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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송길 위에서 건네는 안부 - 나를 치유하는 가장 오래된 언어에 대하여
정정희 지음 / 가능성들 / 2025년 11월
평점 :
출판사 협찬 도서를 읽고 쓴 주관적인 리뷰

정정희 지음/ 문화제작소가능성
'풍경이 아니라 너라고 부르는 순간 달라진다'는 문장, 너무 와닿는다.
번아웃의 끝에서 우리가 가장 먼저 떠올리는 장소는 어디일까. 이 책은 그 질문에 ‘숲’이라고 답한다. 정확히는 저자의 고향 강릉의 해송 길이다. 누구에게나 번아웃은 찾아올 수 있는 감정이다. 어느 날 자신도 모르게 무기력함의 늪에 빠진 저자는 무너진 마음을 복구하기 위해 자연으로 돌아갔다. 그 과정에서 ‘자연 리터러시’를 몸으로 체감하게 된다.

우리는 주로 자연을 감상 대상으로만 다뤄왔다. 저자의 해송 숲을 걷는 장면은 마치 뇌과학과 인문학의 만남과 같다. 숲길 보행이 스트레스 호르몬을 낮추고 면역 기능을 활성화한다는 과학적 설명은 이미 알고 있다. 여기에 저자가 말하는 마르틴 부버의 ‘나-너’ 관계 철학과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자연 기록 전통이 겹쳐진다. 이제 자연은 정복의 대상이 아니라 대화의 상대가 된다. 자연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일이 곧 자기 자신과의 관계를 복원하는 과정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

구성 또한 실천에 초점을 둔다. 1장은 도시인의 자연 결핍을 진단하고 숲 치유의 원리를 설명한다. 2장은 관찰 일기와 ‘나만의 나무’를 통해 자연을 읽는 기술을 제시한다. 3장은 자연을 거울삼아 내면을 들여다보고 글쓰기로 감정을 정리하는 방법을 안내한다. 4장은 일상에서 지속 가능한 웰니스 루틴을 설계하도록 돕는다. 각 장 말미에 배치된 ‘자연 스탬프’는 읽는 행위를 행동으로 전환시키는 장치다. 14가지 관찰·기록 루틴은 꾸준히 지속 가능할 만한 가치가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번아웃 이후의 삶을 낭만화하지 않는다. 번아웃 이후의 자기 이력을 과시하는 책도 아니다. 회복은 단번에 오지 않으며, 자연은 마법이 아니라 반복을 요구한다는 점을 저자는 몸으로써 경험으로써 말한다. 우리가 직접 숲으로 떠나지 못하더라도, 자연을 읽는 눈과 기록하는 손은 지금 여기서도 훈련할 수 있다는 점을 깨닫는다.

최근 자연에세이를 종종 본다. 자연이 주는 감동과 그 체험을 글로 옮긴 많은 글들, 도시 생활에서 꼭 필요한 부분이다. 위안이자 다정한 안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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