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천천히, 북유럽 - 손으로 그린 하얀 밤의 도시들
리모 김현길 지음 / 상상출판 / 2020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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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모 김현길 작가의 [혼자, 천천히, 북유럽]을 읽었다. 북유럽 여행기는 처음 보게 되어서 그런지 모르겠지만 핀란드,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 4개국을 익히 들어왔음에도 소개되는 명소와 자연 경관은 너무나도 생소하게 다가왔다. 더군다나 그동안 보았던 사진이 첨부된 여행기가 아니라, 저자가 직접 그린 드로잉화로 묘사된 모습들은 새로운 상상력을 자극했다. 사진이 가진 현실성과 직관성은 평면적으로 다가올 수 밖에 없는 자연과 건축물과 사람들의 아름다움을 그림으로 더욱 입체감 있게 다가왔다. 부제가 ‘손으로 그린 하얀 밤의 도시들’이라고 되어 있는데 흔히 북유럽을 백야의 도시라고 말하기 때문이다. 저자가 몇 번이 반복해서 북유럽의 살인적인 물가라고 표현을 하는데, 어찌보면 스칸디나비아 반도의 4개국은 유럽 여행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래서 그런지 서유럽과 동유럽을 다녀온 사람들은 많아도 북유럽에 대한 이야기는 그리 많이 듣지 못한 것 같다. 유럽 여행에서 북유럽 4개국과 스위스, 영국은 바게뜨빵으로 연명할 것인지, 아니면 주머니를 두둑하게 하고 갈 것인지 선택해야 한 번 가볼 용기가 나지 않을까 싶다. 
예정대로 스페인 살라망카의 어느 기숙사에서 이 책을 봤더라면 무리를 해서라도 티켓팅을 하고 서둘러 숙소를 알아보지 않았을까? 라는 씁쓸한 상상을 해 본다. 랜선 여행 대신 드로잉 수채화로 그려진 그림 여행을 대리 만족하며 아쉬움과 미련을 떨구어내어 본다. 여행기를 볼 때마다 여기는 꼭 가보고 싶다, 이건 꼭 먹어 보고 싶은데, 우아 그 미술관에 가서 저 그림은 꼭 봐야지 라는 결심을 하지만, 사실 그곳에 가지 않아도, 그 음식을 먹어보지 않아도, 아무리 유명한 명화를 보지 않아도 이곳에서 살아가는데 아무 변화가 없다. 그럼에도 끊임없이 무리를 해서라도 여행을 꿈꾸는 이유는 막연한 상상과 표면적으로만 보고 들어온 것들을 직접 경험하게 될 때의 추억의 간직하고 싶기 때문이다. 그렇게 내 마음에 차곡차곡 쌓여진 추억들은 내 삶이 먼지가 풀풀 날리듯 각박해져 갈 때, 긁혀진 마음이 쉽사리 아물지 않을 때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때 그 장면의 환영을 만들어 서서히 나를 위로해 주는 것 같다. 

“여행을 하면 하루의 목표는 단순해진다. 현지인에게 말 한마디를 거는 사소한 일에도 많은 에너지를 쏟게 되고, 끼니를 때우기 위한 식사가 아닌 이곳의 낯선 음식을 먹는 것 그 자체가 하루의 목적이 되기도 한다. 숨 가쁘게 다가오는 순간들에 집중하다 보면, 보이지 않는 먼 미래에 대한 염려는 잠시 설득력을 잃는다. 지금의 여정이 모두 끝나기 전까지는 너무 멀리 있는 시간에 대해 고민하지 않기로 했다. 실체가 없는 불안으로부터 자유로워지자 발걸음이 가볍게 느껴졌다. 여행은 어쩌면 현재에 집중하는 법을 다시 배우기 위해 떠나는 것이 아닐까.(85)”
“스웨덴 크리스티나 여왕은 학구열이 높기로도 유명했다. 그녀는 당시 저명한 철학자인 데카르트에 심취해 있어 여러 차례에 걸쳐 그를 초청하기도 했다. 데카르트는 여왕의 끈질긴 권유 끝에 마침내 스톡홀름으로 이동해 여왕의 철학 교사가 되었는데, 그의 선택은 불행의 단초가 되었다. 여왕은 매일 새벽 5시에 강의를 듣고 싶어 했다. 몸이 약했던 데카르트는 스톡홀름의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며 강의를 준비해야 했고, 반복되는 고된 일정을 소화하지 못해 결국 폐렴에 걸렸다. 끝내 병세가 호전되지 못해 그는 결국 다음 해인 1650년에 이곳 스톨홀름에서 생을 마치고 말았다. 근대 철학의 창시자 데카르트가 세상과 서둘러 이별한 데에는 이렇듯 여왕의 뜨거운 학구열이 한몫했다.(146)”
“피오르는 ‘내륙 깊이 들어온 만’이란 뜻을 지닌 노르웨이어로 빙하가 침식시킨 ‘U’자형의 깊은 골짜기에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바닷물이 유입되어 만들어진 좁고 기다란 만을 뜻한다.(208)”
“한자리에 멈춰 있는 듯 보이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빙하는 끝없이 움직이고 있다. 다만 속도가 느리기 때문에 알아볼 수 없는 것이다. 빙하는 억겁의 시간 동안 서서히 미끄러지며 커다란 바위를 부수고 깊은 골짜기를 만들었다. 바닷물이 들어와 골짜기를 채우면 그것이 피오르가 된다.(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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