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마트에서 울다
미셸 자우너 지음, 정혜윤 옮김 / 문학동네 / 2022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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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자우너의 [H마트에서 울다]를 읽었다. 외국에 나가서 살려는 사람이 긴장과 두려움에 휩싸이면 흔히 이런 말로 위로한다. “너무 걱정하지마. 사람 사는 데 다 비슷해” 반은 맞는 말이면서도 반은 틀린 말 같다. 이 세상 어디든지 사람이 사는 곳이라면 응당 비슷한 인간 삶의 흐름이라는 것이 있기에 언어와 문화와 음식이 다르더라도 일정 기간이 지나면 적응이 되기 마련이다. 하지만 아무리 시간이 흘러 적응이 된다 하더라도 영원히 해소되지 않는 것이 있다. 바로 고향에 대한 그리움 곧 내 피의 원천에 대한 갈증이다. 


미국인 아버지와 한국인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저자는 암에 걸려 세상을 떠난 엄마와의 이별과 회복의 시간을 너무나도 감동적으로 그려냈다. 에세이가 아니라 한 편의 성장소설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저자가 묘사한 미국과 한국을 오가며 보낸 어린 시절에 대한 기억과 엄마가 투병하는 과정을 낱낱이 기록한 내용들은 유사한 아픔을 가진 이들에게 큰 위로가 되지 않을까 싶다. 특히나 엄마의 병을 알게 되는 순간부터 엄마의 장례를 마치고 유품을 정리하는 모습은 눈물이 맺히지 않고서는 이어나갈 수 없을 정도로 애절했다. 


암이란 병은 우리의 삶을 갈갈이 찢어놓아 정신을 완전히 놓아버릴 때까지 우리를 가만 놔두지 않는다. 주변에 꽤나 많은 사람들이 각종 암에 걸려 항암치료를 받으며 변해가는 외모를 지켜봐야만 하는 시간을 견뎌내지만, 그 일이 내게는 일어나지 않을 것이라는 막연한 자신감을 안고 산다. 행여나 가까운 사람의 가족 중 누군가가 큰 병에 걸렸다는 소식을 전해들었을 때 앞으로 펼쳐질 지인의 힘든 시간을 걱정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내 가족이 아니라서 다행이라는 얄팍한 생각도 스쳐 지나간다. 그런 생각이 들 때면 내가 왜 이렇게 이기적일까, 그런 일은 나에게도 벌어질 수 있는데 라며 순간적인 변명을 하지만 실상 그 고통을 겪는 이들에게 내가 해줄 수 있는 일은 별로 없다. 


저자가 엄마와 보낸 유년 시절은 우리나라처럼 작은 땅덩어리에서 살아온 사람에게는 좀처럼 겪기 힘든 일이 아닐까 싶다. 평범한 중산층 가정이 주변에 집이 아무도 없는 마치 산골 깊숙한 곳처럼 느껴지는 곳에서 전업주부로 살아가며 딸을 키우는 삶이란 어쩌면 가슴이 터져버릴 만큼 답답한 일이 아니었을까? 그래서 그런지 저자는 사춘기를 겪으며 엄마가 특별한 일을 하지 않고 전업주부로 집안일을 하고 자신을 먹이며 키워온 시간을 경멸한다. 애틋했던 모녀간의 관계는 저자가 대학을 들어갈 무렵까지 극에 달하게 되고 사춘기를 극복한 저자가 다시 엄마와의 평온함을 되찾을 무렵 마치 누군가 그들 모녀 사이를 질투라도 하듯이 엄마에게는 회복될 수 없는 상태의 질병이 발견된다. 


엄마의 병세가 심해져 한국에서의 여행을 계획하지만 상태가 악화되어 간신히 오리건의 고향집으로 돌아가며 저자는 엄마가 살아계실 때 보여드리기 위해 결혼을 결심한다. 피터와의 결혼식을 무사히 고향집에서 치뤄지고 마치 엄마는 딸을 위해 죽을 힘을 다해 결혼식을 견뎌낸 것처럼 사위와 춤까지 추게 된다. 엄마에게 결혼식을 보여준 후 이제는 마약성 진통제 없이는 고통에서 헤어나지 못하게 되고 아프다는 말과 함께 의식을 차리지 못하게 된다. 엄마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이 고통이라는 말이 아니라 부디 잠시라고 정신을 차리고 자신에게 하고 싶은 말을 한마디라도 해주길 바라지만 엄마는 그렇게 딸과 이별을 한다. 엄마의 몸을 사람들이 옮기기 전에 혼자서 다른 옷으로 갈아입힐때 얼마나 많은 격정의 울음을 토해냈을지 슬픔이 고스란히 전해진다. 그럼에도 저자가 엄마의 유품을 정리하는 가운데 상실에 대한 아픔을 엄마가 만들어주었던 음식을 재생하는 방법을 통해 조금씩 회복해 간다. 계씨 아주머니가 엄마를 돌보며 알려주지 않았던 잣죽을 망치 여사의 영상을 통해 만들어 맛보며 부드럽고 고소한 잣죽이 목으로 넘어가며 저자의 마음 속의 생채기를 따뜻이 감싸주지 않았을까 싶다. 감히 저자의 슬픔과 아픔을 헤아릴 수 없겠지만 때밀이 아줌마에게 몸을 맡기고 찜질방에서 몸을 노곤하게 녹이며 받았던 치유의 시간이 앞으로도 다른 이들에게 전해질 수 있기를 바란다. 세상의 모든 병을 앓고 있는 이들의 힘겨운 시간을 기억하며…


“진행자 제임스 립튼은 이 배우에게 어머니의 때 이른 죽음에 대해 물었다. 우리는 아름답고 냉정한 성인 여자가 곧장 눈물 터뜨리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얼추 40년이란 세월이 흘렀는데도 엄마라는 말 한마디의 파급력은 그 정도였던 것이다. 나는 몇 년 뒤에 똑같은 감정과 맞닥뜨릴 내 모습을 상상했다. 엄마의 죽음이라는 벌에 쏘이는 그 순간부터, 나란 존재가 무덤에 들어갈 때까지 남은 평생을 벌침이 박힌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었다.(248)”


“이러나저러나 이 책에서 가장 감동적으로 와닿은 부분은, 시종일관 어머니의 투병과 때 이른 죽음이라는 무거운 상실의 시간을 견디면서도 음식을 만들고 나누고 추억하면서 부지런히 자기 치유와 타인과의 연결과 소통을 도모하고 자기 정체성을 찾아나가는 저자의 건강한 삶의 태도였다. 살아가면서 아무리 막막한 순간이 오더라도 어디엔가는 반드시 당장의 숨구멍을 만들어낼 여지가 있고, 하루하루 그런 반짝이는 구멍들을 찾아내는 일이야말로 우리의 의무라고 그가 말하는 것만 같았다.-옮긴이의 말 중에서(4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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