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집 - 그러나 여전히 가끔은 울 것 같은 마음으로 아무튼 시리즈 62
김미리 지음 / 코난북스 / 2024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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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미리 작가의 [아무튼, 집]을 읽었다. 부제는 "그러나 여전히 가끔은 울 것 같은 마음으로"이다. 아무튼 시리즈 62번째 책이다. 어쩌면 지금 우리나라에 사는 사람들이 가장 갖고 싶어하는 게 집이 아닐까 싶다. 내 집만 마련되면 다른 어떤 어려움은 뭐든지 다 이겨낼 수 있을 것만 같은 무형의 교육을 받은 것 같다. 하지만 도시에 살고자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내집 마련이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부동산 투기를 근절해야 한다는 얘기를 경제가 뭔지도 모를 나이때부터 들은 것 같은데 여전히 영끌이라는 말이 생겨날 정도로 유효하다. 연예 기사의 가십거리에 주기적으로 등장하는 모 연예인이 건물을 사고 팔아 수십억의 차익을 남겼다는 내용을 볼 때면 나와는 전혀 상관없는 딴 세상 얘기처럼 느껴진다. 


생각해보면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집도 화장실이 없었다. 아주 어릴때니까 밤 중에는 부엌의 작은 플라스틱 대야에 큰 것도 보았는데, 평소에 주인집 퍼세식 화장실을 이용할 때에는 항상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나는 기억이 잘 안 나는데 내가 화장실에 힘을 주고 있다는 걸 그렇게 노래로 표시했었나보다. 아마도 퍼세식 화장실의 각종 괴담으로 인해 무서워서 그랬을 것이다. 아니면 그때부터 화장실의 천연에코를 즐겨했을지도. 나도 꽤 오랜 시간 내 방이 없었다. 사춘기의 시작을 알리는 첫 장면으로 기억되는 게 엄마, 아빠 옆에서 나름대로 나만의 시간을 갖는 것처럼 그때 처음 내것이 된 포터블카세트플레이어에 헤드폰을 끼고 음악을 유행가를 듣는 것이었다. 헤드폰으로 음악을 들으면서서도 벌써부터 어른 흉내 낸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응근 신경을 썼던 기억이 난다. 


그 아파트에 살 때에는 성당에 걸어갈 수 없었다. 버스를 타고 15분 정도 가야 하는 거리였기에 걸어서 다니기에는 조금 멀었다. 내 유년 시절의 거의 모든 추억이 담긴 성당에 다니는 동년배의 친구들은 대부분 걸어서 5분 거리에 있는 당시에는 꽤 괜찮은 아파트에 살고 있었다. 다른 애들은 다 걸어서 성당에 다니는데, 나와 몇몇 애들만 버스를 타고 다녀서 왠지 모르게 주눅이 들었고 버스를 타고 성당을 다니는 건 마치 가난의 상징처럼 느껴졌다. 지금 초딩들도 아파트 이름을 보고 집안 형편을 파악한다고 하는데, 그건 오래전에도 마찬가지였던 것 같다.  


신축 아파트로 이사오면서 난생 처음 내 방도 생기고 드디어 성당도 걸어다닐 수 있게 되었다. 내 방이 생기고 침대와 책상도 있다는 게 너무나도 좋았는데 더 이상 친한 친구들을 만날 수 없었다. 삶의 낙이었던 성당 주일학교를 다니기 싫어졌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살짝 우울감이 엄습해왔던 것 같다. 뭔가 환경적으로는 훨씬 윤택해졌는데 정서적으로는 견디기 힘들만큼 노잼 그 자체였다. 다행인지 불행인지 본격적인 입시경쟁에 돌입하면서 그따위 고민으로 시간을 허비 하도록 놔두지 않았다. 하지만 가끔씩 이사를 가지 않고 오래전 그 성당에서 가장 가까웠던 친구들과 함께 어른이 되었다면 어땠을까라는 생각이 든다. 아마도 공부는 분명 덜 했겠지만 더 많이 웃었을 것이고 더 많은 크리스마스의 추억이 생겼을 것이다. 


이 책을 읽으니 저자가 살아왔던 과거의 집들에 대한 회상에서 자연스럽게 내가 살았던 집이 오버랩되며 정말로 인간에게 집 곧 거주지는 중요하다는 것을 다시 한 번 깨닫게 된다. 꼭대기집과 수풀집의 5도 2촌의 삶을 실행하는 저자의 결단력과 의지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들며 몹시 부럽기도 하다. 번잡한 도시의 삶을 완전히 포기할 수 없는 태생적 도시인들에게는 어쩌면 더욱 더 간절히 고요한 집이 주는 안정감이 필요한 것 같다. 


할머니와 함께 안방을 쓰며 지냈던 저자의 유년시절에 대한 내용을 통해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바로 뜨끈한 아랫목에 놓은 두툼한 담요와 같은 사랑이 아닐까 싶다. 이 책의 가장 감동적인 부분인 택배기사에 대한 내용의 고찰이 가능했던 것은 저자가 할머니에게 받은 사랑을 기억하고 타인에게 나눠줄 수 있는 추억의 집을 갖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 


"나는 이제 그들을 선명하게 떠올린다. 나의 다정하고 안온한 세계를 소리 없이 지탱하는 사람들을. 나의 집을 집답게 해주는 사람들을. 나와 세상을 이어주는 사람들을. 그들 하나하나의 얼굴을.(129)"


"살다 보면 내 자리가 아닌 것 같은 곳에 가게 될 때가 있다. 심지어 그곳에서 힘껏 버텨야 하는 경우도 생긴다. 실은 나를 원치 않았다고 대놓고 말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못 들은 척 어떤 연극을 해내야 하는 시절이 온다. 괜찮아질 거라고 마냥 낙관할 수도, 될 대로 돼라 체념할 수도 없는 때, 그때마다 나는 집을 떠올렸다. 여전한 표정으로 나를 품어주는 익숙한 공간을. 그 속에서 울고 웃으며 살아낸 시간을. 집에서 환대받았던 힘으로 오늘을 버티고 내일을 소망할 수 있었다. 집에 단단히 뿌리내릴수록 나는 삶의 더 멀리까지 안전히 갈 수 있었다. 내가 모르는 세계로 건너가서 가끔 타인의 안부를 물을 수도 있게 되었다.(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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