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한 생애 소설Q
조해진 지음 / 창비 / 202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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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해진 작가의 [완벽한 생애]를 읽었다. 창비 소설 Q 시리즈 작품이다. 심각한 문제를 회피하고 싶을 때가 있다. 머리속에서 떨쳐내고 싶지만 찰나의 순간 일뿐 지속적으로 걱정과 불안이 앞다투어 지금처럼 가만히 있어도 되는거냐고 채근질을 해댄다. 당장 일어나 뭔가를 하려 해도 크게 바뀌는 건 없다는 걸 너무나 잘 알면서도 자꾸만 나 자신을 자책하게 된다. 자기 자신을 죄인으로 만들어 단죄하려는 태도는 자기 자신 뿐만 아니라 나를 바라보는 주위 사람들에게도 자책감을 전염시킨다. 우리 모두를 죄인으로 만들어도 세상은 바뀌지 않는데, 그렇게라도 자신을 학대하는 순간 찰나의 자유를 느끼기에, 그 단죄의 자유에 중독되어 나와 너의 삶을 갉아먹는다. 


윤주와 시징과 미정은 모두 이별을 맞이했지만 그 이별을 받아들이고 인정하기까지 고통스러운 순간을 인내하게 된다. 살아갈수록 깨닫게 되는 것 중의 하나가 우리는 어쩔 수 없인 살갗을 벗겨내는 듯한 고통스러운 일을 경험하게 되지만 그 고통 이후의 삶을 결정짓는 것은 그러한 고통이 나에게 다가온 이유를 스스로 납득할 수 있을만한 설득의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이별, 가족들의 죽음 등 예기치 못한 일들이 삶을 온통 휘젓고 다닐 때 파고가 높아진 마음이 가라앉기 위해서는 그럴 수 밖에 없었다는 그리고 그 모든 것이 너의 잘못이 아니며 다 괜찮다는 납득이 절실하다. 그러한 일련의 과정이 제대로 흘러가지 않는다면 아무리 많은 시간이 지난다 하더라도 회복될 수 없다. 


미정과 함께 제주도의 제2공항 건설을 반대는 집회에 누구보다도 앞선 활동가인 보경 언니라 칭하는 중년의 여성에게 숨겨진 사연 또한 이런 고통의 순간이 제대로 해소되지 않았음을 잘 보여주고 있다. 세월호 참사와 유사한 형태의 인재로 인해 자녀를 먼저 떠나보낸 부모들이 본래의 삶으로 돌아갈 수 없는 이유는 생사를 달리한 자식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슬픔 뿐만이 아니라 그런 말도 안되는 일이 발생된 모든 과정이 납득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잘못한 이들이 있다면 그에 응당한 벌을 받는 과정과 온전히 애도할 수 있는 포용의 연대와 시간이 필요하지만 생각보다 많은 이들이 어서 빨리 그 이별을 종결시키라고 명령하듯 윽박지르는 모습에 인간 존재에 대한 하염없는 섬뜩함이 밀려온다. 과연 너 자신에게 그런 일이 일어났어도 그렇게 쿨하게 일어서라고 말할 수 있을까.


윤주는 오랜시간 선우와의 연애와 헤어짐을 반복하지만 여전히 가느다란 실로 연결된 채로 방송작가로서의 일을 그만두고 미정이 머무는 제주로 떠나게 된다. 제주로 떠나면서 자신의 방을 에어비엔비에 올려 시징을 손님으로 맞이하게 되고 시징에게 의도치 않게 메모를 남기게 된다. 시징은 홍콩에서 만난 은철과의 우연한 재회를 기대하며 윤주의 방이 있는 영등포에 도착한다. 윤주와 선우와의 사랑이 이루어질 수 없었던 결정적인 요인 중의 하나는 가난에 대한 대물림의 두려움이었다. 

“돈 걱정 없이 학점을 관리하고 영어를 배우러 해외에 나가고 비싼 영상 제작 강의를 듣는 스터디 사람들 속에서 그들은 외로웠다. 자꾸만 끈이 풀리는 운동화를 신고 달리는 경기를 하는 것과 같다고, 절대로 아이는 낳지 않을 거라고, 잘 달리고 싶고 잘 달릴 수 있는데도 패배가 결정된 경기를 물려줄 수는 없다고, 다른 선수들이 매끄럽게 달리는 동안 끈을 다시 매기 위해 수시로 주저앉아야 하는 경험을 세대에 걸쳐 반복하는 것만큼 어리석은 짓은 없다고, 비참하다고, 비참하게 이용당하는 것뿐이라고.(57-58)”

선우의 끝없는 말에 언제나 그가 혼자일 것이라 믿었지만, 윤주가 다시 취업한 독립 프로덕션의 신입 피디 제안을 위해 선우를 찾아가지만, 금속 공장에서 퇴근한 후 배가 부른 아내의 함께 장을 보고 행복하는 얼굴을 보며 윤주는 완전한 이별을 깨닫게 된다. 


윤주와 미정 그리고 시징이 이별이 이유를 자기 탓으로 돌리며 애써 붙잡고 있던 죄책감에서 온전히 자유로워질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그토록 듣고 싶어하던 말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도록 인고해온 시간 덕분이었다. 그리고 그 모든 일이 자신의 잘못인 것처럼 보기 싫은 못난 모습을 자꾸만 투영시키는 서로의 존재가 오히려 ‘그 모든 것이 너의 잘못 때문이 아니라고, 다 괜찮다’고 전해온 포용 덕분에 윤주와 미정과 시징은 손을 흔들며 이별을 맞이할 수 있었다. 

“어떤 미안함은 편리하다는 것을 문영이 알까. 누군가를 향한 복합적인 감정 둘레에 벽을 쌓아서 자신에 대한 의심과 혐오 그리고 열등감을 사전에 차단하는 그런 미안함도 있다는 것을.(33-34)”

우리가 느끼는 모든 삶의 상실과 실패는 마치 누군가의 미안함을 반드시 양산해내는 것 같지만, 실상 그 상실과 실패로 인해 불완전해진 것만 같은 삶의 단면 또한 생애의 한 과정이라고, 그래서 우리에게는 이별을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해주는 것만 같다. 


“내 좋은 친구는 말한 적이 있습니다. 우리는 모두 여행자라고, 이 행성에 잠시 머물다 가는 손님일 뿐이라고요. 친구의 그 말을 상기할수록, 그가 나와 헤어진 뒤에야 다른 사람과의 정착을 결심한 걸 납득할 수 있었습니다. 그는 그저 그의 생애에서는 필연적인 과정을 밟고 있는 것뿐이고, 그건 나 역시 마찬가지라는 것을요. 그것이 우리 각자의 여행이겠죠. 물론 필연적인 과정들을 통해 생애가 완벽해지는 건 아닐 것입니다. 완벽할 필요도 없을 테고요.(151)”


“이별에도 만남에도 오랜 시간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사는 사람들.

한때 나는 시간을, 인간이 어찌할 수 없는 영역이라고 믿었다. 시간이야말로 신의 몸이며 신의 언어라고. 이제는 조금 다르게 생각한다. 나에게 간절한 방식으로 시간을 적용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사람들은 어차피 각자의 속도로 살아간다. 벗어날 수 없는 어느 시절이 무거워서, 하지만 내려놓을 수가 없어서 그때에 더 머물러야 한다면… 아무리 덜어내도 비워지지 않는 마음과 아직 해결하지 못한 의문이 남아 나의 오늘을 가로막는다면… 나는 과거 속에서 현재를 살아갈 수 있다. 시징처럼, 윤주처럼, 그리고 미정처럼.

그들은 과거를 그저 사라지는 시간으로 두지 않았다. 과거를 외면하는 방법으로 현재를 훼손하지도 않았다. 현재도 과거도 버리지 않고 자신의 생애를 충실하게 살아냈다. 나도 그런 사람이고 싶다. 과거를 돌보면서 현재를 지켜내는 사람. 함부로 끝내지 않고 떠밀리듯 시작하지 않는 사람. 그렇게 나의 생애를 온전히 살아가는 사람. - 최진영 발문 중에서(159-1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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