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도 100퍼센트의 휴식
박상영 지음 / 인플루엔셜(주) / 2023년 6월
평점 :
품절


박상영 작가의 [순도 100퍼센트의 휴식]을 읽었다. 술술 잘 읽히고, 중간에 빵빵 터져주시고, 갑작스럽게 삶에 대해 몰입하게 만드는 매력으로 충만한 이번 에세이는 읽는 동안 나도 모르는 사이에 휴식이라는 공간에 머문 듯한 생각이 들게 만든다. [대도시의 사랑법] 이후 공중파와 케이블에서도 종종 얼굴을 볼 수 있었는데, 역시나 책을 통해서 만나는게 제일 반갑다. 언제부터인가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이 마치 유행어처럼 번져 혹시나 나도 이미 일에 치어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진 것조차 모르고 지내온 것은 아닐까란 의문을 갖게 만든다. ‘번아웃 증후군’이라는 말이 유행하기 전에 그와 짝을 이루는 말처럼 느껴지는 ‘워크홀릭’이라는 말이 먼저 퍼졌었다. 세상에 노는 것보다 일하는 걸 더 좋아하는 사람이 과연 있겠냐마는, 마냥 일평생 놀면서만 지낼 수도 없기에 우리 삶에는 일과 휴식의 균형이 무척이나 중요하다는 ‘워라벨’이라는 말도 더불어 유행하고 있다. 


입에 풀칠하기도 어려운 시대를 살아온 세대와 가장이라는 무거운 책임감으로 어떤 일이 있어도 가족을 먹여살려야 한다는 목표는 휴식은 사치스러운 단어였다. 휴식이라는 말은 그저 새로운 노동을 위한 잠시의 쉼에 불과했고 여가를 즐긴다는 말은 일부 여유로운 사람들에게만 해당되는 말이었다. 이제는 그러한 맹목적인 노동의 시대를 지나 좀 더 의미있는 삶을 살고자 하는 사람들이 많아졌고 노동 만큼이나 휴식의 질도 중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책의 제목처럼 ‘순도 100퍼센트의 완벽한 휴식’이란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특히나 요즘처럼 스마트폰과 인터넷으로 연결되었고, 코로나 사태로 인하여 자연스러워진 재택 근무와도 같은 형태로 인하여 휴가를 간다고 해도 일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지기는 쉽지 않다. 


저자도 이미 이야기의 서두와 말미에서 친구 K와의 대화에서 드러났듯이 하나의 일을 마치고 휴식을 취하는 시간조차도 노트북에서 자유로워지지 못하는 상황을 묘사하고 있다. 대체 하루라도 공부 안한 날이 있기는 하냐는 질문과 마찬가지로 대체 하루라도 글쓰기에서 완벽히 자유로워진 날이 있기는 하냐는 물음을 스스로에게 던지고 있다. 그럼에도 쉼의 기회를 포기하지 않고 우연과 운명을 가장한 친구들과의 만남을 너무나도 드라마틱하게 그려내는 저자의 추억록이 읽는 이로 하여금 많은 부분에서 공감과 웃음과 눈물을 자아내게 만든다. 첫 배낭 여행을 가서 미술관마다 개의 그림을 찾아내는 친구와의 추억과 대학 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미국으로 건너간 친구를 따라 함께 한 시간들은 독자로 하여금 각자가 갖고 있는 고유한 추억의 기록들을 다시 들춰내게 만들고 그 순간 함께 했던 이들의 소중함을 일깨운다.  


나이가 들수록 연락이 끊긴 사람들이나 오랫동안 보지 못한 사람들이 떠오를 때면 혹시나 그때 내가 그런 말과 행동을 하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연락하고 만날 수 있지 않았을까란 자책을 하게 된다. 어떤 인연과 만남은 자신의 의지와 상관없이 끊어져 버리고 그렇게 된 관계를 그냥 내버려두는 것이 인생이라고 말하지만, 자꾸만 나의 실수와 잘못으로 인해 그렇게 된 것은 아닐까란 후회를 하게 된다. 시간은 누구에게나 공평하고 참으로 더딘 것 같지만 어마어마한 아픔과 슬픔도 옅게 만들고 못보면 죽을 것 같이 가까웠던 사람의 얼굴도 희미하게 만든다. 그리고 그 시간의 흐름에 빠져 표류하지 말라고 영원히 잊지 못할 소중한 사람과의 추억을 선물로 내려주는 것 같다. 그러한 기억들이 점처럼 쌓이고 쌓여 우리의 만남을 가느다란 실처럼 이어주는 것은 아닐까?


“어쩌면, 내게 있어 여행은 ‘휴식’의 동의어나 유의어가 아니라, 일상의 시름을 잊게 해주는 또 다른 자극이나 더 큰 고통에 가까운 행위가 아닐까? 환부를 꿰뚫어 통증을 잊게 하는 침구술처럼 일상 한중간을 꿰뚫어, 지리멸렬한 일상도 실은 살 만한 것이라는 걸 체감하게 하는 과정일수도, 써놓고 보니(피학의 민족 한국인답게 몹시) 변태적인 발상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이 또한 나에게 가까운 진실인 것만 같다.(15)”


“감정의 경제성.

그것은 내가 이금희 선생님을 보면서 가장 자주 떠올렸던 키워드이기도 하다. 선생님은 모든 종류의 자극에 쉬이 연연하지 않는 사람이다. 선생님의 삶은 지나온 과거나 먼 미래에 있지 않았다. 지금 이 순간 내가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하며 지난간 일에 머무르지 않는다. 감정의 괴물인 나라면 족히 몇 달을 잡고 늘어질 만한 사건이 닥쳐도 이금희 선생님은 금세 훌훌 털어버리고 앞을 향해 걸어가는 사람이다. 지금 좋으면 미련 없이 모든 것을 내어주고, 그러다 인연이 다 되면 또 후회 없이 앞으로 저벅저벅 걸어가는 삶. 미움과 슬픔뿐만 아니라 후회, 비뚤어진 애착과 같은 감정들도 선생님의 사전 속에는 들어갈 일이 없을 것만 같았다.(2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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