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이지 않는
폴 오스터 지음, 이종인 옮김 / 열린책들 / 2011년 1월
평점 :
절판


가끔 나는 매스컴에서 떠들썩한 뉴스들로 시끄러울때 그들이 쏟아내는 무수한 정보를 들으면서, 그렇게 알려진 그 어떤 사건도 '진실'을 전부 알수는 없다고 생각한다.  '진실을 알수 없다'는 말은 비관적이며 허무하게 들릴 수 있겠지만 얼마든지 왜곡되어 포장될수 있고 변형되어 난도질 당할수 있는, 실익에 따른 입장을 추구하는 시각의 차이를 말하고 싶은 것이다.  때로는 권력에 휘둘려 그렇게 만들어지고, 때로는 그리 생각하고 싶은 누군가에 의해서 그렇게 그려지는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이 소설은 마치 나의 그러한 생각들에 환상을 더해주는, 오래만에 읽어보는 상당히 클래식한 느낌의 소설이다.   보통의 나는 소설책을 손에 잡으면 거의 이틀에 걸쳐 읽거나, 아주 시간이 없거나 진도가 안나가는 경우를 제외하고는 거의 모든 책은 3일 정도의 시간을 들여 한권의 책에만 집중하는 편인데, 이 책은 부러 천천히 다른 책도 봐가면서 음미하며 읽어갔고, 그럼에도 집중이 잘 되었던 것은 섬세한 글의 표현과 새로운 구성 그리고 흥미요소가 어우러졌기 때문이다.

많지 않은 등장인물에 나름의 애착을 느껴볼수 있었는데, 그중에 애덤과 c라는 두 인물의 치기어릴만큼 젊은날의 감성적이고 열정적인 사랑과 아픔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볼수 있었다.  


사람에게 매료되는것은 상당히 멋진 경험이다.  그런 감각적이고 정신적인 희열과 환상속에서 본질을 찾아 진짜의 모습으로 마주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시간이 아주 많이 흐른다고 해도 사람이 가슴에 담았던 사랑의 가치가 달라지는 것은 아니지만, 날까롭던 그 사람만의 사랑의 관념은 무뎌지는듯 하다.  질식될것 같던 위선과 연민의 감정조차 시간이 흐르면 이해와 안주로 돌아서 버리는듯 깊은 아쉬움이 느껴졌다. 

 

'I shook his hand for the first time in the spring of 1967.'
(1967년 봄에 나는 처음으로 그와 악수를 했다.) 
 

글쓰기를 멋진 예술이라 칭하는 지적인 청년 애덤과 냉소적이면서도 나르시즘에 빠진듯한 남자 보른 그리고 미스테리한 열정의 마고와의 감각적인 만남은, 12세기 프랑스 시인'베르트랑 드 보른'을 소통의 코드로 대화를 시작해 나름 느낌있어 보였다.   

 

그러한 만남에서 마지막 책장을 넘기기까지 천천히 읽어가며 점점 더 빠져들게하는 섬세한 소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애덤 워커의 삶과 그에게 영향을 끼친 많은 부분, 보른과 마고에 대한 혼란스러움과 사랑과 사건이 교차되며 연결된다.  수렁에 빠지듯 헤어나오지 못하는게 아닐까 애덤이 단순한 사람이었으면 하는 억지바램을 가지도록 마음이 아팠다.  소설은 자연스런 시각의 전환을 택하여 여러번 환기되고 사건과 애덤 워커의 삶을 입체적이고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주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럴수도 더욱 잡히지 않는 안개속이다.  

그럼에도 이 소설이 내게 의미 있었던건 모호하여 실존이라 할수없는, 잡히지 않는 상황을 그려내면서도 안에서 우정과 사랑, 배신과 혐오 등의 소설의 모든 조건을 다 갖추어 흥미를 잡아두었기 때문일것이다.  

그만큼 '보이지 않는'은 포커스를 어디에 맞춰도 다양하게 이야기를 구성할수 있는 장치적 기능이 뛰어난 소설이다.  만일 독자가 규정된 스타일을 추구하는 사람이라면 색다른 느낌의 책이라고 생각할 것이며, 단조로운 구성의 소설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독자라면 세련됨을 느끼지 않을까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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