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돈키호테
김호연 지음 / 나무옆의자 / 2024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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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호연 작가의 [나의 돈키호테]를 읽었다. [망원동 브라더스]와 [불편한 편의점]시리즈로 이미 페이지 터너로서의 명성을 얻은 저자의 새로운 신작이다. 이번 작품도 전작과 마찬가지로 소시민들의 평범한 일상을 그리며 우리가 정말로 중요한 것을 잊고 사는 것은 아닐까란 궁극적 질문에 도달하게 만든다. 소설의 가장 큰 모티브가 된 것은 지금처럼 인터넷이 상용화 되기 이전에 집집마다 브라운관 TV 밑에 연결된 VHS 비디오 플레이어를 통해 즐겼던 비디오 영화 대여점이다. 지금이야 OTT가 범람하여 친구나 지인을 만나도 공통된 화제를 찾기 어려울 정도로 즐길거리가 많아졌지만, 비디오 테이프를 대여점에서 빌려 볼 때만 해도 즐길 수 있는 영상물은 그리 많지 않았다. 당시에는 지금처럼 TV 화면이 크지도 않았는데, 겨우 14인치나 16인치 정도 되는 사이즈의 화면에도 그렇게 열광할 수 있었다니 인간이 정말로 재미있어 하는 것의 기준은 무엇일까 의아해진다. 


정확히 언제부터 비디오 테이프가 사라진 것인지 기억이 잘 나지 않지만 2005년에도 좋아하는 드라마를 보기 위해서 예약녹화 버튼을 누르고 외출을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 이전에도 인터넷으로 영화를 다운 받아 공씨디에 구워서 돌려보곤 했었는데, TV에서 방영되는 드라마는 쉽게 구할 수 없었던 것 같다. 그래서 미국에 이민이나 유학을 간 사람들은 한국 방송을 녹화한 비디오를 대여하는 것이 유행이었다고 하고, 그렇게 외국에 오랜 기간 머무는 이들을 위한 큰 선물 중의 하나는 아주 유명한 한국 드라마를 녹화한 비디오 테이프나 부피를 줄인 영화 씨디를 가져다 주는 것이었다고 한다. 내가 외국에 머무는 기간에는 그나마 아주 느린 인터넷 덕분에 지금의 스마트폰 화면보다 작은 화면으로 재방송해주는 사이트를 통해 한국 방송을 즐겨보곤 했었다. 

사실 소설의 소재는 비디오 대여점이지만 주인공 진솔이 고향으로 내려가 어린 시절의 추억을 떠올리며 방문한 곳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는 돈키호테의 삶을 꿈꾸던 돈 아저씨로부터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진솔을 비롯한 아이들의 아지트가 된 돈키호테 비디오 대여점은 단지 비디오를 빌려 가는 곳만이 아니라 돈 아저씨를 통해 책과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고 친목을 도모하는 특별한 장소였다. 방송계에서 피디로 일하던 진솔은 자신의 콘텐츠를 비열하게 뺏아가는 상사들의 욕심에 환멸을 느끼고 대전 엄마집으로 돌아가게 된다. 하지만 막상 그곳에서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 고민하는 날들이 늘어가자 솔은 아빠가 돌아가신 후 엄마가 혼자 운영하는 치킨집을 물려받게 될까 전전긍긍하다 우연히 어린시절의 한 때를 장식한 돈키호테 비디오 대여점 자리를 지나게 된다. 돈키호테가 있던 곳은 이미 카페로 바뀌었고 진솔은 돈아저씨를 떠올리며 어디로 가신 것일까 궁금해한다. 

돈아저씨의 근황을 궁금해하던 진솔은 아저씨의 아들인 한빈을 만나게 되고 한빈조차도 아버지의 행방을 알 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전해듣게 된다. 김호연 작가의 소설을 읽다보면 사회에 적응하지 못하고 좌절하거나 실패한 이들이 자주 등장하는데, 그들이 마주했을 처절한 현실을 자세하게 그리지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는다. 분명히 많이 힘들었을 것 같은 등장 인물도 소설 속에서는 어딘가 모르게 힘을 내고 있다는 느낌을 받는다. 사실 어찌보면 그게 더 현실적인 것 같다. 우리는 나의 아주 가까운 사람의 불행한 소식을 듣게 되었을 때 조차도 어째서 그런 일이 발생했는지, 앞으로는 어떻게 해결해 나갈 것인지 자세히 묻지 않을 때가 많다. 어차피 알아봐야 마음만 아프고 내가 뭘 어떻게 해줄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진심은 그 일과 무관하고 싶기 때문일 것이다. 세상에 도움을 줄 수 없는 사람은 없다. 너무나 하찮아 보이는 것이라도 결국 사람은 사람을 통해서 구원을 받기 마련이기에 따뜻한 손의 온기 하나만으로도 죽고자 하는 사람의 마음을 돌릴 수도 있다. 


그런 면에서 저자의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슬픈 속사정은 독자들로 하여금 알아서 헤아리기를 바라는 것만 같다. 이미 시궁창 속에서 한참이나 헤매었을 인물들의 사연을 낱낱이 파헤치기 보다 현대인의 필수품이 되어버린 선을 지키는 한도에서 지켜봐주기를 바라는 것만 같다. 그럼에도 진솔의 유튜브 방송을 통해서 전하고 싶었던 것은 잊히는 사람들을 눈여겨 봐주는 것이다. 지하철 역사를 거닐다보면 벽을 보고 혼자 앉아 있는 분들을 지나치게 된다. 냄새도 나고 행여나 병이라도 옮을까봐 멀찌감치 떨어져 걷게 되지만 등을 보이고 우두커니 앉아 있는 이들의 잔상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는 어떤 삶을 살아왔기에, 어떤 이유 때문에 그렇게 춥고 더울 때도 한데에 혼자 앉아서 시간을 보내는 것일까. 드라마 미스터 션샤인에서 배우 변요한의 대사였던 ‘무용한 것들’에 대한 사랑이 더없이 하찮게 느껴지는 시대에도 정의와 자유와 사랑을 찾고자 수없이 단단한 벽을 두드린 돈아저씨와 진솔의 여정에서 잠시나마 행복했다. 


“방송 일을 하며 가장 괴로웠던 게 이런 경우였다. 안 보는 데선 미친 듯이 씹고, 보는 데선 살갑게 굴고, 그러다가 이해관계가 틀어지면 다신 안 볼 듯 싸우고, 그러고 나서도 서로 필요한 일이 생기면 아무렇지 않은 척 다시 또 같이 일하고. 일이란 게 다 그렇지, 라며 쿨한 척 뻔뻔하게 구는 사람들의 이합집산 생태계.(94)”


“나는 그렇게 생각해요. 다민 그 고지식함이 아마 불편한 대목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아무래도 윗사람들은 어쨌거나 좀 아부도 떨고 응대도 잘하는 친구들을 선호하니까. 그게 어쩔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이랍니다. 리더로 서 있다 보면 외롭거든. 외로우니 옆에 와 말 받아주고 알랑대는 놈들이 눈에 들어올 수밖에 없어요.(136)”


“가끔 이런 생각을 하곤 해요.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숨어 지내는 특정 감정의 물고기는 어떤 낚시 같은 말에 걸려들어 수면 위로 끌려 나온다는 것을요.(174)”


#김호연 #나의돈키호테 #나무옆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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