 인간 사회에서도 비슷한 일이 일어나지 않는가!!! 말 잘하는 존재들이 등장하며, 공동의 목표는 조금씩 왜곡된다. 고예나는 이 과정을 통해 민주적 토론이 어떻게 협잡과 선동으로 변질되는지를 집요하게 보여준다.






특히 인상적인 점은 대중을 결코 무고한 피해자로만 그리지 않는다는 것이다. 눈먼 대중은 누군가에 의해 속기만 하는 존재가 아니라, 편안함을 택함으로써 스스로 눈을 감은 존재들이다. 탈출을 외치는 소수는 언제나 과격하거나 비현실적인 존재로 밀려나고, 다수는 중립이라는 이름의 현상 유지를 선택한다. 그 결과 탄생하는 것이 바로 오션토피아가 아닐까? 처음에 오션토피아가 무슨 의미지 싶었는데..... 모두가 꿈꾸었으나 아무도 정확히 알지 못하는 유토피아, 혹은 권력이 만들어낸 허상이 아닐까






경성 브라운에서 역사적 현실을 다루었던 고예나는 이번 작품에서 아예 존재하지 않는 세계를 무대로 삼는다. 그러나 그 허구성은 오히려 현실을 더 또렷하게 드러낸다. 아쿠아리움은 보호 시설이자 감옥이고, 바다는 자유이자 무한한 불안이다. 이 단순한 대비 속에서 독자는 현재 자신이 서 있는 위치를 자연스럽게 점검하게 된다.





소설은 통쾌한 풍자를 가장한 씁쓸한 자기 고발문에 가깝다. 웃으며 읽다 보면 어느 순간 웃음이 멈춘다. 이 소설이 던지는 질문은 명확하다. 우리는 정말로 자유를 원하는가, 아니면 누군가 대신 결정해 주는 안전한 수조를 원하고 있는가. 책을 덮은 뒤에도 파란 표지의 색은 쉽게 잊히지 않는다. 그것은 바다의 색이 아니라,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온 감금의 색에 더 가깝기 때문일 것이다.





#오션토피아

#고예나

#팔일오

#장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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