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에 없는 소리
김지연 지음 / 문학동네 / 2022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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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지연 작가의 소설집 [마음에 없는 소리]를 읽었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 ‘굴 드라이브’, ‘결로’, ‘작정기’, ‘그런 나약한 말들’, ‘마음에 없는 소리’, ‘내가 울기 시작할 때’, ‘사랑하는 일’, ‘공원에서’ 이렇게 9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다. 소설집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여성이고 30대 중반 이후의 나이대이며 일반적이 시선으로 보아 안정된 직업을 갖지 못한 상태이다. 더군다나 안정된 결혼 생활을 하기 보다는 아직 혼자이고 가족과 사회에서 인정받지 못하는 사랑의 길로 인해 가족들과 때론 동료들의 비난어린 시선을 온 몸으로 견디고 있는 여성들이다. 마지막 작가의 말 부분에 이런 내용이 나온다. 


“이 소설에서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장면은 인물들이 우는 장면이다. 그들은 어떤 말을 하는 것보다 우는 일을 더 공들여 했고, 누군가 그 울음을 가만히 들었다. 요즘 나에게 있어 글쓰기란 엉엉 우는 일과 비슷하다는 생각을 한다. 이왕이면 온 힘을 다해 남김없이 잘 울고 싶다. 홀가분한 마음으로 남은 일을 해낼 수 있도록. 그리고 어디선가 혼자 우는 사람이 없는지도 돌아보고 싶다. 누구도 혼자 울지 않았으면 한다.(315)”


제대로 우는 일은 쉽지 않다. 드라마와 영화를 보다가 감동적인 장면에 찔금찔금 흘러내리는 눈물로는 눈꼽만치도 시원한 느낌이 들지 않기 마련이다. 제대로 울기 위해서는 여러가지 조건이 필요하다. 일단 내가 울때 누군가 있어야 한다. 토닥이든 휴지를 건네든 살포시 안아주든 지금 내가 서럽고 폭발적으로 울고 있다는 사실을 인정해주는 누군가가 필요하다. 그리고 내 울음을 갑작스럽게 멈출 외부적이고 강제적인 수단이 없어야 한다. 길 한 가운데에서 눈물샘이 폭발한다던지, 운전 중에 쉴세없이 눈물이 흘러내리면 내 눈물을 지켜볼 사람은 그 과정을 멈추려 할 것이고 나 또한 어디선가 브레이크를 잡으려 할지 모른다. 마지막으로 제일 중요한 것은 전혀 예상치 못했던 발화점이다. 무심코 던진 담배꽁초 하나에서 어마어마한 산불이 시작되듯이 묵히고 쌓아두었던 내 감정의 강둑을 와르르 무너뜨릴 우연성이 필요하다. 그래서 그런지 이 모든 조건들이 잘 맞아떨어져 남들이 보면 대성통곡을 하듯이 눈물보가 터지는 경우는 평생에 걸쳐 그렇게 많지 않을 것이다. 


저자의 소설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아마도 어쩌면 엄청난 눈물의 폭발력을 감추고 터지기 일보직전의 상황인 것처럼 느껴진다. 재난의 연속도, 불행의 난타전도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주인공들의 삶이 고독해보인다. 그들이 눈물을 강둑에 차곡차곡 감아두고 싶지 않아도 한 방울, 한 방울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견디고 감내하는 가운데 그렇게 쌓여가는 것만 같다. ‘우리가 해변에서 주운 쓸모없는 것들’의 어린 애인 진영이 나이든 상대의 건강 상태를 알고 떠나갈까봐 두려워서 검진 이후 결과를 알리지 않고 이별을 감내하는 것처럼, ‘굴 드라이브’에서 이주노동자 미셸과 함께 배달 일을 마치고 자신도 서울로 데려가는 말이 농담처럼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결로’에서 치매에 걸린 할머니를 처음 만나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의 내용을 전해주다가 얻어입은 가디건을 결국은 헌옷 수거함에 넣으며 동생의 죽음을 상기하는 것처럼, ‘작정기’에서 갑작스런 원진과의 일본 여행이 틀어지고 홀로 떠난 곳에서 만난 유코에게 원진이 죽었다는 오해를 불러일으킨 것이 결국은 사실이 되어버리는 위로의 재회를 통해서, ‘그런 나약한 말들’에서 정은은 친구 혜수를 통해서 자신이 돌아가신 선생님과 함께 시간이 때론 스토커처럼 보이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직시하면서, ‘마음에 없는 소리’에서는 할머니의 휴업한 식당을 이어받아 고향에서의 삶을 새로 시작하려는 나에게 화영과 민구의 사랑에 대한 결정적인 이유를 찾다가 그들과는 다르게 같은 공간에서 예술적인 행위로 살아가는 이들을 마주하면서, ‘사랑하는 일’에서는 영지와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엄마, 아빠, 할머니의 태도에서 상처를 받고 미워하며 결국은 영지에게서 끔찍해하는 아빠를 닮았다는 소리를 듣게 되는 순간에, ‘공원에서’는 불륜의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공원을 지나치며 겪게된 끔찍한 일을 통해서 울음을 터트리거나 울음이 시작된다. 


“한바탕 울고 난 다음에도 완전히 용해되지 못한 어떤 것들이 천천히 가라앉아 앙금이 된다. 앙금이 부정적인 걸 이르는 말이라면 긍정의 감정으로 가라앉은 것은 뭐라고 부르면 좋을까. 생각해봤는데 누나, 긍정의 감정은 다 녹아들겠지. 가라앉을 리가 없잖아.(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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