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카소처럼 떠나다 - 청색시대를 찾아서
박정욱 지음 / 에르디아 / 2012년 5월
평점 :
절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이 절로 들 뿐 아니라 마치 열려 있는것 같은 착각마저 주는, 없는 듯이 그 자리에 있는 문이다. 사람 역시 그런 문을 가지고 산다면 좋은 친구들을 많이 만날 수 있을 것이다. 사람은 자신의 문에 들일 수 있는 만큼 들이며 살아간다. 흰 벽에 뚫린 이 문은 사람의 크기에 딱 들어맞는 문이다. 어쩌면 소중한 한 사람만을 위한 문인지도 모르겠다.

- 어둠을 어루만지는 문앞에서 중 발췌 -

 

 

지친 몸과 마음에 시간을 주는, 일상의 멋진 쉼표는 여행이다.

이국적이면서 일상적 편안함을 전해주는 표지의 청색시대를 찾아서피카소처럼 떠나다는 그런 의미에서. 많이 털어내고 비워내는 시간을 암시해 주는 것 같았다. 다가온 한여름 책 한권 옆에 끼고 더 밖으로 밖으로 나가고 싶어지게 만들어 준다.

피카소를 자취를 따라 떠나는 테마에세이. 뜨거운 태양아래 원색의 색깔로 자유롭게 표현된 그의 작품들이 떠올렸다.

저자가 생각하는 피카소의 겨울이미지와 내가 가졌던 이미지(마티스처럼 여름같다고 생각했기에)가 너무도 달라서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글들로 감성의 차이를 채워볼수 있었다.

입체파 화가로서의 화려하고 완숙한 느낌의 나이든 예술가 피카소를 떠올렸다면 얼마간은 그의 무명시절로 돌아가 젊은 피카소를 떠올리게 해줄 것이다. 청색시대라 함은 아마도 그의 순수했던 열정, 예술적 고뇌와 함께 성장의 가능성 조차 점칠 수 없었던 시절일지 모른다. 지나고 보면 20대 감당하기 힘들었던 시간이 우리에게도 그 같은 아픔과 혼란이 있었다. 너무 힘들었기에 그때로 되돌아 가고 싶다고 생각한 일은 없었다. 하지만 저자의 글에 동의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역시나 되돌리고 싶은 열정이다.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추억하는 마음이 전달된다.

 

 

추상화는 어쩌면 매우 사실적인 묘사인지도 모른다. 현실이 얼마나 추상적인지를 우리는 모르고 있을 뿐이다. 보지 못하는 것을 볼 수 있는 화가의 눈이 없을 뿐이다.

 

- 피카소가 거닐던 길목에서 산책하기 중에서 -

 

 

피카소가 젊은시절 즐겨찾았던 바르셀로나의 네마리 고양이 술집을 궁극의 종착지로 떠난 여행에서 아름다운 항구도시 까다께스, 바르셀로나와 그리고 시쩨를 거친다.

바다를 향한다는 골목들 그늘과 빛의 공간이 자연스레 분할되고 흰색 집들과 푸른바다의 조화가 한가롭고 싱그럽다.

비현실적이라는 것은 시간을 초월한 것이 아닐까. 까다께스에서 달리와의 조우는 피카소 뿐이 아닐것이다. 해변에서 달리의 작품을 만난 장면은 감탄이 전해졌다.

바르셀로나의 청년 피카소가 되어 그가 걷던 거리의 광장, 술집에서 스케치를 감상해 보고 변치않는 것들의 소중함을 느끼는 일이 너무나 근사했다.

잊고 있었던 지난날의 열정과 마주하는것, 저자와는 달리 어떤 장소에 의미를 부여하지 않으려 했었다. 하지만 결국 그것조차 역설적일지 모른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아름다운 시간들을 추억 이상으로 의미두지 않으려 하고 새로운 장소를 찾고 싶어했다.

위로받는 시간, 온전히 나를 위한 여행이 부러웠다. 저자의 인생의 새로운 탈출구를 향한 에너지를 얻어가는 여행이 내게도 좋은 에너지를 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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