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
김홍신 지음 / 해냄 / 202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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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홍신 작가의 [죽어나간 시간을 위한 애도]를 읽었다. 황인종, 백인종, 흑인종 등 인간의 피부색깔로 구분하는 이름에 적인종이라는 낯선 구분이 등장한다. 말 그대로 빨간색 인간이라니, 조금만 더 유추해보면 바로 아직도 부적절하게 남용되는 빨갱이를 뜻한다는 것을 알게 된다. 한국 전쟁을 겪은 세대는 분명 빨갱이라는 말을 들으면 적지 않은 감정의 파고를 드러낼 것이다. 인간이라면 누구나 생명의 위협을 느끼는 순간에 대한 두려움의 경험이 몸속 깊이 새겨지게 되어, 마치 반작용처럼 반응하기 때문이다. 아직도 북한과 대치 중인 분단의 상황이 지속되고 있기에 공산주의적 이념에 대한 경계와 분노는 현재 진행형이다. 가끔은 정쟁의 도구로 사용되며 빨갱이 프레임을 씌어 안보의 위협을 논하며 권력을 쟁취하고자 하는 이들이 지긋지긋하기는 하지만, 언제쯤 우리나라는 평화를 이루어 맘 편히 왕래할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을까 아득하게만 느껴진다. 


소설의 주인공인 한서진은 어찌보면 우리나라 근현대사의 가장 서슬 퍼런 시기에 철책을 지키는 소대장으로서 휴머니즘적인 행동으로 인해 국가보안법과 방공법의 희생양이 된 이라고 할 수 있다.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정권을 잡기 위해 북한의 위협적인 전략을 이용할 때가 많았으니, 군부독재를 정당화하기 위해서는 이분법적인 이념에 대한 강력한 법 적용이 유효하게 여겨졌을 것이다. 쥐도 새도 모르게 잡혀가 고문과 폭행을 당해 후유증에 평생을 고생하거나 연좌제의 수렁에 빠져 패가망신하는 본보기를 보여줘 두려움에 사로잡힌 대중들은 쉽사리 정의를 외칠 수 없었다. 그럼에도 부당한 권력을 얻은 이들의 만행을 지켜볼 수 많은 없었던 이들이 총과 칼에 맨 몸으로 부딪혀 민주화를 이뤄냈고 그렇게 피흘린 이들 덕분에 우리는 잃어버린 정의를 되찾을 수 있었다. 


아마도 어딘가에 한서진과 같은 기구한 운명을 살아온 이들이 있을 것이다. 사소한 실수가 억울한 누명이 되어 권력을 유지하기 위한 적절한 본보기가 될 수 있다면 불의한 이들이 약속이나 한 듯 거짓 증언을 내세워 영어의 몸을 만들고, 그 안에서 불법적으로 감행된 지속적인 폭력과 폭언은 온정한 정신을 말살시켜 한 사람의 모든 삶을 박살내고 말았을 것이다. 한서진의 비극적인 행로는 그의 사연을 들은 누구라도 복수심에 불타는 마음을 헤아리게 되고 심지어 아내의 배신과 자신을 그렇게 만든 원수가 자신의 딸을 키우는 아비로 살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의 분노를 가라앉힐 수 있는 방도가 과연 있을 수 있을까? 


한서진이 철책을 지키는 소대장으로 적군을 사살하고 그의 명복을 빌어 준 후 포상과 훈장이 아니라 보안대에 끌려서 심문을 받는 대목에서 그의 유도리 없는 대답을 하는 모습이 무척이나 바보같이 느껴졌다. 당시의 시대상을 감안한다면 기자들과의 간담회에서 보안을 유출하는 대답을 하는 장면 또한 누군가 파놓은 덫에 스스로 끌려가고 있다는 어리숙함을 안타까워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한서진이 이렇게 인간의 순수함과 강직함을 대변하는 인물이 아니었다면, 약삭빠르고 자기 이익을 먼저 챙길 줄 아는 노련한 인물이었다면 아마도 소설의 향방은 피비린내 나는 복수극으로 치달았을 것이고 저자가 한서진을 통해 전하고자 하는 주제는 길을 잃고 말았을 것이다. 


저자의 말에서 언급했듯이 톨스토이의 단편 소설인 '인간은 무엇으로 사는가'의 주제를 잇는 것처럼 결국 한서진의 비극적인 삶을 통해서 그리고 친아버지의 죽음 이후 그가 남긴 유작을 발표하는 딸 자인의 모습을 통해서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랑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사랑과 용서 없이는 유한한 시간을 사는 인간에게 의미 있는 것은 존재하지 않으며, 결국은 먼지로 돌아갈 인간의 육신도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후대에게 각인시킬 사랑과 용서의 행위로 완전해질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 번 일깨워 준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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