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최은영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최은영 작가의 소설집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를 읽었다. 이번 소설집에는 ‘아주 희미한 빛으로도’, ‘몫’, ‘일년’, ‘답신’, ‘파종’, ‘이모에게’, ‘사라지는, 사라지지 않는’ 이렇게 7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이전에 다른 작품집에서 읽었던 단편들도 있었지만 처음부터 다시 읽어도 전혀 지루하지 않을 만큼 수록된 소설들이 다 좋았다. 이런 주옥같은 단편들을 쓰기 위해 얼마나 많은 노력을 기울였을지, 얼마나 긴 시간을 고뇌하며 인간의 마음을 헤아리려 했을지 감히 상상조차 되지 않기에 페이지가 휘리릭 빨리 넘어갈수록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렇게 빨리 읽으면 안되는데, 한 문장마다 좀 더 주의를 기울이며 읽어야 하는데 주인공들의 마음이 못내 궁금해져서 한치도 머물지 못하고 페이지를 넘기다 보면 이야기는 끝이 나 있었다. 한 편의 이야기들이 끝날 때마다 뭔가 가슴 한 구석에 구멍이 하나씩 생기는 것처럼 휑덩그렁한 느낌이 들어, 새로운 제목으로 기다리는 이야기에 선뜻 다가설 수 없었다. 분명 작가의 상상에 의해서 만들어진 이야기일텐지만 내가 모르는 어딘가에 이 이야기의 주인공들이 동시대의 삶을 살아고 있을 것만 같은  느낌이 사라지지 않았다. 


이번 단편들의 주인공은 저마다의 사연을 지니고 있지만 읽고 나면 한결같이 쓸쓸했다. 우리 내 삶이 이렇게 쓸쓸하고 안쓰럽기만 하다면 대체 다들 어떻게 참고 견디며 살아가는 것인지를 생각하다보면 서글픔이 밀려와 무언가를 열심히 해서 극복하는 것이 과연 의미있을까란 무력함에 빠지게 된다. 그럼에도 주인공들은 앞으로 나아간다. 단 한 발자국도 도저히 내딛을 수 없을 것만 같고, 단 하루도 더 이상 숨쉴 수 없을 것만 같은 상황 속에서도 묵묵히 한 발자국을 내딛고 하루를 살아간다. 


집으로 돌아오는 어둑한 길에 몸을 웅크려 고개를 숙이고 벽에 기대어 앉아 있는 젊은 여자를 보았다. 얼핏봐도 엣되보이는데, 술에 취한 것인지 조금은 위태롭게 보였다. 다가가서 괜찮냐고 물어보려다가 아직 한밤중도 아니고 외진 곳도 아니기에 별일 없겠지란 마음으로 가던 길을 재촉했다. 걸으면서 행여나 복잡한 상황에 휘말릴까 두려워 도움을 주기를 주저한 것은 아니었는지 부끄러운 마음이 들 찰나에 노숙자에게 다가서는 젊은 두 청년을 보게 되었다. 아웃리치라는 글자가 새겨진 노란 조끼를 입고 이런 저런 질문을 던지고 있었다. 그들을 지나쳐 집 가까이에 이르렀을 때 정거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는 몇몇 사람들이 사이를 뚫고 나오는 작은 리어카가 보였다. 많지 않은 폐지와 빈 박스 몇 개를 실은 리어카를 가냘픈 몸의 할머니가 끌고 있었다. 어르신들은 초저녁 잠이 많다고들 하는데, 이미 예전에 초저녁 잠이 많은 나이에 이르렀을 분이 한낯의 더위를 피하고자 하심인지 자정이 다 되어가는 시간에 폐지를 수집하고 계셨다. 리어카를 끄는 작은 몸의 할머니는 그렇게 나를 지나쳐 갔다. 


우리는 사실 질문을 기다리고 있다. 괜찮냐고? 힘들지 않냐고? 아무런 보탬이 되지 않는 지나가는 말일수도 있지만 그 질문을 애타게 기다리는 이들이 있다. 별 생각없이 예의상 물어본 말에 오랜시간 침묵을 지켜온 이들이 봇물 터지듯이 그동안의 애환을 털어놓을 수도 있다. 우리가 책을 읽고 만나지 못한 세상의 많은 이들의 사연에 귀를 기울이는것은 익명의 누군가에게 ‘괜찮냐’는 말을 건넬 용기를 얻기 위해서이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공들였음에도 무심히 그들을 지나친 나의 발걸음은 과연 그동안 모아온 나의 지식과 지혜가 무슨 소용이 있는 것이냐고 따진다. 그래서 그런지 ‘몫’에서 희영의 말은 수치심을 증폭시킨다. 


“나는 그런 사람이 되기 싫었어. 읽고 쓰는 것만으로 나는 어느 정도 내 몫을 했다, 하고 부채감 털어버리고 사는 사람들 있잖아. 부정의를 비판하는 것만으로 자신이 정의롭다는 느낌을 얻고 영영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며 사는 사람들.(79)” 

양경언 평론가는 이 부분에 대해서 이렇게 말한다. 

“희영은 해진에게 진실에 도달하기 위해 읽고 쓰는 일이 중요하기는 하지만, 진실에 도달하는 과정 자체가 쉽지 않다는 것을 늘 염두에 두어야 하며 그 지난한 과정이 삶과 연결되지 않는다면 그로부터 만들어지는 의미 역시 휘발되어버리기 쉽다고 전한다.(330)”


이 세상의 부조리와 부정의를 비판하는 사람들을 쉽게 볼 수 있다. 가짜 뉴스가 판을 치고 사회적 이슈들이 정쟁의 도구로 악용되고 좌우의 이념적 프레임을 덧씌워 옳고 그름의 판단을 흐리게 만드는 일들이 비일비재하다. 어찌보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쉬운 일이다. 의식있는 척 남의 시선에 아랑곳하지 않고 소신을 지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은 아닌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것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은 결코 쉽지 않다. 삶이라는 긴 시간을 영위하는 몸뚱아리가 버티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은 너무나도 어려운 일이다. 우리는 누군가가 그렇게 힘든 시간을 삶으로 살아내는 것을 지켜볼 때 큰 감동과 위로를 받는다. 감히 헤아릴 수 없는 그 조각조각의 시간들이 얼마나 길고 지루할지 너무나도 잘 알기 때문에. 


“그녀가 공부하는 사람이 되기로 마음먹었던 순간에 대해 쓴 글을 나는 아직도 기억한다. 퇴근해 책상 앞에 앉아 책에 밑줄을 긋고 자신의 생각을 정리하는 순간에 투명 망토를 두른 것 같았다고 그녀는 썼다. 세상에서 사라지는 기분이었다고. 그녀는 이미 세상에서 사라져버린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머릿속에서 그려진 세상이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보다도 언제나 더 가깝게 느껴졌다고 썼다. 그럴 때면 벌어진 상처로 빛이 들어오는 기분이었다고, 그 빛으로 보이는 것들이 있다고 했다. ‘더 가보고 싶었다.’ 그녀는 그렇게 썼다.(43)”


“그녀는 다희에게 서운함을 느끼지 않기 위해 노력했다. 서운하다는 감정에는 폭력적인 데가 있었으니까. 넌 내 뜻대로 반응해야 해, 라는 마음. 서운함은 원망보다는 옅고 미움보다는 직접적이지 않지만, 그런 감정들과 아주 가까이 붙어 있었다.(115)”


#최은영 #아주희미한빛으로도 #문학동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9)
좋아요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