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파란, 나폴리 작가의 작업 여행 1
정대건 지음 / 안온북스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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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대건 작가의 [나의 파란, 나폴리]를 읽었다. 안온북스 작가의 작업 여행 01 이다. 제주도의 서쪽 끝에 사는 사람이 정반대에 있는 성산일출봉을 가 본 적이 없다는 얘기를 들었다. 조금 과장된 얘기일수도 있겠지만 의외로 자기가 사는 곳을 제외하고 다른 지역을 가지 않고 일평생 살아간 사람들도 있다. 여행과 새로운 만남, 해보지 않은 것을 도전하는 경험이 필수적인 삶의 요소로 등장하는 시대이지만 그런걸 하지 않았다고 삶이 불행해지는 것은 아니다. 여기 저기 해외 여행을 많이 다녀온 사람들이 자랑이랍시고 떠벌이는 얘기를 들을 때가 있다. 그럴때마다 나도 모르게 속에서는 '그래서 뭐 어쩌라고'라는 반발심이 솟구친다. 그리고 위선자처럼 '지금 하루 벌어 먹고 사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여행 따위를 다녀왔다고 자랑을 하다니 한심하다 한심해'라는 비열한 사고를 작동시킨다. 아마도 나는 지금 어딘가 무척이나 가고 싶은가보다. 


포지타노의 레몬, 쏘렌토의 아기자기한 기념품 숍, 아말피 해안도로의 깍아지는 절벽도로, 폼페이의 흙색 유적들을 지나쳤음에도 나폴리는 인연이 없었다. 나폴리에서 출발한 유로스타를 수없이 탔음에도 언제나 돌아오는 종착지는 로마였다. 로마 밑으로는 가고 싶지도 않았고, 아는 사람도 없었으며, 가야 할 일도 없었다. 아마도 나에게 있어 제2의 고향같은 향수를 불러일으키는 곳은 북부의 베로나이기 때문일까. 하지만 저자의 나폴리 찬사를 읽다보니 나폴리를 다녀가지 않은게 무척이나 아쉽고 후회스러웠다. 그때는 왜 그렇게 편견을 가지고 남부 이탈리아를 바라봤을까, 사실 개똥과 쓰레기가 굴러다니는 건 이탈리아 어느 도시나 마찬가지인데 말이다. 


노트북 하나만 있으면 어디에서든 일을 할 수 있을 것 같은 직업이 작가이지만, 작가라고 해서 아무 때나 쉴세없이 영감이 떠오르는 것은 결코 아닐 것이다. 작가들이 레지던시 프로그램을 신청해서 낯선 곳에 머물며 스스로의 몸을 조금 불편하게 만드는 것은 분명 글쓰기의 예리한 감각을 되살리기 위한 시도이지 않을까란 나의 예상은 이번 책을 읽으며 완전히 빗나갔다. 작가에게 있어서 글감을 찾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한 일이겠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자신의 내면적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리라. 나폴리에서 석달 간 지낸 저자는 마치 운명적인 피정의 시간을 보낸 것처럼 집돌이로 지내며 외부의 만남을 주저한 이유를 깨닫게 된다. 나폴리를 떠나기 전날 전망대에 올라 갑작스런 울음을 토해내며 응어리진 무언가가 풀어지는 경험을 전해준다. 어릴 때 친구로부터 외면당한 작은 상처 이후 거부에 대한 막연한 두려움이 저자의 마음을 오랜시간 지배해 왔기에, 나폴리에서 만난 사람들이 보여준 환대의 순간들은 나폴리가 언제나 그립고 정겨운 고향의 맛과 향기를 지니게 해주었다. 


안부가 궁금한 사람에게 잘 연락하지 않는다는 저자의 말에, 혼자 있기를 원하면서도 끝없이 외롭고 쓸쓸했다는 말에 뜻밖의 위로를 얻게 된다. 그럼에도 용기를 내서 아무도 알지 못하는 곳으로 덜컥 나의 몸을 내어놓을 수 있다는 점에 박수를 보내드리게 된다. 그리고 그 용기로 인하여 어딘가 나를 애타게 기다리고 있는 무상의 환대를 충만히 받고 왔음을 읽게 되어 기쁘다. 


"예전에는 이야기가 그저 도피처와 위안이 되어주는 정도만 되어도 훌륭한 것이라고 여겼다. 그러나 이제는 생각이 달라졌다. 훌륭한 이야기는 단순한 도피 이상이다. 앞이 깜깜해 행복을 상상하지 못하는 사람에게 행복에 대한 구체적인 상상력을 줄 수 있다. 그 상상력은 정말로 사람의 선택을 바꿀 수 있고 인생을 바꿀 수 있다. 내가 사랑한 이야기들은 내 인생이 긍정적인 쪽으로 헤엄치도록 경로를 바꿨다. 나는 이야기의 세계에 큰 빚을 졌다.(1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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