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 - 꽉 조인 나사를 풀러 제주로 떠난 공처가 남편의 자발적 고독 살이 냥이문고 5
편성준.윤혜자 지음 / 행성B(행성비) / 2021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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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성준, 윤혜자 님의 [여보, 나 제주에서 한 달만 살다 올게]를 읽었다. 부제는 “꽉 조인 나사를 풀러 제주로 떠난 공처가 남편의 자발적 고독 살이”이다. 책 표지를 장식한 고양이 순자는 한옥집 문 앞에서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뒷모습으로 아련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아마도 어쩌면 한 달 동안 글쓰는 시간을 보내고 오라고 선뜻 남편에게 제주살이를 허락한 아내의 마음을 대변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싶다. 일단 무척 재미있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게 페이지가 술술 넘어갔다. 남편이 제주에서 보내는 하루 하루의 일기가 지속되다가 중간에 삽입된 아내의 짧은 일기 또한 적절한 양념처럼 독서를 맛깔나게 해주었다. 


제주 한 달 살기는 마치 유행처럼 번져서 시간과 비용만 허락한다면 손쉽게 집을 구할 수 있을 것이다. 제주에서 한 달이 아니라 석 달 해본 경험자로서 한 달은 아마 쏜살같이 지나갈 것이다. 그런데 저자가 한 달 살이를 웹상에 공유했을 때 심지어 한의원 원장님조차도 로또 1등에 당첨됐다고 하면 안 부러울텐데, 제주 살이라는 부럽다고 하니 석 달이나 제주에서 살아본 나는 어쩌면 로또 세 번 당첨된 복을 받은 것이려나? 제주에 살러 가기 전에는 석 달이면 제주의 구석구석을 다 돌아보고 웬만한 맛집은 다 섭렵하고 근사한 카페도 다 가보고 다양한 박물관도 방문할 줄 알았다. 하지만 막연히 생각한 그런 액티비티한 계획을 다 완수하려면 엄청난 바지런함과 체력이 필요했다. 석 달 동안 무작정 나만의 시간이 주어진 것도 아니었고 연수로 마련된 강의에 참석해야 했기에 앞서 말한 생각한 무모한 계획이었다. 함께 연수에 참여한 다른 분들은 제각각 제주를 즐겼다. 어떤 분은 올레길 종주를, 어떤 분은 한라산을 수차례 등정하고, 어떤 분은 나처럼 오름 도장깨기를, 어떤 분은 제주의 더 작은 섬 투어를, 어떤 분은 제주에서 탁구 레슨도 받았다. 


근사한 카페에서 그 카페만의 시그니처 음료를 맛보고 경험하는 것을 즐겨왔기에 제주에 셀수없이 많은 카페를 꽤나 많이 가볼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었다. 내 상상은 그동안 블로그와 인스타그램에서만 봐왔던 그림같은 카페에서 조용히 책을 읽으며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그리고 실제로 몇 번 그런 시도를 해 봤다. 하지만 아무리 책을 좋아해도 대부분의 괜찮은 카페마다 사람이 많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으러 왔다리 갔다리 하는 사람들 때문에 도무지 집중이 되지 않았다. 그렇다고 사람 없는 카페만 찾아서 다닐 수 도 없고, 결국은 근사한 카페에서 커피 마시기는 포기했다. 하지만 한 가지 기대하지 않았던 고독의 시간은 카페가 아니라 오름 정상에서 맛볼 수 있었다. 제주에는 오름이 무려 360여개 정도 된다고 한다. 그 중에는 사람들이 카페처럼 바글거리는 유명한 곳도 있고, 사람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는 내가 스스로 길을 개척해서 올라가는 한산한 오름도 있고, 일정 기간 방문이 유예된 오름도 있다. 실제로 사람들이 많이 오르는 대표적인 오름은 50여개 정도가 아닐까 싶다. 그 중에서도 10개 정도는 너무 유명해져서 오르는 내내 그리고 정상에서도 마스크를 벗을 수 없을 정도로 사람이 많았다. 그 외에 한적한 오름을 오를 때에는 아무리 코로나 시국이라고 해도 나 혼자 그 오름을 전세낸 것처럼 마음껏 심호흡을 할 수 있었다. 오름의 매력은 이제 다리가 좀 당기고 숨이 차서 땀이 송글송글해질 무렵이면 어느덧 정상에 도착한다는 것이다. 웬만한 체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어렵지 않게 정상에 오를 수 있고 하루 운동으로 아주 적합하다는 것이다. 


오름을 혼자 오르내리며 가족끼리, 연인끼리, 친구끼리 짧은 기간 제주 여행을 와서 조금은 적절하지 않은 옷차림으로 등산을 하는 이들을 자주 목격하곤 했다. 오르내리며 들려오는 그들의 수다가 시끄럽게 느껴지기도 얘기할 대상이 있다는 게 부럽기도 했다. 어느날인가 오름 중에서는 꽤나 높은 편에 속하는 노꼬메오름 계단을 뛰어내려가는 내게 숨을 헐떡거리던 산을 오르던 중년의 아저씨 한 명이 무릎이 아픈지 잠시 숨을 돌리며 “아 부럽습니다”라고 인사를 건넸다. 내가 누군가에게 대놓고 부럽다는 말을 들었던 게 언제였나 생각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저자의 고독 살이 일기를 읽으며 잊고 지냈던 제주 살이의 추억이 되살아나고 언젠가 다시 그곳에서 자유롭게 오름을 오르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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