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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래의 자리 ㅣ 소설Q
문진영 지음 / 창비 / 2024년 8월
평점 :
문진영 작가의 [미래의 자리]를 읽었다. 창비 소설Q 시리즈 작품이다. 요즘 MZ라는 말이 유행이다. 세대를 지칭하는 말이지만 과거에도 그래왔듯이 기성세대가 젊은이들을 응근히 비꼬는 뉘앙스가 담겨 있다. 어차피 시간은 흐르고 또 다른 세대 교체가 당연함에도 이미 익숙한 것에 길들여지면 새로운 변화는 낯설고 잘못된 것이라는 손쉬운 판단을 내리게 만든다. 90년대 생이라는 말과 결합된 MZ세대는 기존의 사회관습을 부정하는 몹시 개인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것으로 단정짓는 결론이 많다. 기존의 가난과 전쟁에 대한 두려움을 갖고 살아온 이들과는 전혀 다른 시대적 배경을 타고 살아왔기에 그들은 몹시 이기적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하지만 이미 먹거리가 풍부하고 교육열은 하늘을 찌르고 부로 계급이 편성되는 시대에 인터넷으로 노출된 형제가 없는 거의 대부분이 독자인 이들에게 과거의 세대조차 보편적으로 탑재하지 못한 아량과 희생을 요구한다는 것은 너무나도 기이한 기대가 아닐까.
소설 속 주인공들의 연령이 96년생이라고 저자의 말에서 밝히고 있다. 아마도 지금의 대학생들은 4. 19와 5.18 기념식을 비롯한 민주화 운동을 기억하기 위한 행사에 참여해 본 적이 거의 없을 것 같다. 80년대의 젊은이들과 지금의 젊은이들이 겪은 시대의 상처를 저울질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어느 때의 상처와 고통이 크다고 말할 수 없다. 군부독재 치하에서 고문을 당하다 죽은 열사를 기억하며 전국의 대학생들과 시민들이 거리로 뛰쳐나와 분노할 수 있었던 공통의 목적이 있었다. 언제 어디서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린치를 당할지 모른다는 공포를 외면할 수 있는 정의로움을 떳떳하게 드러낼 수 있었고, 그렇지 못한 이들은 묵묵히 부끄러움을 삭힐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세월호 참사와 이태원 참사를 겪은 지금의 젊은이들은 분노할 수 없다. 그들의 죽음에 함께 아파하고 부당한 사회 구조를 타파하기 위해 목소리를 높이자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몹쓸 말이 들려온다.
분노와 정의로움이 당당히 받아들여지는 시대에는 육체적 고통을 견딜 수 있었다. 하지만 정의는 사라지고 오로지 기득권을 지키려는 이들의 팔렴치한 모습을 동조하며 이성이 마비된 뻔뻔한 이들의 냉혹한 말들은 많은 이들의 마음을 무너뜨렸다. 몸에 보이는 상처가 아니라서 어디에 약을 발라야 새살이 돋아날지 알 수가 없다. 더 이상 숨을 쉬게 만들지 못하는 유독 가스를 들이킨 것처럼 독약을 묻힌 것 같은 그들의 혓바닥에서 나오는 말들은 이 시대의 많은 젊은이들을 쓰러뜨렸다.
지해가, 자람이, 나래가 기억하는 미래가 그랬던 것 같다. 누구보다도 상대의 마음과 감정을 세밀히 잘 살필 줄 알았던 미래가 일련의 사건들을 겪으며 자신에게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는 것에 의아해한다.
"그냥, 나는 가끔 너무 이상한 기분이 들어.
언니. 나는 가끔 어떤 순간이 너무 아름답다고 느끼면, 어떤 열망에 사로잡힐 때면, 모르는 얼굴들이 떠올라. 왜 나는 여기 있고, 누구는 없지? 그런 게 이상해. 나는 왜 살아 있지?
세상이 미쳐 날뛰는 것 같다가도, 근데 왜 이렇게 아름답지? 그런 생각이 들고, 웃다가도 갑자기 죄책감이 들고, 슬퍼할 만한 걸 슬퍼하다가도 나한테 그럴 자격이 없단 생각을 해.
그렇게 느낄 필요가 없다는 걸 나도 알아. 그래서 나는 그냥 내가 할 수 있는 걸 해야지, 싶다가도 내가 뭘 할 수 있지, 그런 생각으로 바뀌고. 내가 너무 먼지 같다가도 또 가끔은 우주만큼, 너무 커다랗게 느껴지는 거야. 그러다 아, 그 사람도 우주였는데, 그리고 또 누가 그 사람을 우주만큼 사랑했을 텐데. 그런 생각이... 계속 꼬리에 꼬리를 무는 거야.(210-211)"
슬픔과 애도의 시간이 점점 짧아짐을 강요받는 것 같다. 언제까지 그렇게 있을 거냐고 채근대는 시선에 몸과 마음을 어디론가 숨기고만 싶어진다. 미래가 떠나고 나서 지해가 그랬듯이 '뭐 해?'라는 자람의 물음에 '그냥 있어'라고 대답할 수 없는 마음을 헤아려주는 시간을 아까워하는 시대이다. 그럼 도대체 무엇을 위해서 우리는 시간을 써야 하는 것인가?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난다는 것은 그 한 사람만의 일이 아닐텐데, 슬픔이 그칠 때까지, 그때가 언제일지는 아무도 알 수 없지만 그냥 묵묵히 기다려주는 것이 우리가 보내야하는 시간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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