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영동 이야기
조남주 지음 / 한겨레출판 / 202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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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남주 작가의 [서영동 이야기]를 읽었다. "봄날아빠(새싹멤버)", "경고맨", "샐리 엄마 은주", "다큐멘터리 감독 안보미", "백은학원연합회 회장 경화",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 "이상한 나라의 엘리" 이렇게 7편의 단편이 서영동이라는 아파트 단지가 밀집해 있는 가상의 우리나라 도시의 모습을 배경으로 각각의 주인공들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연작 소설집이다. 나도 아주 어릴 때를 제외하고는 연립 주택을 시작으로 아파트에서 꽤 오랫동안 살아봤기에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마음에 쉽게 몰입되었다. 나 뿐만이 아니라 도시에 사는 우리나라 사람 대부분은 아파트에 살아본 경험이 있을 것이다. 이미 아파트가 넘쳐나는 것 같은데도 둘러보면 여전히 신축 아파트 공사장이 쉽게 눈에 띈다. 대체 이 많은 아파트의 주인은 누구일까? 인구가 서서히 줄어들기 시작한다는데, 나중에 시간이 흐르면 혹시나 빈 아파트가 생겨나는 것은 아닐까란 생각을 막연히 떠올려본다. 


부모님 세대 그러니까 1980년대 이전에 결혼하신 분들의 경우 신혼부터 자기 집을 갖고 시작하신 분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예삿말로 숟가락 두 개만 들고 시작했다는 말을 듣기도 했고, 사글세, 월세, 전세를 거쳐 몇 십년 만에 드디어 자기 집을 갖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곤 했다. 나라의 사정도 어려웠고, 소수를 제외한 대부분의 사람들이 비슷한 형편이었기에 자기 집 없이 결혼해서 서서히 살림을 넓혀가는 것이 당연하 수순으로 여겨졌다. 하지만 지금의 세대에게 그런 수순을 밟으라는 얘기를 쉽게 할 수 없다. 불과 몇 십년 만에 사람들이 느끼는 경제적 수준은 꽤나 올라갔고 상대적 부의 격차는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벌어졌다. 1년 내내 죽도록 일해도 천 만원을 저금하기 힘든 사람이 있는 반면에, 아파트 시세 이익으로 수억원을 손 쉽게 얻는 사람도 생겨났다. 이렇게 상대적 박탈감이 커져 있는 상황에서 예전 세대처럼 숟가락 두 개만 들고 시작하라는 말을 감히 누가 할 수 있을까? 사실 N포 세대라던지, 딩크족이라던지, 비혼주의라는 새로운 삶의 형태가 생겨난데에는 여러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이유 중의 하나로 정상적인 벌이로는 평범한 삶을 유지해나가는 것이 불가능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된다. 


"교양 있는 서울 시민 희진"의 주인공이 그러했듯이 빚을 지고 부산동 중개인의 적절한 개입과 과감한 투자의 선택으로 24평, 35평 그리고 40평대의 아파트로 이사를 하면서 처음 집을 장만할 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을 10억원이 넘는 집을 소유하게 된 희진의 예는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센스있는 아내이자 엄마의 모습을 모델로 하고 있다. 평범한 소시민의 삶을 지향해온 이들에게조차도 가만히 있으면 손해이고 바보라는 소리를 듣게 만들어 과감한 배팅을 시도하게 만드는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의 상황은 수익을 떨어뜨리는 위험요소라면 매몰차게 유해시설로 치부해 버리는 님비현상을 가속화 시키고 있다. 


하지만 우리가 쉽게 손가락질하고 험담했던 이들의 자세한 내막을 그려낸 저자의 단편들을 들여다보면 그들이 그렇게 나쁜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나도 모르게 동의하게 된다. 그 주인공은 누군가의 의 다정한 엄마이고, 무뚜뚝하지만 딸과 아들을 위해서라면 어떤 일도 가리지 않고 나설 희생적인 아버지이다. 가만히 들여다보면 이해하지 못할 사정도 없고, 그 사람이 그렇게 말하고 행동하는 이유가 있다는 이해심이 생겨나지만 바쁜 일상을 살아가는 이들에게는 그럴 여유가 없다. 그래서 우리는 쉽게 욕하고 미워한다. 그게 편하고 빠르기 때문에. 누군가를 용서하고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은 많은 시간을 필요로 한다. 바른영어수학학원 원장 경화가 생계가 빠듯하고 결국 살던 집에서 철거 시가가 다가와 오갈데 없어진 아르바이트생 아영에게 도움의 손길을 건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학원 옆 새로 지워지는 빌딩에 요양원이 들어서는 것을 반대하다가 엄마가 초기 치매증상을 보인 것을 계기로 남의 사정을 들여다보는 눈이 생겨난 것은 아닐까 싶다. 


"보미는 아버지가 검소하고 성실하고 영리한 어른임을 부정하지 않는다. 하지만 고도성장의 대한민국을 살았던 운 좋은 기성세대라는 것도 사실이라고 생각한다. 

지금처럼 규제가 촘촘하지 않고 취득, 양도, 보유에 따르는 세금 부담도 거의 없던 시절, 아버지는 투기에 가까운 횟수와 방식으로 부동산을 끊임없이 사고팔았다. 분양받은 아파트에서 도보 10분 거리에 지하철이 생겼고, 잘 팔리지 않아 애물단지던 아파트 건너편에 백화점이 들어왔고, 시끄러운 것이 유일한 단점이던 아파트 앞 대로가 지하화 되었고, 큰 욕심 없이 구입한 빌라 인근에 대규모 디지털단지가 조성되었다. 운도 좋았고 건설 경기가 호황이기도 했다. 이후 빌라를 원룸 건물로 리모델링해 월세를 놓았는데 디지털단지에 젊은 직장인이 많아 공실 한 번 없이 지금까지도 집안의 안정적인 수입원이 되고 있다. 아버지에게 집은 뭘까. 아파는 뭘까.(120-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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