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잉 홈
문지혁 지음 / 문학과지성사 / 2024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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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지혁 작가의 [고잉 홈]을 읽었다. 이미 두 편의 한국어 시리즈로 미국 유학생으로서의 경험담이 녹아들어간 내용을 너무나도 재미있게 일었던 터라 이번 소설집에 거는 기대도 적지 않았다. 이번 소설집에는 "에어 메이드 바이오그래피', '고잉 홈', '핑크 팰리스 러브', '크리스마스 캐러셀', '골드 브라스 세탁소', '뷰잉', '나이트호크스', '뜰 안의 별', '우리들의 파이널 컷' 이렇게 9편의 단편이 실려 잇다. 문지혁 작가님의 소설은 거의 모든 작품들이 단숨에 몰입이 가능하다는 놀라운 가독력을 갖고 있는 듯하다. 특히나 단편 소설의 경우 장편과는 다르게 장황한 묘사나 설명이 축약된 경우가 많아 첫머리에는 어떤 상황인지 쉽게 가늠이 되지 않을 때가 많은데, 이번 소설집에 수록된 단편들은 유학생이라는 공통된 분모가 있어서 그런지 주인공이 계속 바뀌어도 마치 하나의 커다란 하숙집에 소속된 이들의 이야기처럼 느껴졌다. 


미국은 물리적으로 10시간 이상 비행을 해야 할 정도로 멀리 떨어진 나라이지만, 한국 전쟁에서 큰 덕을 입어서 그런지 가끔은 맹목적인 동경이 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미국이라는 나라에 대한 로망을 갖고 있는 이들이 꽤 많은 것처럼 보인다. 사실 전세계를 통틀어서 미국 만큼 학비가 비싼 나라도 없을텐데, 해마다 수많은 학생들이 미국으로 유학을 가서 학위를 따고 가능하다면 그곳에서 정착하기를 원한다. 하루걸러 총기난사 사건이 보도되는 곳이지만 마치 외국에서 우리나라를 당장 전쟁이 날 것처럼 위협적인 곳으로 바라보는 것과 마찬가지로 막상 가서 살고 있으면 자신과는 무관한 일처럼 여겨지는 것이 아닐까 싶다. 명백한 사실 한 가지는 미국 사회는 분명 이민자로 구성되어 있어서 따지고 보면 원래 미국 사람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 것임에도, 백인 중심의 권력 구조에서 비롯된 오래된 인종 차별이 지속적으로 자행되는 곳이기도 하다. 미국의 백인들은 아시아 사람들을 보면 너는 어디에서 왔느냐고 묻는다고 한다. 외모만 아시안 사람일뿐 그 백인과 마찬가지로 미국이라는 땅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공부하고 일하고 있음에도 그런 질문을 받는다고 한다. 그럼에도 우리나라는 여전히 영어에 대한 거의 신앙적인 추앙심을 갖고 있기에, 미국에서 학위를 따와서 영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면 어떤 절대자를 만난 것처럼 우러러 보기 마련이다. 


학력에 대한 그리고 영어와 미국 사회에 대한 이런 맹목적인 동경은 막상 그곳에서 유학과 이민 생활을 하는 이들의 경험담을 듣게 되면 환상에 가깝지 않을까란 깨달음을 얻게 된다. 이번 소설집에 나온 유학생들의 이야기만 해도 한국에 머물렀다면 상위 지식층이 삶을 살 수 있는 이들이 유학이라는 선택을 통해 생존의 위협까지 느끼며 자존감이 떨어지는 하루 하루를 견딜 수 밖에 없는 상황들이 묘사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유학을 다녀온 이들을 무조건 높이 평가하는 이유는 바로 이렇게 자신은 감히 시도조차 하지 못한 선택을 과감히 결정하여 꽤 오랜시간 버티고 버텨 원하던  바를 이루고 온 것에 대한 존중과 질투의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 아닐까 싶다. 


이번 소설집에 나온 주인공들은 유학생이라면 누구나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언어에 대한 고충을 그다지 심도있게 다루고 있지 않아서 더 좋았다. 모국어가 아닌 외국어로 일상을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당연히 오해와 멸시에서 오는 자괴감의 원인이 되어 종국에 가서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고 출발점으로 다시 돌아가게 만드는 것이지만, 몹시 진부한 소재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유학생으로서 다양한 인간군상과의 만남에 초점을 맞춘 이번 단편들은 문화적 차이에서 오는 거리감을 결국 세상 어디든 사람 사는 곳은 다 마찬가지라는 절대적 진리에 가까워질 수 있도록 해주었으며, 그 만남이 때로는 범상치 않은 깨달음을 주기에 나도 모르게 주인공들을 응원하게 되었다. 


특히나 ‘골드 브라스 세탁소’, ‘뷰잉’, ‘나이트호크스’의 주인공들은 자국이 아닌 타지에서 마주하게 되는 정당한 거주자로서의 자격을 갖고 있느냐 아니냐에 따라서 급격히 달라지는 현실의 타격감을 생동감 있게 전해주고 있다. 사람들은 누군가 유학을 간다고 하면 막연히 부럽다는 생각을 하며 공부를 하기 위한 모든 제반사항이 완벽하게 준비되어 있을 것이라는 망상을 갖고 있다. 하지만 대부분의 유학생들이 타지에 발을 딛고 마주하는 현실은 재벌집 자식이 아닌 바에야 헬게이트가 열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나중에 시간이 지나고 보면 별 것 아닌 일이었음에도 긴장되고 두려운 마음이 가득한 상태에서는 과도한 해석과 반응이 첨가되어 생전 느껴보지 못했던 색깔의 감정에 휩싸여 과연 내가 옳은 선택을 한 것일까 고뇌하게 된다. 그런 면에서 소설의 주인공들은 비록 낯선 곳이지만 새롭게 정착하려는 곳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게 되었고 그들과의 관계에서 또 다른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게 된다. 유학과 이민은 살아온 터전을 벗어나는 것만이 아니라 기존의 나라는 틀을 깨고 나올 수 있도록 단숨에 폐부를 찌르는 고통을 심어놓는 것만 같다. 


“사실 비겁함은 어느 순간부터 화제의 감정에서 배제되어왔다. 정체도 전체도 알 수 없는 거대한 도시에서 타인에게 결정권이 있는 취약한 인생을 살아간다는 건 비겁하지 않을 수가 없는 일이다. 누구나 다 비겁하기 때문에 누구도 타인의 비겁함을 문제 삼지 않고, 그러느라 자신의 비겁함마저 무시해버린 것이다. 그러나 비겁함을 사회의 ‘관심 감정’에서 누락한 결과 우리는 내면이 붕괴하기 전에 파괴의 조짐을 예견할 수 있는 중요한 징후를 놓쳐버린 꼴이 됐다. 마음이라는 벽에 금이 가기 전, 우리 일상에는 환멸이라는 징후가 나타난다. 기대와 환상이 있던 자리엔 괴롭고 공허한 심정이 놓인다. 비겁함은 괴롭고 공허한 심정의 길목이다.-박혜진 해설 중(297)”


“이별 않고 살아갈 수 있는 인생은 없다. 그러나 이별의 순간을 무성의하게 취급하는 인생은 많이 봤다. 우선은 나부터도 그 비겁한 이별의 태도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그래서인지도 모르겠으나, 이 소설을 여러 번 읽으며 에밀리의 태도에 반복적으로 놀랐다. 인간은 혼자가 되는 순간보다 ‘다시’ 혼자가 되는 순간을 두려워한다. 에밀리는 자신의 삶에서 가장 어두운 순간을 연출하고 기어이 그 무대에 오르는 배우가 된다. 다시 혼자가 되어보겠다는 결심과 그 이행은 이별의 순간에 대한 가장 성실한 반복이자 다가온 만남에 대한 가장 온전한 환대이다. 에밀리가 용기 있게 반복한 이별의 이야기를 듣고 에밀리를 찾아다니던 ‘나’의 마음에도 작고 희미한 볕이 든다.-박혜진 해설 중(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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